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내주
육군 대령
육군사관학교 군사사학과 교수

전쟁의 개요
페르시아 전쟁은 기원전 492~479년에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비롯한 그리스 반도의 폴리스(도시국가)들과 소아시아의 페르시아 제국 간에 벌어진 전쟁이다. 크게 3차례에 걸친 페르시아의침략으로 촉발된 전쟁에서 최종승자는 그리스의 폴리스들이었고, 이러한 승리에 견인차 역할을 한 것이 바로 기원전 490년에 벌어진 마라톤전투였다.

전쟁의 배경
우리는 흔히 현대 서양문명의 원류를 서양 고대의 그리스로마 문명, 이 중에서도 특히 그리스 문명에서 찾고 있으며, 이러한 맥락에서 이들 두 문명을 합하여 ‘서양의 고전문명’이라 말하고 있다. 오늘날 서양 세계를 특징짓는 자유주의, 민주주의, 합리주의 등의 뿌리가 기원전 7세기~4세기에 그리스 반도 및 에게 해 지역에 산재되어 있던 일종의 정치군사 공동체인 폴리스(polis, 도시국가)들을 중심으로 꽃을 피운 문화적 유산에 있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특히 그리스 반도의 대표적 폴리스들 중 하나였던 아테네에서 기원전 4세기경 페리클레스 통치기에 정치및 종교, 무엇보다도 학문과 예술 분야에서 만개했던 인간중심적이며 지성적인 경향은 이후 로마제국과 중세, 그리고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오늘날 서양문명을 형성하는 바탕이 되었다.


그리스 반도에서 인간의 모든 활동은 그가 속한 폴리스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이러한 폴리스는 어떻게 등장, 발전한 것일까? 에게 해 남쪽의 크레타 섬에서는 미노아 문명이 발전하여 기원전 2천년 경에 그 절정기를 맞이하였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그리스 본토의 펠로폰네소스 반도에서는 수많은 소왕국들이 등장했는데, 그 중심지는 후세에 미케네 문명으로 잘알려진 미케네였다. 호머의 『일리아드』에서 엿볼 수 있듯이, 이들은 한 때 소아시아 지역까지세력을 확장하기도 했으나 기원전 1100년경에북쪽에서 내려온 야만적인 도리아인에 의해 정복되었다. 더불어 이들이 이룩한 문명도 사라진채, 이후 암흑시대라고 불리는 3백년의 긴 세월
이 흘러갔다. 그러다가 기원전 8백년 경부터 그리스 본토에서 폴리스들이 등장하면서 새로운문명이 피어나기 시작하였다. 이후 폴리스의 수는 급속히 늘어나 지중해 전역에 걸쳐서 약 1천개에 달할 정도였다. 이들 중 가장 대표적인 폴리스로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터를 잡은 스파르타(Sparta)와 그리스 반도 남쪽에서 흥기한 아테네(Athens)를 꼽을 수 있다.


이후 역사적 및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스파르타와 아테네는 서로 대조적인 문명을 이룩하였다. 소수의 이주민들로 이루어진 스파르타의 지배계급은 절대다수의 원주민을 통치하기 위해서 스스로가 전사계급이 되어야만 했다. 그러다보니 스파르타는 전 국민에게 공동체 생활과 엄격한 규율을 강조하는 전체주의적이며 폐쇄적인 문화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아테네는 개인주의적이며 개방적인 문화를 꽃피웠다. 물론 초기에 폴리스 아테네도 소수의 토지귀족들이 지배한 귀족중심 사회였으나 기원전 508년경에 이르러 귀족제 사회는 클레이스테네스에 의해 무너지고 민주정 시대로 나아가게되었다. 역대 통치자들이 달성한 제도적 바탕 위에서 페리클레스의 통치기(445~429 BC)에 이르러 아테네 민주정은 그 절정기를 누렸다.


전쟁의 경과
폴리스 아테네를 중심으로 정치적, 경제적으로 안정을 이룩한 그리스인들은 지중해 각지로진출하여 각처에 식민시를 건설하였다. 하지만이러한 해외 진출과정에서 그리스인들은 진정한 패자(覇者)가 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넘어야할 산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는 바로 오늘날 이란 및 이라크 지역을 중심으로 소아시아일대까지 그 세력을 뻗치고 있던 동방의 강대국,페르시아 제국의 존재였다. 소아시아의 에게 해연안에 건설한 식민시를 중심으로 소아시아 지역으로 진출하려던 그리스인들과 오리엔트 지역을 장악하고 소아시아를 넘어서 그리스 반도로까지 영향권을 확대하려던 대제국 페르시아와의 일전(一戰)은 어찌 보면 애초부터 불가피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하여 벌어진 것이 유명한 페르시아 전쟁(Persian War, 492~479 BC)이었다. 전쟁의 발단은 에게 해 서안의 그리스 식민 도시들이 페르시아 제국의 가중되는 압박에 저항해서 반란을 일으켰고, 이를 그리스 본토의 아테네가 전함을 파견해 지원한 사건이었다. 이를 빌미로 기원전 492년을 시작으로 이후 약 10년 동안 페르시아가 총 3차례에 걸쳐서 그리스 반도에 침공하였다. 이때 벌어진 여러 충돌들 중 가장 대표적인 전투가 페르시아의 제2차 침공(490 BC) 시에 그리스 군대가 대승을 거두었던 마라톤 전투(Battle of Marathon)이다.


기원전 492년의 제1차 침략전쟁에서 실패한후 복수를 날을 갈아온 페르시아의 통치자 다리우스 1세는 총애하던 장군 다티스에게 그리스를점령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당시 페르시아 원정군은 약 2만 5천명의 보병과 1천명의 기병, 그리고 6백 척의 함선으로 편성되었다. 이들은 제1차침략 때와는 달리 함선을 이용, 에게 해를 가로질러서 단번에 아테네 점령을 시도하였다. 이에대항해 그리스인들은 제1차 침공 시에 페르시아군과의 대전(對戰) 경험을 갖고 있던 아테네 출신의 밀티아데스를 총사령관으로 임명하였다. 그리스 연합군을 지휘하게 된 밀티아데스는 아 테네에서 북쪽으로 40여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마라톤 평원에서 상륙한 페르시아 군을 대적하기로 결심하였다.

마라톤 전투의 실상은 어떠하였을까? 당시 경무장 보병 및 기병으로 편성된 페르시아군은 약2만 5천명인데 비해 그리스 군은 그 절반 정도인1만 1천 명에 불과하였다. 이러한 열세 속에서밀티아데스는 마라톤 평원을 둘러싸고 있던 높은 언덕과 하천이라는 자연장애물을 고려하여부대를 배치하였다. 페르시아군 기병의 기동공간을 제한하면서 병력을 좌우 양측에 집중 배치하고, 중앙에는 얇게 배치하는 이른바 ‘양익 포위 전투대형’으로 페르시아의 주력보병을 사방에서 압박하였다. 적군이 예상치 못한 창의적 전술과 빠른 공격으로 과감하게 밀어붙인 덕분에그리스군은 겨우 200여명의 인명손실을 입은 데비해, 페르시아군은 약 6,400명이 죽는 엄청난승리를 얻을 수 있었다.전력상 열세했던 그리스 군은 무기체계와 전략전술의 우세를 바탕으로 대승을 거둘 수 있었다.

그 덕분에 그리스인들은 에게 해를 제패하고 더나아가서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서구문화의 원형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달리 말해, 바로 이 마라톤 전투에서 당시 그리스 군이 갖고 있던 무기와무기체계, 그리고 이에 기초해 실행된 전략전술의우월성이 뚜렷하게 발현되었다고 볼 수 있다.

전쟁의 무기와 무기체계

어떻게 이러한 일이 가능했을까? 물론 지휘관밀티아데스의 리더십과 그의 작전술을 승리의직접적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밀티아데스가 승리의 전술을 구사할 수 있도록
만들었을까? 당시 그리스군의 주력이 중무장 보병대였다는 점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고대 그리스군의 가장 중요한 구성원은 호플리테스(hoplites, 병사들이 들고 있던 호플론이라는방패에서 이름이 유래)로 불린 시민 전사였다.

당시 그리스의 폴리스들에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재산을 가진 자유민만이 호플리테스가 될 수있었고, 이들은 해당 폴리스의 주권자로서 공동체에 위기가 닥칠 때마다 거의 평생토록 병역상의 의무를 감당해야만 했다.

호플리테스의 무장은 어떠했을까? 그리스 시민병사는 갑옷을 착용하고 투구를 쓴 중무장 보병으로 허리에는 단검을 차고, 왼손에는 호플론(hoplon)이라는 대형 원형방패(병사가 무릎을꿇은 자세에서 전신을 보호할 수 있을 정도로 컸음. 구체적으로 직경 90~100센티미터의 원형목재 가장자리에 청동판을 덧대었고, 방패 안쪽의중앙과 가장자리에 두 개의 손잡이 고리를 부착하였음. 무게는 통상 2～3kg에 달함)를 들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오른손에는 호플리테스의 기본 무기인 사리사(sarissa)라는 찌르기 용 긴 창(보통 길이 3미터, 이후 알렉산더 대왕 시에는4~5미터까지 길어지고 무게도 4~5kg으로 증가)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특히 전사가 착용한 갑주(甲冑)는 청동 헬멧, 흉갑(가슴 보호용 청동 금속판), 그리고 가죽에 잇댄 정강이 보호용 금속판등으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완전무장할 시 그 무게가 무려 34킬로그램에 달할 정도였다. 각 폴리스마다 독특한 모양과 색깔의 갑주를 갖고 있었는데, 이를 통해 해당 공동체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단결력을 과시하고자 하였다.

그리스 시민 전사들은 이렇게 개인별로 무장하는 차원에서 머물지 않았다. 자신들의 무기를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최대의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는 무기체계를 발전시켰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호플리테스 부대의 이점을 최대한 반영한 팔랑크스(phalanx)라는 전투대형이었다.

이는 중무장한 보병이 개인 간격 약 90cm를유지하면서 직사각형 모양(12열x16오, 스파르타의 경우에는 8열 횡대대형)을 이룬 ‘중무장 밀집보병대’였다. 이들은 오늘날 군의 의식행사 시볼 수 있는 퍼레이드 대형으로 경쾌한 플루트 소리에 발을 맞추어 적진으로 나아가면서 엄청난충격력을 발휘하였다. 사실상 각개 시민병사는대부분 귀족의 자제들로 편성되어 있던 기병대에 비해 보잘 것 없었다. 즉, 이들이 서로 고립되어 있을 경우에는 기병의 좋은 먹잇감에 불과하였다. 하지만 개별 병사들이 집결하여 밀집대형을 이룰 경우, 강력한 전투력 발휘가 가능해져서아무리 훈련이 잘된 기병대라 하더라도 격파하기가 쉽지 않았다.

한편, 기본적으로 페르시아군은 각 민족별로다양한 방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페르시아 인들로 편성되어 있던 정예부대의 경우 보병의 주무기는 활이었다. 방패와 갑옷은 기동력 향상을위해 가벼운 나뭇가지와 천으로 만든 것을 착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페르시아 군의 주력은 활과투창으로 무장하고 있던 기병대였다. 최대 유효사거리가 약 160미터에 달한 이들의 활은 당시소아시아 지역에서는 이미 공포의 무기로 위력을 떨치고 있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일반적으로페르시아 군은 먼저 기병대를 이용하여 공격을펼친 다음에 보병이 활로 집중사격을 가하는 전술을 구사하였다. 좀 더 구체적으로 페르시아 군의 기본 공격대형은 중앙에 보병 그리고 좌우 양쪽에 기병대를 배치하고, 기병으로 하여금 적군의 측방과 후방을 공격토록 하였다. 이러한 기병운용술은 제1차 세계대전 시까지 거의 2천년 이상이나 서양 기병전술의 전범(典範)으로 자리를잡았다. 비록 전쟁에서는 패했을지언정, 당시 페르시아 군은 세계 최초로 고도의 기병전술을 구사하고 있었다.

원래 팔랑크스는 기원전 3천년 경 고대 수메르에서 시작된 전투대형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오리엔트 지역의 첨단 전투장비는 전차(chariot)로써 적진을 와해시키는 공격용 무기로 사용되었다. 먼저 전차가 적진을 돌파한 후 이어서 밀집대형이 전진하여 적군을 격파하였다. 이러한고대의 전투대형이 기원전 7세기경에 그리스인들에게 전해진 것이다. 그리스 지역은 산악이 많아서 기병대가 기동하기에 곤란하였다. 더욱이등자가 발명되기 이전인지라 기수가 낙마(落馬)하기 쉬웠기에 말을 탄 채 밀집보병을 공격하기가 여의치 않았다.

그렇다면 이러한 팔랑크스를 중심으로 구성된 그리스군의 무기체계는 어떠하였을까? 다시말해, 각 무기는 어떻게 사용되었을까? 그리스군에서 가장 중요한 무기는 사리사로서 무게체계의 핵심을 이루고 있었다. 팔랑크스의 제1열은 사리사를 허리높이 만큼 들어 올리고 제2열과 3열의 병사들은 전방의 병사 어깨 위에 창을올려놓아 적군을 향해 겨냥하는 자세를 취하였다. 전투 과정에서 쓰러지는 병사가 나타나면 창을 거의 수직으로 세운 채 전진하고 있던 제4열의 병사가 신속하게 빈자리를 메꾸었다. 그렇게되면 팔랑크스 정면은 가시처럼 튀어나온 수십개의 긴 창들로 흡사 숲을 이루었는데, 이는 적군에게 커다란 위협이 되었다.

사리사가 공격용 무기라면 원형방패(호플론)는 방어용 무기였다. 병사는 중앙의 손잡이 끈에 왼쪽 팔꿈치까지 끼우고 원형방패의 가장자리에 있는 고리형 끈을 손으로 움켜잡은 채 몸의전면을 방호하면서 전진하였다. 실제로는 원형방패를 왼손에 들게 될 경우, 자신의 절반과 좌측 동료병사의 절반을 방패로 가릴 수 있었다.

그리스 시민병사의 무장 결국 팔랑크스의 맨 우측 대열만 방어가 되지 않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측에는 가장 노련하고 강한 병사를 배치하였다. 이러한 연유로 접전 시 팔랑크스는 상대방 대형의 약점인 왼쪽을집중적으로 공격하였고, 이로 인해 팔랑크스는자연스럽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선회하게 되었다. 방패를 서로 잇댄 상태에서 사리사를 전방으로 겨누거나 위로 추겨 세운 자세로 대형을 유지한 채 진군해야만 되었기에 무엇보다도 각개병사들 간의 신뢰와 단결이 중요하였다.

극단적으로는 아무리 적군의 공격이 강력하다고 하더라도 기본대형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당시 자유 시민 전사들로 편성된 그리스군은 다른 지역의 병사들에 비해 보다 강한 용기와 단결력을 발휘할 수있었다. 당시 그리스 사회에서는 전장에서 자신이 담당한 역할을 죽기까지 완수해야지 그렇지않고 창과 방패를 버리고 도주하는 것을 가장 비겁한 행위로 간주하였다. 팔랑크스의 특성상 공포에 질린 병사들이 대열을 이탈해 도주하기 시작할 경우, 이미 승패는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동료 병사들의 목숨은 물론이고 일종의 운명 공동체인 폴리스의 안위가 자신의 두어깨에 달려 있다는 인식을 평소 훈련을 통해 뼈속 깊이 새길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무기체계를 바탕으로 그리스군은 고대세계에서는 어느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가공할 충격력과 공격력을갖춘 채, 주변의 적들을 압도할 수 있었다. 이후로마의 보병군단이 출현하기 이전까지 그리스의 팔랑크스 부대는 정면대결에서는 어느 누구에게도 지지 않은 막강의 전투력을 과시하였다.

당시 에게 해 주변에서 팔랑크스와 같은 혁신적 전투방식이 왜 그리스 반도에서만 발전한 이유는 무엇일까? 경쟁국 페르시아는 왜 이러한전투대형을 취할 수 없었을까? 이에 대한 해답은 당시 그리스 사회 및 그 사회가 토대를 두고있던 환경적 특징에서 찾을 수 있다. 기원전 7~8세기경부터 그리스 반도에서는 농업기술이 발달하면서 점차로 가족단위의 자작농(自作農) 사회로 바뀌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인구가 늘어나면서 해안의 평지를 중심으로 폴리스가 형성되었는데, 바로 이들 자작농들이 폴리스의 자유민을 구성하면서 자치적으로 공동체의 행정을 이끌어나갔다. 이때 참정권 행사라는 정치제도에서 발전한 민주주의 원리는 군사제도에도 적용되어 자유 시민들 모두가 참여하는 군대를 형성하게 되었다.

당시 그리스에서 군역은 스스로 무장할 능력을 갖춘 폴리스의 시민들만이 누릴 수 있던 일종의 특권이었다. 이들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고 구성원 간에 평등성이 높아서 굳건한 단결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팔랑크스와 같은 전투대형은 무엇보다도 고도의 조직력을 필요로 하였는데, 바로 재산을 소유한 시민들로 구성된 그리스 군대가 이에 적합했던 것이다.

특히 페르시아 전쟁에서 엿볼 수 있듯이 말을 탄적 기병이 빠른 속도로 공격해 올 때 보병병사가전열을 이탈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는 데는 불굴의 용기가 필요하였다. 이는 바로 자신의 공동체에 대한 애착과 군인으로서의 자긍심, 그리고 이에 기초한 강한 단결력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팔랑크스로 대표되는 그리스인들의 무기체계는 이들이 몸담고 있던 그리스반도의 지형적 특징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정착하여 세력을 키운 그리스 반도는 약 5만 7천 평방킬로미터로 오늘날
스위스보다 약간 넓은 편이었다. 하지만 전 국토의 80퍼센트 이상이 산악지대인지라 농경에 필요한 토지가 매우 부족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인들 상호간의 통교도 크게 제약을 받았다. 그리스 반도의 중앙지대를 종단하여 핀도스 산맥이버티고 있었고, 남서쪽에 위치한 펠로폰네소스반도는 해발 600미터에 달하는 고지대였다. 비록따뜻한 지중해 덕분에 기후는 온난한 편이었으나, 강수량이 극히 적어서 밀과 같은 일반 곡물을재배하기가 어려웠고 기껏해야 올리브나 포도와같은 과일 작물을 생산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다보니 그리스인들은 일찍부터 수입 곡물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상업이발달하고 급기야는 해외로 적극 진출하여 지중해 주변에 식민도시를 건설하였다. 이러한 생활방식이 지속되면서 그리스 반도에는 주로 해안가의 평지를 중심으로 대소 규모의 폴리스들이등장하였고, 농업 및 상업 활동을 통해 일정한부를 축적한 시민계층이 형성되어 정치에 참여하고 군사력의 근간을 이루게 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및 환경적 요인들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자신들에게 가장 적합한 보병 중심의 무기체계와전략전술을 발전시켰던 것이다.

전쟁의 의미와 교훈

이후 페르시아는 기원전 480년에 세 번째로그리스 반도에 쳐들어 왔다. 다리우스 1세를 계승한 크세르크세스가 16만 명의 대군을 이끌고이번에야 말로 끝장을 내겠다는 각오로 세 번째침략을 단행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해군의 활약에 힘입은 그리스가 극적으로 승리함으로써 10여 년 동안 이어졌던 페르시아 전쟁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전쟁이 종결된 것은 이때였으나, 승리의 발판은 이미 제2차 침략을 격퇴한 마라톤전투에서 마련됐다고 볼 수 있다. 전후 에게해의 제해권을 장악한 그리스인들은 폴리스 아테네를 중심으로 찬란한 문화예술을 꽃피울 수있었고, 이후 이는 오늘날 서양문명의 초석이 되었음을 앞에서 언급한 바 있다.

페르시아 전쟁을 통해서 그리스인들이 발전시킨 우월한 무기체계야 말로 그리스 반도 번영의 요체였음을 알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의전쟁경험은 자신이 처한 시대적 및 환경적 조건에 가장 적합한 무기체계를 개발하고 이를 변화하는 내외적 조건들에 알맞게 지속적으로 변화발전시키는 작업이 매우 중요함을 일깨워준다. 왜냐하면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그리스인들은 승리감에 도취되어 이후 무기체계를발전시키려는 노력을 게을리 한 대가를 톡톡히치러야만 했기 때문이다.

밀집된 병력으로 구성된 그리스 팔랑크스는기복이 심한 지형에서는 장기인 충격력을 발휘하기가 어려웠다. 지형상 운용의 제한, 측후방방어 대책 미비 등이 그리스 팔랑크스가 안고 있던 치명적 단점이었다. 정면 승부 시 충격력과돌파력은 우수했으나, 유연성 부족으로 교전 중밀집대형의 어느 한쪽이 무너지면 패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 그리스인들은 그동안 이룬 승리에 너무 도취한 나머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 결과, 처음에는 그리스 반도 북쪽의 마케도니아에게, 그리고 종국에는 지중해 서쪽 이탈리아 반도에서 발흥한 로마에게 정복당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