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사무라이의 세이난 전투
다산승 소산불승(多算勝 少算不勝) ― 『손자(孫子) 시계 제1편』


노병천
(예)육군대령, 리더십박사
전 나사렛대학교 부총장
한국전략리더십연구원 원장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를 기억하는가? 2003년에 개봉했던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다. 신식군대의 총포 앞에 추풍낙엽처럼 스러져가는 사무라이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사람이 어떤 지독한 고집에 빠지면 죽을 때라도 그 고집을 놓지 못할 때가 있다. 모든 싸움은 승산을 따져보고 해야 한다.

패배할 것이 명백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고집을 지키기 위해서 싸움에 임한다면 그야말로 어리석음의 극치일 것이다. 물론 지조 있는 사람, 남자다움 등의 미사여구로 포장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그를 따랐던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은 어떻게 보상할 수 있겠는가. 이는 회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오너의 되도 않은 똥고집 때문에 사원들이 모두 힘들어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모름지기 모든 경쟁은 승산을 잘 따져야 하고, 반드시 이길 수 있다고 확신이 설 때 그때 싸우러 나가는 것이다.

세이난 전쟁(西南戰爭)은 메이지유신 초기인 1877년 9월 24일에 일어났다. 그 배경을 보면 이렇다. 반란을 도모한 주모자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메이지 유신의 일등공신 사이고 다카모리였다. 육군대장이었던 그는 임진왜란 이후에 또다시 고개를 든 조선침략과 사족의 특권보호를 주장하는 무리의 지도자였다. 1873년 정한론(征韓論)에서 패배한 그는 정계를 떠나 규슈 서남단 가고시마에 사학교(私學校)를 설립했다. 그는 그곳을 발판 삼아 세력을 넓히면서 메이지 신정부의 사무라이 해체정책에 불만을 품고 있던 전국의 사족 층 사이에 절대적인 명성을 얻고 있었다. 당시 가고시마의 현령 오야마 쓰나요시가 사이고를 지지했기 때문에 가고시마는 반정부운동의 최대 거점이 되었다.
신정부 측에서 사이고에게 여러 차례 회유를 시도했지만 끝까지 듣지를 않았다. 이대로 놔두었다가는 나라에 큰 문제가 생길 것으로 우려한 신정부는 1877년 4월 이들을 토벌하기 위기 위해 군대를 투입했다. 이 전투가 세이난 전쟁의 전초전 성격인 다바루자카 전투였다.
압도적인 병력으로 인해 사이고는 패하여 본거지인 가고시마로 몸을 피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마지막 반란의 뿌리를 뽑기 위해 정부군은 총공격을 감행 했다. 바로 세이난 전쟁이다. 사이고의 오랜 친구인 야마가타 아리토모가 육군 대장이 되어 토벌군 총사령관으로서 정부군을 지휘했다. 정부군은 무려 5만 군대와 군함 11척을 동원해서 이들을 완전히 섬멸하고자 했다. 사이고 측은 불과 사무라이 372명. 4만 명이 거병한 지 7개월 만에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무라이였다.
정부군은 하루에 평균 탄약 32만 2천발, 포탄 1천여 발을 퍼부었다. 결국 이 전쟁은 현대식 무기와 막강한 화력을 가졌던 정부군의 승리로 돌아갔고, 사이고 다카모리는 치명상을 입고 자결하게 된다. 정부 측에서는 이들 마지막 사무라이를 패배시키자 두 번 다시 지방의 반란이나 사무라이의 위협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 대단한 사이고도 성공할 수 없었다면 아무도 또다시 나서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사이고는 죽었지만 그는 일본인들에게 있어 이야기나 드라마에서 널리 사랑받는 주제인 ‘의리와 인정’의 갈등을 보여주는 전설적인 주인공이 된다.
손자병법 시계(始計) 제1시계편에 보면 “승산이 많으면 이기고 승산이 적으면 패배한다.”(多算勝, 少算不勝)는 말이 있다. 승산을 잘 따져야 한다. 승산이 있을 때 싸우는 것이다. 뻔한 패배를 예측하면서 부하들을 죽음으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 사이고는 그를 따르는 무리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분명히 승산 없는 전쟁이었다. 가장 무책임하고 어리석은 리더는 승산이 없는 데도 무모하게 전쟁으로 몰아넣는 리더다. 승산이 없다면 하지 말아야 한다. 혹시 자신의 고집 때문에 부하직원들이 고생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할 것이다.
多算勝 少算不勝
다산승 소산불승
승산이 많으면 이기고 승산이 적으면
패배한다.

대책 없이 무모한 정신주의는 위험하다. 신식무기로 무장된 정부군에 대항해서 칼로 싸운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와 같다. 오직 정신력으로 싸운다는 것인데 그것도 어느 정도다. 전쟁의 승패는 정신력뿐만 아니라 무기체계도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잘 알아야 한다. 일본군의 정신주의는 태평양전쟁의 패전이 임박했던 1945년 5월에도 잘 나타난다. 일본의 전쟁 지도자들은 실질적인 군사력 강화를 위한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못하고 그저 정신주의만 강조했다. 당시 참모총장이었던 우메즈 대장은 전시대책회의에서 이렇게 소리를 쳤다. “특히 형이상학적으로 결전기백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는 왕성한 공격정신의 견지로 이루어진다.” 일본은 경제력과 군사력에서 미군보다 절대적으로 열세하기 때문에 오직 맹훈련과 정신주의를 통해서 그런 약점을 보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무기체계의 개선이나 증강 없이 지나친 정신주의나 가혹한 훈련으로만 보충하려는 생각은 위험하다.
결국 이는 참담한 패배의 중요한 원인이 된다. 회사에서도 이 점은 적용된다. 열심히 일하라고 몰아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능률적으로 일할 수 있는 좋은 기계와 설비를 갖추어주어야 한다. 복사기도 없이 손으로 일일이 베껴 쓰게 하면 능률이 오르겠는가? 리더는 시대의 흐름을 잘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사이고는 세상의 흐름을 잘 읽지 못했다. 아니 읽었다 하더라도 자신의 고집된 신념 때문에 그것을 거부했고 그 때문에 그 자신은 물론 자신을 따르는 부하들도 파멸로 몰아넣었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현명한 리더는 변하는 세상의 흐름을 빨리 인식하고 그에 맞도록 적응해나가는 리더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정글에서 30년을 홀로 지냈던 일본군 장교 오노다 히로오의 얘기가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방영되었다. 제목은 『최후의 황군, 오노다 히로오』다. 오노다는 50명 이상의 섬 주민들을 학살하고도 자신은 올바른 일을 했다고 떳떳하게 지껄였다. 이 얘기는 『에뜨랑제의 태평양 전쟁사 자료실』에 보면 잘 나와 있다. 일본군 퇴역 소위 오노다 히로오는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서 패전한 이후로부터 1974년까지 무려 29년 동안 필리핀 마닐라 근처 작은 섬 루뱅에서 숨어 지냈다. 발견 당시 그의 나이는 52세였다.
전쟁에 살아서 돌아오지는 못할 것이라며 체념하며 250명의 병사를 지휘하는 지휘관으로 루뱅 섬으로 파견되었다. 그러나 부임하자마자 미군의 공격으로 207명이 죽고 43명이 남았다. 이때부터 전쟁이고 뭐고 오직 살기 위해 숨어 지내기 시작했다. “1945년 8월 15일에 전쟁이 끝났으니 일본군은 투항하라!”는 전단을 처음으로 보게 되었는데 이때가 1945년 10월이었다. 그러나 오노다는 미군의 속임수로 여겨 투항을 거절했다.

두 달이 지난 12월에도 같은 내용의 전단을 발견했는데 이 때 43명중 대부분이 투항하여 일본으로 돌아갔고 오노다를 비롯한 4명만이 투항을 거절했다.
이듬해인 1946년 4월에는 투항했던 부하들이 섬 전체를 다니며 “오노다, 어디 있나? 나와라. 전쟁이 끝났다. 어서 나와라 하루라도 빨리 일본으로 돌아가자!”고 부르짖으며 찾아다녔다. 그러나 오노다는 이것도 미군의 속임수라 생각하고 거절했다. 이번에는 오노다의 가족이 가족사진과 가족들이 보낸 편지 전단을 뿌리면서 돌아오라고 부르짖었다. 오노다는 이것도 가족들이 살기 위해 당국에 협조하는 것으로 알고 거부했다.
오노다는 이러한 도피행각을 벌이면서 루뱅 섬 원주민들을 수없이 죽이며 심지어는 원주민 가옥 전체를 불 질러 몽땅 태우는가하면 원주민들을 토막 살해하기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오노다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 털끝만치도 반성은커녕 “그들이 거기 있는 게 불행이었다.”고 말했다. 그 후 해마다 각계각층에서 그를 찾았지만 허사였다.

1965년에는 마을사람으로부터 라디오를 약탈하여 패전을 비롯한 모든 뉴스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돌아오기를 거절했다. 가족들과 고등학교 동창생들까지 동원되어 오노다 구출대책본부를 설치하고 심지어 학교 교가를 울먹이면서 부르며 “오노다, 일본에서 형님, 누나가 오셨습니다.
우리 앞에 모습을 나타내 주십시오!”했지만 끝내 거절했다. 그 후 16개월 동안 종적을 감춘 뒤 어처구니없게도 옛 상관이 전해준 “패전했으니 귀국하라!”는 특별 명령서를 받고서야 투항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는가라고 생각하겠지만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이럴 수가 있다. 남의 얘기만은 아니다. 모두가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면 바로 이런 형편없는 사람이 된다. 승산 판단도 세상 돌아가는 형편을 잘 살피며 하는 것이다.
세상 돌아가는 형편을 두루 잘 살피고 시대에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多 算 勝
많을 다 셀 산 이길 승
少 算 不 勝
적을 소 셀 산 아닐 불 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