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욕적인 대화는 중지해야






오랜만에 기대했던 남북회담의 꿈이 시작도 못하고 무산되었다. 그것도 수석대표 격(格)을 둘러싼 입장차이 때문이다.

박대통령이 현충일에‘이제 북한이 선택하는 길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며 한반도 행복시대를 열어가는 길에 북한당국의 적극적인 동참을 요구한다’고 밝히자, 북한 조평통(조국평화통일위원회)이 기다렸다는 듯이‘6·15를 계기로 개성공업지구 정상화와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남북 당국사이의 회담을 가질 것을 제의한다.’ 는 특별담화문을 전격발표를 하였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이산가족 상봉과 남북관계를 가로막고 있던 난제들을 포괄적으로 다룰 수 있다며 회담장소와 시일은 남측에 일임했다. 이어 통일부 장관은 12일 서울에서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이산가족 문제 등 남북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남북장관급회담을 개최하자고 밝혔다. 박대통령도‘뒤늦게라도 북한이 남북대화 재개를 수용한 것에 대해 다행스럽게 생각하며, 한반도 프로세스가 발전적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이틀간 숨가쁜 핑퐁게임으로 직통전화선 통통라인(통일부장관-통일전선부장)이 3개월 만에 재가동되고, 9~10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남측대표 천해성 정책실장과, 김성혜 조평통 부장 간의 회의를 거쳐 6월 12~13일 서울에서 개최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러나 북한은 11일까지 당국회담 수석대표로 북한 조평통 사무국장과 우리 측 차관과의 격을 문제 삼아 회담이 무산되고 말았다.

북한은 회담무산 이유를 남측으로 돌리고 있으나 북한의 회담제의 의도와 진성성이 문제시 되고 있다. 북한의 조평통은 노동당 통일전선부가 아닌 대남통일전술사업을 담당하는 산하외곽 사회단체이며, 강지영(57) 서기국장은 우리의 차관보급 직책에 있으며 임수경 방북 때 안내했던 6·15행사위원으로 남한대학생, 종교계, 해외인사를 상대로 대남사업을 맡고 있다. 이런 인물을 장관급 모자를 쓰고회담에 임했다는 의도부터 의심스럽다.

북한의 이번 대화제의도 그동안 사용했던 전형적인 수법이다.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11월 연평도 포격 등 긴장수위를 높이다가 미중정상회담(2011. 1. 20)을 앞두고‘무조건 대화’공세를 펼쳐 2월 8~9일 판문점 회담까지 성사되었으나 마지막 날 북한의 일방적 퇴장으로 끝내고 말았다. 이번에도 그동안 3차 핵실험과 개성공단 패쇄 등으로 긴장의 수위를 높여오다가 미중 정상회담(7~8일)을 앞두고 전격 제의하여 일시적 대화국면을 조성했다가 바로 무산시켰다.

일반적으로 협상(negotiation)이란 둘 이상 국가 간에 이해관계가 상충될 경우 공동의 합의에 도달하기 위하여 당사자 간 이해를 조정하는 교섭과정으로 외교의 주요 수단이다. 따라서 협상은 갈등상황에도 적대 반복보다는 타협을 통한 조정을 강조하며, 일방주의 보다 상호주의를 지향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북한의 협상전략 전술을 보면 모든 대외행위를 반제 민족해방을 위한 투쟁으로 보고, 협상을 투쟁에 사용하는 수단으로 보고 있다. 특히 남북협상은 남조선혁명을 위한 도구적 역할로 파악되고 있다.

지금까지 북한의 협상 형태를 보면 3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로 상당한 기대이익이 있지만 시간적으로 급박하지 않을 때 사용하는 흥정모드이고, 둘째는 협상에 무관심하거나 타결의지가 없을 때 사용하는 거부모드이다. 마지막으로 적극적인 타결의지가 있는 경우에 사용하는 급진적 모드이다. 이번 협상형태는 흥정모드나 거부모드로 볼 수 있다.
흥정모드를 3단계로 나누어 분석해 보면, 최초 협상단계에서 일방적인 양보유도를 위한 주도권 확보전략을 구사한다. 먼저 외형적 조건부터 기선제압과 결론이 삽입된 의제를 제시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회피할 의제는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없는 전제조건을 제시하고, 일부 수용하면서 상대방 거부를 비난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제안이 최종결정으로 주장하여 상대방 양보를 유도하며, 협상에 관심이 없는 것으로 위장하며 상대방의 양보를 요구한다.
둘째, 협상진행과정에서 새로운 의제를 기습제의하고, 애매한 용어로 상대방을 유도하며, 엉뚱한 요구조건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리고 엉뚱한 의제를 제시하여 회담을 지연시키고 상대방의 요구의 특정부분에 양보하는 척 하면서 자신들의 포괄적 요구와 맞교환하려고 한다. 따라서 자신들에 유리한 자료만 추출, 조작, 왜곡하여 협상에 유리하게 한다.
마지막 합의과정에서도 다양한 전술을 구사하여 합의 후에도 불리할 때에는 언제라도 거부할 수 있는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다. 이를 위해 상대방요구 명시화를 거부하거나, 무효화를 통해 일방적 파기를 한다.
앞으로 남북대화는 북한의 다양한 협상전략전술에 대응책이 필요하다. 첫째는 정책추진의 일관성이다. 다음은 조급한 협상태도를 지양해야 한다. 그리고 북한의 협상형태의 철저한 연구와 협상력을 제고해야 하며 특히 협상전문가를 육성해야 한다.

이번 회담의 결렬로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열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본격적으로 가동하려는 박대통령의 구상도 차질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과거와 같이 북에 끌려 다닌 답습을 회피하고 북한 길들이기에 나선 우리정부의 대응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 이제 북한도 과거처럼 상대에 대한 존중대신 굴종이나 굴욕을 강요하는 형태를 보이는 것은 발전적인 남북관계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앞으로 대화를 위한 형식적인 대화는 지양하고 실질적이고 의미 있는 대화가 되어야 한다. 그런 뜻에서 이번 남북당국대화 무산의 의미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