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균
한국방송작가협회 회원
현재 국군방송 라디오 작가

어린이들 세계에서는 또래보다 나이가 어리거나
몸이 아픈 약자를 경기와 놀이에
끼워주기 위한 ‘깍두기’라는 배려의
문화가 있다. 이에 국방, 군사, 정치, 경제 등의 분야에서
비전문가인 필자가 일종의 ‘깍두기’ 신분으로 다양한 이슈에
대한 소견을 국민들의 눈높이에서 피력해 보려 한다.

온몸이 오들오들 떨릴 정도로 추운 겨울에는 찜통 속의 찐빵들이 아늑하게 느껴진다. 뚜껑을 열었을 때 자욱한 김 사이로 자태가 드러나는 포동포동한 찐빵들이 먹음직스럽게 보이기보다는 마치 뜨끈뜨끈한 온돌방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는 것처럼 정겹고, 안락하게 보인다.

무더운 여름보다 코끝과 귓불이 시릴 정도로 추운 겨울에는 침대나 두꺼운 이불을깐 방바닥이 확실히 더 포근하다. 차갑게 식어버린 몸뚱이가 두툼한 이불 속으로 들어가면 어느새 온몸은 따뜻하게 데워지고,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진다. 창문 틈 사이로 산짐승의 울음 같은 바람 소리라도 들리면 이불 속은 더 아늑하게 느껴진다. 그 안에서는단잠이 스르르 몰려오고, 단꿈을 꾸게 된다 .

에디슨이 ‘잠은 인생의 사치’라고 말했지만, 그 말을 무시해버릴 정도로 겨울잠은 달고, 행복하다. 그래서일까. 겨울에는 취침나팔 소리마저 더 아늑하게 들린다. 일석점호가 끝난 뒤에 취침나팔 소리를 들으면서 침낭 속으로 들어가면 집 생각도 나고, 부모님얼굴도 떠오르곤 했다. 자대 생활이 아직은낯선 이등병 때는 그러다가 갑자기 울컥해서 눈가에 눈물이 고인 적도 여러 번 있었다.
 
단잠을 자며 뒤척이다가 깨서 아침 6시가다 된 줄 알았는데, 벽시계의 바늘이 새벽 3시를 향해 가고 있을 때, 그때의 행복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렇게 ‘순간의 착각’으로얻은 3시간은 다시 침낭 속으로 들어가면서잠결에도 미소를 짓게 될 정도로 흐뭇한 ‘덤’이었다. 그것은 재래시장에서 인심 좋은 상인에게 ‘덤’으로 받은 나물이나 멸치, 그리고단골 술집에서 ‘서비스’로 받은 안주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기분 좋은 선물이었다.

겨울잠이 포근한 만큼 아침에 일어나는것은 고역이다. 지금은 온기 가득한 이불속에서 나오기 싫어 몸을 웅크리거나 꼼지락거릴 때가 많지만 일, 이등병 때는 그럴 수가없었다. 기상나팔 소리가 들리면 그야말로용수철처럼 침낭 밖으로 튀어나가야 됐다.

서둘러 전투복을 입고 연병장으로 뛰어나가면 그곳은 마치 딴 세상처럼 느껴졌다. 아늑한 침낭 속과는 달리 그곳에서는 몸속의세포들까지 모두 얼려버릴 것처럼 매서운칼바람이 불고, 입김이 계속 새어나올 정도로 긴장감이 흘렀다.

일조점호가 끝나면 부대원들은 모두 윗옷을 벗고, 단체로 왕복 5km가 넘는 거리를 뛰기 시작했다. 그렇게 먼 거리를 달리면 땀이날만도 하건만 오히려 칼로 생살을 찢는 것처럼 가슴과 배가 쓰라릴 정도로 추웠다. 추위에 대들기라도 하듯 악에 받쳐 군가를 부르면서 뛰지만 몸은 더 차갑게 얼어버렸다.

반환점을 돌아서 다시 부대 연병장에 도착하면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을 정도로 마비돼 있었다. 그것 때문에 겨울철에는 아침이 밝아오면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침과 낮이 없고, 밤만 있는 세상을 바라곤 했다. 겨울밤과 아침은 그렇게 아늑함과 고통이 공존하는 시간이었다.

삶의 무게가 더해져서 그런지 몇 년 전부터 불면증이 생겼다. 그 증세 때문에 이제는겨울밤에도 단잠을 못 자고, 새벽 3시가 넘을때까지 몸을 이리저리 뒤척일 때가 많다. 그때 온갖 상념에 잠긴다. 그 시간에 일을 하고있을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하고, 막연한 앞날에 대한 불안감이 불쑥 덮쳐오기도 한다. 그렇게 겨울밤의 아늑함은 사라지고, 겨울 아침의 한숨만 더 짙어졌다.

그 밤에 코끝이 빨개진 상태로 칠흑 같은어둠 속에서 경계 근무를 서고 있는 과거 속의 내가 보인다. 발가락이 시린지 이따금씩까치발을 한다. 그리고 이 밤에 묵묵히 전방을 주시하고 있는 초병이 보인다. 긴긴 겨울밤에 그렇게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시간과 공간을 넘나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