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남
한국군사문제연구원
객원연구위원
대통령학 전문가


막다른 골목에 이른 북한 핵 문제
안보전략의 요체는 적의 전략의도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다. 북한 핵 위협이 한국과 일본은 물론 태평양 저 멀리 있는 초강대국 미국까지도 직접 위협이 될 만큼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미국은 북한 핵을 IS 위협과 함께 2대 안보위협으로 간주하고 북한에 대해 유엔 중심의 다자적 제재와 더불어 더욱 강력한 독자 제재를 하고 있고, 군사적 수단도 배제하지 않겠다며 최첨단 전략자산을 한반도 주변에 수시로 투입하고 있다. 이로 인해 북한은 6차 핵실험은 유보했지만 미사일 시험 발사를 계속하며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는 태세이다. 그야말로 한반도에서 언제 어떤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지 모르는 ‘준전시사태’라 할 수 있다. 이 사태를 심각히 여긴 일본 정부는 주한 일본인들의 피난계획과 유사시 한반도에서 몰려들지 모르는 피난민 대처계획까지 점검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 가운데 북한 핵문제에 대한 대화론이 등장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 핵문제에 대한 군사적 압박에 반대하며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거듭 주장한다. 북한 핵문제보다는 미국 견제를 우선하기 때문에 취한 입장이라 할 수 있다. 미국도 군사적 해결책이 한반도를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을 위험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마저 대화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새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북한에 대해 다양한 대화를 제의하고 있다.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에 핵 폐기라는 전제가 있지만 협상이란 상대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북핵 동결을 목표로 할 가능성이 크다. 막강한 핵 전력(戰力)을 자랑하는 미국으로서는 북핵 동결로 미국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을 차단할 수 있다고 판단할 수 있고, 핵 강국인 중국과 러시아도 북한의 핵 동결이 한반도 문제의 해결책이라 인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적든 많은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한다는 사실 그 자체가 한국의 입장에서는 죽느냐 사느냐의 심각한 ‘존재론적 위협(existential threat)’인 것이다.

개혁·개방을 절대로 할 수 없는 북한
북한은 개혁·개방을 하지 않으면 안 되며, 북한이 개혁·개방을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 같은 생각의 모순은 북한이 왜 개혁·개방을 하지 않는지 그리고 북한이 개혁·개방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잘 모르고 있다는 문제가 있다. 중국은 과거 여러 차례 김정일 위원장을 초치하여 중국의 개혁·개방 현장을 보여주며 북한의 개혁·개방을 강력히 촉구했지만 김정일은 그 권유를 외면해 왔던 것이다.

오히려 김정일은 소련과 동유럽 공산국가들이 개혁·개방으로 사회주의를 파탄에 빠뜨렸다고 비난했다. 특히 김일성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김일성식 우상화 정책을 폈던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가 개혁·개방의 결과로 인민들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하는 것을 보면서 북한에서도 그 같은 일이 일어날 것으로 우려했다. 김정일은 개혁·개방 과정에서 자본주의 황색 바람을 따라 ‘모기’들이 들어오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 모기장을 겹겹이 쳐야 한다고 했다. 다시 말하면, 개방·개혁과는 반대로 대외 접촉과 교류를 제한하고 대내적으로 주민통제를 강화했던 것이다.

우리는 개혁과 개방이 북한 생존의 필수적 요건이라 인식했을지 모르지만, 북한은 개혁·개방이 김일성 체제를 파멸시키게 될까 우려했던 것이다. 왜 개혁과 개방이 북한의 3대 세습체제를 무너뜨리는 원인이 된다는 것인가?

북한이 중국식 개혁과 개방을 통해 경제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핵무기, 화학무기, 생물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를 폐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야만 북한이 미국, 일본 등과 외교관계를 수립하게 되고, 일본으로부터 식민지배에 대한 100억 달러 규모의 배상도 기대할 수 있고, 한국 등 여러 나라로부터 투자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북한은 정치적 사회적으로 통제와 감시를 해제하여 주민들이 자유롭게 활동하도록 해야 하고, 대외적으로 개방하여 북한 주민들이 외국에 나갈 수 있고, 외국인들이 북한에 들어와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만 자유로운 무역도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3대 세습정권은 개방과 개혁을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왜냐 하면, 북한정권은 거짓말과 과장과 왜곡으로 쌓아올린 모래성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역사조작을 통해 김일성 일가를 우상화해왔다. 북한의 역사는 1%의 진실을 기초로 99%를 조작한 위조된 역사이다. 북한 역사는 백두산 일대를 근거지로 한 김일성의 항일투쟁의 결과로 해방되었다고 주장한다. 항일투쟁 당시의 김일성은 신(神)과 같은 존재로 묘사되고 있다. 그는 모래로 쌀을 만들었고, 솔방울을 수류탄으로 둔갑시켜 싸웠고, 낙엽을 타고 강을 건넜으며, 축지법과 신출귀몰한 전술로 일본군에 연정 연승했던 위대한 영웅으로 둔갑시켰다. 6.25전쟁도 중공군이 아니라 김일성이 주도했으며, 미군을 물리치고 승리를 쟁취했다고 주장해왔다. 북한은 인민의 낙원인 동시에남한은 인민의 지옥이라 선전해왔다.

김일성이 백두산을 근거지로 항일투쟁을 했다거나 김정일이 그곳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그럼에도 북한정권은 백두혈통 운운하며 세습독재를 정당화하고 있다. 모래 위에 쌓은 성(城)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것처럼 거짓말 위에 서 있는 북한정권이 그 거짓이 탄로 나면 종말이 올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북한은 세습독재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역사상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주민에 대한 철저하고도 가혹한 통제를 해왔다. 즉 물리적 통제, 정보 통제, 사상통제가 그것이다. 주민은 핵심계층, 동요계층, 반동계층으로 구분하여 철저히 감시하며 모든 언행을 감시하고 통제한다. 당의 노선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강력히 처벌받으며, 연좌제에 따라 친척들까지 처벌 받는다. 다음으로 철저한 정보 통제를 통해 우민(愚民)정치를 편다. 북한은 대외접촉을 철저히 통제하며 외부의 정보 유입을 차단하며, 북한의 모든 매체가 노동당의 선전수단에 불과할 뿐 아니라 철저히 통제받기 때문에 주민들은 나라 안팎 소식에 깜깜할 뿐이다. 마지막으로 사상통제이다. 가정, 학교, 직장을 통해 어릴 때부터 계속해서 김일성 일가에 대한 우상화교육을 받는다.

만약 북한이 중국 수준의 개혁·개방을 한다는 것은 통제와 감시를 전반적으로 풀어 주민들에게 상당한 자유를 허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로 북한주민들은 수십 년 동안 김일성 일가에 의해 기만당하고 고통 받아 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특히 ‘인민의 지옥’이라 했던 한국이 너무도 자유롭고 잘 살고 있다는 인식을 하게 되면 북한정권에 대한 분노가 치솟을 것이기 때문이다.

소련에서 개혁·개방이 가능했던 것은 스탈린 사후 스탈린 격하운동이 일어났을 뿐 아니라 브레즈네프, 흐루시초프, 고르바초프 등 연이은 리더십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며, 중국에서도 마오쩌둥의 사망 후 등소평 체제가 등장하여 개방과 개혁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에 비해 북한에는 김일성 중심의 1인 독재체제가 지속되었을 뿐 아니라 그 권력이 아들과 손자로 세습되었기 때문에 근본적인 노선변화가 불가능한 것이다.

특히 북한이 가장 실패한 국가의 하나로 전락한 것도 무엇보다도 김일성과 김정일의 독재와 무능과 교만 때문이며, 개혁과 개방을 한다는 것은 그 같은 김일성체제의 실체를 노출시키는 것이며, 그렇게 되면 신뢰가 바닥이 난 북한정권은 유지되기 어렵게 된다. 따라서 김일성 체제의 청산 없이 북한의 개혁·개방은 불가능하고, 그래서 북한은 정상국가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북한은 정권의 생존이 오로지 핵무기에 달렸다고 인식
더구나 북한은 군대에 힘입어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북한이 국내총생산(GDP)의 20~30%를 군사비에 투입하는 등 과중한 군사비 때문에 개혁과 개방에 투입할 자원이 별로 없다.
개혁·개방을 통해서는 북한정권의 생존이 어렵기 때문에 유일한 생존수단은 핵 보유국이 되는 길 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이며, 그 연장선상에서 적화통일도 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김정일의 사망 직전인 2011년 10월 8일, 29살에 불과하고 경험도 없는 김정은에게 남긴 유언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그 유언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핵, 장거리 미사일, 생화학무기를 끊임없이 발전시키고 충분이 보유하라.
둘째, 합법적인 핵보유국으로 당당히 올라서라.
셋째, 6자회담을 우리의 핵 보유를 전 세계에 공식화하는 회의로 만들라.
넷째, 조국 통일문제는 우리 가문의 종국적 목표다.

마지막으로, 주한미군을 철수시켜 대국들이 중립적인 입장을 가지도록 하라.
지난 5년 간 김정은은 그 유훈을 저돌적으로 실천해왔다 그 동안 세 차례의 핵 실험과 40여 차례의 탄도 미사일 발사 시험이 있었다. 과연 어떤 당근으로 김정은을 회유할 수 있을 것인가? 대화가 필요할지 모르지만 군사적 외교적 대응전략이 우선 되어야만 하는 것이 아닌가? 대한민국의 생존전략을 심각히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될 단계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