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남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전문연구위원
대통령학 전문가

트럼프의 등장은 세계적 변화의 본격화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은 미국뿐만 아니라전 세계 근본적 변화의 본격화이다. 아웃사이더였던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은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Brexit)와 함께 세계의 2대 이변이다. 영국에 이어 몇 나라가 EU 탈퇴 가능성이 있어 유럽도 근본적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있다. 전 세계가 ‘패러다임 쉬프트(paradigmshift)’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세계의 중심 역할을 해온 미국과 EU에서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세계가 지각변동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같은 변화의 저류에는 ‘자국 이익 우선주의(national interests first)’, ‘고립주의(isolationism)’, ‘보호무역주의(protectionism)’가 있다. 미국이 1945년 이래계속해온 국제주의(internationalism) 노선에서 고립주의로 전환하고 있다는 것은 국가안보와 경제를 국제협력에 크게 의존해온 한국에게 심각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대다수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미국은 행정부 교체에도 불구하고 초당적 외교정책은 큰변화가 없을 것으로 전망하지만 안보에는 조그마한 허점도 용납될 수 없다는 점에서 결코낙관해서는 안 된다. 해외 전문가들은 한국처럼 미국의 영향력 하에 있는 나라들은 긴장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고 거듭 경고하고 있다.

미국은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으로 전 세계에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온 나라이기 때문에 미국이 고립주의적인 대외정책을 펴게된다면 세계 안보환경과 통상환경이 불안정과 불확실성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가그 동안 대외정책에 대해 좌충우돌 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그의 행정부의 대외정책은 무엇이 들어 있는지 모르는 ‘검은 상자(blackbox)’에 비유되기도 한다.

더구나 트럼프는 대외관계를 비즈니스 시각에서 ‘주고받는’ 거래로 인식할 가능성이 크고, 따라서 미국이 세계경찰 역할을 하고, 국제통상질서를 유지하며, 민주적 가치를 확산시키기는 등, 비용이 많이 드는 기존의 국제주의적 노선에서 벋어날 가능성이 크다. 불행이도 세계질서를 유지하는 세계정부가 없기 때문에 트럼프가 이끄는 미국이 세계경찰 역할을 줄이게 된다면 세계는 불안정과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크고, 또한 지역차원에서 패권을노리고 ‘경찰’ 역할을 자처하는 국가들 나타날가능성이 큰 것이다.

문제는 트럼프의 고립주의적 대외정책 노선
이 그만의 독특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여론을반영한 것이라는데 있다. 2016년 5월 퓨 리서치센터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전체 응답자의41%가 미국이 과도하게 대외 개입을 해왔다고 본다. 그리고 차기 대통령이 집중해야 할 분야로 응답자의 70%가 국내정책을 꼽은 반면,대외정책을 중시해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은17%에 불과했다. 문제는 지난 2백 수십 년의미국 역사 중 대부분의 기간을 고립주의가 미국의 주된 외교노선이었다는 사실에 있다.

세계화로 미국의 일자리가 줄어들었고 설상가상으로 2008년 금융위기 이래 일자리가 더욱 축소되었을 뿐 아니라 이라크·아프간전쟁에따른 막대한 군사비 지출로 막대한 재정적자와천문학적 규모의 국가부채에 시달리면서 해외분쟁에 개입하기보다는 국내문제 해결에 주력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진 것이다.

그래서 힐러리 클린턴을 크게 위협했던 버니 샌더스도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고립주의와 보호무역주를 주장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오바마 행정부의 대외정책도 고립주의적이었다. 그래서 오바마와 트럼프는 준(準) 고립주의(Quasi-isolationism) 또는 비개입주의(non-interventionism)이라는 면에서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왜냐 하면, 해외개입을축소하는 신고립주의 정책이 오바마 행정부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즉 미국은 2011년 이라크에서 미군 철수를 완료했고, 아프간에서도 군대를 철수하기 시작했다. 또한 미국은 시리아 내전에 대해 공습을 주저했고, IS와의 전쟁에도 개입하려 하지 않았으며,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때에도 강력 대응하지 않았다.

또한 오바마 행정부는 2011년부터 10년 간1조 달러 규모의 국방예산 감축에 나섰다. 이에 따라 2012년 초 향후 10년 동안의 미군 전략지침인 ‘신국방전략’을 발표했지만 여기에는 적지 않은 모순이 내포되어 있다. 즉 중국에제1열도선을 빼앗기지 않는 것을 목표로 주변우호국까지 동원하는 등 모든 방책을 강구한다고 명시하면서도 해외 주둔 미군의 감축을계획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미국은 이미‘세계 경찰’의 역할을 줄이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일본 방위청 관계자는 이 같은 모순된미국의 신국방전략에 대해 미군의 한 간부에게 물어봤다고 한다. 이 미군 간부는 “이제부터 북한의 위협에는 한국군이 대항하게 할 것이며 중국의 위협에는 일본 자위대가 대항하게 할 것이다. 그래도 어렵다면 미군이 괌, 하와이, 알래스카에서 가세해 도와줄 것이다”라고 했다. 다시 말하면, 미국은 이미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미국의 안보부담을 줄이는 대신역내 동맹국들로 하여금 더 많은 부담과 역할을 하도록 한 것이다.

1969년 베트남전쟁의 수렁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편으로 닉슨독트린을 선언하고 아시아에서 미군을 철수시켰듯이 이라크·아프간전 등 테러와의 전쟁으로 7천 명 이상의 전사자와 3-4조달러에 달하는 천문학적 전비(戰費)를 부담한결과 만성적인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로 20조 달러에 육박하는 국가부채에 직면하게 되면서 해외개입을 축소하게 된 것이다.

미국의 역할 축소와 러시아와 중국의 영향력 확대

국제질서는 국제법이 아니라 초강대국이 세계경찰 역할을 할 때 유지된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외교’가 현실화될경우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구축해놓은 미국중심의 국제 정치·경제 질서는 큰 혼란에 빠질가능성이 높다. 경찰이 없으면 강절도가 날뛰듯이 미국이 국제적 리더십의 발휘에 소극적이면 지역 내 강한 나라들이 이웃나라를 침략하거나 고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또한 미국이 보유무역정책을 택한다면 다른 나라들도 보호무역으로 맞설 수밖에 없고, 그 결과로 무역질서는 혼란에 빠지고 세계무역도위축될 수밖에 없다.

미국이 당면하고 있는 가장 큰 전략적 도전은 러시아와 중국이다. 트럼프와 푸틴은 양국관계 개선을 다짐하고 있지만 두 사람은 각각자기 나라를 위대하고 강한 나라로 재건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양국은 근본적으로 대립될 수밖에 없다. 푸틴은 처음부터‘위대하고 강력한 러시아의 재건’이라는 목표를 추구해온 야심찬 지도자로서 ‘짜르 푸틴’으로 불리기도 한다. 푸틴의 러시아는 언제 어디서든 미국의 힘과 영향력을 견제하고자 노력해 왔다. 러시아에 인접한 나라들은 러시아의 위협과 영향력에서 벗어나고 또한 유럽공동시장의 일원이 되어 신속한 경제발전을 하기 위해 EU와 NATO에 합류하기를 희망했고,미국과 EU는 이 나라들의 요구에 부응하여EU와 NATO를 동유럽으로 확산시키고 또한미사일 등 군사력 배치를 통해 이들 나라에 안보우산을 제공했지만, 러시아는 이에 맞서 EU와 NATO를 분열시키고 약화시키려 해 왔기때문에 미국과 러시아 관계는 쉽게 개선되기어려운 실정이다. 따라서 고립주의적 색체가강한 트럼프의 외교노선은 푸틴에게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그래서 러시아 접경에 위치한동유럽과 중앙아시아의 국가들이 긴장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표적인 친러 인사인 렉스 틸러슨을 국무장관으로 기용하면서 미국과러시아 간의 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가 크다. 그러나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 합병에 따른 제재 해제 등으로 미·러 관계는 일시적으로 개선될지 모르지만 러시아는 동유럽과 중앙아시아에서 구 소련의 영향력을 회복하려 하고 이 지역 국가들은 거기서 벗어나려 하기 때문에 미국 및 NATO와 러시아 간의 전략적 이해관계는 충돌이 불가피하다.

현대판 중국 ‘황제’로 불리는 시진핑의 목표도 ‘중국 몽(夢)’으로 표현되는 ‘위대하고 강한중국 재건’이어서 트럼프의 위대한 미국 재건노선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푸틴과 마찬가지로 시진핑의 대외정책이 적극적인 반면트럼프의 대외정책은 TPP 포기에서 나타나듯이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가TPP를 추진했던 것은 경제적 이익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중국의 도전에 대응하기 위한대전략의 일부였다.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전략’은 군사적으로는 계속될지 모르지만 TPP를 포기함으로써 그 전략구상 자체는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시진핑도 트럼프의등장을 기회로 여길 것이다.

따라서 그 동안의 중·러 전략적 제휴관계에서 미·중·러 3각관계가 됨으로써 국제질서는한층 복잡해질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러시아가 미국과의 관계을 고려하여 중국을 견제하려 하지는 않을 것이고, 북한 핵문제 해결과 관련하여 러시아가 한·미·일의 입장에 동조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성급한 일이다.

일본은 이 같은 상황 변화에 긴장하며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아베 총리가 트럼프 당선자를 조기에 만난 것은 미국의 정치지형 변화가 일본에 심각한 안보적 경제적 도전을 초래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TPP와 ‘아시아 재균형 정책’이 사실상 무위로 끝나면서일본의 위기의식은 높아지고 있다. 그 동안 일본은 중국의 급부상에 대응하여 ‘정상국가화’의 기치를 내걸고 군사력을 증강하고 군사협력을 강화해왔으며, 특히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중국을 적극적으로 견제해왔다. 앞으로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역할이 축소되고 중국의 역할이 확대된다면 일본의 정상국가화를위한 노력은 가속화될 것이고 또한 중국과 일본 간의 패권경쟁이 본격화될 것이다. 나아가일본은 ‘전쟁 할 수 있는 나라’가 되기 위해 헌법도 개정하려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국의전략적 선택은 더욱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의 주변국들은 세계적 강대국들이기 때문에 이들 국가들의 외교안보전략의 변화와그들 간의 관계를 관찰하는 것은 한국 외교안보전략 수립에 필수적이다.

안보 비상 국면에 처한 2017년2017년의 한국 안보환경은 어느 때보다 위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의 핵무기 실전배치가 가시화되고 있는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가등장하면서 미국 대외정책에 상당한 변화가 예상되며, 특히 중국에 대한 압박 외교를 폄으로써 미·중 대결구도가 본격화되어 북한 핵문제해결이 난항에 빠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그래서 한국안보의 가장 큰 리스크는 ‘트럼프리스크’가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외부환경이 부정적으로 변하더라도 우리의대응태세가 굳건하다면 우려할 것이 없지만유례없는 정치적 경제적 위기 속에서 갑자기치러지는 대통령선거 과정의 불가피한 갈등과 혼란으로 인해 우리의 안보태세는 매우 취약해 질 것이고, 나아가 포퓰리즘 안보공약의경쟁적 남발로 안보태세가 근본적으로 약화될우려가 없지 않다.

한편 북한은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과 한국의정치적 혼란을 기회로 활용하고자 할 것이다.북한이 노리는 것은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동시에 미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이다. 미국의 입장에서도 군사적 모험을 하기보다는 핵 동결을 전제로 타협에 나설 가능성이 없지 않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골격이 잡히는 것은 내년 후반기에나 가능할 것이고 그 기간 중에 미국과 북한은 상대의 전략을 탐색하는 기간이 될 것이기 때문에 이 기간 중 북한은 핵 실험이나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는 자제하면서 협상의 기회를 열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대남 간접침략은 더욱 정교해지고 노골화될 것이다. 그들은 연평도 포격같은 국지적 도발보다는 은밀한 심리전에 치중할 것이다. 사드 배치와 한일정보보호협정을 비난하고 반미정서를 촉발시키려고 사이버공간 등을 통해 유언비어를 유포할 것이다. 특히 대통령선거를 겨냥하여 북한에 우호적인세력이 집권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여론에 영향을 주려 할 것이다. 나아가 정부의 무능을 극대화하고 사회혼란을 심화시키기 위해 디도스 공격 등 사이버전을 통해 금융, 교통, 통신 등에 대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러시아가 미국 대선에 개입했다고 CIA가 공식적으로 밝혔지만 러시아는 미국 뿐 아니라유럽 여러 나라의 선거에 영향을 주어 서방 국가들과 그 연합체인 EU와 NATO를 약화시키는 활동을 해왔다. 북한이 그 같은 러시아의 수법을 대남전략에 사용할 것이 틀림없다. 또한한국은 동북아에서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나라이기 때문에 사드 배치와 한일정보보호협정의 폐기를 위해 중국도 한국의 여론조성과선거에 영향을 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국의 최대 안보위협은 북한 핵이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에 따라 미국이 중국과의관계 설정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북한 핵문제는 뒤로 밀리거나 또는 미국과 중국간의 흥정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트럼프는 타이완을 지렛대로 하여 중국과의 무역문제와북한 핵문제에 협력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다. 양국이 첨예한 기 싸움을 벌이고 있기 때문에 사드 배치와 한일정보보호협정은 미국과 중국 간의 갈등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이같은 여건에서 한국이 국내 정치적인 이유로두 가지 조치에 현상변경을 시도한다면 한미관계는 중대한 시험대에 오를 수밖에 없다.

이 두 가지 조치는 북한 핵 위협으로부터 한국과 주한미군을 보호하고 나아가 일본의 안보에도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한국이 이를거부한다면 북핵 문제에 대한 한·미·일 공조는 어려워지고 미국이 한국을 제치고 일방적인 조치를 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우리의 정치적상황변화로 인해 사드 배치와 한일정보보호협정을 재고하는 일이 일어나도록 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북한은 그 틈을 타서 핵무기실전 배치를 가속화하고 중국은 한국의 사드배치를 무효화시키기 위해 한국을 대상으로각종 압박 조치를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안보 당국과 군은 2017년을 비상한 경계태 세로 임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