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념과 의지의 虛虛實實 - 보구엔 지압 隱忍自重 리더십 인내·파격·도전·戰場감각으로 佛·美·中 이긴 ‘3不전략
기자 : 관리자 날짜 : 2021-07-03 (토) 20:54




그는 두 차례의 세계사적인 결전(決戰)을 승리 로 이끌었다. 1950년대엔 ‘디엔비에푸 포위전’을 지휘하여 프랑스의 1만 5000 병력을 섬멸시켜 마침내 프 랑스군을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영영 철수하게 만들었다. 1954년 3월부터 베트남·라오스 국경 지역인 디엔비엔푸에서 베트남 독립정부인 베트민(Viet Minh, 越南독립동맹회)의 병력 5만 명이 막강 프 랑스군을 상대로 벌였던 전투에서 그는 해방군 총 사령관으로서 치밀한 준비 끝에 55일간 대대적인 공세를 펼쳐 프랑스군을 궤멸시켰다. 당시 베트민 은 전투가 개시되자 밀림 속에 숨겨놨던 105미리 포를 발사해 프랑스군을 혼비백산하게 만들었다. 1960~70년대 월남전 때는 북베트남(월맹·越盟) 국방장관이었다. 그는 1968년 구정공세(舊正攻勢)를 지휘했다. 전투에선 미군이 이겼으나 언론을 통한 심리전에서 미국을 물리쳤다.

월남 전의 진정한 전선은 미국 가정의 TV였다. 이 TV 가 전한 구정공세의 생생한 전투장면들은 미국 인의 전쟁 의지를 꺾어버렸다. 여론의 변화를 실 감한 존슨 대통령은 재출마를 포기했고 월맹과 평화협상을 시작하도록 만들었다. 1973년 그는 미국군을 베트남에서 몰아냈으며, 1975년 4월 30일, 마침내 북베트남(越盟)군을 이끌고 남베트 남(越南)을 함락시키고 베트남을 통일했다. 통일 베트남 민병대가 중국 정규군을 물리친 것도 대단한 위업이다. 1979년 2월 17일 중국은 20만 정규군을 앞세 워 전격적으로 베트남을 침공했다. 친중(親中) 폴 포트의 크메르 루즈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캄 보디아를 공격한 베트남을 혼내주고 그들 병력 을 철수시킴과 동시에 친(親)소·반(反)중 노선을 펴는 베트남을 응징하기 위한 의도였다. 당시 베트남 정규부대 15만 병력은 캄보디아 에 있었다. 78년 12월 캄보디아에 진입한지 2주 만에 크메르 루즈 세력을 패퇴시켰다. 베트남군 주력은 10만의 지역 수비대와 민병 대. 그들은 복잡한 산간지형, 엄폐물로 상대를 괴롭혔다. 미국과의 전쟁에서 단련된 병사들의 거센 저항에 중국군은 고전했다. 전세는 혼전 양 상이었다. 막판에 어렵사리 하노이에서 140km 떨어진 접경도시 랑선을 점령했다. 3월 16일, 중국은 “(징벌의) 목표가 달성됐다” 고 선언하고 전쟁 개시 28일 만에 돌연 철군했 다. 중국은 체면을 세웠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베트남군의 캄보디아 철수 목표는 이루지 못했 다. 전투 현장에선 사실상 패배다. 피해는 컸다 (추정 사망자: 중국 2만 6000, 베트남 3만). 1954년부터 1979년, 25년 사이 세계 최강대국 프랑스, 미국, 중국을 상대로 잇따라 승리를 거두고 자유독립과 통일국가의 위상을 만방에 과시한 베트남 군대의 저력은 ‘20세기의 경이적 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빛나는 전공을 세운 배경에 ‘베트남의 군신(軍神)’으로 불리는 천재 전략가 보 구엔 지 압(Vo Nguyen Giap, 武元甲·1911~2013) 장군 의 걸출한 리더십이 있다. 보 구엔 지압의 일생과 20세기 베트남 역사에 서 가장 결정적인 장면은 프랑스와 벌인 ‘디엔비 엔푸 전투’의 승리다. 이 전투는 식민지 지배를 받는 국가가 제국주 의 강대국을 처음으로 물리친 역사적 사건이었 고, 지압 장군의 전략과 베트남군의 실력을 세계 에 각인시킨 한편의 드라마였기 때문이다. 후일 지압 장군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프랑 스와 미국·중국을 차례로 격퇴시킨 원동력에 대 해 이렇게 말했다. “노예로 사느니 모든 것을 희생하겠다는 인민 들의 의지가 베트남의 독립을 가져왔다. 결국 자 유란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불굴의 의지에 의해 지켜지는 것이다. 베트남은 1000년간 외적의 침 입을 견뎌 왔다. 베트남인들은 외적과의 싸움에 익숙하며 두려워하지 않는다.” 프랑스와 미국의 패인과 관련해선 “우리는 프 랑스와 미군을 정확히 파악했지만 그들은 베트 남인이 어떤 사람들 인지 알지 못했고 알려고 들 지 않았다. 우월한 무기만으로 충분히 이길 것으 로 오판했다.” ‘디엔비엔푸 전투’의 승리는 미국과의 베트남 전에 큰 교훈이 돼 1968년 구정(舊正) 때 베트남 전 지역에서 일제 공격을 단행했다. 군사적 작전 이면서도 정치·외교적 작전이었다. 미군을 쓸어 낼 순 없지만 전쟁 의지를 꺾을 수 있다고 판단 했다. 신속하고 대담하게 싸움으로써 두 전쟁에 서 모두 이길 수 있었던 것. 보 구엔 지압 장군은 1911년 8월 25일 베트 남 중부 안싸 지방에서 태어나 2013년 10월 4일 102세 40일에 사망했다. 그는 부농의 집안에서 태어나 프랑스 역사에 심취해 공부한 역사학도 였다, 쇼팽을 좋아했고 중국으로 건너가기 전에 는 고향에서 역사교사를 했다. 1939년 그가 28세 때 중국으로 건너가 후일 베트남의 국부(國父)로 추앙받는 호찌민(胡志明) 을 만나 군대를 창설한다. 월남에 주둔 중인 프 랑스군을 몰아내기 위해 베트민을 창설하였다. 그는 군사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그러나 독학 으로 공부하여 알렉산더 대왕에서 손자병법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명장과 병법에 통달했다. 그의 명성이 본격적으로 빛을 발한 건 1954년 베트남과 라오스 접경에서 벌어졌던 ‘디엔비엔 푸 전투’에서였다. 압도적인 무기로 무장한 프랑 스였지만 지압의 지략이 덧붙여진 베트남 인민 의 의지에 무참히 궤멸하고야 만다. ‘디엔비엔푸 전투’ 전인 1953년 말, 베트남군 은 이미 프랑스 진지를 기습공격할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 그러나 프랑스 측을 살펴보니 임시 막 사 같던 진지가 철옹성으로 변한 것이었다. 그대 로 공격하면 질지 모르는 상황. ‘100% 이긴다는 확신이 들 때만 공격하라’는 지침에 따라 지압 장군은 공격을 연기하고 전략을 바꿔야 한다고 동료들을 설득했다. 그러나 공격을 미루면 목숨걸고 정글 속을 통해 끌고 온 대포 등을 되돌려 은신처로 가져가야 할 처지였다. 많은 이가 ‘수 적으로 우세하니 공격하면 이길 수 있다’고 퇴각 을 반대했다. 그럼에도 그는 철수를 강행했다. 베트남이 오랜 프랑스 지배의 사슬을 끊고자 벌인 대불항쟁(對佛抗爭)이 1차 인도차이나 전쟁 (1946~1954년)이다. 베트민(Vietminh·베트남 독립동맹회)은 변변한 무기도 없이 게릴라전으 로 기나긴 투쟁을 시작하게 된다. 1차 인도차이나 전쟁에 종지부를 찍은 전투가 ‘디엔비엔푸 전투’(1954년 3~5월)였다. 프랑스 는 전쟁을 끝내기 위해 대규모 작전을 계획한다. 디엔비엔푸는 베트남 북부 하노이 서쪽(160km) 라오스 국경에 위치한 조그마한 마을이었는데, 라오스로 통하는 전략적 요충지였고 산악으로 둘러싸인 계곡 지역이었다. 베트남 특유의 게릴라전에 전쟁이 장기화하 며 곤욕을 치르던 프랑스는 베트민을 디엔비엔 푸 지역으로 끌어낸 뒤 결정타를 가해 전쟁에 종 지부를 찍고자 했다. 프랑스는 절대적으로 유리 한 화력과 물자를 총동원했다.

심지어 그들은 물 자 공급을 위해서 활주로와 요새를 건설하고, 엄 청난 병력을 배치했다. 작은 협곡에 1만 5000명 의 병력을 집결시키고 압도적인 전력을 배치해 서 베트민을 일시에 소탕하려고 했다. 베트민 총사령관 지압 장군은 프랑스군의 이 런 작전을 간파하고 있었다. 프랑스는 디엔비엔푸 지역이 전략적으로 우세 하다고 판단하고 베트민을 유인해서 소탕하겠다 는 전략이었지만, 베트민은 유인을 당하는 척 적 을 속였다. 프랑스가 항공기로 무기와 군수물자를 엄청나게 준비하는 동안 베트민은 주변 산악에 무 기와 군수물자를 쌓았다. 프랑스군이 항공기로 운 송하는 것과 베트민이 길도 없는 산악지역에 물자 를 준비하는 것은 비교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베트민은 프랑스군의 정찰을 피해서 울 창한 밀림의 산악지역에 전쟁 물자를 쌓아가고 있 었다. 산악에 도로가 없으니 모든 물자를 인력과 자전거에 의지해서 옮겼다. 먹을 양식, 탄약, 대포 를 산악으로 이동하는 것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가장 힘든 것은 대포를 이동하는 것이었다. 대포 는 가능한 한 모두 분해를 하고 밧줄로 몸에 묶어 서 끌고 이동을 해서 200여 대를 디엔비엔푸 주변 의 산악에 배치했다.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인 력으로 대포를 이동해서 고지에 배치한 것이다. 전쟁 물자를 수송하는데 25만 명이 동원되어 수 백㎞ 거리를 이동하여 마지막 결전을 준비한 것이 다. 이 중에서 절반이 여성이었다고 한다. 5만 베 트민 병사들은 그렇게 결전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압 장군은 전투준비가 완료될 때까지 참호(塹壕)를 파고 무기를 이동하면서 ‘그날’을 기다렸다. 지압 장군은 이 하나의 전투를 위해 10년을 준 비했다. 오랜 세월 은인자중(隱忍自重), 와신상담 (臥薪嘗膽)하며 ‘필살기(必殺技)’를 마련한 것이다. 여러 부족 언어로 신문을 만들어 돌리며 독립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그렇게 하나둘 병력을 모았 다. 무기 이동은 은밀하고 집요했다.지압 장군은 한국전쟁 때 중국군이 노획한 미군의 105미리 대 포를 지원받았지만 이를 숨기기 위해 ‘디엔비엔푸 전투’가 벌어지기 전까지 절대로 사용하지 못하 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베트남인들은 3개월 동안 밀림을 뚫고 200여 대의 대포를 맨손으로 끌고 갔다. 한 번 힘쓸 때마다 3㎝씩, 하루 평균 800m씩 이동하는 상상할 수 없는 고난의 행군이었다. 마침내 1954년 3월 13일, 베트민은 일제히 공 격을 시작했다. 계곡의 언덕에 집결한 곡사포, 박 격포, 대공포, 무반동총 등이 계곡 아래 프랑스 진지로 일제히 불을 뿜었고, 프랑스군은 포(砲)가 어디서 날아오는지 구분도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프랑스군은 1만 5000여명의 병사가 집결돼 있었으나 베트민이 200여문의 포를 배치했을 것 이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5만여 명의 베트민 은 프랑스 병력의 3배가 넘는 규모였다. 최정예 부대와 최강의 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던 프랑스군은 무참히 패배를 당한다. 1954년 5월 7일 전쟁이 개시되고 55일 만에 프 랑스군은 모든 진지를 빼앗기고 항복했다. 이로써 프랑스는 3,000명 가까이 전사를 하고 1만 2000 명이 포로가 되었다. 결국 이 전투의 패배로 프랑 스는 완전히 베트남에서 철수하게 된다. (베트민 은 4,000여명이 전사하고, 9,000여명이 부상) 프랑스는 화력(火力)과 물자(物資)에서 우위에 있었지만 완패(完敗)를 했다. 그들은 비행기 한 대 없고, 개인화기로만 무장한 베트민이 진지의 방어벽을 뚫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고, 베트민 에 대한 정보가 거의 전무했다. 더구나 밀림에 숨겨진 200문의 포와 대공포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결정적으로 프랑스군의 전술 은 완전히 노출되어 있었지만, 밀림속의 베트민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었다. 그들은 오만한 자신감 과 맹목적인 과거의 경험으로 가득 차 있었다. 베트민 승리의 중심에는 조국을 지키기 위한 수많은 평범한 베트남인들과 지도자인 지압 장 군이 있었다. 신문기자와 역사교사 출신인 그는 세계 최강국들인 프랑스, 미국, 중국을 물리치 고 오늘의 베트남이 있게 한 영웅(英雄)으로 평 가받는다. 프랑스는 적인 베트민을 파악하는 데 철저히 실패했고, 베트민은 프랑스의 전략을 완전히 파 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을 내편으로 만들고, 불리한 지형에 포를 배치함으로써 상황을 자신 들에게 유리하게 만들고, 적이 유인하는 것을 오 히려 공격의 기회로 만들었다. 그는 생전에 ‘디엔비엔푸 전투’ 승리의 비결을 세가지로 요약했다. “적들이 원하는 시간에 싸우지 않았고, 그들이 싸우고 싶어하는 장소에서 전투를 치르지 않았 으며, 그들이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싸웠다.” 그는 유명한 ‘삼불(三不)전략’을 스스로 고안하 여 모두가 안 된다고 한 프랑스, 미국과의 싸움 을 승리로 이끌었다. ‘디엔비엔푸 전투’ 21년이 지난 1975년 4월 30일, 이번엔 남베트남(월남)의 수도 사이공(현 호찌민)이 함락되었다. 월맹군은 월남군 부대가 도로에 전개되어 있 을 때 보급지원부대를 집중 공략했다. 중간에 ’ 뱀 토막(snake cutting)’을 내어 앞뒤 부대의 연 결을 끊음으로써 공황상태에 빠지게 만들었다. 미국은 프랑스의 실패를 교훈삼아 업그레이드 된 고지(高地)전략을 세웠지만, 지압 장군은 고지 를 우회해 도시들을 공략하는 방법을 썼다. 역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전략이었다. 지압 장군은 늘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기(武器)가 아니고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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