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제비츠는 그의 명저 『전쟁론』에서 위험 을 극복하는 용기, 육체적 긴장과 고통을 극복 하는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 불확실성을 극복하 는 예리한 지성, 우연의 개입을 극복하는 많은 경험요소 등을 군인이 갖춰야 할 자질로 강조하 고 있다. 그러나 군인이 가져야 할 자질을 이야 기할 때면 비단 클라우제비츠 주장에 국한되지 않고 각자의 선호나 시대상황 등을 고려하여 여 러 가지가 언급될 수 있을 것이다. 비근한 예로, 수행해야 할 직무에 대한 전문적인 역량이나 단 번에 전투의 승패를 결정지을 수 있는 전투감각 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이외에도 충성이나 명 예, 의무 등을 언급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러나 나는 그 어떤 요소에 앞서 진정한 군인이 라면 조국에 대한 헌신과 부하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군인이 갖춰야 할 최우선 자질이라고 생 각한다. 먼저 군인에게 요구되는 조국에 대한 헌신은 나를 죽여 전체를 살리고자 하는 숭고함에 기초 하고 있다. 이는 국가로부터 무장력 관리와 전투 력 투사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군인이 수행해 야 할 도덕적 책무인 것이다. 육군사관학교 교정 에는 많은 표지석들과 동상들이 세워져 있다. 호 국의 간성을 길러내는 학교로서 생도들에게 각 인시켜야 할 내용에서부터 육군의 역사를 상징 하는 내용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내가 개인적 으로 제일 좋아하는 표지석은 ‘호국비’다. 높이 12m 정도의 화강암에 ‘내 생명 조국을 위해’라 는 여덟 글자가 새겨져 있고, 놓여있는 위치 또 한 화랑 연병장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있어 그 위용이 남다르다.

생도생활을 하는 동안 이 표지 석 앞에 설 때면 사관생도로서의 책무를 생각하 게 되고 그 책무의 끝은 조국에 대한 헌신으로 귀결되어야 한다는 다짐을 하곤 했다. 임관 이후에는 마침 내가 속한 병과가 장병들 의 무형전력을 담당하는 임무를 수행하다 보니 자연스레 국가관이나 안보관, 군인정신에 대해 탐구하고 사례발굴 등을 해나가게 됐다. 군 내에 서 때론 당장 실적으로 보여줄 수 없고 손에 잡 히지 않는다는 한계로 인하여 무형의 전투력에 대한 관심이 떨어질 때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군 생활을 통해 우리 군의 정신적 무장력을 고취 하는데 진력하고 이를 통해 군 전투력의 한 축을 담당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전방 군단의 참모로 근무하던 어느 날이었다. 퇴근하여 TV를 켰는데 마침 천하장사 출신 MC 가 진행하는 ‘무릎팍도사’라는 프로그램이 진 행 중이었다. 출연자는 세계적인 소프라노 성악 가인 조수미씨였다. 강호동 MC는 특유의 큰 몸 짓을 섞어가며 이런 질문을 했다. “조수미씨, 세 계적인 성악가이신데, 조수미씨처럼 세계적으 로 유명한 음악인이 되려면 제일 중요한 조건으 로 무엇을 꼽으시겠습니까? 후배들을 위해서라 도 한 말씀 해주시죠!” 나는 음악을 잘 모르지만 얕은 음악적 지식에 기초하여 ‘타고난 목소리’나 ‘절대 음감’ 중 하나가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짐 작을 했다. 그런데 정작 조수미씨가 했던 말은 내 예상을 여지없이 깨뜨렸다. 그녀는 이렇게 말 했다. “조국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요.” 그러면서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보탰다. 요지인즉 ‘훌륭 한 성악가가 되기 위해 절대 음감이나 좋은 목소 리 등도 필요하다. 그러나 세계적인 음악인이 되 려면 마음속 밑바탕에 자기가 태어난 조국에 대 한 지극한 사랑이 있어야 한다. 음악에는 국경이 없다지만 음악인에게 국가는 있는 법이다.’ 그러 면서 그녀는 일 년에 육 개월 이상을 해외에 체 류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큰 행사가 있거나 조국 이 부르면 열 일을 제쳐두고 국내 행사에 참석한 다고 덧붙였다. 잠시 시간을 보내려고 켰던 TV 프로그램을 통해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생각하기에 타고난 소질을 가지고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만 생각했던 음악인의 입에서 조 국에 대한 사랑이 나오는데 정작 조국과 함께 생명을 같이 하겠다고 다짐했던 나는 어떠했 나? 심한 부끄러움이 가슴 저변에서부터 밀려 왔었다. 그 일이 있은 뒤 나는 국가관에 대한 강 연을 할 때면 꼭 조수미씨 이야기를 소재로 넣 고, 이처럼 훌륭한 생각을 갖고 있는 조수미씨 를 위해 박수를 보내자고 청중들에게 요청하곤 했다. 우리가 조국에 대한 헌신을 이야기할 때 빼놓 을 수 없는 것 중의 하나가 미국 육군사관학교 교훈이다. 우리에게는 웨스트포인트로 더 잘 알 려진 미국 육군사관학교가 배출한 걸출한 영웅 으로 맥아더 장군이 있다. 그가 죽기 두 해 전에 모교를 방문하여 교훈인 ‘의무, 명예, 조국’을 소 재로 피맺힌 연설을 했다. “잠이 들면 꿈속에서 찢어질 듯한 총성과, 총신의 덜그럭거리는 소리 그리고 이상하고 구슬픈 전장의 중얼거림이 또 다시 귓전을 맴돌곤 합니다. 하지만 회상이 끝 날 무렵이면, 저는 언제나 웨스트포인트에 돌아 와 있습니다. 그곳에는 항상 메아리쳐오는 소리 가 있습니다. 의무, 명예, 조국이라는…. ”

하지 만 조국에 대한 사랑을 외쳤던 이가 어디 맥아더 뿐이겠는가? 조국의 산하에서 군 복무를 담당하 고 있는 장병들은 맥아더보다 더한 조국에 대한 헌신을 이미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부하를 지극히 사랑하는 것, 군인이 갖춰야 할 기본 자질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왜 냐하면 창끝 전투력이 구현되고 정작 싸워야 하 는 이는 용사들이요, 상관도 부하가 있어야 상 관일 수 있기 때문이다. 부하를 사랑하는 첫 출발은 부하들이 처한 입장을 이해하는 것이다. 손자병법 ‘구지(九地)’ 편에 보면 이런 대목이 나 온다. ‘令發之日(영발지일), 士卒坐者涕沾襟(사 졸좌자체점금), 偃臥者淚交(언와자누교)’로 “명 령이 발현되면, 좌정한 자는 눈물로 옷깃을 적 시고, 쓰러져 누운 자도 눈물을 흘릴 것이다.”로 해석이 된다. 몇천 년 전의 병사들이나 지금의 용사들이나 심리적 상태는 차이가 없다고 본다. 전투에 참가하기 전날 저녁이면 눈물로 지새울 것이며, 죽고 사는 문제로 심한 공포에 휩싸일 것이다. 이러한 용사들의 마음을 헤아리는게 간 부의 임무인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부하들이 가진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이 부하사랑 의 또 다른 면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자신이 가진 역량 그 자체를 인정받았을 때 무한한 행복 을 느끼고 배가의 노력을 경주하기 때문이다. 나 는 어렸을 때 삼국지를 읽고 조조를 간사한 사람 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삼국지 를 다시 읽었을 때 조조가 당시로서는 가히 파격 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오직 능력만을 가지 고 인재를 선발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처 럼 그 사람의 신분이 비록 천하다고 할지라도 가 지고 있는 역량이 출중하면 그를 높이 들어 활용 하고자 했던 리더십과 부하사랑이 있었기에 위 나라를 창건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군에서 재직하는 동안 군의 문제점을 용 사들의 시각에서 바라보자는 취지에서 용사들 이 주체가 되어 군을 진단하는 세미나를 개최한 적이 있다. 이는 ‘용사들이 장군에게 전하는 이 야기’라는 이름으로 언론에도 보도된 바가 있다. 이러한 세미나를 기획하면서 처음에는 나 자신 역시도 과연 용사들이 군이라는 거대한 조직을 제대로 바라보고 진단해낼 수 있을까? 하는 우려 를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용사 들은 너무도 정확하게 군의 현실을 파악하고 있 었고 미래지향적인 군의 발전을 위한 대책들을 제시하였다. 조직원들은 누구나 우수하다. 단지 이를 활용하지 못하는 지휘부가 있을 뿐이다. 그 런 만큼 부하를 지극히 사랑한다면 그들이 가진 역량을 제대로 알아보고 그들의 역량이 제대로 발현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주기 위해 노력 하고 또 노력해야 할 것이다.

최근 들어 병영 내의 여러 가지 문제들과 군의 불합리한 면들이 SNS와 언론을 통해 실시간으 로 전파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사례 등 을 들어 시대에 뒤떨어진 군이니, 전투력의 저하 니 하면서 군의 현실을 우려하고 있고 질책의 목 소리 또한 높은 것이 사실이다. 불과 얼마 전까 지 군에 몸담았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까운 마음 이 크고 책임감을 느낀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러 한 문제들은 우리 군 장병들의 조국에 대한 헌신 과 부하에 대한 지극한 사랑으로 모두가 하나가 되어 해결해 나간다면 국민의 신뢰를 받는 강군 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국민과 함께 하는 정예 강군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