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포에니전쟁의 트라시메네호전투와 천보전쟁의 따리전투


정경운
66사단 중령


2015년 초 본인은 중국의 북부지역인 청해성, 감숙성, 섬서성을 거쳐서 운남(雲南)지방을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운남은 글자 그대로 ‘구름의 남쪽’이란 뜻으로 중국의 서남쪽에 위치한다. 면적은 한반도의 약 2배에 달하고 성도(省都)는 쿤밍(昆明)이다. 한(漢)나라시대부터 운남성, 사천성, 귀주성 등지에 살고있는 부족을 가르켜 서남이(西南夷)라 하였다. 오늘날도 백족(白族), 하니족(哈尼族), 장족(壯族), 묘족(苗族), 나시족(納西族) 등 25개의 소수민족들이 흩어져 살고 있는데 그들은독창적인 전통과 문화를 지켜가고 있다. 기후는 아열대성으로 자연경관도 수려하여 우리나라 사람들도 많이 찾는 관광지다. 쿤밍으로부터 서쪽으로 약 360km 떨어져 있는 따리(大理)는 옛날부터 중국, 티베트, 동남아를 연결하는 요충지였고 푸얼차(普洱茶)와 말이 교차하던 차마고도(茶馬古道)의 경유지였다. 대리석(大理石)은 이곳 따리에서 생산되는 돌(石)에서 유래하였다.



해발 2,000m에 위치한 따리는 창산(蒼山)과 얼하이(洱海)호를 좌우측으로 끼고 있다. 만년설로 덮힌 창산은 19개의 3,500m~4,000m급 봉우리들이 남북으로 이어져 있다. ‘귀(洱)처럼 생긴 바다(海)’라고 하여 이름 붙여진 얼하이호도 창산과 나란히 42km에 걸쳐 펼쳐져있다. 호수 폭은 약 8km로 최고 수심은 60m이다. 얼하이호 북쪽의 좁은 입구를 통과하면 창산과 얼하이호 사이에는 남북으로 구릉이 형성되어 있다. 따리 남쪽에 위치한 하관(下關)까지 구릉을 따라 기동로가 뻗어 있다. 따리에서는 병목과 같이 좁아지고 얕은 구릉 위에 따리성(大理城)이 있다. 따리성은 하관까지 이르는 기동로를 통제할 수 있다. 이러한 지형은‘망치와 모루’ 전술을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는 곳이다. 따리성 남쪽 남조1)(南詔)의 수도였던 태화성(太和城)에는 만인총2)(萬人塚)이 있다. 만인총은 그 이름과 형태는 조금씩 다르지만 통상적으로 전쟁에서 전사한 수 많은 사람들을 합장한 곳이다. 우리나라 전북 남원3)과중앙아시아의 키르기즈스탄의 탈라스 평원4)에도 있다. 따리의 만인총도 운남지방의 남조(南詔)가 당나라의 침략에 맞서 싸운 천보(天寶)전쟁5)에서 전사한 당나라 군사들을 합장한곳이다. 전쟁은 751년~754년에 걸쳐 3차례 대규모 혈전6)으로 전사한 당나라 군사의 수가 무려 20만명에 달했다. 전투가 얼마나 참혹하였던지 백거이(白居易)의 ‘신풍절비옹’7)(新豊折臂翁)이라는 시(詩)에도 잘 나타나 있다.



천보
전쟁때 남조는 당나라와 토번8)(吐蕃)이라는강력한 국가에 둘러싸인 약소국에 불과했다.738년에 남조는 당의 도움으로 주변 6개 부족9)을 정복하고 통일된 남조국을 세웠다. 그러나 당은 748년에 얼하이호 부근에 안녕성(安寧城)을 설치하고 이 지역을 장악하려는 야욕을 드러내었다. 운남태수(雲南太守) 장건타(張虔陀)의 모욕적인 행동, 뇌물 요구 뿐만 아니라 각라봉10)(閣羅鳳)이 모반을 꾀한다는 모함을 당에 보고했다. 이에 750년 각라봉이 거병하여 장건타를 살해하고 32개 군을 점령하였다. 천보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필자는 약소국인 남조가 어떻게 당과 토번의 침략을 물리치고 오히려 영토를 확장하여 강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였다. 그리고 남조 국왕이었던 각라봉이라는 미지의 인물에 묘한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또한 천보전쟁에 관심을갖게 되었다. 천보전쟁중 751년에 벌어진 1차전투에서 아주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B.C 217년 4월 이탈리아 중부지역에서 벌어진 트라시메네(Trasimene)호 전투11)와 지형, 전투의 양상과 전투의 결과도 놀랍도록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트라시메네호 주변의 지형도 따리와 유사하다. 호수 입구로 진입하면 언덕이 있다. 언덕을 넘으면 호수가 산을 나란히 끼고 구릉이 펼쳐져 있다.
 
구릉과 호수 사이의 유일한 기동로는 로마방향으로 이어진다. 기동로가 끝나는 지점에는 언덕이 호수방향으로 뻗어나와 병목과 같은 형상을 이룬다. 전투의 양상과 그 결과도 마찬가지다. 따리전투에서 남조군은 당나라군을 따리까지 깊숙하게 유인하여 측방에서 기습하여 당나라군을 격멸시켰다. 이 전투에서 수 많은 당나라 군사들이 전사하고 얼하이호에 익사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트라시메네호 전투에서도 한니발은 로마군을 트라시메네호 지역으로 깊숙하게 유인하여 지형의 잇점을 이용한 기습 공격으로 로마군을 격멸시켰다. 여기서 필자가 한가지 의문을 갖게 된 점은 ‘시간적으로 968년이라는 간격이 있었고 또한 지리적으로도 멀리 떨어진 곳에서 벌어진 2개의 전투가 어찌하여 완벽하게 일치하는가?’ 였다.



단언컨대 카르타고의 지휘관인 한니발과 남조의 지휘관인 각라봉(閣羅鳳)은 만날 수도 없었을 것이고 트라시메네호 전투에 관한 어떠한정보도 교환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양개 전투의 지형, 작전을 위한 여건조성, 전투력운용모습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볼때 각라봉과한니발의 작전구상은 완벽하게 일치했다고 판단된다. 그리고 작전구상이 일치될 수 있었던것은 아마도 승리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절박함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즉, 전투에서 승리하지 못한다면 부하의 목숨뿐만 아니라 자신의 목숨조차 부지할 수 없었고, 또한 국가도 패망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뼈속깊이 인식하고있었을 것이다. 자료가 충분하지 않아 당시의구체적인 상황을 알 수 없고 각라봉의 절박함을 느낄 수 없다. 그러나 단편적으로 후대에 남겨진 사료와 같은 조건에서 같은 작전구상을해낸 한니발을 통해서 미루어 짐작할뿐이다.1차 포에니 전쟁12)(B.C 264년~B.C 241년)에서카르타고는 로마와 해전과 육전에서 패배하여시칠리아, 샤르데냐, 코르시카섬을 빼앗기고지중해 패권마저 잃어버렸다. 그리고 상당한전쟁 배상금을 물어야 했다. 한니발은 9세때아버지13)와 신 앞에서 카르타고의 원수인 로마를 멸망시킬 것을 맹세하였다고 전해진다. B.C218년 한니발(Hannibal)군은 2만여명의 희생자를 내면서 2주만에 알프스 산맥을 횡단하여이탈리아 내륙으로 진군하였다. 본격적인 로마군단과 전투를 앞둔 병사들에게 한 한니발의 연설에서 그의 비장함이 잘 들어난다.



한편 한니발은 잔혹한 면모도 보였다. 병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2명의 포로를 선발하여 승자에게는 자유를 약속하고 결투를 벌리게 하였다. 이것은 승리할 것인가 아니면 비참하게 죽을 것인가를 부하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이때 많은 포로들이 앞다투어 결투참가에 자원하였다고 전해진다. 한니발은 그해말 티키누스(Ticinus) 전투14)와 트레비아(Trebia)15) 전투에서 로마군을 크게 격파하였다. 아펜니노(Appennino) 산맥과 늪지대를 행군한 한니발은 4월에 이탈리아 중부의 트라시메네호 부근에 도착하였다. 이때 한쪽 눈을 잃은 한니발은 트라시메네호를 결전장소로 정하고 심리작전과 기만작전을 병행하였다. 인근마을을 약탈하고 큰 불을 질렀다. 의도적으로로마군16) 인접지역으로 기동하여 로마로 진군하는 것처럼 기만하였다. 이것은 로마군을 얕보는 행동으로 성격이 조급하고 정치적인 평판에 얽매인 집정관(로마군 사령관) 플라미니우스17)를 유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소수 병력을 보내 매복할 지역보다 훨씬 떨어진 곳에 불을 피우게 하여 한니발군의 숙영지를 오인토록 한 다음 야음을 이용하여 트라시메네호 부근에 병력을 배치하였다. 스페인 및 아프리카중보병을 소로가 끝나는 언덕에 배치하여 로마군의 진출을 차단토록 하였다. 갈리아 경보병은 산기슭에 배치하여 로마군의 측면을 공격토록 하였다. 언덕 입구 뒤편에는 기병을 배치하여 로마군의 후미를 차단토록 하였다. 대중에게 보이기 위한 군사행동을 반대하는 부하 장군들의 반대를 묵살하고 플라미니우스는 안개가 자욱한 다음날 아침 한니발군 추격을 명령하였다. 정찰대로부터 로마군이 기동하기 시작하였다는 보고를 받은 한니발은 소규모 투창부대를 투입하여 로마군을 더욱 깊숙하게 유인하였다. 앞쪽 언덕에서 지켜보고있던 한니발은 계획된 지역으로 로마군이 들어오자 총공세를 명령하였다. 오전 전투로 로마군 1만 5천여명이 전사하거나 트라시메네호에 익사하였고 6천명은 포로가 되었다. 집정관 플라미니우스도 갈리아 기병18)의 창에 꿰뚫려 전사하였다. 전투가 아닌 살육이었다. 이때 로마군이 흘린피로 트라시메네호가 붉게물들었다고 역사서는 전하고 있다. 로마인들은 한니발이 정정당당하지 못하다고 비난하였지만 이는 단지 패배자들의 변명에 불과한 것이었다. 따리전투도 유사하게 진행되었다. 각라봉도 당군을 깊숙하게 유인하기 위해 기만작전을 폈을 것이다. 작년에 점령한 32개 군을돌려주고 당에 사죄를 청하였다는 역사기록이보이는데 어쩌면 적을 속이기 위한 작전일지도 모른다. 태화성에서 활동중인 당의 첩자를따돌리기 위하여 심리작전과 기만작전을 펼쳤을 것이다. 주요 기동로를 통제한 가운데 야간에 은밀하게 부대를 기동시켜 창산 기슭에 정예부대19)를 매복시켰을 것이다. 그리고 태화성의 방어력을 강화하는 조치들을 취했을 것이다. 당군의 움직임을 시시각각으로 보고하는 정찰대 운용으로 각라봉은 전장을 손금보듯 관찰하면서 작전을 지휘했을 것이다. 당군을 따리까지 유인하였다는 역사기록을 미루어보아 남조군은 거짓 패배를 반복하는 등 선우중통(鮮于仲通)이 지휘하는 8만 당군을 유인하였다. 각라봉은 호기를 포착하여 총공세를 명령했을 것이다.



창산 기슭에 매복한 남조

군은 마치 묵직한 ‘망치’처럼 ‘모루’(얼하이호)에 놓인 당군을 노도처럼 내려쳤을 것이다. 제대로 전투대형을 갖추지 못한 당군은 남조군의 공세에 밀려 무참히 쓰러져 갔다. 일부는 전투의지를 잃고 항복하거나 일부는 얼하이호로 도망치다가 익사하였다. 이 전투로 당군은7만명이 전사하거나 얼하이호에 익사하였고1만명이 포로로 잡혔다. 이후 2차, 3차 전투20)에서도 승리한 각라봉은 유화정책으로 만인총을 만들고 남조덕화비21)(南詔德化碑)를 세우는 등 당나라와 충돌을 회피하면서 국력을 다졌다. 남조는 이모심22)(異牟尋)에 이르러서는토번을 격파하고 영토를 사천, 귀주, 베트남까지 넓혔다. 그러나 1254년 따리국을 침략한 몽골의 쿠빌라이(忽必烈)는 당군의 패배를 되풀이 하지 않았다. 몽골 침입에 대응하여 따리성23)에서 결사항전으로 장기전에 돌입하자 쿠빌라이는 주력을 얼하이호로 투입하지 않고 창산으로 기동시켰다. 마치 한니발이 알프스를 횡단하듯이... 결국 따리국은 항복하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투에서의 승리는 오직장수(지휘관)에게 달려있다. ‘전장에서 지휘관의 승리에 대한 갈구’만이 지형과 기상을 유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혜안이 생긴다. 그리고 적과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작전을 구상할 수 있는것이다. 그리고 알프스 산악의 기동로가 가로막혔을 때 바위를 깨뜨리면서 전진한 한니발의 ‘강철같은 의지’만이 전장에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우선 생각하는 로마의 집정관과 같은 지휘관은 반드시 패배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준엄한 역사의 교훈이다. 한니발과 각라봉은 전투에서 오직 승리만을 생각하였고 불굴의 의지로 결국 그들은 불리한 여건속에서도 승리를챙취하였다. 각급제대 지휘관 및 참모 여러분!여러분은 전투에서 자신과 부하의 목숨을 지키고 부여된 임무를 달성하기 위하여 오늘도승리를 갈구하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