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겁쟁이가 있고 가짜 겁쟁이가 있다
겁쟁이 이목 장군의 흉노족 토벌
겁생어용(怯生於勇) ― 『손자(孫子) 병세 제5편』



노병천
(예)육군대령, 리더십박사
전 나사렛대학교 부총장
한국전략리더십연구원 원장

누가 지나가다가 “이 무식한 놈!”이라고 욕을 했을 때 당신의 기분은 어떠하겠는가? 두 가지 경우가 있다. 정말 공부를 제대로 못한 사람이 그 소리를 들었을 때는 자존심이 상해서 화가 치밀어오를 것이다. 그런데 공부를 많이 해서 몇 개의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별로 개의치 않는다.
왜냐하면 실제로는 무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돈 많은 부자는 구멍 난 양말을 신고 허접은 점퍼를 하나 걸치고 다녀도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모습을 즐기기조차 한다. 왜냐하면 실제로는 돈이 많기 때문이다. 똑 같이 구차한 모습일지라도 돈이 많은 사람의 경우와 돈이 없어서 그렇게 하는 경우는 확연히 다르다. 작은 일에 화를 자주 내는 사람을 보면 대체로 그 속에 열등감이나 피해의식이 많은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매사에 대단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 속에 자존감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실제로는 그렇지 않지만 때로는 비겁한 모습으로, 때로는 비천한 모습으로, 때로는 바보 같은 모습으로 보여야 할 때가 있다.
대장군 이목은 일찍이 조나라 북부에서 오랫동안 변방을 수비하며 흉노의 침입에 대비하고 있었다. ‘달에서도 보이는 유일한 인공 건축물’이라고 불리는 총 길이 6,352km의 만리장성은 당시 흉노족의 침입을 대비해서 조나라 시절부터 쌓기 시작한 성벽이었다. 이렇게 흉노는 조나라를 크게 위협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나라 왕은 이목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었다.
이목이 전쟁에 필요하다면 직접 관리를 세우고 인재를 뽑거나 면직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기도 했으며, 한 개 군의 세금을 모두 이목의 직권으로 쓸 수 있도록 하는 등 특별규정을 만들기도 했다. 이목은 실제적인 전투력 향상을 위해 세금을 아주 적절하게 사용했고, 매일 부하들에게 가축을 잡아 먹여서 힘을 비축시켰다.

특히 사기와 복지 부분에 있어서 조금도 부족하지 않도록 만들었다. 전투력의 근원은 사기와 복지에 있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정보 시스템이 중요함을 알아서 여러 정탐꾼들을 양성하여 정보원으로 활용했다. 흉노가 침입해 올 때마다 철저한 정보 시스템은 그 위력을 발휘했고, 병사들은 신속하게 영채와 보루로 돌아가 굳게 지키며 제멋대로 출전하는 자가 없었다.
상황이 이쯤 되자 흉노족은 매번 아무 것도 약탈해 갈 수가 없었고, 조나라는 자신들의 병력뿐만 아니라 조나라 전체의 인원과 물자들을 그대로 보존할 수가 있었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자 흉노족은 이목을 먼저 공격도 못하는 겁쟁이라고 소문을 퍼뜨렸다.

그리고 조나라의 병사들조차도 자신들이 모시는 지휘관이 소심하고 겁이 많다며 이목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바로 여기에서 위기가 발생한다. 이런 소문들이 조왕의 귀에 흘러 들어갔다. 이목은 이 일로 인해서 조왕의 질책을 받았지만 이목은 여전히 자신의 지휘철학대로 부대를 지휘해나갔다. 드디어 조왕은 이목을 불러들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이목대신 신임 장수를 그 자리에 보냈다.
신임 장수는 부임한 지 1년이 남짓 되자 흉노가 침입해 올 때마다 병사들을 데리고 나가서 맞서 싸웠다. 그 결과 대부분의 싸움에서 패했고, 그로 인해 죽거나 다친 사람들이 많았다. 변경 지역은 제때에 농사를 짓거나 가축을 기를 수도 없었다.

이렇게 되자 그곳 군민들은 신임 장수를 원망하기 시작했고 구관이 명관이라며 이목을 그리워했다. 그리하여 조왕은 이목을 다시 찾았지만 이목은 병을 핑계로 산 속에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조왕이 재삼 간곡히 부탁을 한 뒤에야 이목은 한 가지 조건을 걸고 다시 나왔는데, 그 조건은 자신이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변경을 관리할 것이며, 조왕은 이를 간섭하지 말아달라는 것이었다.
조왕이 그 조건을 수락하자 이목은 다시 변경지역으로 달려가서 예전 모습으로 되돌려 놓았다. 그는 예전처럼 흉노가 쳐들어오면 군대를 성안으로 철수시켰기 때문에 흉노는 다시 그를 겁쟁이라고 생각하고 방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 이목은 은밀하게 전차 1,300대와 기마 1만 3,000필을 가려 뽑고, 활쏘기에 능한 무려 10만 명의 궁수를 가려 뽑아 맹훈련을 시키고 있었다.
적의 방심을 노려 이목은 흉노를 섬멸시킬 결정적인 펀치 한방을 계획한 것이다. 병사들도 한 번쯤은 통쾌하게 싸워보자고 전의가 불같이 끓어올랐다. 근질근질했던 것이다. 흉노가 다시 쳐들어오자, 이목의 군대는 이번에는 성 안으로 퇴각하지 않고 짐짓 패하여 달아나는 척했다.
이 거짓 패주에 속은 흉노족의 왕 선우는 군대를 이끌고 이목의 군대를 추격해서 조나라 진영 깊숙이 들어왔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이목은 1,3000명의 기병을 두 대로 나누어 흉노를 양쪽에서 급습했는데 흉노의 10만 대군은 진열이 완전히 무너졌다. 퇴각하려 했지만, 길목을 지키며 기다리고 있던 10만 조나라 궁수들은 퇴각하는 흉노에게 화살을 퍼부어 흉노의 10만 대군은 거의 전멸되었다.
이로써 흉노족은 감히 조나라 근처에 한 발자국도 접근할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수년간 겁쟁이라는 온갖 비난과 조롱과 모욕을 묵묵히 견뎌내며 나라를 지켜냈던 이목은 기원전 233년 진나라가 쳐들어왔을 때 역시 10만의 진나라 군대를 모조리 무찔렀다.
손자병법 병세(兵勢) 제5편에 보면 아주 흥미 있는 말이 나온다. “혼란함은 다스려짐에서 나오고(亂生於治), 겁은 용맹에서 나오고(怯生於勇), 약함은 강함에서 나온다(弱生於强).” 이 말의 뜻을 풀면 이렇다. 혼란하게 보이는 것은 실제로는 엄격하게 다스려지는 통제와 전략에서 나오는 것이다. 적에게 의도적으로 혼란하게 보임으로써 오판을 하게 만들어 승리를 쟁취하려는 것이다.
실제로 잘 다스려지지 않으면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위장할 수도 없다. 겁쟁이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은 적을 방심하게 만들어 승리를 쟁취하려는 것이다. 진짜 겁쟁이가 아니라 그 속에 용맹이 있는 가짜 겁쟁이인 것이다.
용감함이 없으면 겁쟁이처럼 보일 수도 없다. 겉으로 약하게 보이는 것도 적을 방심하게 만들어 승리를 쟁취하려는 것이다. 약한 것이 아니라 속은 아주 강한 것이다. 강하지 않으면 약하게 보일 수도 없다.

“아빠, 팔씨름해요.” 어린 아들 녀석이 달려든다. 이럴 때 아빠는 어떻게 할까? 손을 마주잡고는 용을 쓰듯 인상을 쓴다. 그러고는 이길 듯 이길듯 하다가 슬며시 져준다. “아이고, 네가 이겼다!” 아들은 펄쩍 펄쩍 뛴다. 그런데, 정말 아빠가 힘이 없어서 졌는가? 져 준 것이다. 힘이 있을 때는 져줄 수 있는 것이다. 힘이 없으면 져주고 싶어도 져줄 수 없다.
그런데 나이가 많이 든 아버지와 막 해병대에서 제대한 아들이 팔씨름을 했다. 아버지가 이길까? 아니 져줄 수 있을까? 이런 경우에는 효심이 깊은 아들이 져준다. “와, 아버지. 아직도 힘이 좋으시네요!” 바로 이런 것이다. 힘이 있을 때 져줄 수 있다. 엄청 용감한 사람이 겉으로는 겁쟁이처럼 보일 때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진짜 잘 싸웠던 시라소니와 같은 전설적인 싸움꾼을 보면 어리숙하게 보였다고 한다. 눈에 번쩍이는 안광도 없고 머리칼도 눈까지 덮여있고, 걷는 모양도 비틀거렸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싸워야 할 때는 번개 같이 날아서 상대방을 한 방에 눕히고야 만다. 속이 비면 겉이 화려하다. 아니 그렇게 치장해서 속이 빈 것을 감추려한다.
북한군 장성의 복장을 보면 그런 느낌이 많다. 가슴에서부터 시작된 주먹크기 만한 훈장들이 허리춤까지 줄줄이 붙어있다. 모자는 얼굴 길이만큼 위로 높이 솟아 있다.
생 얼굴에 자신이 없으면 짙은 화장을 하는 것과 같다. 반면에 미군 장성의 복장을 보면 다르다. 아주 심플한 계급장과 몇 개의 작은 훈장만 달려 있다. 치장은 거의 눈에 띄지도 않는다. 오히려 이런 모습에서 강한 힘과 자신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니 세상의 여러 일을 대할 때 겉으로 드러난 현상만 보고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된다. 화려한 치장, 말이 많고 큰소리 뻥뻥치는 사람, 대체로 이런 사람은 하수다. 고수는 조용하고 색깔이 없다. 세상에는 의외로 이런 숨은 고수들이 많다. 잘못 걸리면 한 방에 갈 수 있다. 사람을 절대로 겉만 보고 판단하지 말자.

진짜 갖춘 사람은 겉이 화려하지 않다.
怯 生 於 勇
겁낼 겁 날 생 어조사 어 날쌜 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