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남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전문연구위원

1948년 4월 3일, 제주에서 일어난 4.3사건과 10월 19일에 일어난 여수 주둔 14연대 반란은 대한민국 건국 전후에 일어난 사건으로 서로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두 사건은 국방경비대(국군의 전신)에 침투해 있던 남로당 분자들이 중앙당 지령에 따라 일으킨 사건에서 비롯된 사건이며, 두 사건으로 인해 엄청난 인명피해가 있었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역사의 아픔으로 남아 있다.

남로당 당수 박헌영은 1946년 10월 대구 사건이후 북쪽으로 피신한 뒤 해주의 남로당 본부에서 남로당 투쟁에 대한 지령을 내려 보내고 있었다. 1948년 1월, 유엔한국위원단이 한반도 총선거 협의를 위해 서울에 왔을 무렵부터 그는 폭력수단을 동원해 남한의 선거를 반드시 저지하라고 했다. 이에 따라 서울의 남로당 지도부는 각 시도당에 연락책을 보내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여 투쟁을 벌이라고 지시했다.

그래서 2.7소요로 알려진 남로당의 전국적인 폭력투쟁이 일어났다. 총파업, 대규모 폭력 시위, 경찰서 공격 및 공공시설 방화 등이 일어났으며, 이로 인해 철도 기관차 40여 대 파괴, 수백 개 지점의 전화선 절단, 40여 명의 경찰과 우익인사 살해 등이 있었지만, 군정 당국에 의해 곧 진압되고 뒤이어 1천5백여 명의 남로당 분자들이 체포되었다.

2.7소요 연장선상의 제주 4.3사건
남로당은 2.7투쟁이 별 성과 없이 끝나자 남로당 조직이 비교적 온존한 제주도당에 이재복 등을 보내 “소요를 일으켜 단선‧단정을 강력히 반대하라”고 했다. 제주도당은 제주도에 소요이 일어나게 되면 6개월도 안 돼 제주도는 해방구가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본토의 국방경비대도 자기들을 지원할 것으로 생각했다. 왜냐 하면, 제주도 주둔 국방경비대 9연대(실제 병력은 대대 규모)가 자기들의 투쟁노선에 동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경찰이 좌익분자를 색출하고 있었기 때문에 좌익분자들은 경찰과 맞서기 위해 경비대에 입대했다. 지원자가 절대 부족하고 부대편성 일정도 촉박했기 때문에 모집자들은입대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 받아주었고, 그래서 남로당 분자들이 대거 침투하게 됐다.

처음 경비대 모집광고를 냈을 때는 입대 자격이 다소 까다로웠으나, 응모숫자가 크게 모자라자 신체 건강한 자, 소학교 졸업자, 사상건전자로 단순화시켰다. 연령제한과 전과(前過)유무, 좌익 활동 유무 등을 제외했기 때문에경찰에 쫓기던 남로당 분자들이 경비대에 대거 응모했던 것이다.


인민군 모자와 다발총을 든 한라산 무장유격대

남로당 분자들의 침투는 제주도 외 9연대가 특히 심했다. 1946년 11월, 모슬포에서 조직되기 시작한 9연대는 3개월 만에 대대 규모의 부대를 편성했다. 대다수 장병들이 제주도 출신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주민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4.3사건이 터지자 9연대 장병들은 진압에 나선 경찰보다는 무장유격대에게 동정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분쟁에 휘말리는 것을 피했다. 9연대가 토벌작전에 나서게 되자 상당수의 침투분자들이 탈영하거나상관을 살해하는 등 온갖 사건이 일어났다.

9연대에는 상층부부터 말단까지 남로당 분자들이 침투해 있었다. 연대 내 남로당 총책은문상길(文相吉) 중위였고 통신 및 정보 부서에도 여러 명 침투해 있었다. 그들이 각종 정보를 은밀히 남로당에 제공했기 때문에 주민과무장유격대, 경비대 간에 사실상 삼각협력이이뤄지고 있었다. 남로당 제주도당이 4.3사건을 계획할 당시 9연대가 중요한 역할을 하기로했기 때문에 9연대는 남로당 무장폭동의 동인(動因)을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

4.3사건으로 극도의 혼란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5월 10일, 9연대 내 남로당 프락치인 오일균 대대장, 그의 부관, 대대 정보장교와 무장유격대 지도자 김달삼 등과의 비밀 회합에서 긴밀한 정보교환, 연대장 제거, 무기와탄약 제공, 경비대 병력 탈출 조장 등을 합의한바 있다. 그들이 합의했던 대로 5월 20일에는 9연대에서 41명이 탈영해 무장유격대에 합류했고, 경비대는 비밀리에 무장유격대에 무기와 탄약을 제공했으며, 진압작전 명령을 받은부대가 출동을 거부하기도 했다.

박진경 대령이 연대장으로 취임하여 적극적인 토벌작전을 벌이고 있을 무렵인 6월 18일,문상길 중위 등 100여 명의 9연대 내 남로당프락치들은 박진경 대령을 살해하고 무기고에서 무기와 탄약을 탈취하여 경찰토벌대를 습격한 후 무장유격대에 합류했다.

4.3사건에 연계되어 일어난 14연대 반란1948년 10월 15일, 육군본부는 14연대에“제주도에 파견할 1개 대대를 조속히 편성하여 대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제1진이 선박에 승선할 무렵인 10월 19일 저녁 8시, 남로당원 지창수 상사 등 40여명이 반란을 일으켜 저항하는 장교 20명과 사병 42명을 사살하고 연대를 장악했으며, 그 때부터 14연대의 지휘권은 김지회 중위와 홍순석 중위에게 넘겨졌다.

두 장교는 조선경비사관학교 3기 졸업생이며,동기생 중 약 60명이 남로당 활동혐의로 나중에 숙청되었다.


제주도 9연대 하단 오른쪽 끝 문상길 중위

육군본부는 광주 주둔 4연대에 반군을 진압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에 따라 여수·순천 지역으로 14연대 병력이 급파되었으나, 그중 2개 중대가 반군에 합류했고, 작전지역으로 이동 준비 중이던 예비대대의 대대장 사무실이 폭파되었지만, 대대장은 간신히 목숨을건졌다. 14연대는 바로 6개월 전 4연대에서 1개 대대를 파견하여 신설된 부대였기 때문에두 부대는 강한 유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14연대는 5.10선거를 1주일 앞둔 5월 4일 창설되기 시작했으며, 모병이 주로 이루어진 시기는 선거 직후였는데, 남로당이 주도했던 남한만의 ‘단독선거’와 ‘단독정부 수립’ 반대투쟁에 앞장섰던 다수의 좌익청년들이 신상에불안을 느껴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국방경비대에 응모했던 것이다. 14연대 입장에서도 단기간 내에 정원을 채워야 했기 때문에 응모자들의 좌익성향을 고려할 여유가 없었다. 이미 14연대 내에 침투해 있던 남로당 분자들은 이 같은 모병의 허술한 점을 이용하여 이승만 정부에 반감을 가지고 있거나 좌익 활동을 하다가수배 받은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했다. 당시 경찰이 남로당 분자들을 추적하다 보면 경비대에 입대해 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체포하지 못하는 일이 빈번히 일어났다.

당시 대다수 부대는 상당수의 좌익계 병사들이 침투해 있어서 내무반 안팎에는 공산주의를 찬동하는 전단들이 널려 있기가 다반사였다. 그들은 동조자를 포섭하기 위해 비밀리에 회합을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당시의 사정으로는 이들을 통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없었고, 사회적으로 좌익 활동이 공공연히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고위 장교들조차 별로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박헌영은 14연대 반란의 효과를 극대화하기위해 군대 내에 침투해 있던 좌익분자들을 조종하여 연이어 군사반란을 일으키도록 했다.

이에 따라 10월 20일, 마산 주둔 15연대 1개 대대가 반군진압작전에 투입되었지만, 부대를지휘하던 최남근 중령이 반란군에 합류했다.

11월 2일에는 대구 주둔 6연대에서 헌병이 남로당 침투분자 박종진 상사를 체포하려하자이정택 상사 등이 헌병들을 사살한 후 200여명을 규합하여 반란을 일으켜 국군 6명을 살해하는 등 대구는 한 동안 큰 혼란에 빠졌다. 12월 6일에는 지리산 반군진압작전 후 귀대 중이던 6연대 1대대에서 이동백 상사 등 52명이 장교 9명을 살해하고 2차 반란을 일으켰다. 다음해 1월에는 6연대 4중대에서 세 번째 반란이 일어나 소대장과 하사관을 살해했다.

1949년 5월 4일에는 춘천 주둔 8연대 1대대장 표무원 소령이 장병 239명을 이끌고 월북했고, 다음 날에는 홍천 주둔 8연대 2대대장강태무 소령이 장병 150여 명을 데리고 월북했으며, 또 5월 13일에는 해군 508호 함정이장병들을 태운 채 북으로 넘어갔다.

숙군(肅軍)으로 다시 태어난 국군 최후의 보루라는 군대의 반란과 동요는 나라의 안위를 뒤흔드는 중대한 문제였다. 14연대 반란 직후 이승만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통해 “공산주의자들이 지하에서 공작해 전국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며 “각 급 학교와 정부기관을 조사해, 공산사상이 만연치 못하도록 법령을 마련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특히이승만 대통령은 김태선 서울시 경찰국장이 제출한 ‘군내 좌익 상황자료’를 보고받고 큰 충격을 받았으며, 그래서 즉시 미 군사고문단장 로버츠 장군을 불러 “당신들이 국방경비대를 만들면서, 좌우익 가리지 않고 아무나 받아들이는 바람에 군 내부가 이 지경이 되었다”고호통을 쳤다고 한다.

이응준 육군참모총장은 숙군에 대한 ‘대통령 지시사항’을 문서로 하달받아 백선엽 정보국장과 신상철 헌병사령관을 불러 극비리에 숙군작업을 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육군본부정보국이 조사를 맡고, 헌병사령부가 좌익혐의자를 체포하는 등, 역할 분담을 했다. 특히좌익분자 조사는 특무대장 김창룡 대위가 남로당 군사책(責) 이재복의 비서 겸 연락책 김영식을 체포하면서 급진전됐다.

군은 김영식 자택에서 압수한 비밀서류를통해 군에 침투한 좌익계 500여명의 명단을발견했다. 그 중에는 당시 조선경비사관학교생도대장 오일균 소령, 교수부장 조병건 소령,중대장 김학림 중위, 최남근 15연대장 등, 100여 명의 장교가 포함되어 있었다.

육군은 몇 주 사이에 10여 명의 고위 장교,100여 명의 위관급 장교, 1,000여 명의 하사관 및 사병을 체포했다. 1948년 말부터 1949년 여름 사이에 군 내부에 침투해 있던 남로당분자와 동조자 4,749명이 사형 또는 징역형을 받았거나 불명예제대되었다. 그리고 체포될 위험에 처했던 남로당 침투요원 5,568명은탈영하여 잠적했다. 미군정으로부터 넘겨받은 국방경비대 병력이 5만에 불과했던 것을고려했을 때, 숙군을 통해 무려 20% 정도가제거된 것이다. 그리고 반란에 가담했던 14연대, 4연대, 6연대는 모두 해체되어 다른 부대에 통합되었다.

뒤이어 다수의 지휘관이 교체되었고 수많은우익 청년들로 병력을 보충하면서 국군은 급속히 증강되고 정신전력도 크게 강화되었다.

그 결과 국군은 1949년의 38선 일대의 무력충돌과 빨치산 소탕, 그리고 6·25전쟁에서 반란이나 동요 없이 일사분란한 지휘체계 하에 잘싸웠다. 만약 대대적인 숙군이 없었다면 6·25전쟁 발발과 동시에 여러 부대에서 반란이 일어나 유엔군이 도착하기 전에 대한민국이 붕괴되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