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승 박사
본지 편집위원장
‘동북아교육문화진흥원’원장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초빙교수
seokseung333@hanmail.net

해마다 신년벽두에 북한은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김일성이 사망하기 전인 1994년까지는 김일성이 직접 신년사를 발표하였으나, 김정일이 집권한 이후부터는 ‘당보(로동신문) 군보(조선인민군) 청년보(청년전위) 공동명의의 사설’로 대체(代替)했었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후광(後光)을 업고 등장한 김정은은 김정일과는 달리 ‘신년공동사설’ 대신 ‘육성신년사’를 직접 발표함으로써김가정권의 제3대 절대권력세습자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특히 금년의 경우 신년벽두인 지난 1월 1일 오후 12시 30분 예년의검은 색 인민복과는 달리 짙은 남색의 양복차림으로 나타나 “조선인민에게 뜨거운 인사를 보낸다”고 말한 뒤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면서 약 28분간 육성으로 신년사를 낭독했는데, TV로 방송된 이신년사에는 자신의 치적(治積)과 관련된 총 210장의 사진도 함께선보였다.

이런 가운데 그나마 특이한 것을 꼽아본다면, 우선 ‘수령(首領)의 무오류성’을 벗어나 “늘 마음뿐이었고 능력이 따라서지 못하는안타까움과 자책속에 지난 한해를 보냈다”고 스스로의 능력부족을 자인(自認)한 점이다. 이는 자신이 수행한 여러 정책과 관련한실적부진에 대한 비난을 사전에 회피하고자 하는, 배수지진(背水之陣) 차원의 언급이자 이를 계기로 ‘인민중시’를 자신의 브랜드로만들어 대중적 지지기반을 도모하려는 저의를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지난 해까지만 해도 핵관련 언급을 자제하였었지만, 이번에는 “내 놓고” 핵무력 강화를 강조한 점이라 하겠다.

즉 지난 해 2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핵실험이 성공하였다는 점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도 완성단계에 들어섰다는 점을 강조하는 가운데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의 핵위협과 공갈이 계속되는 한, 그리고 우리의 문전앞에서 년례적이라는 감투를 쓴 전쟁연습책동을걷어치우지 않는 한 핵무력을 중추로 하는 자위적 국방력과 선제공격능력을 계속 강화해나갈 것임”을 강조함으로써 핵 및 미사일도발가능성을 예고하였다.

김정은은 이 신년사에서 지난 2016년을 “당과 조국의 역사에서 특기할 혁명적 경사의해, 위대한 전환의 해”라 평가하는 가운데 주요 성과로 “동방의 핵강국,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마감단계 진입, 분야별 70일및 200일전투 성과, 함북수해복구의의 기적적승리”등을 언급하였다.

이와 함께 새롭게 맞이한 2017년의 의미를“당 7차대회 결정관철에의 획기적 전진”으로규정하면서 “자력자강의 위대한 동력으로 사회주의의 승리적 전진을 다그치자”는 투쟁적인 구호를 제시하였다.

이런 김정은의 모습과 언급은 내외언론들에게 있어 ‘북한의 변화’를 알리는 소재로 비쳐지지만, “겉 다르고 속 다른 북한체제의 특성”을 잘 알고 있는 전문가들에게 있어서는 “그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상투적인 면모”만을 내비치는 것으로 투영되고 있기 때문에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기가 어렵다.

그도 그럴 것이 김정은이 육성 신년사를통해 나름대로 평가하고 밝힌 ‘사실’ 거의 전부가 현실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구호나 선전차원의 분식(粉飾)된 것에 불과하고, 특히인민들의 실생활과는 너무나도 판이한 “별세계(別世界)의 조작된 것”에 다름 아니기때문이다.

우선 2016년의 상황을 살펴보면, 김정은의자화자찬(自畵自讚)적인 평가와는 정반대로인민들의 경우 “70일전투와 이어진 200일전투” 때문에 가뜩이나 휜 허리가 더욱 휘어졌으며, 이마에도 짙은 주름이 패인, 그런 열악한형편에서 단 한 순간도 벗어날 수 없었으나, 김정은을 비롯한 “한 줌도 채 되지 않는 특권세력들”은 호화방탕한 생활을 함으로써 극명한대조를 이루었다.

특히 김정은은 이들에게 줄 선물을 구입하기 위해 무려 5억달러가 넘는 외화를 탕진하였으며, 근 30회에 달하는 핵실험과 중장거리미사일 발사를 위해 3억달러를 투입하였으며,여기에 더하여 김가일족의 동상건립 등 우상화물 제작에 근 2억달러를 쏟아붓는 반인민적 우상화놀음에 광분하였다.

그런가 하면 김정은은 인민들의 피와 땀을 짜내기 위한 각종 노력동원을 강요하는 가운데 “2인자는 없다”는 경고메시지를 전파하기위해 ‘고위급 인물’ 수십명을 이른바 ‘속죄 양(Scape Goat)’ 식으로 처형하기도 하였다.

이밖에도 김정은은 “있지도 않은 외부의 위협”을 구실로 잇따른 핵실험과 중장거리 미사일 발사, 대남도발 및 위협, 국제 무법(無法)과저질외교 구사, 주민 인권유린, 해외파견 노동자들의 임금착취 등을 통해 무소불위(無所不爲)의 절대권력을 휘둘렀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민생(民生)을 철저하게외면한 김정은정권의 반인민적 우상화, 공포정치의 결과로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는 북한을 “지구상 최악의 인권탄압국, 현대판노예국가, 기아(飢餓)가 해결되지 않는 영양실조국, 최악의 종교탄압국, 언론탄압국 등”으로 낙인하는 가운데 김정은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소하기에 이르고 있다.

한편 금년 신년사에서는 우리의 정치상황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던 전례(前例)를깨고 ‘탄핵, 촛불정국’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도 하였다.

즉 “지난 해의 남조선내 전민항쟁은 보수당국에 대한 쌓이고 쌓인 원한과 분노의 폭발”이라고 단언하는 가운데 “박○○와 같은 반통일사대매국세력의 준동을 분쇄하기 위한 전민족적인 투쟁을 힘있게 벌여야 한다”고 역설하는등 박대통령의 실명을 직접 거명함으로써 ‘전한반도의 공산화혁명’ 달성을 위한 적화야욕을 명명백백하게 드러냈다.

이밖에도 미국에 대해서는 “시대착오적인대조선 적대시정책을 철회해야 한다”고 원론수준의 기존주장을 반복하였지만, 트럼프행정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점, 그리고 핵-경제병진정책을 지속할 뜻을 분명히 하면서도경제분야와 관련하여서는 구체적인 계획이나방법은 제시하지 않은 채 ‘수박 겉핧기 식’으로 넘어 간 점 등을 지적할 수 있겠다.

이런 신년사의 발표 이후 북한당국은 예전과 똑같이 인민들에게 신년사의 전체내용을암기(暗記)하게 하는 학습이나 경연대회를 지속적으로 여는 가운데 올해에도 변함없이 조선중앙통신(KCNA)을 비롯한 로동신문, 민조조선 등 관영매체를 총동원하여 “신년사에서제시된 전투적 과업을 높이 받들고 새해 행군길에 떨쳐나서자”고 역설하면서 인민들을 들볶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국가과학원, 사민당, 전력공업성 국장 등의 반향(反響)을 통해 “이번 신년사야 말로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수행에 총력을 집중할 의지를 피력한 것이자 자주통일의 새국면을 열어놓은 것이며,국가적인 통합관리체계를 철저히 구성하고 실속있게 운영해 나갈 좌표를 제시한 것”이라 극찬하였다.

이런 가운데 신년사에서 제시된 과업을 관철하기 위한 평양시군중대회를 필두로 하여각급 시와 도는 물론이고 청년전위와 여맹, 농근맹 등 각급 단체, 기관이나 기업소, 공장, 협동농장 등에서 군중대회를 잇따라 열도록 강요하였다.

특히 평양에서 열린 신년사 과업관철을 위한 당-국가-경제기관-무력부문 일꾼연석회의(1.7~8)에서는 “모든 일꾼들이 시대와 혁명앞에 지닌 사명과 임무를 깊이 자각하고 자기의 역할과 책임을 다해 나감으로써 당의 구상과 의도를 관철하기 위한 투쟁에 한몸을 촛불처럼 불태워야 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 때문에 지금 대부분의 인민들은 가뜩이나 어려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가운데서도 이렇듯 반강제제적으로 동원되어야 하는 각급 군중대회나 궐기모임에 참가하느라신년벽두부터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인민들속에서는 어떻게 이런정권이 “인민을 위해 일하고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정권인가, 이것이 우리식 사회주의인가”하는 자조(自嘲) 섞인 불평불만이 하늘을 찌를듯 높아만 가고 있다.

더욱이 인텔리층에서는 김정은이 매우 이례적으로 눈물을 글썽이면서 자신의 능력부족을내세운 점에 대해 또다시 인민들을 속이고 기만하는 것에 대해 일종의 배신감과 분노감까지 가질 정도로 공분(公憤)하고 있다.

결국 이런 인민들의 불평과 불만, 배신감과분노감이 계속 쌓이게 된다면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에게 죽기살기로 덤벼든다”는 말처럼 북한정권의 앞날도 그리 길게 가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바로 이런 점을 감안해 볼 때, 북한당국은“인민들이 무엇을 원하는가, 그리고 인민들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하는 진지한 반성과 자책이 정말 필요한 때라고 보여진다.

이와 함께 김정은은 지금부터라도 시대착오적이고 안하무인적인 반인민적 행태를 버려야 할 것이다. 만약 김정은이 이런 구태(舊態)를 벗어던지지 않고 지금처럼 “공포정치 등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뛴다면, 그에게 차례질것이란 저 루마니아의 ‘차우세스쿠’나 유고의‘밀로세비치’, 리비아의 ‘카다피’ 등 독재자와같은 비참한 말로를 그대로 답습할 것으로 보인다.

더 늦기 전에 제 정신을 차리는 것, 이것만이김정은에게 주어진 2017년도의 최대 화두(話頭)라 보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