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환
보훈교육연구원 원장

 지난 6월 이후 역사학계에서는 고교 한국사 교과서에 대한 좌우 논쟁이 불붙고 있다. 혹자는 이러한 상황을‘역사전쟁’으로 묘사하고 있을 정도다.
 한 국가의 역사는 그 나라의 정통성은 물론, 국민 개개인의 국가정체성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내적 차원의 국가안보 확립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바로 그런 면에서 역사가 어느 특정 세력의 정파적 편견에 사로잡혀 마음대로 재단되어서는 결코 안 될 일이다. 그러한 경우 - 그것이 좌(左)든 우(右)든 간에- 전체주의체제 하에서는 역사는 더 이상 자라지 않는 법이다. 스탈린주의체제도 그랬고, 나치와 같은 파시스트체제도 그러했다.

 아마도 전체주의체제 하에서의 역사의 의미를 가장 잘 표현한 소설 중의 하나가 독일의 대문호요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일 것이다. 그는 이 소설에서 나치 치하의 역사를 ‘난장이 오스카’로 상징화하고 있다. 더 이상 자라지 못하는 전체주의 역사의 질곡 상황을‘난장이’로 함축한 것이다. 그라스는 전체주의 역사가 올바로 정립되기 위해서는 비판정신이 필수적이라고 보았다. 이와 관련하여, 그는‘오스카’가 어디선가 날아온 돌멩이에 정수리를 맞게 되고, 성장점이 자극을 받아 일순간 키가 자라게 됨으로써 마침내 정상적인 성인으로 성장한다는 내용을 설정하고 있다. 난장이 오스카가 성인의 키로 커진 것은 곧 역사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이다.

 체코슬로바키아의 공산당 서기장 두브체크의 마음을 움직여‘프라하의 봄’을 이끌어낸 청년극작가 바츨라프 하벨 - 그는 동구권 몰락과 함께 체코슬로바키아 초대대통령이 되었으며 이어서 분리 독립된 이후에는 체코의 초대·2대 대통령이 되었다 - 은 전체주의 역사를 비판하며‘역사적 진실’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이‘역사적 진실’이 매몰된 체제는 필히 전체주의체제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내내 공산독재에 저항한 하벨은 이러한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필히‘역사적 진실’에 입각한 비판정신이 회복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몸소 증명해 보였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역사적 경험이 그 나라의 정통성과 국민의 정체성 형성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또한 역사는 단순히 과거라는 시대적 의미에 머물러 있지 않고 그 연장선상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나아가 미래세대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올바른 역사를 정립해 나간다는 것은 한 나라의 운명과 관련해서 매우 중차대한 일이다.

 한국의 역사는 갖은 역경을 극복하며 산업화를 이룩하였으며, 그러한 바탕 위에 시민이 주체가 되어 민주화를 성취해 낸‘위대한 대한민국’건설의 역사이다. 국제사회는 세계사에 있어서 가장 단기간에 이루어낸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민주화에 대해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대한민국은 광복 이후, 줄곧 남북한이 첨예하게 대치해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140여개 신생독립국 가운데 경제발전 및 정치민주화 수준에서 가장 성공한 나라 중의 하나에 해당하며, 기존의 60여개 독립국가들과 겨루어도 손색이 없는 수준에 도달해 있다. 실제로 오늘날 대한민국은 경제강국(세계 10위권의 경제력 보유), 외교 강국(2011 G20 정상회의 및 2012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개최 등), 문화 강국(한류문화의 세계화), 스포츠 강국(런던 올림픽 5위 달성)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반면에 북한의 현대사는‘인민’을‘역사의 주인’이라고 아무리 강조하고 있다 하더라도 현실은 완전히 반대 양상을 보이고 있다. 북한은‘김일성 혁명전통’을 내세우며 김일성 중심의 왜곡·과장·날조된 역사를 써내려간 결과, 개인숭배 현상이 만연하게 되었고, 급기야‘김일성민족’이라고 강변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이는 결국 북한 현대사가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세습체제, 즉 현대판‘김 씨 왕조’를 정당화하는 역사로 전락되고 마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 같은 현상 속에서, 정작‘역사의 주인’이어야 할‘인민’은 굶주림과 폭압 밑에서 세계 최하위 수준의 인권 상황에 처해 있다. 어떻게 이 같은 북한의 현실을 두고 누가 감히‘역사의 보편성’을 존중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한마디로 대한민국 역사의 주인공이 일반 시민이라면, 북한의 경우는‘수령’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의 현대사가 시민사회의 성숙과 함께 진전돼 온‘성공한 역사’라면, 북한의 현대사는,‘역사의 보편성’을 결여한 채, 전체주의체제가 시민사회를 질식시켜버린‘실패한 역사’임이 자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대한민국에 대해 자본주의적 세계경제질서 속에서‘종속적 근대화’에 편승한 결과, 자주성을 상실한 신(新)식민지국가로 전락했다고 부각시키는 한편, 북한의‘우리식 사회주의’체제는 선군정치로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외세와의 대결에서 자주성을 실현하였다며 한반도에서 통일국가를 이룩하는 주체세력이라고 자처하고 있다. 북한이 끊임없이‘우리 민족끼리’,‘민족공조’를 내세우며 대남 선전선동과 통일전선전술에 매달리며‘전국적 범위에서의 민족해방 민주주의혁명’을 꾀하고 있는 것은 대한민국을 흡수통일 하겠다는 의도의 발로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북한과의‘역사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 국민 가운데 북한의 역사에 정통성을 부여하는 자들이 많아지는 만큼‘대한민국 정체성’은 침해받을 수밖에 없으며, 그만큼 우리의 내적 안보는 약화되게 마련이다.

 한편, 근년 들어 일본과 중국의 역사왜곡이 부쩍 심화돼 가고 있는 상황을 지켜볼 때, 지금처럼 한국사 교육이 푸대접받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필경 치열한 외세와의 역사전쟁에서 참담한 패배를 당하고 말 것이다. 아무리 정보화·세계화 시대라고 하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환경은 여전히 약육강식의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공간임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동북아지역은 여전히 냉전질서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신(新)냉전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현실주의적 국제정치이론을 중시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우리가 한국사를 균형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야를 넓혀 지정학적 관점에서 주변국과의 관계를 잘 이해해야 마땅하다.

 역사는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현재를 이해할 수 있는 열쇠를 제공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 국가의 역사는 곧 그 국민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근거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역사가 국가정체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한 “역사를 모르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라는 구호는 큰 의미를 갖게 마련이다. 역사교육이 강화되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