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병천
(예)육군대령, 리더십박사
전 나사렛대학교 부총장
한국전략리더십연구원 원장

셔먼 장군의 바다로의 행군
무소불비즉무소불과(無所不備則無所不寡)
― 『손자(孫子) 허실 제6편』

“타라! 고향! 난 고향으로 갈거야! 그이를 찾을 방법을 생각해 볼거야. 결국....... 내일은 또내일의 태양이 뜨니까!(After all, tomorrow isanother day)”이 유명한 대사는 잘 알다시피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마지막 장면의 대사다. 마가렛 미첼의 소설 『바람과 함께사라지다』를 바탕으로 데이빗 셀즈닉이 제작한 영화다. 3시간 42분이라는 긴 영화임에도불구하고, 당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이영화는 무려 10개의 아카데미상을 수상해서다섯 개 이상의 아카데미상을 차지한 최초의작품이다.

2011년 3월 22일 방영된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영화’에서 Best In Film에 의해 역사상가장 위대한 영화로도 선정되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불타는 아틀란타의 거리를 마차를 몰고 거칠게 달리는 주인공 레트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아틀란타의 화재는 남군이 퇴각하면서 북군에게 물자를 남겨주지 않기 위해 고의적으로 일으킨 것이다. 이 전쟁에서 북군의 셔먼 장군이 행했던 그 유명한 ‘바다로의 행군’은 전략의 위력이 어떤 것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남군과 북군 간에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남북전쟁의 분수령이 된 것은 1863년 7월 1일부터 사흘 동안 벌어진 게티즈버그 전투였다. 이전투에서 로버트 리 장군의 남부동맹군은 전병력의 3분의 1을 잃는 큰 손실을 입은 채 버지니아로 후퇴했다. 이때 북군의 율리시스 그랜트 장군의 북부연방군이 미시시피주의 빅스버그를 점령했다.

미시시피 강이 북군의 손에 넘어간 것은 남군으로서는 큰 타격이었다. 남부 연방 전체가두 동강이 날 위기에 처한 것이다. 그리고 이듬해 봄이 되자 유리하게 전세를 장악한 북군은남군에 대한 총공세를 시작했다. 북군의 링컨대통령은 미시시피 집단군 사령관에 셔먼 장군을 임명했다. 그는 골초에다 성미가 급하고말이 많았지만 직관력이 뛰어났다. 얼마나 독특했든지 한때 “셔먼이 미쳤다”고 신문에 보도가 되어서 직위해제를 당한 경험도 있었다.그만큼 그는 남다른 무언가 있었다.

셔먼은 우선적으로 아틀란타를 목표로 삼고진군했다. 그리고 직접 시가지를 향한 공격을하지 않고 포위작전으로 나가 약 한 달 반을 기다린 끝에 마침내 1864년 9월 2일에 남군의 항복을 받아냈다. 시가지를 직접 공격하면 많은피해가 따르기 때문에 현명한 전략을 택한 것이다. 오늘날 아틀란타는 코카콜라와 CNN의본부로 잘 알려져 있지만 당시는 남부의 산업과 군수품 조달의 중심지이자 철도수송의 요충지였다.

이때 남군은 후퇴하면서 북군에게 보급품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아틀란타에 화재를 일으켜 90% 이상을 파괴시켰다. 아틀란타를 떠난 6만 명의 셔먼군은 동부의 대서양해안을 향한 이른바 ‘바다로의 행군’을 시작했다. 그리고 지나는 곳마다 마주치는 철도, 공장, 창고들을 완전하게 파괴했다. 조지아 주의500Km를 가로 지르는 동안 그들이 남긴 것은불에 타지 않는 철도의 레일뿐이었다. 살아 있는 것, 쓸 만한 것들은 모조리 파괴된 것이다.

셔먼은 무엇보다도 전쟁의지와 사기를 꺾는 일이 남부의 군대를 직접 패배 시키는 것보다더 효과적인 것임을 알고 있었다. 당시 참전했던 북군의 한 부사관은 “이번 작전에서 민간인들에게 가해진 잔혹한 행위는 우리가 이 전쟁에서 추구하는 가치를 산산조각 내기에 충분하였다”고 술회했다. 셔먼의 잔혹성과 더불어 그의 천재적인 군사전략이 돋보인 행군이 있었다. 바로 대용목표를 지향하는 행군이었다.

대용목표(代用目標, Alternative Objective)는 군사용어로서 여러 개의 목표 중에서 공자가선택의 자유를 갖는 동등 목표군으로서 예비목표, 택일목표라고도 한다.

좀 더 쉽게 풀면 이렇다. 공격하는 측은 목표를 선정할 때 아무거나 고를 선택의 자유가 있다. 그런데 방어하는 측은 그렇지 못하다. 오직 공격하는 측의 목표에 따라 부대를 배치해야 한다. 그런데 셔먼은 아주 애매한 공격로를 택함으로써 방어하는 남군이 도대체 어디를방어해야 할지 모르게 행군한 것이다. 실제로목표로 하는 도시의 그 중간선을 따라서 아주헛갈리게 행군했다. 아틀란타에서 출발한 셔먼의 부대는 네 개의 종대로 나누어 행군했다. 종대의 간격을 아주 넓었다.

북쪽이 종대들은 오거스타를 향하는 것처럼했고, 남쪽의 종대들은 마콩을 향하는 것처럼 했다. 남군의 입장에서는 북군의 공격목표가메이컨인지, 오거스타인지 아니면 사반나인지또 다른 어떤 도시인지 남군으로선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셔먼군이 챨스톤과 오거스타에 접근해 오자 남군은 병력을 양분해서 두 곳에 모두 방어선을 만들었다. 그런데 셔먼은 어느 곳도 아닌 양 지점의 중앙을 돌파하여 남군 최대의 보급기지인 콜럼비아를 쳤다.

셔먼은 또다시 최종 목표가 골즈버러인지월밍턴인지 모르는 애매한 행군을 시작했다.

사실 이 마지막 진군에서 셔먼 자신도 마지막목표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그해 12월 사반나를 함락시키고 대서양 연안에 도착한 셔먼군은 북으로 진로를 바꿔 북군을 격파, 4월 26일 4년간의 지루했던 전쟁에마침표를 찍었다.

손자병법 허실(虛實) 제6편에는 제한된 병력으로 방어를 할 때의 어려움을 잘 보여주는 어구가 있다. “앞을 방비하면 뒤가 적어지고 뒤를 방비하면 앞이 적어지며, 왼쪽을 방비하면오른쪽이 적어지고, 오른쪽을 방비하면 왼쪽이 적어져, 방비하지 않는 곳을 없게 하려면 병력이 적어지지 않는 곳이 없다”(備前則後寡備後則前寡 備左則右寡 備右則左寡 無所不備 則無所不寡) 방어하는 측은 대체로 병력이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적이 어디로 공격할 것인가를 사전에 잘 예측해서 그곳에 집중적으로 배치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하다보면 배치하지 못하는곳도 생길 수 있는데, 그런 곳은 언제나 불안하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곳을 다 막으려고 엷게병력을 배치하다보면 어디 한곳이라도 부족하지 않은 곳이 없다. 그래서 방자는 언제나 불리한 입장에서 전쟁을 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영악한 셔먼 장군은 이것을 잘 알고 이러한약점을 노렸다.

적이 어디를 막아야 할지 도무지 예측할 수없도록 목표를 향하는 그 중간선을 택하여 행군을 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병력이 부족해서 모든 곳을 막을 수 없었던 남군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부대를 쪼개어 배치하게 되어더욱 엷은 방어태세를 갖추게 된 것이다. 이런행군의 방식은 과거의 그 어떤 전쟁에서도 시도하지 않았던 대단히 특이한 전략적인 사고에 기인한 것이다. 과연 부하들에게 ‘빌리 아저씨’(Old Billy)로 통했던 괴짜에 가까운 셔먼의 발상답다.

세상은 이런 유형의 사람에 의해 뭔가 새로운 것이 창조되어지는 것이다. 교과서적인 생각, 천편일률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에게는 이렇게 격을 깨뜨리는 생각을 기대할 수 없다.

無所不備則無所不寡
무 소 불 비 즉 무 소 불 과

방비하지 않는 곳을 없게 하려면병력이 적어지지 않는 곳이 없다.

오늘날의 전쟁은 모든 국민이 하나가 되어싸우는 이른바 ‘총력전’(total war)이다. 손자가손자병법 제일 첫머리에서 언급한 대로 전쟁은 나라의 큰일이며 나라의 존망과 국민의 생사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쟁은 가급적 없어야 하겠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 되는 경우에는 더 이상 군인에게만 맡겨서는 안 되고 국민 모두가 하나가 되어 싸워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총력전에서는 전쟁에 임하는 ‘국민의 의지’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그런데 이런 총력전의 개념이전혀 없었던 남북전쟁 당시에 셔먼이 국민의전쟁의지를 꺾어버리기 위해서 지나는 곳마다완전한 파괴를 일삼은 것은 총력전의 본질을꿰뚫은 놀라운 통찰력이라 할 수 있다.

셔먼은 대용목표를 향하는 행군을 통해서남군의 병력이 분산되도록 했다. 자원이 제한되는 상황에서는 어느 분야에 집중하고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를 잘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것이 풍족하다면 이런 고민은 필요가없을지 모른다. 전략 자체도 그 효용성이 떨어진다. 그렇지만 현실은 언제나 각박하다. 그렇기 때문에 셔먼과 같이 본질을 꿰뚫는 안목이필요하고, 제한된 자원을 어디에 집중해야 할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셔먼도 군인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 양심의 가책을 느꼈는지 죽기 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 “전쟁을 명예로운 일처럼 생각하는 많은젊은이들이 있다. 그러나 젊은이들이여, 그것은 모두 지옥이었다. 너희들이 다가올 세대에게 이 경고를 들려주어야 한다. 나는 전쟁을 공포로 바라본다고......” 잘못된 가치관의 선택은 우리의 꿈을 바람과 함께 사라지게 만들 수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날마다 ‘선택’하면서 살아가는 존재다.

인생의 성공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달려있다.


無 所 不 備 則
없을 무 바 소 아 닐 곧 불 즉 갖출 비
無 所 不 寡
없을 무 적바을 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