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띵동 띵동'
"누구지? 누구세요?"
"나야 경숙아, 재숙이"
어서와 우린 안방으로 들어가 앉았다.
"재숙아 이게 뭐니?"
"떡이야. 찹쌀떡 아르바이트 삼아서 팔려고 잔뜩 받아다 놨는데 생각처럼 팔리지 않네. 겨울이긴 해도 시간이 흐를수록 변할텐데 아무튼 일단 먹어라."
"이 도시락 한 개에 담아 1000원이면 너무 비싸다 그래서 안 팔리는 것 아니니?"
"가게에서 파는 떡과는 질적으로 달라 비싼게 아니라구."
"내가 요새 학원에서 영어 과목을 수강하는데 그 담당 선생님이 한 고아원을 후원하고 있다고 하더라. 그 고아원에 보내는게 어떻겠니?"
"그거 좋은 생각이다. 보람도 있을 것 같고."
"이것으로 부족할테니깐 더 보태서 보내자"

이렇게 즉흥적으로 시작된 우리 둘의 행동은 결국 좀더 이 일을 진전시켜 보자는 의욕으로 발전되어 친구를 모아 보기로 했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운 무렵이었기에 가능 한한 1대1로 고아원 원아들에게 카드를 보내자는 생각으로 우린 서로 바쁘게 전화도 돌리고 만나기도 했다.

10여명이 족히 넘는 친구들이 불광동 한 찻집에 자리 좁혀 모인 우리는 단 한가지 - 이 추운 겨울 우리의 사랑을 어딘 가에 표현할 수 있다. - 희망으로 마음이 맞았다. 회원들은 고교 동창이거나 교회 친구들이었다. 몇번의 준비 모임이 초대 회장 류희민의 주선 아래 이뤄져 결국 84년 3월 1일 각 회원들의 대학 입학이나 개강에 앞서서 고아원 아이들과 상면하는 모임을 갖기로 의견 일치가 이뤄졌다. 우리 쌀도 모으고 용돈도 모아 떡도 하고 과자, 과일 등을 사서 그럴듯하게 차려 놓았다. 회원 중 한 사람의 누나가 고아원 가까운 곳에서 유치원을 경영하고 있어서 그 곳을 장소로 정했다. 그날 우린 노래와 오락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이후 회원들은 각자 몇명의 원아들과 별도 모임을 갖기도 하면서 그들과 관계를 유지시켜 나갔다.

그러나 5월말 경의 모임에서 우린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게 되었다. 그 근본 이유는 현재 활동의 대상인 고아원 아이들은 우리가 상대하기에 너무 힘이 부차다는 것이었다. 영아원(0-6세)과는 달리 아원은 초, 중, 고생들로 구성되어 제법 의식이 굳어져 가고 있는 상태 라서 우리의 의도대로 순조로이 따라와 주지만은 않았다. 그들은 우리의 지속 여부를 반신반의하며 경계심과 거리감을 갖고 대해 왔다. 따라서 아직 활동이 미숙한 단계인 우린 혼란을 겪었다. 오만(?)한 마음이 있어서였는지 우린 그들이 무조건 우리에게 감사하고 반겨 주리라 예상했었다. 아무튼 사실이 그렇다 하더라도 분명 우리의 관심을 꾸준히 보여 주었더라면 그들의 닫혀진 마음이 열리 않았을까(?) 어쩜 우린 그 과정에서 요구되는 시간과 일방적으로 쏟아야 하는 사랑이란 졍서가 왠지 부담스럽고 그 이후의 계속적인 인간 관계가 두려워서 외면하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아이들과 사랑을 나누고 싶다는 순수한 열정에서 시작된 우리의 모임은 결국 초반부터 길을 바꿔 좀더 쉬운 길(아니! 이후에 활동이 다시금 고아원 상대로 되돌아간 걸 보면 훈련의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을 선택해서 활동하기로 84년 6월 2일 최종 합의를 회원들은 보았다. 그래서 결정된 활동 공간이 녹원 영아원(불괄동 소재)이었다. 영아원 뜰에 처음 들어서서 우리의 시선은 저 건너편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돌려졌다. 고사리 같은 손을 흔들며 우릴 반기고 있었다. 가슴 두근거리는 감동이었다. 내가 어디서 저런 환영을 받아 봐?

이런 감동도 잠시 우린 활동의 시작에 앞서 영아원에서 근무하는 보모인 백합방 선생님 한분을 만났다. 백합 언니라 불리우는 그 분의 얘기에 의하면 이 아이들은 길 잃어 여기 온 미아들이 아니라 (이 경우 거의 100% 경찰서 연락망으로 찾을 수 있기 때문에) 부모에 의해서 버려지거나 부모가 양육할 능력이나 상황(즉 경제력이 없거나 혹은 교도소 수감중)이 안돼 맡겨진 아이들이란 것이었다. 우리는 '버려진 아이'란 말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또한 부모가 찾아와 데려갈 때 가장 기쁘고, 멀리 국외 입양 보내질 때 걱정과 마음 아픔이 크다는 얘기도 덧붙여 해 주었다. '입양'이란 말이 사실적으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우린 조금 후 그들의 생활 장으로 발을 옮겼다. 서로들 우리 회원 손에 혹은 품에 안기려고 서로 밀고 당기는 그들의 몸싸움과 다투는 소리를 들으며 이건 환영의 반가운 몸짓, 노래소리가 아니라 사람의 손길을 그리워하는 애절한 작은 절규한 느낌이 들었다.

첫날. 그들의 손을 놓고 돌아서며 그들의 눈동자에 약속을 했다. 꼭 올께 너희들의 마음을 배신치 않고 꼭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