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의 한을 다소나마 푼 켈로부대 보상법안
기자 : 관리자 날짜 : 2021-06-03 (목) 14:51





켈로부대 보상법안의 통과와 공포 6·25전쟁 때 자발적으로 조직되어 혁혁한 전 과를 올린 켈로부대(KLO부대, 8240부대)원에 대한 보상이 70여 년 만에 이루어졌다. 한기호 의원이 발의한 법안명 “6·25전쟁 참전 비정규군 공로자 보상에 관한 법률안”이 지난 3월 24일 국 회를 통과했고 4월 13일 국방부가 공식 공포해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 법은 “6·25전쟁 중 비정 규군 신분으로 국가를 위하여 헌신한 공로자와 그 유족에 대한 보상에 관한 사항을 규정함을 목 적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법안의 ‘비정규군’ 이란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까 지의 기간 동안 「국군조직법」에 따른 국군이 아 닌 신분으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조직 또는 부 대에 소속(외국군·유엔군 소속 등을 포함한다)되 어 활동한 개인 또는 집단으로 규정하고 있다. ‘비정규전’이란 비정규군의 신분으로 적(敵: 적 대적인 활동을 하는 집단 포함)의 점령·지배·활 동지역 안에서 적에 대항하기 위하여 유격 및 첩 보수집 등을 수행한 작전을 말한다. 법안은 국회 본회 재적 219명 중 찬성 216명 반대 3명으로 통과되었다. 법안은 2020년 9월 9 일에 발의되었는데 발의 의원에는 한기호, 김예 지, 홍준표, 전주혜, 강대식, 최춘식, 조수진, 김 석기, 이철규, 이양수, 김용판 의원 등 11인이 포 함되었다. 법안 제안 이유는 6·25전쟁 중 자발적 으로 결성된 유격대나 미 8군 및 미 극동군사령 부의 첩보부대 등에 소속되어 비정규전을 수행 한 공로자와 그 유족의 경우, 외국군 소속이거나 정규 군인이 아닌 민간인 신분이라는 이유로 보 상이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6·25전쟁에 참전한 비정규군 공로자의 경우, 국가수호의 일념으로 자발적으로 전쟁에 참가 해 나라를 위해 희생했지만 제도적 여건의 미비 로 보훈 사각지대에 있는 것이다. 특히, 현재 생 존자들의 대부분이 80세 이상의 고령자임을 감 안할 때 더 늦기 전에 명예회복과 보상대책 마련 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임무 수행 이나 참전 시기 등이 유사한 백골병단유격대나 특수임무수행자의 경우에는 관련 법률을 마련하 여 보상이 이루어지고 있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정규 군인이 아닌 민간인 신분이라 할지라도 국 가를 위해 헌신한 공로를 인정하여 보상을 해 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법안은 1. 이 법에 따른 보상대상은 1950년 6 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 사이에 비정규 군 신분으로 직접 비정규전을 수행한 사람으로 이 법에 따라 공로자로 인정된 사람으로 함(안 제2조). 2. 공로자 및 그 유족에 대한 보상 등에 관한 사항을 심사·의결하기 위하여 국방부장관 소속으로 비정규 군 공로자 보상심의위원회를 둠(안 제4조). 3. 공로 자 및 그 유족으로서 보상금 등을 지급받고자 하는 자는 관련 증빙서류를 첨부하여 서면으로 위원회에 보상금 등의 지급 신청을 하도록 함(안 제7조). 4. 위원회는 보상금 등의 지급 신청을 받은 날부터 1 년 이내에 그 지급 여부와 금액을 결정하여야 하며, 보상금 등을 지급하거나 지급하지 아니하기로 결정 한 경우 1개월 이내에 그 결정서 정본을 신청인에 게 송달하도록 함. 마. 위원회의 결정에 이의가 있 는 신청인은 결정서를 송달받은 날부터 1개월 이내 에 증빙자료를 첨부하여 위원회에 재심의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함. 5. 보상금 등의 지급 결정서 정본을 송달받은 신청인은 결정에 대한 동의서를 첨부하여 위원회에 보상금 등의 지급 신청을 하도록 함(안 제 11조). 6. 보상금 등의 지급을 받을 권리는 지급결 정서 정본이 신청인에게 송달된 날부터 3년간 행사 하지 아니하면 시효로 소멸하도록 함(안 제17조). 7. 공로자 및 유족 등으로 구성된 단체에 대하여 예 산의 범위에서 필요한 경비를 지원할 수 있도록 함 (안 제18조). 8. 공로자 및 그 유족이 다른 법률에 따라 보상을 받았거나 보상대상이 되는 경우 또는 국가기관 등으로부터 유사한 취지로 이미 금전적· 비금전적인 보상이 이루어진 경우에 이 법에 따른 보상금등을 지급하지 아니하도록 함(안 제19조)의 내용을 담았다. 6·25전쟁 중 켈로부대의 조직 및 활동과 전후 상황 ‘한국유격군전우회총연합회’에 따르면 6·25 전쟁 종전까지 2년여 간 3만2천여 명의 유격대 원들이 서해 5도에 설치된 기지를 중심으로 황 해도와 평안남·북도, 함경남·북도 등까지 펼쳐진 작전지역에서 모두 4,445회의 작전에 참가해 혁 혁한 공을 세웠다. 이러한 작전을 통해 인민군 6 만9천여 명의 사상자와 950명 생포, 5천여 정의 총기를 노획했으며 북한 후방에 침투해 80개소 의 교량과 2,200여 동의 건물 파괴, 20만 장의 전단 살포를 통해 선무활동 등을 펼친 것으로 파 악하고 있다. 미군 첩보부대의 지원을 받게 된 뒤로는 황해 도 요소요소에 비밀기지를 두고 본격적인 유격 전을 전개, 평양까지 잠입해 반공인사를 구출하 고 인민군 장교를 납치하기도 했다. 3년 동안의 유격전에서 전사한 대원은 4,000명, 부상자는 그보다 더 많았다.
 
전쟁 당시 KLO8240부대(스 켄논부대)는 4개 연대의 유격·정보부대로 구성 되었으며 미군 소속으로 지휘부 100여 명을 뺀 나머지 부대원 9,600여 명은 모두 한국의 젊은 이들이었다. 스켄논 부대원들은 함경남·북도에 서 맹활약하며 인민군 1개 군단의 발목을 잡아 남하를 막는 전공을 세웠다. 동쪽 휴전선이 서쪽 보다 올라간 것도 설악산 전투와 스켄논 부대원 들의 활약 덕분이다. 유격부대는 대체로 출생 연고지 중심으로 약 30개의 단위 부대로 편성되었는데 처음에는 미 8군, 다음에는 미 극동군사령부와 연계하여 유격작전을 전개하였다. 특히 ‘팔미도 등대 탈환 작전’은 1950년 전쟁 당시 16명의 켈로부대원 들과 미군으로 구성된 한·미연합 특공대가 5시 간의 활약 끝에 등댓불을 켜는 임무를 완수한 작전이다. 이 작전은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적으 로 전개되고, 수도 서울 수복 등 6·25전쟁의 상 황을 획기적으로 전환한 역사적 현장으로 재조 명되었다. 1951년 2월부터 1953년 7월까지 30여 개의 유격부대들은 북한지역 연안 일대와 적지 내륙 을 작전지역으로 하여 해안선 침투상륙작전, 공 산군 배후습격, 교량·교통망 파괴, 공수특전침 투 등을 전개했다. 이러한 전투활동을 통해 함 경도와 평안도 연안의 2개 군단, 북강원도와 함 경도 연안의 1개 군단 등 공산군 3개 군단을 견 제하는 전략적 효과를 거두었다.

특히 남포항과 원산항의 입구를 봉쇄하여 동·서해 제해권 확 보에도 크게 기여했다. 서해북방한계선(NLL)이 오늘의 경계로 확정되는 데는 이들의 공로가 매 우 컸다. 1953년 7월 27일 휴전이 성립되면서 유엔군 의 보급지원 종료와 철수지시에 따라 각 유격대 부대들은 남한으로 이동 철수하여 대기했다. 휴 전 직후인 1953년 8월 5일 한·미 간 유격군 신 분에 관한 협약에 따라 국방부 8250부대로 재편 되었다가 육군부대로 분산 편입되었는데 이들이 현재 특수전사령부(특전사)의 모체가 되었다. 8250부대는 이후 각 육군부대로 분산 편입됐 고 간부 7백여 명은 장교로 임관했으며 사병 1 만2천여 명은 현지입대하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 은 끝에 해체됐다. 6·25전쟁 중 유격부대에 대한 기록문서는 휴전 후 30년이 지난 1984년에 이 르러 비밀등급 하향으로 일반문서화되어 비로 소 공개되었다. 미 육군성 기록에 의하면 전쟁기 간 중 한국 유격군은 대·소규모의 전투 4,445회 를 감행하였고, 약 7만 명의 적을 살상한 것으로 정리되어 있다. 유격군 간부 중 753명이 현지 임 관(소위~소령)되었고, 대원 약 12,000명이 하사 관, 사병으로 현지 입대됨으로써 발전적인 부대 로 해체를 했다. 종전 이후 이들에 대한 평가는 제대로 이뤄지 지 않다가 존스홉킨스대학이 해제된 미 비밀문 서를 정리하면서 세상에 알려져 정부 차원의 대 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기 시작했 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은 6·25전쟁 당시 8240 유격대를 지휘했던 미 극동사령부 주한연락처 (KLO : Korean Liaison Office)의 한국 유격전 관련 문서가 30년이 흐르면서 해제되자 이를 수 집해 책자로 만들었다. 이 기록은 6·25전쟁 기간 중 8240유격대가 진행한 작전과 전과를 공식적 으로 기록하여 세상에 8240유격대의 실체는 물 론, 전쟁 중 엄청난 전과를 알렸고 유격대원들 스스로도 알지 못했던 전과를 자각하게 한 계기 가 되었다. 이후 국방부에서 일부 유격대원들의 위패를 국립묘지에 모시는 조치를 취해 다소나마 이들 의 명예를 기억해 주기 시작했다. 1970년 1월 9 일 제정된 「국립묘지령」에 의하여 시체 없는 전 사자도 위패로 봉안할 수 있게 되었는데, 육군 본부의 배려로 1차(1995.6.20.)에 2,410위, 2 차(1996.5.15.)에 1,005위, 3차(1997.5.26.)에 304위, 4차(2000.4.8.)에 156위, 총 3,875위의 유격군 전몰용사 위패를 대전국립묘지 현충탑에 함께 모시게 되었다. 국방부에서 인정해준 전사 자가 대전현충원에 모신 것이 71기이고 단체로 모신 수가 4,600명이다. 보상논의의 시작과 입법 및 의의 유격대원들의 보상에 관한 논의는 국가인권 위가 2007년 3월 12일 ‘외국군 소속 특수임무수 행자에 대한 국가보상을 위한 관련 법률의 제·개 정 권고’라는 제목의 결정문이 채택되면서부터 이다. 결정문은 “주한연락처(KLO)를 포함, 외국 군 소속으로 특수임무를 수행한 자들에 대한 신 속한 보상이 가능토록 ‘특수임무수행자 보상에 관한 법률’에 보상청구권을 인정하는 근거 규정 을 명시하거나 별도 법률을 제정할 것”을 권고하 고 있다. 이를 계기로 2011년 12월 19일 당시 한나 라당 김동성 국회의원 등 14명의 대표 발의로 「6·25전쟁 전후 비정규군 공로자 보상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되었다. 19대 국회에서 비정규 군의 용어로 인해 다른 유사 보상신청 대상들과 오인될 수도 있다는 오해가 있었다. 따라서 법 률안 명칭을 ‘6·25전쟁 중 적후방지역 KLO한국 유격군 작전수행 공로자에 대한 군복무 인정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안’으로 수정, 변경해서 다 시 발의되었다. 발의 법률안은 법안 담당 위원 회인 국회 국방위원회를 통과해 최종적으로 법 률안 확정이 유력해졌으나, 법사위원회에 계류 되어 진전이 없다가 19대 국회가 종료되면서 자 동 폐기되었다. 20대 국회에서 ‘6·25전쟁 전후 비정규군 공 로자 보상에 관한 법률안’은 2016년 6월 30일 새누리당의 김종태 의원이 대표 발의하고 이종 명, 안규백, 박덕흠, 이명수, 박맹우, 김성태, 김 학용, 이학재, 이우현·김중로 의원이 발의에 동 참했다. ‘6·25참전 비정규군 공로자 보상에 관 한 법률안’도 2016년 7월 18일 민주당의 윤후 덕 의원이 대표 발의하고 김경협, 박남춘, 이찬 열, 서영교, 박범계, 김병욱, 백재현, 박정, 민홍 철 의원 등이 발의에 참여했다. 이처럼 20대 국 회에서도 여야 의원이 대표 발의하고 여야 의원 들이 동참한 2개의 보상법안을 통해 KLO한국 유격군에 대한 보상 필요성은 충분히 설명되었 고 구체적인 보상절차까지 규정되었다. 따라서 국회 국방위를 통과해 20대 국회에서 입법이 완 료될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법사위에서 제동이 걸려 무산되었다. 다행히 21대 국회에서 유사 법안 2개가 여야 의원들 공동발의로 논의되어 드디어 법안으로 확정돼 70년의 한을 다소나마 풀면서 명예도 회복했다. 휴전 후 유격대원들은 귀향하거나 현역으로 입대했기 때문에 유격대의 존재가 쉽 게 잊혀진 데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희생된 동 료들과 자신들의 활동이 정당한 대접도 못 받 고 잊혀지는 것으로 여겼다. 유격대원들은 자 신들의 전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서해안과 동해에서 3년 동안 공산군과 맞섰던 그들의 투 쟁정신과 교훈이 계승되기를 바래 왔다. 그런 점에서 뒤늦게나마 보상법안을 통해 이들의 활 동과 애국심, 희생을 기리게 된 것은 참으로 다 행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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