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철
동국대학교 경찰사법대학 초빙교수


오늘날 북한문제는 주로 인권침해와 대량살상무기 확산 문제와 관련하여 이슈화 되고 있다. 특히 해외파견 노동자문제는 위의 두가지 사항과 직접 관련되어 있는데, 인권침해 문제와 관련된 노동의 성격에 대해 ① 강제노동설 ② 노예노동설 ③ 강제와 선택의 결합설 등으로 다양하게 설명되고 있다. 이런 주장들은 주로 북한의 해외노동자 실태 조사결과에 기반한 것인데, 아이러니컬하게도 남북한 노동제도 비교연구는 더러 있지만 북한 노동자의 법적 지위나 노동보수의 성격에 대해서는 거의 논의가 없다.
북한체제의 홍보적인 측면은 무시하고, 북한의 노동관련 법규가 노동자들에 대해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노동에 대한 보수의 성격을 파악하여 시사점을 음미해 보고자 한다.
노동자의 법적 지위
북한헌법 제20조는 “생산수단은 국가와 사회협동단체가 소유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은 노동자의 노동대상을 국가나 사회협동단체가 소유한다고 하기 때문에 노동자 개인이 노동대상을 선택할 여지가 없다고 하는 것을 의미한다.
제24조는 “개인소유는 노동에 의한 사회주의분배와 국가와 사회의 추가적 혜택으로 이루어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개인소유를 제한함으로써 노동자의 임의적인 욕구충족 활동에 제한을 가하고 있다. 노동자는 국가와 사회의 시혜에 만족해야만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북한의 노동법 제3조는 “사회주의하에서 노동은 공동의 목적과 이익을 위한 근로자들의 집단적인 노동”이라고 규정하고, 노동 및 노동계약의 주체로서의 개인을 인정하지 않는다.

또한 제4조는 “공민은 노동에 참가할 의무를 지닌다. 노동력이 있는 모든 공민은 자기 능력에 따라 사회적 노동에 참가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어 노동자는 국가계획에 의한 노동을 피할 수 없다.
제18조는 위와 같은 노동규율을 철저히 지키는 것은 근로자들의 응당한 의무이기 때문에 “제정된 절차를 밟지않고 마음대로 직장을 이탈할 수 없다”고 규정하여 개인의 의사에 따른 직장이동을 금지하고 있다.
제20조는 “근로자들은 자기 사업에 대한 높은 긍지와 책임감을 가지고 모든 지혜와 정력을 발휘하며 온갖 예비와 가능성을 찾아내어 맡겨진 계획과제를 일별, 월별, 분기별로 어김없이 넘쳐 수행하여야 한다”고 정해 놓고 있어서, 개인의 희망에 따라 노동량을 조절할 수도 없다. 노동자들이 소위 목표달성(계획량달성)에 목을 매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제25조는 “사회적 노동을 합리적으로 조직하는 것은 나라의 노력자원을 남김없이 동원하고 생산의 끊임없는 높은 장성을 보장하는 중요한 담보이다. 국가는 도시와 농촌의 모든 노력자원을 통일적으로 동원 이용한다”고 규정하고,
제27조는 “국가는 나라의 노력 원천과 수요를 세부분에 이르기까지 정확히 맞물린 현실적이며 동원적인 노동계획을 작성하여 실행한다”고 규정하여. 모든 주민이 노동을 강제할 수 있는 대상임을 명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제33조는 “국가는 근로자의 노동생활조직에서 8시간 일하고, 8시간 쉬고, 8시간 학습하는 원칙을 철저히 관철한다”고 규정하여, 하루 24시간중 휴식시간으로 규정된 8시간을 제외하면 자유시간도 보장하지 않고 있다.
노동자들의 멍에, 노동정량
계획경제체제에서 노동자들에게 가장 부담이 되는 것은 노동정량(작업계획량 또는 목표량)의 달성이다. 노동법 제40조부터 제43조까지는 국가가 노동자의 ‘노동정량’을 정하고 정확히 적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가가 ‘노동정량’을 정해 제시하면 그것이 곧 노동자 개인이 달성해야 하는 계획량 즉 목표량이 되는 것이다. 국가는 끊임없이 목표량 초과달성을 요구하게 되고, 노동자들이 목표량을 초과 달성하면 국가는 계획량을 높이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노동정량법’은 경제의 모든 부문, 단위에서 노동정량을 엄격 적용하여야 하고(제5조), 끊임없이 갱신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제7조). 노동정량은 2년주기로 재사정해야 하고(제18조), 기관과 기업소, 단체는 노동정량을 정확히 적용할 의무가 있는데, 승인받지 않은국가가 정한 노동정량에 기초하여 기관, 기업소, 단체로부터 노동을 평가 받고 그에 따른 노동보수로 생활비를 지급받는다(제26조). 기관, 기업소, 단체는 월, 분기, 년별로 노동정량 적용결과를 장악 분석하고 기록해야 한다(제27조). 국가가 노동자들을 철저하게 관리하면서 자유를 억압하고 임금을 착취하는 법제도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개인의 ‘노동정량’을 낮추는 방법은 모든 노동자들이 목표를 미달함으로써 노동정량 산출근거를 낮추는 것뿐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그런 시도를 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각종 문책과 처벌이 가해지기 때문이다.
노동보수의 성격
기업소법은 제44조(노동정량의 제정과 적용, 노동보수)에 “기업소는 노동정량을 과학적으로 제정, 적용하며 사회주의분배원칙의 요구에 맞게 사회주의적 노동보수제를 정확히 실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이 법에 노동보수의 구체적인 내용은 없다.
‘외국인투자기업노동법’과 ‘개성공업지구 노동규정’에는 각각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거의 비슷하게 ‘노동보수’에 대한 규정을 두고 있다. 동 규정 제24조(노동보수의 내용)에 “노동보수에는 노임, 가급금, 장려금, 상금이 속한다. 기업은 종업원의 노동보수를 일한 실적에 따라 정확히 계산하여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외국인투자기업노동법 제22조(노동보수의 내용)는 종업원의 노동보수를 ‘정한기준에 따라 정확히 지불하여야 한다’고 기술하고 있어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휴가비(제27조)와 생활보조금(제29조)도 노동보수에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된다.
개성공업지구 노동규정에서 특기할 만한 것은 제10조(노력의 채용계약)와 제32조(노동보수의 지불)인데, “기업은 선발된 노력자(근로자)와 월 노임액, 채용기간, 노동시간 같은 것을 확정하고 노력채용 계약을 맺어야 한다. 노력채용 계약을 맺은 노력자는 기업의 종업원으로 된다.” “기업은 노동보수를 화폐로 종업원에게 직접 주어야 한다. 이 경우 상금은 상품으로 줄 수도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개성공단에 진출한 우리나라 기업들 중에 노동자를 계약당사자로 취급하여 임금을 당사자들에게 직접 지급한 사실은 단 한 건도 없다. ‘노동보수’의 개념이 대상에 따라 다른 의미로 쓰이도록 이중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보수라는 개념이 내부의 노동자들에 대해서는(자금을 지출할 경우) 국가가 정한 생활비등급제에 따라 지급해주는‘생활비’를 의미하고, 대외적 기업(고용주)들에 대해서는(자금을 수입할 경우) 자본주의 국가에서 통용되는 ‘임금’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엄밀히 말하면 북한에서는 외국기업들로부터 임금총액을 거두어 들이지만, 북한당국이 이를 노동자에게 정확하게 지급될 수 없다는 것을 나타내 준다.
노동법 제38조는 “국가는 근로자들이 노동과정에서 소모하는 육체적 및 정신적 힘을 보상하고 그들의 생활을 보장하는 원칙에서 ‘생활비등급제’를 정한다. 국가기관, 기업소, 사회협동단체는 국가가 제정한 ‘생활비등급제’와 ‘생활비지불원칙(부문별 균형생활수준 제고원칙)’에 입각하여 노동자, 사무원, 협동조합원들에게 생활비를 정확히 지불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동법 제39조는 ‘노동자, 사무원, 협동조합원들에게 적용되는 생활비 기본형태는 ‘도급지불제’와 ‘정액지불제’이며 생활비 추가적 형태는 ‘가급금제’와 ‘상금제’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노동자의 노동에 따른 모든 소득은 국가가 수취하고, 국가는 생활비나 상금 등으로 노동자의 노력을 보상하는 것처럼 가장하여, 근본적으로 국가가 노동자의 임금을 착취하고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어 놓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맺음말
북한의 노동관련 제반 법률규정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①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임의대로 사용하거나 처분할 수 있는 주체가 될 수 없다 ② 노동자에게 주어지는 노동보수는 국가가 베푸는 시혜의 산물이지 사용자가 제공하는 임금이 아니다 ③ 노동자는 자신이 제공한 노동력의 대가를 사용자로부터 직접 온전히 받을 수 없다는 것 등이다. 이는 곧 북한 노동자들은 시대에 역행하여 퇴행한 국가체제(김일성레짐)에서 정권의 노예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위와 같은 사실은 북한 노동자의 인권문제가 북한체제의 본질로부터 나오는 문제라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다. 북한 노동자 인권문제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서는 북한체제의 변화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 명백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