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 출범과 더불어 개선 기대감이 높았던 남북관계 경색 국면이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수렁 속으로 빨려드는 형세를 뒤짚을 만한 ‘지렛대’가 아직 안갯속을 헤메고 있다. 북한 문제를 연구하는 한 전문가는 “지금
남북관계는 브레이크가 고장난 열차와 같다”고 말했다. 북한의 호전적이고 거친 언사는 계속되고 있다. 막장 드라마에서도 들을 수 없는 말들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 김형석 통일부 대변인이 공개적으로 북한에 대해 “품격있는 언어”를 사용하라고 요구할 정도이니 그 수준이 오죽했을까. 우리 정부도
북한의 ‘막장드라마’에 혀를 내두르면서도 강경대응 자세를 굽히지 않고 있다. ‘북한이 강하게 나오면 우리도 강하게 나가겠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국회 국방위원회나 외교통일위원회에서는 ‘건설적인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1~2차례 상임위를 열어 정책질의
정도로 ‘성의’를 보이는 데 그쳤다.    



▣ 북한, 험악한 ‘말폭탄’..., 건설적 해법 못내는
국회

지난 3월 5일, 북한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한국과 미국을 동시에
겨냥한 위협을 쏟아냈다. 지루하게 펼쳐지는 ‘북한식 막장드라마’의 제1편을 개막한 것이다.  최고사령부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미국과
한국이 북한의 ‘평화적인 인공지구위성 발사’와 ‘자주권을 수호하기 위한’ 핵실험에 대북제재를 가하고 합동군사훈련을 벌이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정전협정 백지화와 판문점 북한 - 유엔사 직통전화를 단절한다고 주장했다.
작년 말 강등됐다가 최근 대장으로 복귀한 김영철 인민군
정찰총국장이 성명을 발표했다. 김영철은 미국과 한국의 ‘핵무기’ 위협, ‘선제타격’ 등을 거론하며 “다종화된 우리식의 정밀 핵타격 수단으로
맞받아치게 될 것”이라면서 “누르면 발사하게 돼 있고 퍼부우면 불바다로 타번지게 돼 있다”고 거듭 위협했다.
북한은 과거에도 “유명무실한
정전협정” “정전협정은 사실상 백지화” 등의 표현을 사용했지만 정전협정 백지화를 정면으로 거론하기는 처음이었다. 우리 군 당국은 이에 대해
북한이 평화협정을 체결하자고 미국을 압박하는 전술이라고 평가했다.
군의 한 고위 관계자는 “북한은 미국에 대해 적대정책을 끝내고 관계를
개선하자는 메시지를 계속 보내고 있다”면서 “북한 최고사령부의 성명은 결과적으로 북 - 미 평화협정을 체결하자는 대미 압박 차원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이어 3월 26일에는 최고사령부 성명을 통해 미사일과 포병부대에 ‘1호 전투태세’를 발령했다. 최고사령부는 “지금 이 시각부터
미국 본토와 하와이, 괌도를 비롯한 태평양군작전지구안의 미제침략기지들과 남조선과 그 주변지역의 모든 적대상물들을 타격하게 된 전략
로케트(미사일) 부대들과 장거리포병부대들을 포함한 모든 야전포병군집단들을 1호 전투근무태세에 진입시키게 된다”고
주장했다.



‘1호전투근무태세’는 그동안 북한 매체에 등장하지 않았던 표현으로, 높은 수준의 전투준비 태세를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어 하루 뒤인 3월 27일에는 남북관계 단절을 시사하는 조치에 들어갔다. 남북간 군 통신선을 단절하고 군 통신연락소의 활동도
중단한다고 밝힌 것이다.
남북 장성급회담 북측 단장은 27일 오전 11시20분 남측 단장에게 보낸 전화통지문을 통해 “위임에 따라 이
시각부터 북남 군통신을 단절하는 것과 함께 서해지구 북남관리구역 군통신연락소 우리측 성원들의 활동도 중지하게 됨을 통고한다”면서 “우리가 취하는
조치는 남측의 시대착오적인 반공화국 적대행위가 계속되는 한 철저히 집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 미국, ‘핵우산’ 수단으로 맞서 ...‘약’ ‘독’ 평가 엇갈려

이번에는 미국이 나섰다. 동맹국에 제공하는 전통적인 핵확장억제력 수단이
동원됐다.
3월 8일, 전략폭격기 B-52가 한반도 상공에 모습을 드러냈다.
B-52는 최대 27t의 폭탄을 싣고 6천400㎞ 이상의
거리를 날아가 폭격한 후 돌아올 수 있는 장거리 폭격기로 지금도 미 공군의 주력 폭격기로 활약하고 있다. 길이 48m, 너비 56.4m, 무게
221.35t에 최대 항속거리가 1만 6천㎞에 달한다. 최대 상승고도는 5만 5천ft로 고고로 침투가 가능하며 2천파운드(약 907㎏) 재래식
폭탄 35발과 순항미사일 12발을 장착할 수 있다.
특히 B-52는 AGM-86 ALCM, AGM-69 SRAM, AGM-129 ACM
등 공대지 핵미사일을 탑재할 수 있다. 사거리 2천500㎞인 AGM-86 ALCM와 사거리 3천㎞인 AGM-129 ACM은 폭발력이
200킬로톤(kt)에 달한다. 사거리 200㎞인 AGM-69 SRAM의 폭발력은 170kt 수준이다. 3월에만 세차례 이상 폭격연습을 하고
돌아갔다.
3월 13일에는 핵추진 잠수함 샤이엔(6천900t급)과 이지스 구축함 맥케인, 맥캠벨, 피츠제랄드, 라센함이 동해상에 출현했다.
미 7함대 소속으로 하와이 진주만이 모항인 샤이엔은 수직발사 순항미사일과 ‘잠수함 첨단전투시스템(SACS)’ 등으로 무장한 공격형
잠수함이다.   1996년에 건조된 잠수함으로 2003년 ‘이라크 자유작전’(Operation Iraqi Freedom)’에
참가해 사거리 2천km가 넘는 토마호크 미사일을 처음으로 발사하며 초반 공격을 이끌었다.
3월 28일, 스텔스 폭격기 B-2가 전개되면서
미국의 핵우산이 정점을 찍었다.
미 본토 미주리주 화이트맨 공군기지에서 전날 밤 출격한 B-2 폭격기 2대는 공중급유를 받으며
1만500㎞를 비행, 이날 정오를 전후해 한반도에 도착해 임무를 수행한 뒤 복귀했다.  한반도에 도착한 B-2 폭격기 2대는 군산
앞바다 직도 사격장에 훈련탄을 투하했다. 오산 공군기지 인근 상공을 비행하는 모습이 국내 언론에 포착되기도 했다.
‘보이지 않는
폭격기’로 핵무장이 가능한 B-2가 한반도에 전개돼 폭격 훈련을 한 것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스텔스 폭격기이면서도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인 JASSM 16발, GPS형 관성유도 폭탄인 JSOW 16발, 합동정밀직격탄인 JDAM 80발 등 가공한 무장을 갖추고 있다. 특히 총
중량 1만8천144㎏에 달하는 핵폭탄 16발을 탑재할 수 있다.
끝으로 3월 31일에는 F-22 스텔스 전투기 2대가 한미 독수리(FE)
연합훈련 참가를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일본 오키나와(沖繩)현 가데나(嘉手納) 공군 기지에서 오산기지로 전개한 F-22는 적의 레이더망을
회피하는 스텔스 성능을 가졌다. 최대속력 마하 2.5 이상으로 작전행동반경은 2천177㎞에 달한다.
최대 250㎞ 떨어진 적의 위치와
정보까지 파악할 수 있어 ‘미니 AWACS(조기경보기)’로 평가되는 APG-77 AESA 레이더를 장착하고 있다. AIM-120(암람)
공대공미사일 6발, 450㎏급 공대지 정밀유도무기 2발, AIM-9(사이드와인더) 공대공미사일 2발 등으로 무장하고 있다. 미국이 이같은
핵확장억제력 수단을 제공한 것은 한국 측의 요청으로 이뤄졌다.
북한은 당장 반발했다. 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은 4월 4일 담화를 통해 한미
합동군사훈련에 미군의 B-52, B-2 전략폭격기와 F-22 전투기, 핵잠수함, 구축함 등이 참가한 것을 비난했다.
총참모부 대변인은
“지속적으로 가증되고 있는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과 분별없는 핵위협은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된 우리 식의 첨단 핵타격 수단으로 여지없이
짓부셔버리게 될 것”이라며 “이와 관련한 우리 혁명무력의 무자비한 작전이 최종적으로 검토·비준된 상태에 있음을 정식으로 백악관과
펜타곤(Pentagon, 미국의 국방부)에 통고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한미 군 당국의 적극적인 대응 공세에 긴장하면서도 ‘말폭탄’을
그치지 않고 있다. 북한 전문가들은 양국 군의 이런 일련의 강경 조치가 남북관계 개선을 여는 데 ‘약’이 됐는지 ‘독’이 됐는지에 대해 엇갈린
평가를 내놓고 있다.

▣ 한미, ‘대화 - 강공’ 놓고 갈팡질팡

북한의 호전적인 언사에 한국과 미국 당국자들은 한때 ‘대화’ 또는 ‘강공지속’ 여부를
놓고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여 국민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4월 11일 대북성명을 발표한 직후 “대화
제의라기보다는 현재 개성공단 문제, 북한의 가중되는 위협적인 행동 등 모든 문제를 대화를 통해 풀어야 한다는 점을 대내외에 천명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강조한 것이지 대화제의는 아니라는 설명이었다.
류 장관의 성명 발표 이후 청와대 김행
대변인도 같은 취지로 설명했다. 그러나 당일 저녁 청와대에서는 대화제의를 한 것이라는 적극적인 해석을 내놔 메시지 관리에 혼선이
빚어졌다.
김행 대변인은 12일 브리핑에서 류 장관의 전날 답변을 엄호하면서 ‘공식 대화’와 ‘사실상의 대화’를 구분하는 논법을 제시했다.
‘공식 대화제의’는 대화의 주체를 명확히 하고 일시·장소까지 제시하는 것이고, 이런 공식성과 구체성이 없더라도 ‘사실상의 대화’라고 부를 수
있다는 설명을 내놓았다.
류 장관의 11일 대북 성명을 두고 나왔던 청와대와 통일부간의 엇갈린 목소리를 정부가 봉합하는 상황에서 정홍원
국무총리가 하루 뒤인 12일 대화보다는 억지쪽에 무게가 실린 언급을 해 논란을 가열시켰다.
정 총리는 기자들과의 오찬간담회에서 북한의
긴장조성에 유감을 표시하면서 “주먹을 쓰겠다는 사람 앞에서는 주먹이 소용없다는 것을 느끼게 해야지 사과를 하든지, 사정을 하든지, 대화를 하자는
것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킨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는 도발하면 엄청난 손해를 입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전쟁 억지력을 갖추려는
노력을 해야 하고 그런 점에서 정부는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다”면서 대북지원이나 협력에 대해서는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시기가 이르다. 지금은
전쟁 억지력을 공고히 하는데 신경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북대화 제의에 대한 엇박자는 정부 외교안보라인 내 소통과 정책조율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방증(傍證)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다른 사안도 아니고 국가안보 사안을 두고, 특히 북한을 상대로 한 대북정책에 이 같은 혼선이
나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미국 정부도 ‘북한에 대한 메시지’를 놓고 혼선을 빚기는 마찬가지였다.
존 케리 미국
국무부 장관은 4월 2일(현지시간) 오후 워싱턴DC 국무부 청사에서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회담한 뒤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수차례에 걸쳐 북한의
‘현명한 선택’을 강조했다.
상원의원 시절부터 국제문제의 외교적 해법을 주창해온 ‘대화론자’로 유명했던 케리 장관은 북한의 최근 거듭된
도발적 행보에 대해 강한 경고를 보내면서도 끝까지 북한이 진지한 자세로 비핵화의 의지를 보일 경우 미국은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패트릭 벤트렐 국무부 부대변인도 4월 12일(현지시간) 정례브리핑에서 “(케리 장관의 대화 제안의) 맥락은 박근혜 대통령의 비전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면서 “이는 평화의 비전으로, 궁극적으로 남북한이 공존하면서 번영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4월 첫주에
실시하려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미니트맨Ⅲ’ 실험도 연기하는 등 미국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가 미묘하게 바뀌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4월 16일(현지시간) NBC 방송 인터뷰 형식으로 북한은 아직 탄도 미사일에 핵무기를 탑재할 능력이 없으며 북한의
‘도발적 행동’ 중단이 전제되지 않는 한 대화나 협상도 없다고 정부내 혼선을 정리했다.
현재 한미는 북한의 태도 변화가 없는 한 ‘대화’
쪽으로 대북정책을 이동시키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북한 스스로 굴복해 대화 테이블로 나오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북한은 4월 18일
국방위원회 정책국 성명을 통해 “남한과 미국이 진실로 대화와 협상을 바란다면 모든 도발행위들을 즉시 중지하고 전면사죄하여야 한다”면서
“1차적으로 당치않은 구실을 붙여 조작해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조치를 철회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과 미국의 한 축과
북한이라는 또다른 한축을 사이에 놓고 ‘강 대 강’의 기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형국이다. 경계해야 할 것은 북한이 강한 기싸움 과정에서
반드시 무력 도발을 감행한다는 것이다. 한반도엔 아직 봄이 오직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