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귀근
연합뉴스 국방부 출입기자
threek@yna.co.kr

정부와 군이 9월 24일 열린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서‘F-15SE 차기전투기(F-X) 기종 선정안’을 부결한 것은 이미 예고된 참사였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방위사업청은 F-X 3차 사업의 총사업비를 8조 3천억원으로 묶어 놓고사업을 시작했다. 사업 초기부터 이런 규모의 총사업비로 60대의 스텔스급고성능 전투기를 구매할 수 있겠느냐는 논란이 계속됐지만 방사청은 총사업비 외에‘한푼’도 초과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방사청은 미국 록히드마틴(F-35A)과 보잉(F-15SE),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EADS. 유로파이터) 등 3개 업체가 총사업비가 8조 3천억원이라는 사실을 충분하게 인지하고 수주전에 뛰어들었기 때문에 뒤늦게 사업비를 조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집했다.

업체들이 8조 3천억원에 60대를 팔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수주전에 뛰어든 이상 그 가격을 변동할 수 없다는 것이 방사청의 설명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입찰 마감 결과 방사청의 이런 기대는 깨졌다.미국 공군성을 대리해 입찰에 참여했던 록히드마틴은 총사업비보다20~25%를 초과한 금액을 투찰한 것으로 알려졌고, 유로파이터 측도 막판에 판매 대수를 줄여 결과적으로 총사업비를 초과한 것으로 해석돼 탈락했다. 보잉측만 총사업비에 훨씬 못 미치는 금액을 제시해 단독후보로 압축됐다.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진 F-X 3차 사업
한국 정부가 제시한 총사업비 규모를 충분하게 인지하고도 마지막 입찰 때까지‘꼼수’를 부린 업체들이 잘못도 크지만 결과적으로 이번 F-X 3차 사업은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졌다.
국방부는 지난 2009년 F-X사업 예산으로 9조 7천억원을 할당했지만 2년 뒤인 2011년에는 8조 3천억원으로 변경했다. 한국국방연구원(KIDA)의 평가 결과를 반영해 1조 4천억원을 깎은 것이다. 당시에도 F-35 전투기 1대 가격을 놓고 평가가 엇갈렸다. 1천 500억원이 넘는다는 얘기가 파다했고 결국 KIDA가 예측을 잘못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당시 KIDA는 F-X사업 참여가 예상됐던 3개 업체들로부터 전투기 예산 추정치를 제출받은 뒤 그 평균치와 협상을 통한 가격 하락 가능성 등을 종합해 8조 3천억원을 산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국회 국방위 전문위원실은 2011년 1조 8천억원 가량이 부족할 것이라고 지적했지만 방사청은 KIDA의 분석 결과를 토대로 총사업비를 8조 3천억원으로 확정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F-X 사업이 이런 논란 끝에 재추진의 길을 택한 것은 방사청의 책임이 무엇보다 크다. 건국이래 최대 규모라는 큰 사업을 처음부터 너무 조급하게 추진하다보니 결국 몇 차례에 걸쳐 기종 선정 시한을 연기하는 사태가 빚어지고 기종 선정에 대한 논란만 키웠다.
당초 이 사업은 방사청이 지난해 1월 20일 사업공고를 내고 그해 10월에 기종을 선정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이미 졸속 추진을 예고했다. 1999년 시작한 1차 F-X 사업이 사업설명회부터 기종선정까지 2년 10개월 걸렸던 것과 비교하면 이번 F-X 사업이 얼마나 서둘러 추진됐는지 알 수 있다.
방사청은 지난 6월 18일 1차 가격 입찰을 시작으로 7월 5일까지 55회에 걸쳐 입찰을 하며 가격 인하를 유도했지만 어느 업체도 총사업비 내의 가격을 제시하지 않았다. 이에 당혹한 방사청은 부랴부랴 기획재정부에 예산 증액을 요청했지만 그 사이에 정부의 예산관리지침이 개정되어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사업을 원점으로 되돌려야만 예산 증액도 가능해진다는 것이 기획재정부의 답변이었다.
방사청과 국방부가 정부의 예산지침 변경 사실까지 까맣게 모르고 예산 증액을 타진하는‘망신살’을 뻗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방사청의 태도 또한 안일했다는 지적이다. 방사청은 기획재정부에 예산 증액을 요청하면서 이용걸 청장이 직접 나서지 않고 실무자를 보내는 등 안이하게 대처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방사청은 법규에 의해 정해진 절차대로 F-X 사업을 진행했다는 입장이지만 방추위 의결을 앞두고 국방부와 내부적으로 상당한 마찰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군의 한 관계자는“방사청은 국가재정법과 방위사업관리규정 등에 의해 사업이 공고된 무기구매사업에 대해서는 총사업비를 초과하는 예산 증액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집했다”면서“그러나 국방부는 법과 규정을 원리원칙대로 적용하지 말고 유권해석을 해서라도 20% 내외의 예산을 증액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전했다.
국방부가 이용대 전력자원관리실장을 테스크포스(TF)장으로 임명해 F-X사업 재추진 방식을 진두지휘키로 한 것도 방사청의 사업관리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이번 3차 F-X사업에 관여한 방사청의 고위관리와 실무자들을 재추진 과정에서는 배제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우리 정부는 F-X 1차 사업 때도 종합평가 1위였던 프랑스 라팔을 배제하고 F-15K를 선택한 데 이어 이번에도 1위인 F-35A를 배제해 국제 방산시장에서의 신인도를 떨어뜨렸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노후 전투기 도태로 전력 공백 우려
합참과 공군은 F-X사업 재추진 결정에 따라 이른 시일 내에 F-X 기종의 작전요구성능(ROC), 가격 등에 대한 사업 방식을 다시 수립해야 한다.



앞으로 사업절차는 공군과 합참에서 이미 제시된 전투기 소요 대수(60대)를 일부 수정하는 작업을 하고, 그에 따라 선행연구 및 사업 타당성 조사를 병행하게 된다. 이어 사업추진기본전략을 재수립→입찰공고→희망업체에 제안요청서 배부 등의 절차로 진행된다.
국방부는 이런 절차를 다시 거치는 데 1년 남짓 걸릴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고성능 전투기를 오는 2017년 전력화하려던 계획은 1∼2년 더 늦춰질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특히 복지예산에 비중을 두는 현 정부의 실정을 고려할 때 현재 8조 3천억원인 총사업비를 1조원∼1조 5천억원 가량 증액하는 문제에 대해 군과 기획재정부의‘기싸움’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공군에서 운용 중인 30~40년 이상 된 전투기인 F-4/5는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도태되기 시작해 2025년까지 모두 퇴역한다. F-X 3차사업 재추진 결정으로 1~2년 이상 사업이 지연되면 2019년 이후 100대 이상의 전투기가 부족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9월 26일 공중요격훈련 도중 충북 증평에서 추락한 F-5E의 경우 1978년에 도입돼 35년 동안 6,610시간을 비행한 노후 전투기로 2017년 도태될 예정이었다. 도입한 지 30∼40년이나 된 F-4, F-5 계열 전투기는 2000년 이후 18대가 추락하면서 조종사 19명의 목숨을 앗아가 더 이상의 수명 연장은 불가능한 상태다.
공군은 현재 180여대의 F-5 계열 전투기를 보유하고 있다. 이 가운데 F-5E와 F-5F 120여대는 2019년까지, KF-5 60여대는 2025년까지 전량 도태될 예정이다. 역시 노후기종인 F-4E(팬텀) 40여대도 2019년까지 모두 퇴역한다. 지금부터 2019년까지 노후 전투기 160여대가 차례로 도태되는 셈이다.
이 기간 노후 전투기를 대체하는 국내 개발 경량 전투기(로우급) FA-50 60여대가 전력화할 계획이지만 공군은 전투기 적정 대수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 게다가 9월 24일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서 보잉의 F-15SE가 부결되면서 2017년부터 첨단 전투기 60대를 전력화하려던 일정도 지연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차기전투기 사업의 지연은 미들급 전투기를 국내 개발하는 한국형전투기(KF-X) 사업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차기전투기 사업의 목적 중 하나가 선정된 사업자로부터 한국형전투기 개발에 필요한 기술을 이전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국방연구원(KIDA)이 판단한 우리나라의 적정 전투기 보유 대수는 430여대이지만 이런 상태로라면 오는 2019년 기준으로 전투기 보유 대수는 330여대(차기전투기 제외)에 불과해 100여대가 부족해진다.
F-X 3차 사업 조기 마무리해야
F-X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국방부의 태스크포스(TF)는 9월 25일 첫번째 회의를 갖고 사업추진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TF장인 이용대 국방부 전력자원관리실장 주재로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회의에는 합동참모본부, 방위사업청, 한국국방연구원의 관계관들도 참여했다고 한다.
10여명의 장성 및 실·국장급 관료가 참여하는 이 TF는 4개팀으로 구성됐다. 소요수정을 담당하는 1분과에는 합참 전력기획부장과 공군 전력부장, 공군 F-X 평가단장이 참여하고 있다. 사업 추진을 담당하는 2분과에는 방사청의 항공기사업부장과 국제계약부장, 예산 담당인 3분과에는 방사청 재정정보화기획관, 지원팀에는 방사청 규제개혁담당관과 국방연구원 연구원이 각각 참여했다.
이 TF는 방위사업추진위원회가 차기전투기 단독후보인 보잉의 F-15SE을 부결시킨 이후 차기전투기 사업의 신속한 재추진을 위해 구성됐다. 첫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차기전투기 사업의 조속한 정상화를 위해 소요수정, 사업전략수립, 예산 산정 등의 절차를 동시에 추진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새로운 사업추진 방안으로는 분할 및 혼합 구매, 구매대수 축소, 예산증액 등이 거론되고 있다.
F-15K를 분할 구매한 지난 1, 2차 F-X 사업 때처럼 사업을 3, 4차 F-X 사업으로 나눠 추진하는‘사업쪼개기’도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60대를 한꺼번에 구매하는 것보다 3, 4차로 사업을 나눠 구매하면 예산증액이 수월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에 군의 한 관계자는“사업을 3, 4차로 나눌 경우 같은 종류의 전투기를 분할 구매할 수도 있고 다른 종류의 전투기를 혼합 구매할 수도 있다”고말했다.
주변국 전투기 확보 추세 반면교사로 삼아야
시작이 반이라고 방사청은 합리적인 가격을 산정해 총사업비를 재조정하는 한편, 후보 기종들의 성능을 충분히 평가하는 등의 절차를 최대한 신속히 밟아야 한다. 방사청에서 과거 획득사업에 참여했던 전문가들은 마음만 먹으면 1개월이면 재추진에 필요한 과정을 끝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멀 1년씩이나 끌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또 후보 기종들의 성능은 최대한 정확히 파악되고 평가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여기에다 중국과 일본, 러시아 등 주변국들은 스텔스 기능이 강화된 첨단 전투기를 도입하거나 개발하고 있다.
오는 2016∼2019년 사이 이들 국가의 스텔스 전투기가 전력화되면 한반도 주변 상공은 스텔스기의 주무대가 될 전망이다. 현재 한반도 주변 해저는 주변국의 잠수함이 활개를 치고 있다.
중국은 2011년 1월 11일 쓰촨성 청두의 한 공군 기지에서 독자 개발한 5세대 스텔스 전투기‘젠(殲)-20(J-20)’의 시험비행을 성공적으로 끝냈다. 미국 F-35에 필적하는 5세대 스텔스 전투기 젠(殲)-31(J-31)도 연구·개발 중이다. 외형이 F-35와 똑같아‘짝퉁 F-35’로도 불리는 이 전투기는 지난해 10월 31일 랴오닝성 선양에서 첫 시험 비행에 성공했다.
일본은 2011년 12월 스텔스 전투기인 F-35기를 차세대 주력 전투기로 선정해 모두 42대를 도입하기로 했다. 완제품으로 4대를 구매하고 4대는 일본에서 미국과 공동 생산하며, 나머지 34대는 일본이 기술을 이전받아 독자적으로 개발하는 내용으로 계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스텔스 전투기인 ATD-X(心神)를 자체 개발하고 있다. 일본 방위성 내 기술연구본부에서 주계약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과 함께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도 2016년 전력화를 목표로 스텔스 전투기인 T-50(PAK-FA)을 개발 중이다.
지난 2010년 10월 시험비행에 성공한 뒤 작년 8월 공군 창설 100주년 기념식 때 MiG-29M2와 짝을 지어 비행하며 위용을 선보였다. 미 공군의 F-22에 대항해 주력 전투기로 실전 배치될 전망이다. 이런 추세는 우리에겐 잠재적인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