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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언제까지 ‘항미원조’를 우려먹을까?
기자 : 관리자 날짜 : 2020-11-30 (월) 18:20


양승진


중국 인민지원군은 1950년 10월 19일 압록강 을 건넜다. 소위 항미원조(抗美援朝, 미국에 대항 해 조선을 도움)라는 미명 아래, 한반도 땅에 발 을 디디면서 6·25전쟁에 참전한 것이다. 그로부 터 엿새 후인 10월 25일, 중국군은 평안북도 운 산에서 국군 1사단을 기습 공격했다. 참전 후 첫 전투에서 무조건 이기기 위해 상대적으로 전력 이 약한 국군을 타깃으로 삼았다. 이날이 바로 중국서 정한 항미원조전쟁 기념일이다. 중국이 올해 들어 유난히 ‘항미원조’를 거론하 고 있다

6·25전쟁에 참가한 70주년을 기념한다 해도 도가 좀 지나친 듯하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10월 19일 중국인민혁명군사박물관에서 열린 ‘위대한 승리 기억 평화·정의 수호 중국 인 민지원군 항미원조작전 70주년 전시’를 관람한 데 이어 10월 23일에는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중국 인민지원군 항미원조 출국작전 70주년 기 념대회’ 연설을 했다. 중국 최고지도자가 6·25전쟁 참전 기념행사에서 직접 연설을 한 것은 20 년 만이다. 시 주석은 “중국 인민지원군이 정의의 기치를 높이 들고 북한인민 및 군인들과 함께 싸워 항미 원조전쟁에서 위대한 승리를 거뒀다”면서 “이를 통해 세계평화와 인류의 진보에 큰 공헌을 했다” 고 주장했다. 그는 또 “항미원조전쟁의 승리는 정의의 승 리, 평화의 승리, 인민의 승리”라면서 “항미원조 정신을 귀중한 정신적 자산으로 중국인민과 중 화민족의 고난 극복과 모든 강력한 적을 이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 주석의 연설 에 앞서 중국은 랴오닝성 단둥의 항미원조기념 관을 재개관했고, 관영인 중국중앙방송(CCTV) 도 ‘항미원조전쟁’을 주제로 20부작 다큐멘터리 를 내보내는 등 애국적 분위기를 띄웠다. 여기에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은 6·25전쟁에 관해 북 의 남침이 아닌 내전이라고 주장했고, 중국 외교 부도 내전이라고 거들었다. 시 주석이 6·25전쟁 을 ‘미국 제국주의의 침략’이라고 규정해 역사왜 곡 논란을 촉발시킨 것과 궤를 같이했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6·25전쟁은 미국이 이승 만 대통령을 교사해서 일으킨 전쟁이자 중국을 침략한 음모’라는 중국측 주장에 대해 “명백한 남침이고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사주를 받아 남 침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단둥시가 내건 ‘6·25전쟁 남침’ 현판 2014년 10월 북·중 국경지역을 취재할 때의 일이다. 중국 랴오닝성 단둥시에서 압록강을 따 라 40km 떨어진 또 하나의 단교인 칭청차오(淸城橋)에 갔을 때다. 당시 중국이 이 일대를 성역화한다는 소리를 들은 터라, 어떻게 변했을지 궁 금했다. 칭청차오는 중국 인민지원군이 6·25전 쟁에 참전하기 위해 압록강을 건넌 다리로, 마 오쩌둥(毛澤東) 주석의 아들 마오안잉(毛岸英)도 이 다리를 건넜지만 결국 돌아가지 못했다. 칭청 차오 단교는 1951년 3월 중국 공산당의 지원 보 급을 끊기 위해 미군의 폭격을 맞아 끊어진 모습 그대로 남아 ‘제2의 단교’로 불린다.

칭청차오 일대는 중국 정부가 국가급 중점보 호문물로 지정해 주차장 시설과 기념품 가게 등 이 들어서는 등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입 구에는 마오안잉의 전신 동상이 세워졌고, 다리 뒤쪽에 마오안잉학교도 개설해 소위 애국심 고 취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다리 입구 쪽 좌우에 중국 인민지원군 영웅들 의 흉상이 놓여 있고, 그 중간중간에 6·25전쟁 당시 전투상황과 승전보 등을 새긴 간판이 늘어 섰다. 다리로 가니 난간에 입간판을 촘촘히 걸어 둔 게 보였다. 내용을 보니 6·25전쟁을 소개하 는 입간판에 ‘남진(南進)이라는 표기가 보였다. 조선전쟁(6·25전쟁) 시점을 “1950년 6월 25일 조선(북한)인민군이 남진(남침)을 시작해 조선전 쟁이 터졌다”고 기술했다. 너무나 뜻밖이어서 중국이 6·25전쟁을 ‘북한의 남침’이라고 기록한 입간판을 왜 관광객들에게 공 개하는지 궁금했다. 그것도 북한군 병사가 보초를 서고 있는 초소(부서진 다리)에서 불과 30m 거리 에 이 입간판들이 늘어서 있어 의아했다. 또 김일성 소개에서는 “본명이 김성주(金成住) 이고 1912년 4월 15일 평양에서 태어나 1994 년 평양에서 사망했다”고 적었다. 다른 입간판에 적힌 조선전쟁 배경에는 “김일성이 스탈린과 사 전에 모의한 후 몰래 베이징에 와 마오쩌둥에게 남침을 건의했으나 지금은 시기가 맞지않다고 했는데도 6월 25일 전쟁이 터졌다”면서 “마오쩌 둥은 이 사실을 몰랐다”고 썼다. 특히 항미원조 전쟁은 “연합군에 대항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 국을 도와주고 중국의 안전을 위해서 파병했다” 고 게시했다.

현지 주민에게 물어보니 “올해 5월께 입간판 을 설치한 걸로 알고 있다”며 “마오안잉을 영웅 시 하기 위해 항미원조 차원에서 정부가 벌인 사 업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입간판 설치에 대해 조선쪽에서는 아직 모르고 있는 상태”라고 덧붙였다. 귀국 즉시 ‘중국이 6·25전쟁을 남침이라 고 표기했다’는 보도를 하자 당시 큰 이슈가 됐 다. 북·중 접경지역에 이런 현판이 내걸린 것은 무슨 의도가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분분했다. 2015년 2월 다시 칭청차오를 찾아 입간판이 있나 찾아보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관리원에 게 물어보니 “북한 외무성(외교부)에서 6·25전 쟁을 남침이라 표기한 입간판에 항의해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며 “그 즉시 떼어냈다”고 말했 다. 기념품을 팔던 상인도 “애써 설치한 입간판 인데 북한의 항의로 떼어냈다”며 “북한쪽에서 직 접 찾아와 난리가 났었다”고 했다. 입간판 설치에 대해 자초지종을 알아보기 위 해 단둥시정부를 찾아갔다. 한 공무원은 “A 국장 을 관전만족자치현(단둥시의 압록강변 자치현) 현장(縣長)으로 내보냈는데, 칭청차오 일대를 애 국심 고취장소로 부각시키기 위해 애를 쓰다 결 국 입간판까지 설치하게 된 것”이라며 “조선(북 한)쪽에서 항의가 빗발쳐 A 국장은 한동안 고초 를 겪다 옷을 벗었다”고 말했다. 2014년 한바탕 소동으로 끝난 일이지만 항미 원조의 메카인 단둥시정부가 6·25전쟁을 북한 의 남침이라고 표기한 것은 사실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이 6·25전쟁을 남침으로 표 현한 것은 2010년 6월 18일 환구시보(環球時報) 를 통해 선즈화 화둥사범대 교수가 “소련 기밀문 서 해제로 북한의 한국침략이 밝혀졌다”고 밝힌 것을 시발로, 그해 6월 24일 중국 신화통신이 발 행하는 국제선구도보(國際先驅導報)가 6·25전쟁 60주년 특집기획에서 ‘북한이 먼저 남쪽을 침략 했다’고 보도했다가 급히 삭제한 게 전부다. 석연찮은 단둥 항미원조기념관 재개관 단둥에 있는 항미원조기념관은 ‘미국에 대항 해 조선(북한)을 도운 전쟁’을 기념하기 위해 세 웠다.
 
1958년 단둥에 관련 기념시설들을 짓기 시작했고, 문화대혁명 시기 북중관계가 최악으 로 치달으면서 1966년에 폐관됐다가 6년만인 1972년에 다시 문을 열었다. 그러다가 정전협정 체결 40주년이던 1993년 현 위치(영화산)에 대규모 기념관을 열었다. 중 국 인민지원군 13병단이 있던 주둔지터에 조성 된 것이다. 21만㎡의 부지에 총건축면적은 1만 700㎡, 국가급 중점보호문물로 지정해 개방되었 다. 그러다 2014년부터 대대적인 증개축 공사를 진행했고, 지난해 모든 공사를 마치고 재개관 날 짜를 꼽았었다. 당시 2019년 10월 초 중국 국경절에 맞춰 개관 하려던 것이 시진핑 주석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 원장이 참석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10월 말로 미 뤄졌다. 필자는 당시 재개관식에 참석하기 위해 단둥을 방문했었지만 무슨 연유인지 재개관식은 열리지 않았고 언제 다시 한다는 보도도 없었다. 올해 10월 19일 단둥시는 급작스럽게 재개관 식을 진행했다. 일반 시민들도 재개관식이 끝난 뒤에야 알 정도였다. 재개관식에는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 부부장 왕야쥔(王亞軍, 차관급), 랴오 닝성 서기 장궈청(張國淸) 등이 참석했고 중국 군 부를 대표해 북부전역 군구(선양 군구) 부정치위 원겸 정치공작부주임인 먀오원( )이 이름을 올렸다. 북한에서는 선양주재 총영사관 구영혁 (具永赫)이 참석했다. 새로 개관한 항미원조기념관은 총면적 18만 2,000㎡에 기념관과 기념탑, 파노라마 화랑, 국 방교육공원으로 구성돼 있다. 기념관은 건축 면 적 2만3,800㎡로 기존보다 4배나 커졌다. ‘미국 의 침략에 저항하고 조선을 수호한다’를 기본 테 마로 프롤로그 홀, 미국의 침략에 저항하는 전쟁 홀, 중조(中朝: 북중) 인민기념관 등을 설치했다. 항미원조기념탑은 높이 53m로 1953년 미 국에 대항해 조선을 도운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것을 기념한다. 전면에는 덩샤오핑(鄧小平)이 쓴 ‘항미원조기념탑’ 글씨가 금박으로 새겨져 있다.
 
기념탑 앞의 큰 계단은 폭이 10.25m로 1950년 10월 25일 첫 전투일을 뜻하고, 입구 계단은 1,014개의 돌로 이뤄져 중국 인민지원 군이 한반도에서 1014일 밤낮으로 싸웠다는 것 을 의미한다. 야외 전시장에는 중국 인민지원군 이 사용했던 주요 장비가 전시돼 있다. 122mm 곡사포, 소련 카츄샤 로켓 발사기, 85mm 대포 등을 비롯해 미그-15 전투기와 Tu-2 경폭격기 등이 있다. ‘항미원조’ 선전으로 반미사상 부추겨 단둥은 중국에서 가장 큰 변방도시로, 압록강 을 사이에 두고 평안북도 신의주와 마주 보고 있 어 반미사상을 고취시키는 ‘항미원조’ 테마도시 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항미원조기념관과 칭청 차오 외에도 압록강 철교, 압록강 단교, 신압록 강대교가 있고, 만리장성의 동단기점이라고 선 전하는 호산장성(고구려 때 박작성) 가는 길에는 중국 인민지원군이 6·25전쟁 때 건넌 부교(浮橋) 도 있다. 압록강에서 수풍댐으로 가는 청수철교 인근엔 6·25전쟁 당시 수송전투를 이끈 철도 관련 전시 물이 있는 철로항미원조박물관도 있다. 2016년 에 건설해 2017년에 문을 연 이 박물관은 지상 1층과 지하층으로 연결돼 봉상철로(鳳上鐵路), 안봉철로(安奉鐵路)를 시작으로 6·25전쟁 당시 철도와 관련된 각종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 단둥은 보이는 곳곳이 ‘항미원조’와 관련된 장소가 많아 오성홍기가 나부끼는 곳이 많다. 압록강 단 교만 해도 부서진 다리 난간에 대형 전광판을 설 치해 하루종일 인민지원군의 활약상을 틀어줄 정도다. ‘통일한국’은 중국의 안보를 위협할까? 중국은 국가 안보를 이유로 항미원조전쟁 참 전을 정당화하고 있다. 최근 들어 성명과 언론 기사에서 반미 기조가 더 농후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이 같은 기류는 중국의 향후 정책방향을 암시하는 것이어서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다.

중 국은 미국과 동맹인 ‘통일한국’이 중국의 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장쩌민·후 진타오 전 주석이 집권하던 때만 해도 중국의 이 익을 존중하는 신중한 협상을 통한 한반도 평화 통일에 합의할 여지를 보였지만, 시진핑 주석이 있는 지금은 그 가능성이 현저히 적어졌다. 중국 의 ‘항미원조’가 살아 꿈틀대는 한, 남북·북미·미 중관계는 단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현재 상태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70년 동안이나 우려먹은 ‘항미원조’ 또 한 미국과 대치하고 있는 한 끝없이 이어질 전망 이다. 시진핑 주석은 6·25전쟁에서 우세한 적군 에 대항해 용맹하게 싸워 승리했다는 자부심을 전 국민에 심어주면서, 자신의 정책 목표인 샤오 캉(小康·모든 국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 림) 사회 건설을 부추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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