김충남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전문연구위원

문제는 역사의 해석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싸고 역사전쟁이 재현되고 있다. 이 전쟁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고 계속되어 왔으며, 자율적으로 해결될 수 없었기 때문에 정부에 의해 '응급 수술대'에 오르게 된 것이다.
이를 계기로 기존 검정 교과서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데는 대체로 인정하면서도그 해결방법이 국정화이냐에 대해 논란을 벌이고있다. 그러나 자율이 국가공동체를 부정하거나 부끄러워하게 만든다면 타율에 의해서라도바로잡는 것이 마땅하다. 역사교육을 제대로하지 못한다면 정부다운 정부라 할 수 없는 것이다.

역사관이란 안경과 같은 것이다. 빨간색 안경을 쓰고 보면 세상이 빨갛게 보이고, 파란안경을 쓰고 보면 파랗게 보이는 것처럼 역사라는 객관적 사실도 역사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우리 현대사를 객관적으로 보면 성공한 역사임에 틀림없지만, 우리 사회의 역사인식은 매우 부정적이다. 이것은 심각한 모순이아닐 수 없다. 국가발전에 성공했다면 그 역사는 결코 잘못된 역사라 할 수 없다. 단지 잘못된 관점으로 보기 때문에 잘못된 역사로 인식되고 있을 뿐이다. 케말 아타튀르크(KemalAtatürk)는 “역사 창조도 중요하지만, 역사 해석이 더욱 중요하다”고 했다. 역사해석과 역사교육을 가장 잘못하고 있는 나라가 한국이 아닐까 생각된다.

검정 교과서에 나타난 것은 빙산의 일각일뿐이다. 주류 국사학계의 역사인식을 제대로인식하지 못하고는 역사전쟁에서 승리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한국현대사를왜곡되게 인식하고 있는 사관(史觀)으로 민족사관, 민주사관, 민중사관이 있으며, 이들 사관은 밀접히 연관괴어 있다.

국가의 역사를 경시하는 민족사관(民族史觀)
민족사관은 민족을 역사해석의 중심 개념으로 삼는다. 이 사관은 그 동안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와 일본의 영향을 받은 식민(植民)사관을 극복하는데 기여했다. 그러나 국사(國史)란국가 중심의 역사여야 하지만, 이 사관은 국가사(國家史)가 아닌 민족사(民族史)에 초점을맞추면서 국가를 경시할 뿐 아니라 민족 대 반민족의 이분법적 단순논리로 접근한다. 대한민국을 민족 분단을 통해 설립된 결손(缺損)국가이며, 따라서 대한민국의 역사는 ‘민족분단사’에 불과하다면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사실상 부정한다.

그들은 대한민국의 건국을 민족의 분열로,건국 대통령을 분단의 책임자로, 반공ㆍ안보정책을 반민족적 반통일적이라고, 경제발전정책을 강대국 경제에 종속시킨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들은 또한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은 반민족세력인 친일세력 또는 분단세력이주도했기 때문에 정통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건국, 반공투쟁과 호국(護國), 산업화, 민주화 등 우리나라의 중요한 역사적 발자취를 도외시한다. 동시에 북한에 대해서는 같은 민족이라는 이유로 호의적이며,미국, 일본 등 우방국에 대해서는 배타적이거나 적대적이다. 이와 관련하여 백낙청은 ‘분단체제론’을 주장하면서 진보세력이 곧 민족세력이고, 민주세력이며, 또한 통일주도세력으로 규정하는 동시에 보수세력은 반민족세력이고, 반민주세력이며, 반통일세력이라고 매도한다.

그들은 북한은 친일세력을 청산했던 반면한국에서는 친일세력이 지배세력으로 군림해왔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리영희는 “북한은 반민족적 친일파의 사상․인물을 청산한반면, 남한은 청산은커녕 그자들이 지배를계속했다. 그들은 자신의 생존과 기득권 보호를 위해 반민족적 적대 관계, 냉전체제, 반공 이데올로기, 제도, 행동양식을 극단적으로 유지해 왔다”고 주장하는 반면 북한에 대해서는 “가난하지만 주체적이고 자주적이며,정통성을 지닌 도덕적 사회주의국가”라고 미화했다. 강만길도 “친일세력이 곧 냉전세력이 되고 우익세력이 되어 남한을 주도해왔다”면서 “냉전세력 극복의 길은 냉전세력의뿌리인 친일세력 청산이 선행되어야 한다”고주장한다.

그들은 6․25전쟁은 남침이 아니라 반외세(反外勢) 반봉건(反封建)의 민족해방전쟁이라고 미화하고 이 전쟁이 외세의 개입으로실패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강만길은“6․25는 전쟁통일의 방식으로 실패한 통일전쟁”이라고 하는 등, 김일성의 남침을 정당화한다.

그들은 분단극복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통일만이 민족정체성을 회복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통일지상주의에 젖어있다. 북한은 민족의 일부일 뿐 아니라 통일을 위해 포용해야 할대상으로 여기면서, 냉전시대의 반공안보정책이 분단을 지속시키고 민족 간 증오와 대결을조장해왔다고 비판하며, 또한 주한미군을 통일의 장애요인으로 간주하여 반미운동을 전개해왔다. 나아가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하는 등대한민국에 대한 가장 심각한 위협이라는 사실을 외면한다.

이처럼 그들의 민족의식은 지나칠 정도이지만 국가의식은 의심스러울 정도로 희박하기때문에 현대사를 객관적으로 서술하기 어려운것이다.

국가안보와 경제발전을 도외시하는 민주사관(民主史觀)
민주사관이란 민주화세력의 역사인식을 말한다. 한국은 4.19혁명을 시작으로 줄기찬 민주화 투쟁을 통해 민주화가 이루어졌으며, 민주투쟁을 주도했던 세력이 연이어 집권하여역사청산을 시도하면서 현대사 인식에 부정적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 사관은 현대사를 독재정권에 대한 민주투쟁의 역사로 해석한다. 그들은 민주주의를절대선(善)으로, 그들의 타도대상이었던 독재정권은 절대악(惡)으로 여기며, 이승만과 박정희 정권이 중시해온 국가안보와 경제발전을독재정권 유지를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며 이들 정권의 정통성을 사실상 부정한다. 그들은자신들의 도덕적 정당성에 대한 확신으로 배타적 독선주의에 빠져 민주주의의 중요 가치인 대화와 타협보다는 보수세력을 반민주세력으로 매도하고 공격함으로써 정치사회적 갈등을 심화시켰다.

이러한 인식을 가진 사람들은 한국 민주주의의 시행착오의 책임을 과거 집권자들에게돌린다. 그러나 서구식 민주주의는 대다수 신생국에서 실패했다. 유럽의 민주주의도 몇 백년에 걸쳐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서서히 발전되었으며, 따라서 민주주의의 조건이 미비한신생국에서 민주주의가 뿌리내리지 못했던 것이다.

건국 이후 상당기간 동안 우리나라의 여건은 민주주의를 실천할 수 있는 형편이 못 되었다. 절대 빈곤과 높은 문맹률 등 민주주의의 사회경제적 조건이 미비했던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좌우익 대립 등으로 혼란에 빠져 있었으며, 6·25전쟁과 남북대치 등으로 민주주의는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민주주의는 어떠한 조건 하에서도 최우선적가치가 되는 것이 아니다. 국가가 심각한 안보위협이나 절대빈곤에 처해 있을 경우 다른 가치가 우선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승만과 박정희 정부 하에서 국가안보를 튼튼히 하고 경제발전을 도모한 것은 거시적 차원에서 보면민주주의에 역행한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의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노력이었던 것이다. 더구나 공산세력이 대한민국의 전복을 위해 민주투사로 위장하는 등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기 때문에 때로는 비민주적 수단을 동원하는 것이 불가피했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열악한 안보환경으로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는 나라는 민주주의보다는 안보를 중시한다. 이스라엘이 대표적이다. 미국 같은 대표적 민주국가도 전쟁 중에는 안보가 모든 것에 우선했다. 링컨은 남북전쟁 당시 수시로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기 때문에 당시 미국언론은 그를 독재자 또는 폭군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이러한 비난에 대해 링컨은 자신의조치가 “평상시에는 헌법에 위배될지 모르지만 전시에는 나라를 보위하고 헌법을 수호하기 위해 불가피하다”고 했다.

세계에서 가장 호전적인 북한의 직간접 침략에 맞서온 나라에서 안보를 도외시하고 남북 체제경쟁의 핵심인 경제발전을 경시하는역사관이 현대사를 제대로 해석할 수 없다는것은 너무도 명백하다.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민중사관(民衆史觀)

민중사관은 민중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역사인식이다. 민중민주주의는 급진적 민주주의와 급진적 민족주의가 결합된 것으로 ‘역사발전의 주체는 민중’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사실상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있으며, 그래서 공산주의식 계급사관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1980년대 급진적 학생운동을했던 386운동권 세력은 자유민주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민중민주주의 또는 인민민주주의(people's democracy) 등 변형된 민주주의를 추구해왔다. 그들은 한국 자본주의는 미국, 일본 등에 종속된 자본주의로, 매판(買辦)적인 자본가들이 외세의 앞잡이인 국가권력과 결탁해 민중을 수탈해왔을 뿐이며, 따라서역대 정부는 국가와 국민, 그리고 민주주의에역행하는 정권이었다고 규정하고, 따라서 지배체제를 타도하고 민중이 주도하는 민중정권을 수립한 후 통일을 이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북한에는 이미 반제국주의,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이 완수되었지만 미국의 ‘새로운 식민지’로 남아있는 남한은 미국제국주의자들과 그 앞잡이들의 방해로 그 같은 혁명이 좌절되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한반도 통일의 1단계로서 남한에서 반제국주의,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중민주세력이 한 때 집권세력의 일부가 된 후에는 그 동안 친일·친미적 기회주의 세력이 득세하고 그들의 권력욕으로인해 역대 정권이 독재를 하고 부정부패에 빠져 현대사를 부끄럽게 만들었다면서 과거 국가발전의 주역이었던 ‘주류세력을 청산하고타도하기 위한 ‘역사전쟁’을 전개하면서 현대사 인식에 심각한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

이 같은 노선을 신봉하는 역사연구자들은자신들의 역사학을 ‘민중사학(民衆史學)’이라했다. 민중사학은 “한국 현대사를 지배계급과민중 간의 대립”으로 규정하고 “역사발전을민중의 주체성이 확대되어 가는 과정”이라 주장하면서 역사학은 “민중이 주인이 되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변혁의 전망을 모색하는 실천적 학문”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중사학 노선에 집착한 역사연구자들은1980년대 후반부터 현대사 관련 서적을 발간하고 중고교 역사교과서도 집필해왔으며, 이러한 노선을 추종하는 중고교 역사교사들이전국역사교사모임을 결성하고 민중사학 노선의 중고교 역사교재를 발간해왔다. 그들은 중고교 역사교사의 3분의 1 가량인 2,000여 명으로 구성되어 있어 학교 역사교육을 좌우하고있는 실정이다.

시급한 현대사 정론(正論)의 정립위에서 소개한 세 가지 역사관은 명분은 그럴 듯 해 보이지만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현대사를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결과를 초래하고있다.

첫째, 역사의 연구와 해석을 위한 순수 학문활동이 아니라 민주화투쟁, 통일투쟁, 민중민주운동 등, 정치투쟁과 이념투쟁의 수단으로삼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는 권력을 위한 수단이 되어서도 안 되지만 정치투쟁이나 이념투쟁의 수단이 되어서도 안 된다.

둘째, 남북대치로 인한 심각한 안보현실을무시하는 한 그것은 객관성 있는 역사해석이될 수 없다. 마지막으로, 현대사 중에서 이승만 정부부터 전두환 정부까지 40년 정도의 기간을 친일·독재정권으로 낙인찍음으로써 사실상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권위주의 시대를 미화해서는 안되지만 그 시대를 일방적으로 매도해서도 안될 것이다.

잘못된 역사관이나 그러한 인식에 의한 현대사 서적이나 교과서를 비난만 해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더구나 그 같은 역사인식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들 나름의 확고한 신념과 논리를 가지고 끈질기게 연구하고 투쟁해왔으며, 나아가 역사전쟁이 이념전쟁, 정치전쟁, 문화전쟁 등과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쉽게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연구와출판과 토론 등 한국현대사의 정론을 정립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