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부하다는 건 알지만 정말로 지실 마지막 활동이라는 말이 먼저 나오네요. 아마도 이번 학기를 끝내고 당분간 복무를 하면서 지실 활동을 못해서인지 더 신경이 쓰이네요.
저번에 지실 마지막 수업에서 관호랑 동현이 사이에서 트러블이 있어서 좀 불편하게 끝났는데 이번에는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으면 좋겠다-하는 심정으로 원으로 갔어요.
하지만 이번에는 시작부터 삐걱거렸어요. 관호는 나가는 거에 크게 거부감도 없고, 농구하면서 기다리겠다고 먼저 나갈 정도였는데 반대로 동현이는 가고 싶지 않다고 강한 거부감을 보이더라고요.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따라가기는 하겠다, 하는 태도였는데 패딩을 안입고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더라고요.
그날이 정말로, 진짜 역대급으로 추운 날이라 외투 없이 나갔다가는 감기는 무조건 걸리고 큰일 나겠구나 하는 생각에 무조건 외투 입어야된다고 하니 패딩이 없다면서 그냥 이대로 가자는 동현이와 결국 실랑이를 벌였어요.
저는 외투 없이는 못간다고 했고, 동현이는 자기는 패딩 없고, 빌릴 사람도 없으니 이대로 외투없이 가거나, 아니면 안가겠다는 주장이었어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동현이가 패딩이 있다는 거에요. 그래서 이모님께까지 찾아가서 외투가 필요하다 했는데, 동현이 패딩이 새파란 색이더라고요. 디자인도 약간 유행이 지난 디자인이라 동현이는 그 패딩이 마음에 안들었나봐요.
이모님이 패딩을 입혀서 보내긴 했는데, 얼굴 가득 짜증과 불만이 가득하고 싫어하는 게 눈에 보여서 이모님과 얘기를 나누고 동현이가 원하는대로 원에서 쉬기로 하고 관호만 데리고 출발했어요.
관호와 함께 출발했는데 재만이형과 예준이 팀이랑 같이 가기로 됐어요. 하필 그 때가 T머니가 안읽혀서 현금으로 다니고 있던 때라서 환승을 못하니 청량리역에서 걸어 시립대까지 가게 됐어요.
원래 재만이형이 생각하셨던 가게가 문을 닫는 바람에 시립대 앞에 있는 봄솔레씨네에서 점심을 먹었어요. 식사를 하고 나서는 간단하게 학교를 돌아보고, 남은 시간 동안에는 당구를 쳤어요.
당구는 선생팀, 아동팀으로 팀을 짰는데 처음에는 저희팀 쪽으로 승세가 많이 기울었는데 선생님들이 나이도 많은데 같은 점수를 해서 되냐는 아이들의 요구에 따라 점수를 늘리기로 했어요. 저는 되게 지는 걸 싫어해서 그냥 우리가 이기고 다시 경기하면 되는 거 아닌가 생각했는데, 재만이형이 슬쩍 애들이 이기는 게 낫다고 말씀을 해주더라고요.
재만이형이 역시 생각이 깊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아이들 말을 수용해가며 당구를 쳤는데, 결국 저희가 지고 말았어요. 사실 실력에서도 밀린 거 같은데, 관호가 잘 치더라고요...두번째인가 세번째인가 라는데 진짜 재능이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예준이도 처음에는 못하다가 나중엔 감을 잡았는지 잘쳐서, 봐주고 뭐고 할 것도 없더라고요ㅠㅠ
그렇게 아이들을 원으로 돌려보내고 대학탐방을 끝냈는데, 집에 돌아와보니 자책감이 많이 들었어요. 동현이를 달래서 와야 했는게 아닐까, 동현이가 좀 부끄러워하고 싫어한다고, 동현이가 원하는대로 해준다는 게 사실 그냥 내가 편하자고 한 게 아닌가. 마지막 활동을 잘 끝내고 싶다고 힘든 길을 피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들어서 뒷맛이 씁쓸한 마무리였어요. 복무를 마치고 지실로 돌아온다면, 그 때는 보다 생각 깊은 사람이 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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