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東馥
신아시아 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최근 한반도의 안과 밖에서는 분단 후 70년의 세월이 경과하고 있는 한반도 통일에 관한 논의에 활기(活氣)가 되살아나고 있는 느낌이다. 통일 담론(談論)을 대한민국의 박근혜(朴槿惠) 대통령이 주도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작년 1월 연두 기자회견에서 “통일 대박”론으로 통일 논의에 불을 댕긴 후 안으로는 대통령 직속으로 ‘통일준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밖으로는 한-미, 한-중 정상회담에서 통일 담론을 적극적으로 이어 가고 있다. 특히, 지난 9월2일 중국판 ‘전승절(戰勝節) 참가를 위해 방문한 베이징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취임 후 여섯 번째 한-중 정상회담을 가진 뒤 4일 귀국 길에 오른 박 대통령은 전용기(專用機) 안에서의 수행기자들과의 약식 회견에서 “앞으로 ‘평화통일’을 위하여 중국과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면서 “가능한 한 조속한 시일 안에 한반도 ‘평화통일’을 어떻게 이루어 나갈 것인가에 관하여 다양한 논의가 시작될 것”이라고 예고하여 듣는 이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분단된 한반도 통일 문제에 관해서는 기본적으로 인식되어야 할 사실이 있다. 그것은 한반도 통일이 70년 가까이 상호 적대적(敵對的)인 분단국으로 살아 온 2개의 상반된 체제 사이에 이루어지는 통일이라는 사실이다. 1945년의 해방 이후 1948년의 국가분단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한반도의 남과 북에서는 2개의 상반된 체제의 선택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남에서는 정치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경쟁과 개방 및 국제화를 추구하는 체제의 선택이 이루어진 반면 북에서는 정치적으로는 공산주의 일당독재, 경제적으로는 사회주의 계획경제 위에 구축된 명령과 폐쇄 및 고립화를 추구하는 체제의 선택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 같이 2개의 상반된 이질적(異質的) 체제를 선택한 남북 간에는 1950년대 초 ‘6·25 전쟁’이라는 참혹한 동족상잔(同族相殘)의 전쟁이 발생했고 이 전쟁이 ‘휴전(休戰)’의 형태로 봉합(縫合)된 뒤에는 ‘비전비화(非戰非和)’의불안정한 무장평화가 지속되는 가운데 체제의 우열(優劣)을 가리기 위한, 죽기 아니면 살기 식의 치열한 경쟁이 전개되어 왔다. 이 같은 ‘경쟁’의 결과가 오늘날 휴전선을 사이에 둔 한반도의 남과 북에 전개되어 있다. 체제 경쟁의 결과는 대한민국의 압승(壓勝)으로 마무리되어서 이제는 비교의 의미를 상실하고 있다. 오늘날 남북 간에는 40대 1의 ‘국민총소득’(GNI) 격차가 큰 입을 벌리고 있다.

대한민국은 오늘날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다. 대한민국의 경우, 2011년의 GNP가 1953년에 비해 219배로, 2011년의 개인당 소득이 1953년에 비해 336배로 성장해 있다. 해방 60주년이었던 2005년의 경제 지표에 의하면 대한민국의 경우 1945년에 비해 쌀 생산이 2.7배, 철강 생산이 59,400배, 자동차 생산이 50만배, 시멘트 생산이 6,037배 그리고 수출액이 9,200배로 늘어나 있다. 경제 지표만 따질 일이 아니다. 아직 산업화 후기의 갈등과 진통이 부분적으로 지속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대한민국 국민이 오늘날 향유하는 자유와 기본권 및 생활의 편의 등 생활의 질(質)은 모두 세계 10위권이다. 대한민국은 유엔개발계획(UNDP)이 관리하는 2015년도 ‘인간개발지수(HDI)’ 순위에서는 세계 15위, ‘프리덤하우스(Freedom House)’가 7개 등급으로 분류, 관리하는 시민의 민주주의적 권리 지수에서는 ‘정치적 권리’가 1등급, ‘시민의 자유’가 2등급으로 분류되어 있다.

반면, 국가분단 후 67년이 경과한 오늘의 시점에서 북한은 이미 낙오(落伍)의 정도를 지나 회생불능(回生不能)의 파산 상태에 있는 불량국가(不良國家)다. 북한의 경제는 이미 경쟁력을 상실한 산업설비들의 ‘가동률’이 여러 해째 30% 미만에 머물러 있고. 농업의 구조적 실패에 기인한 식량 부족 현상은 1994년부터 1996년 사이에 3백만명 이상의 아사자(餓死者)가 발생한 뒤에도 아직 해소되지 않아서 해마다 해외로부터의 식량 지원에 의존하고 있는 가운데, 경제난과 정치적 억압을 견디지 못하여 제3국으로 탈출한 수십만명의 탈북주민 중 3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대한민국에 도착하여 정착하고 있다. 또한 국제인권기관들은 15만명 이상의 북한주민들이 19개 이상의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는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국제적인 평가기관들은 ‘민주주의 지수’·‘언론자유 지수’·‘실패한 국가지수’·‘국가위험도 지수’ 등에서 북한을 세계 200여개 국가 중 최하의 등급으로 분류하고 있다.

한 마디로, 대한민국은 ‘성공한 체제’인 반면 북한은 ‘실패한 체제’이다. 따라서 한반도의 통일은 ‘성공한 체제’와 ‘실패한 체제’ 사이의 ‘통일’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여기서 우리는 우선적으로 한반도의 ‘통일’을 통하여 우리가 성취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생각해야 할 화두(話頭)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로 대한민국 국민들이 피와 땀으로 발전시켜서 대한민국을 오늘의 굴지(屈指)의 선진대국으로 도약시킨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질서와 가치가 통일된 나라에서 위축, 축소되거나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둘째로 북한 동포들이 북한 독재체제의 폭정과 질곡(桎梏)으로부터 해방되어 대한민국 국민들이 향유하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혜택을 공유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며, 마지막으로 ‘통일’ 국가의 달성을 통하여 통합되는 민족적 저력(底力)의 시너지 효과를 이끌어내어서 한민족의 경쟁력이 한층 더 제고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통일과 관련하여 우리가 짚어야 할 또 한 가지 문제가 있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경쟁력의 시대’라는 사실이다. 급격한 국경선의 붕괴와 지구촌으로의 통합이 진행되고 있는 오늘날 세계경제의 대표적 키워드는 ‘경쟁력’이다. 오늘날 세계경제를 주관하는 WTO 체제는 “경쟁력이 있으면 살아남고 경쟁력이 없으면 소멸(消滅)된다”는 이치에 입각하고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국가경쟁력이 세계 상위권인 반면 북한은 세계에서 바닥을 치고 있다. 전 세계 140개국을 대상으로 하는 ‘세계경제포럼(WEF)’의 ‘국가경쟁력 순위’에 의하면 2007년 세계 11위까지 도약(跳躍)했던 대한민국의 국가경쟁력이 2015년에는 26위로 평가되어 있는 반면 북한은 평가 대상에 포함되지도 못 하고 있다.

남의 ‘성공한 체제’와 북의 ‘실패한 체제’ 사이에 이루어지는 통일은 결국 세 가지 선택지(選擇肢) 중의 하나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첫째로, 북의 ‘실패한 체제’가 해체되어서 남의 ‘성공한 체제’로 편입(編入)되는 통일; 둘째로, 남의 ‘성공한 체제’가 해체되어서 북의 ‘실패한 체제’로 편입되는 통일, 그리고 셋째로 남북의 두 체제를 ‘절충’하여 이룩하는 혼합형(混合型) 통일의 어느 하나라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문제는 세 가지의 통일방식 가운데 어느 방식으로 통일이 성취되느냐에 따라서 한반도에 등장하는 통일국가의 ‘경쟁력’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첫 번째 방식으로 이루어진 통일은 “대한민국의 우수한 경쟁력을 북한 지역으로 이식(移植)하여 한반도 전역으로 확산(擴散)”시키는 ‘대박 통일’이 될 것이지만 두 번째 방식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통일국가는 “경쟁력이 없는 북한의 확대판”이 되는 ‘쪽박 통일’이 될 것이 틀림없다. 이와는 달리 세 번째의 방식인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공산주의 독재 체제 간의 혼합형 통일”은 인류 역사 상 전례가 없는 비현실적인 공리공론(空理空論)일 뿐 아니라 이 방식에 의한 통일이 이루어질 경우 “통일국가 진입이 허용되는 북한 체제의 부분은 통일국가의 경쟁력을 잠식(蠶食)”하게 되어서 결과적으로 통일국가의 ‘경쟁력’이 훼손(毁損)되게 되리라는 것이 자명하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볼 때, 지금 박근혜 대통령이 선도(先導)하고 있는 통일 담론에는 검증(檢證)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 박 대통령과 그의 정부가 역점(力點)을 두고 있는 ‘평화통일’ 일변도(一邊倒)의 통일 담론에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평화통일’은 ‘통일’의 ‘방법’론을 말하는 것일 뿐 ‘통일’의 ‘목적’, 즉 ‘내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평화’라는 ‘방법’을 절대화(絶對化)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합의통일’을 절대화하게 되고 그렇게 될 경우 이루어지는 ‘통일’은 내용적으로 ‘경쟁력’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 불가피해 지기 마련이다. ‘평화통일’의 유일한 방안인 ‘합의통일’은, 북한이 이미 ‘경쟁력’이 소멸된 현 공산독재 체제를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한, 필연적으로 남북 간의 ‘연방제’ 통일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는 것은 대한민국 헌법에 위배될뿐더러 ‘통일국가’의 ‘경쟁력’을 훼손하여 “하지 않느니만 못한 통일”로 이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빈사(瀕死)의 백조(白鳥)로 전락하고 있는 북한의 처지 때문에 통일의 전망이 점차 가시화(可視化)되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통일에 관하여 우리가 거듭 다짐해야 할 절대적 명제가 있다. 그것은 앞으로 이루어질 ‘통일국가’가 내용 면에서 “지금의 대한민국보다 좋아지거나, 그렇지 못할 경우에도, 못해지지는 않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통일’은 ‘통일’의 ‘내용’을 절대시(絶對視)하고 ‘방법’을 상대시(相對視)하는 것으로 현행 대한민국 헌법이 제4조에서 요구하고 있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이다.

이에 따라 박근혜 정부는 ‘대박 통일’의 실현을 위하여 두 가지의 과제를 수행할 필요가 있다. 첫째로는 ‘평화통일’을 절대화하는 것을 그만두고 우리가 달성하고자 하는 ‘통일’의 ‘내용’을 마련하는 것을 서둘러야 한다. 우리에게는 지금 ‘통일’의 ‘그림’이 없다. 국민적 대토론을 통하여 우리가 이룩하고자 하는 ‘통일’의 ‘청사진(靑寫眞)’을 마련하고 이에 관한 ‘국민적 합의’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로는, ‘대박 통일’의 대전제로서 북한의 민주화를 보다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우리가 참고할 ‘타산지석(他山之石)’이 있다. 1989년 말부터 1990년 봄까지 이미 내부 붕괴가 상당한 정도 진행되고 있던 동독(東獨)을 상대로 하여 먼저 “동독의 민주화”라는 ‘선행조건’을 관철시키고 이렇게 하여 ‘민주화’된 동독을 상대로 협상을 통하여 독일통일을 실현시킨 헬무트 콜(Helmut Kohl) 서독(西獨) 수상의 지혜로부터 교훈(敎訓)을 얻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한반도 신뢰조성 프로세스’를 추진하는데 필자는 이견(異見)이 없다. 그러나, 필자는 콜 서독 수상이 1989년11월28일 “유럽과 독일의 분열 상태를 극복하기 위한 10개 항목”을 동독에 제안하면서 이를 위한 ‘선행조건’으로 “동독의 민주화”를 요구하고 이를 관철시켰던 것처럼 박 대통령도 ‘한반도 신뢰조성 프로세스’ 추진의 ‘선행조건’으로 “북한의 민주화”를 요구하고 이를 관철해야 한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