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내주
육군 대령
육군사관학교 군사사학과 교수




전쟁의 개요

포에니 전쟁은 기원전 264~146년에 이탈리아반도를 통일한 공화정 치하의 로마와 당시 지중해의 해상권을 장악하고 있던 북아프리카 페니키아인들의 도시국가 카르타고 간에 벌어진 전쟁을 말한다. 모두 3차례에 걸쳐서 벌어진 전쟁에서 로마의 최종 승리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은 바로 기원전 202년에 북아프리카의 자마 평원에서 스키피오의 로마군과 한니발의 카르타고 군이 충돌한 자마 전투였다.




전쟁의 배경
지중해 동쪽 에게 해를 중심으로 번영을 누리던 그리스 세계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사망과더불어 쇠퇴하고, 기원전 300년경에 이르면 지중해 서쪽 이탈리아 반도에서 뒤늦게 대두한 신흥 강국 로마의 위협에 직면하게 되었다. 얼마후 세계사의 대표적 제국으로 군림하게 되는 로마는 처음에는 강대국의 모습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지중해를 남북으로 가르는 이탈리아 반도 중앙지대의 티베르 강가에서 작은 도시국가로 출발한 로마는 이후 5세기 동안에 걸쳐서 오리엔트를 포함한 전 지중해 세계를 정복하는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정치적으로 왕정(753~510BC), 공화정(510~27 BC), 제정(27 BC~AD 476)의 단계를 거치면서 발전을 거듭, 제정 초창기에‘팍스 로마나(Pax Romana)’ 시대를 활짝 열었다. 지중해를 중심으로 발전한 기존 문화에 다른이민족들의 여러 문화를 융합시켜서 수준 높은실용적 문화를 창출, 이를 유럽에 전파함으로써오늘날 서구문명이 형성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다.

로마가 대제국으로 발전하는 과정에는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이 중에서 로마가 이탈리아 반도를 벗어나서 지중해 세계로 나아가는데 결정적 계기를 마련한 것이 바로 포에니 전쟁(Punic Wars, 264~146 BC)이었다. 이는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한 로마가 당시 지중해의 교역과제해권을 장악하고 있던 북아프리카의 도시국가 카르타고(Carthago)와 국가의 명운(命運)을걸고서 100여 년 동안 3차례에 걸쳐서 벌인 싸움을 말한다.

전쟁의 경과
이탈리아 반도 남쪽에 있는 시칠리아 섬의 지배권을 놓고서 마침내 로마와 카르타고 간에 제1차 포에니 전쟁(264~241 BC)이 벌어졌다.

 해군력에서 열세에 놓여 있던 로마군이 강인한 정신력과 단결력을 발휘한 덕분에 승리하여 시칠리아 섬을 차지하였다. 이후 절치부심하던 카르타고는 명장 한니발(Hannibal)의 선도 하에 제1차충돌에서의 패배를 설욕할 목적으로 제2차 포에니 전쟁(218~201 BC)을 일으켰다. 카르타고의식민지였던 스페인에서 대군을 이끌고 알프스를 횡단해 곧장 로마 영내로 진격한 한니발의 카르타고 군은 칸나에 전투(Battle of Cannae, 216BC)에서 로마군에 대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카르타고에 한니발이 있었다면, 로마에는 스키피오(Scipio Africanus)가 있었다. 일치단결한 공화국 로마시민들의 힘과 의지를 효과적으로 결집한 스키피오는 카르타고 본국과의 관계가 헝클어져 있던 한니발의 군대를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의 남서쪽에서 벌어진 자마 전투(Battle of Zama, 202 BC)에서 격파하고 재차승리를 얻었다. 이후 3번째로 벌어진 양국 간의전쟁(149~148 BC)을 통해 로마는 카르타고 자체를 지상에서 아예 없애버리는 초토화 조치를 취하였다. 이로써 로마는 완벽하게 지중해의 제해권을 장악하고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전(全) 지역을 정복할 수 있는 확고한 발판을 마련할 수있었다.

3차례의 포에니 전쟁 과정에서 벌어진 여러전투들 중 로마에게 결정적인 승기를 가져다준것은 제2차 포에니 전쟁 시의 자마전투(Battleof Zama, 202 BC)였다. 칸나에 전투에서 참패한 로마는 복수의 칼을 갈고 있었고, 이를 실천으로 옮긴 인물이 바로 스키피오였던 것이다.

그는 거의 14년째 이탈리아 반도에서 진을 치고있는 한니발을 몰아내기 위해서는 그의 본거지를 공략하는 것이 최상책이라 판단하고 기원전206~204년에 직접적으로 이베리아 반도 및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 본토를 공격하였다.

이 원정은 성공을 거두어 카르타고는 로마의 항복조건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자신의 본거지인 에스파냐를 상실하고 더구나 카르타고 본국으로부터 소환 지시까지 받은 한니발은 더 이상로마의 영토에 머물고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비록 한니발이 이탈리아 반도로부터는 물러났으나 그와 그의 군대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명장 한니발이 건재하고 있는 한 로마인들은 진정한 평화의 시간을 가질 수 없었다.



이러한 본질적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기회는 의외로 빨리 왔다. 기원전 203년 봄에 카르타고해안에서 좌초한 로마의 보급선단을 카르타고인들이 이전에 맺은 조약을 무시한 채 약탈하는사건이 벌어졌다. 이를 빌미로 스키피오는 원로원을 설득하여 같은 해에 재차 카르타고 원정길에 올랐고, 마침내 기원전 202년 9월의 어느 날 북아프리카의 자마 평원에서 숙적 한니발의 군대와 결전을 앞두기에 이르렀다. 부대 규모 상으로는 3만 명 정도였던 스키피오의 로마 원정군에 비해 한니발 군은 약 4만 명으로 수적으로 우세하였다. 게다가 한니발에게는 80여 마리의 전투용 코끼리가 있었다. 외관상으로만 보면 한니발 진영이 우세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적으로는 그렇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스키피오의 병사된 베테랑이었던데 비해 한니발이 거느린 병사들은 새로 모집한 신병들과 황급하게 고용한 용
병들이 주류를 이룬 탓에 훈련 상태가 미흡하고실전 경험은 거의 없는 형편이었다.한니발은 전투대형을 총 3열로 편성하였다.

제1열과 제2열에는 전투력이 뒤떨어지는 신병과 용병을 배치하고, 마지막 제3열에는 이탈리아 원정에 참전했던 백전노장들을 두어 최종적으로 적군의 숨통을 끓으려고 하였다. 한니발은우선 부대의 선두에 있던 코끼리 부대를 로마군진영으로 돌진시키고, 그 뒤를 보병부대가 따르도록 하였다. 하지만 로마군은 강했고 코끼리의등장에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계획한 대로대응하였다. 곧 이어 카르타고의 보병대가 밀려 들면서 양측 간에 치열한 백병전이 벌어졌다.

한동안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벌어진 후 무거운 방패와 갑옷으로 무장하고 풍부한 전투경험을 갖
고 있던 로마군 보병대가 서서히 카르타고 군을압도하기 시작하였다. 한니발은 아껴두었던 제3열의 노련한 병사들까지 투입하였으나 전세를역전시키지 못하였다.

설상가상으로 로마와 연합한 누미디아 기병대로부터 후위를 기습당함으로써 카르타고 군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와해되고 말았다. 승기를 잡은 로마군은 도망하는 카르타고 병사들을 추격하여 무참하게 찔러 죽였다. 카르타고 진영은 초토화되었고, 로마군이 외치는 승리의 함성만이 자마의 평원에 울려 퍼졌다. 이 전투에서 카르타고는 2만 명 이상의 전상자 피해를 입은데 비해 로마군은 겨우 1,500명의 인명 피해만을 입었을 뿐이었다. 한니발은 소수의 잔존 병력과 참모들을 이끌고 탈출에 성공하였지만, 이로써 한때 로마인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위대한 군사 전략가’라는 명성도 사라지고 도망자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자마전투의 패배로 카르타고는 보다 가혹한 강화 조건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로써 제2차 포에니 전쟁은 일단 막을내렸으나 카르타고 멸망의 ‘시계추’는 더욱 빨리
움직이게 되었다.

전쟁의 무기와 무기체계
로마는 어떻게 티베르 강가의 작은 도시국가에서 지중해의 패자(覇者)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그 해답은 바로 로마의 우월한 군사력에 숨어 있었다. 로마인들은 부단한 전쟁을 통해 얻은교훈을 토대로 자신들의 군대를 창의적으로 발전시켜 왔다. 실질적인 것을 추구한 로마인들의생활 자세와 강한 공동체 의식이 군사력 증강의초석이 되었다. 로마군의 발전은 시민병사가 주축을 이룬 각개 병사의 무장에서부터 ‘로마군단’으로 대표되는 전투대형, 그리고 이를 운용하는무기체계에 이르기까지 전 범위에 걸쳐서 이루어졌다.

무엇보다도 로마군을 나타내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로마군단(Roman Legion)의 존재였다. 기원전 753년 최초로 국가 형태를 갖춘 이래로 로마인들은 주변 부족들과 끊임없는 충돌을 빗어왔고, 이러한 환경에서 보다 효과적인전투방식으로 개발한 것이 바로 로마군단이었다. 기본적으로 로마군단은 그리스의 팔랑크스와 비슷하게 전투를 수행하는 부대편성 개념이었다. 비록 그 원형은 그리스 팔랑크스에서 갖고 왔다고 하더라도 로마인들은 수용한 제도를 그대로 모방하지 않고 이를 자신들의 지리
적 및 사회적 실정에 알맞게 변형하여 발전시켰다. 그리스 군대가 단일대형 팔랑크스를 고집한 것에 비해, 로마군은 팔랑크스를 대소 규모의 다양한 부대로 세분화하여 전투 시 각 전술부대가 전투 상황에 알맞게 유기적으로 작동하도록 조직화하였다. 대규모의 단일 제대로 편성되어 기동성과 유연성이 뒤떨어졌던 그리스 팔랑크스에 비해 로마군은 변화를 거듭하여 약 40명 단위의 센츄리(century), 2개의 센츄리가 모인 매니플(maniple), 4개의 매니플인 모인 코호트(cohort), 그리고 10개의 코호트가 모인 군단(legion, 기병대 300명을 포함하여 총 4,500명으로 구성) 등으로 세분화 되었다. 또한 기본적으
로 밀집대형을 유지하면서도 개별 병사의 기량을 중시하여 대열 내에서 병사 간의 간격을 넓게유지하였다.

이처럼 로마가 융통성 있는 전투방식을 개발
하여 운용할 수 있던 밑바탕에는 로마군이 사용한 무기와 무기체계가 있었다. 로마군의 핵심 무기는 그 길이가 60-70센티미터에 불과할 정도로 짧은 글라디우스(gladius)라 불린 양날 검이었다. 이와
더불어 필룸(pilum)이라는 투창을 소지했는데, 이는 길이가1.5미터(무게 약 2킬로그램)에 불과한 단창이었다.

그리스 군이 사리사라는 장창(長槍)을 주 무기로 삼은데 비해, 로마 보병은 글라디우스라는 단검과 필룸이라는 단창으로 무장했던 것이다. 특히 그리스 시대 이래로 핵심 무기였던 장창의 시대가 저물고 당시까지 보조무기에 불과했던 칼이 주요 무기로 등장하였다. 로마의 중무장 보병대는 그리스 팔랑크스처럼 장창을 나열하여 고슴도치와 같은 대형을 이루는 모습과는 거리가멀었다. 전투가 시작되어 적과의 거리가 약 20미터로 좁혀졌을 때 일단 필룸을 던져서 적군을 살상하고 대형을 흩트려 놓은 후 곧바로 돌진하여글라디우스로 백병전을 벌였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장창이나 장검은 별다른 효용이 없었고, 글라디우스처럼 짧고 찌르기에 용이한 무기가 최고의 효과를 낼 수 있었다.

어떻게 로마군 병사들은 길이가 짧은 글라디우스로 무장하고서도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을까? 그 비밀은 스큐툼(scutum)이라 불린 로마군의 방패에 숨어 있었다. 로마군은 거의 원형이었던 기존 방패를 길이 1.2미터, 폭 60~80센티미터(무게 12킬로그램)의 세 겹으로 나무판을 덧댄볼록한 장방형의 대형방패로 개선하였다. 로마군은 이 방패를 이용하여 집단적으로 다양한 공격 및 방어대형을 취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접전 중에 방패로 몸을 방호하면서 백병전을 전개할 수 있었다. 이를 위해 로마군 병사는 평소에도 적진으로 돌격하여 방패로 막고 글라디우스로 적의 급소를 찌르는 고강도 훈련을 반복하였다. 대형방패 덕분에 로마군 병사는그리스 장갑보병의 갑옷보다 경량의갑옷을 입고서도 방호능력과 생존능력을 높일 수 있었다.

이러한 무기들을 통해 유추해 볼때, 본질적으로 로마군은 근접전을벌여서 승부를 결정짓는 성향이 강하였다. 특히 던지기에 적당한 길이의 필룸은 근거리에서 적에게 투창시 상당한 위력을 발휘하였다. 수십명의 병사가 동시에 필룸을 투척할경우, 적군의 입장에서는 비 오듯이 쏟아지는 창끝을 피하기가 어려웠다. 다행히 이를 방패로 막는데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적군 병사의 입장에서 상황은 별로 달라진것이 없었다. 로마군의 필룸은 창 끝 부분이 가느다란 쇠로 만들어져서 적군의 방패에 꽂히게
되면 땅으로 떨어지지 않고 방패에 박힌 채로 남아 있어서 적의 방패를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필룸 공격으로 대열이 와해된 적 진영으로 로마의병사들이 고함을 지르면서 쇄도하여 날카로운글라디우스로 방호 능력을 상실한 적군을 무자비하게 살상하였다. 주 무기인 사리사가 너무 무겁고 길어서 기동성이 떨어지고, 무엇보다도 사리사의 상실 시 생존수단이 거의 없다는 그리스중무장 보병대의 치명적인 약점들을 로마군이효과적으로 보완한 셈이었다.

로마군은 국가 건설의 초창기부터 지중해 세계의 패자로 우뚝 설 때까지 수많은 전쟁을 치루면서 고대세계에서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정교한 무기체계를 발전시켰다. 원래 17-45세의시민병으로 구성되었던 로마군은 영토의 확장과 더불어 상비군으로 전환하였고, 이와 더불어 전투 시 병력 운용을 체계화하였다. 초기에는 로마군도 그리스식의 팔랑크스를 기본대형으로 유지하였다. 하지만 특히 산악지형 전투에서 기존의 병력 밀집 배치식 팔랑크스의 취약점이 심화되면서 이를 매니플이라 불린 일종
의 중대 단위(10오x12열, 120명)를 중심으로 한소규모 전술집단의 집합체(개인 간격 90센티미터)로 변경하여 신축성과 융통성을 향상시켰다.

약 4,200~4,800명으로 편성된 로마군단 내에서단독 전술행동의 기초를 이룬 것은 바로 매니플 중대로서 이를 통해 로마군은 종래에 팔랑크스의 밀집대형이 지닌 약점들을 극복하고 고도의 전투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물론 포에니 전쟁 이후 마리우스의 군제개혁 시에 당대의 필요에 의해 매니플 중심에서 대대급 규모인 코호트(cohort) 중심체제로 병력 운용 개념이 변경되었지만, 여전히 매니플은 로마군의 기본적인 전술행동 단위로 중시되었다.

로마군은 전투부대 편성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전투방식도 체계화하였다. 각개 병사들의특성을 고려하여 배치한 대형으로 전투를 수행했던 것이다.
 
보병 중심으로 편성되었던 로마군단은 전체 4,200~4,800명의 보병병력을 크게 중보병과 경보병으로 구분하였다. 특히 중보병의경우,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여 부대의 전투역량을 신장시켰다. 중보병대의 제1전열(戰列)에는 하스타티(25~30세)라고 불린 상대적으로 신참 병사들로 구성된 10개 중대를, 제2전열에는프린시페(30~40세)라는 노련하고 경험이 풍부한 최상의 전투능력을 지닌 병사들로 구성된 10개 중대를, 그리고 제3전열에는 트리아리(40~45세)라는 나이는 들었으나 산전수전을 모두 겪은 고참병사들로 구성된 5~10개 중대를 배치하여 신참 병사들의 활화산 같은 혈기를 보완하였다. 그리고 군단의 맨 앞에는 벨리테스라고 부른17~25세의 나이어린 병사들로 편성한 10개의경보병 중대를 배치하여 정찰 및 척후, 그리고접적(接敵) 직전에 적군 진영을 교란시키는 임무를 부과하였다.

이렇게 조직화된 군단의 장병들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싸웠을까? 공격 나팔 신호가 떨어지면 병사들은 고함을 지르면서 적진으로 뛰어 들었다. 우선, 맨 앞에 배치되어 있던 벨리테스 중대들이 필룸을 던져서 적 진형을 흔들어 놓고 뒤로 빠지면, 이어서 하스타티 중대들이 필룸을 던지고 스큐툼으로 몸을 방호하면서 앞으로 전진,글라디우스로 적과 접전을 벌였다. 그러다가 이들이 지치거나 특히 적에게 밀리는 상황이 벌어지면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프린시페스 중대들이 투입되어 적군을 상대하고 하스타티 중대는2선(線)으로 물러났다. 만일 프린시페스의 투입으로도 전투가 종결되지 않을 경우, 최고참들로구성된 트리아리 중대가 투입되어 최후의 일격을 가해 전투를 마무리 하였다. 상대적으로 소수였던 기병대는 군단의 양쪽 측방에 배치되어 전투 중 적 기병을 견제 및 공격하고, 나중에 추격전을 수행하였다.

이처럼 로마군은 병사들을 연령대별로 구분하여 편성함으로써 동일한 전투경험과 신체적능력에서 나오는 전투역량을 극대화하고 더불어 끈끈한 전우애를 고취하여 견고한 단결력을유지하였다. 평소 부단한 훈련을 통해 개별 전열(戰列) 간에 유기적이고 원활한 임무 수행이 가능하도록 숙달함으로써 로마군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시스템화가 잘된 천하무적의 군단을 보유할 수 있었다.

로마군의 군사적 창의성은 비단 지상군에만국한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포에니 전쟁을 수행하면서 로마는 해군력의 중요성을 자각하고 이를 적극 발전시켰던 것이다. 이 시대에 지중해에활약하던 무장선은 갤리선(Galley)으로 불렸다.

이는 사람의 힘으로 노를 저어 동력을 얻는 노선(櫓船)을 말하는데, 이 배는 16세기에 범선의 시대가 열리기 이전까지 오랜 기간 동안 함선의 주축을 이루었다. 노선은 노를 이용하여 빠르게 돌진할 수 있도록 좁고 길었으며, 뱃머리와 용골은충격에 강하게 제작되었다. 특히 뱃머리에는 충돌 공격에 필요한 충각을 설치하였다. 빠른 속도로 상대 함선에 충격을 가하여 피해를 입히고,상대의 함선에 뛰어올라 백병전을 행하는 형태로 전개되었다.

포에니 전쟁 시에 로마는 지상전에서는 연전연승하였으나 해전에서는 고전하였다. 이에 로마는 해군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카르타고의 5단노선을 복제한 군함을 건조하였음은 물론 육지에서와 동일한 방법으로 싸우는 방법을 고안해내었다. 군함을 최대한 적함에 근접시킨 가운데신속하게 적함으로 건너갈 수 있도록 끝에 갈고리가 달린 잔교(코르부스)를 설치하여 중무장한지상군이 신속하게 적을 제압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다리장치 덕분에 로마는 해전에서의 열세를 극복하고 궁극적으로는 카르타고를 굴복시키고 지중해의 지배권을 장악할 수 있었다. 이처럼 로마는 창의적인 장치(잔교)를 개발하여 해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갤리선을 이용한 충돌과백병전식의 해전은 이후에도 지속되어 기원전31년의 악티움 해전과 심지어는 1570년 레판토해전에서도 그 위력을 발휘하였다.

전쟁의 의미와 교훈
이처럼 군단을 중심으로 전략전술 및 무기체계를 선진화한 로마군은 당대 최고의 전투력을구비할 수 있었다. 이는 로마가 이탈리아 반도를 벗어나서 전 지중해 세계를 제패하는데 핵심적 수단이 되었다. 글라디우스, 필룸, 그리고 스큐툼으로 무장한 로마군은 지속적으로 효율적인 전법을 창안하고 이를 고된 훈련과 실전을 통해 숙달하였다. 바로 이러한 충성스럽고 애국심에 넘치는 로마의 시민군대가 있었기에 로마군단은 무적을 자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거듭되는 정복전쟁을 통해 속주로부터 풍부한 물산이 유입되면서 로마인의 상무적기풍도 점차 이완되었다. 일반시민들 사이에 병역기피 현상이 만연하면서 무엇보다도 병역 자원의 부족 현상이 나타났다. 이를 해결하는 방편으로 로마군은 게르만족 출신 용병을 고용하였다. 군대의 인적 구성이 변화함에 따라 전투대형과 전투방식도 바뀌게 되었다. 물론 보다 효과적인 전략전술과 무기체계를 지속적으로 추구하였으나, 근본적으로 이를 실제 행동으로 옮길 장병들의 전투 능력과 정신 무장은 지속적으로 약화되었다. 결국에는 천하를 호령하던 로마제국도 이민족의 침략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아무리 세상을 호령하는 우월한 무기나 무기체계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소리 없이 밀려오는 자만심과 나태함을 경계하지 않을 경우, 어떠한 국가도 그 안보를 장담할 수 없다는 교훈을 로마의흥망을 통해 배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