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내주
육군 대령
육군사관학교 군사사학과 교수

전쟁의 개요
대이민족 전쟁은 지중해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영토를 확장하던 로마제국이 게르만족을 비롯한 주변 이민족들과 벌인 일련의 전쟁을 말한다. 승승장구하던 로마제국이 결정적으로 그 한계를 드러낸 것이 바로 378년 보병 중심의 로마군단이 기병 중심으로 구성된 게르만족의 일파인 고트족과 대결하여 참패한 아드리아노플 전투였다.

전쟁의 배경
포에니 전쟁의 승리로 지중해 세계를 제패한로마는 번영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후 영토 팽창을 지속하여 기원전 50년경에 이르면 그 영토가 동으로는 오늘날 이라크까지, 서로는 오늘날잉글랜드에까지, 북으로는 라인 강까지, 그리고 남으로는 북아프리카의 대부분 지역을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이 과정 중에 정치체제도 변화를 거듭해 왕정에서 공화정을 거쳐서 기원전20년경에 이르면 제정(帝政)에 도달했다. 발전과정 중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 간에 치열한 내전이 벌어지고, 최종 승자였던 카이사르의 암살을 계기로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 간에 후계자 쟁탈전이 벌어져 국력이 약화됐다. 하지만기원전 27년 옥타비아누스가 최종 실권자가 되면서 점차로 안정을 회복하게 됐다. 로마 원로원으로부터 ‘아우구스투스(존엄자)’라는 칭호를 받은 옥타비아누스는 제정을 확립하고 광대한 로마제국에 평화와 질서를 가져다줬다. 이로부터 2백여 년간 로마제국은 ‘로마의 평화(PaxRomana)’를 향유할 수 있었다.


그러나 번영과 그로 인한 향락은 언제나 그대가가 수반되는 법이었다. 세계를 호령하였던 로마제국도 기원 3세기경에 이르면서 점차쇠퇴의 기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방에 있는 속주(屬州)들로부터 막대한 분량의 물품들이 로마로 쏟아져 들어오면서 물질생활은 풍요로워졌으나, 이와는 반대로 공화정 시기 로마인들이 지녔던 애국심과 상무정신은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군대 역시 병역 기피 현상이 만연하면서 병역자원이 부족하게 됐고, 이를 보충하기위하여 야만족(로마인들이 게르만족을 이렇게칭함) 출신의 용병들을 로마군에 받아들이게 됐다. 그러다보니 이제 병사들은 국가보다는 자신에게 급료를 주는 유력 장군에게 충성을 받치는집단으로 변했다. 사병화(私兵化)의 심화는 곧정치권력을 엿보던 야심가들 간에 권력쟁탈전으로 표출되어 이른바 ‘군인황제시대(235-284)’와 같은 서로 간에 죽고 죽이는 혼전이 벌어졌다. 이러한 혼란을 겪으면서 한때 무적을 자랑하던 로마군단의 전투력은 크게 약화됐고, 급기야 콘스탄티누스 황제 통치기(306-337)에 이르러 제국을 동서(東西)로 분리하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기울어가던 로마군단의 위상에 결정적 치명타를 날린 사건은 서기 378년에 일어난 아드리아노플 전투(Battle of Adrianople)였다. 오늘날 터키 영토에속한 이곳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로마군은 게르만족의 한 분파였던 고트족에게 치욕적인 패배를 당했던 것이다.



전쟁의 경과
엄밀한 의미에서 게르만족의 강한 전투력이어느 날 갑자기 발현된 것은 아니었다. 전술한바와 같이 3세기 중엽 이래로 로마제국이 경제적 및 군사적으로 쇠퇴의 운명으로 빠져들고 있을 때, 역으로 로마제국의 변방지대에 거주하고있던 게르만족이 점차 흥기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용병으로서 로마군의 주축을 이루기 시작했고, 이와 더불어 점차로 로마제국 영토 안으로이주해 들어와 정착했다. 특히 4세기 후반에 접어들어 변방지대에 정착한 게르만족의 인구가크게 늘어나면서 이들의 생활상은 더욱 활기를띄게 됐다. 이러한 와중에 중국 한나라의 서진정책으로 본거지로부터 밀려나게 된 훈족이 동유럽 쪽으로 대이동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는곧 바로 흑해 연안에 흩어져 살고 있던 게르만족 분파인 고트족을 압박했고, 이들이 로마제국영내로 이동할 수밖에 없는 연쇄반응이 일어나게 됐다.


결국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로마제국 땅으로 들어오려는 고트족과 이를 저지하려는 로마군 간에 아드리아노플에서 충돌이 벌어졌다. 훈족을 피해 다뉴브 강을 건너서 로마제국의 영토내로 이동해온 고트족을 격멸하기 위해서 당시동로마제국의 발렌스 황제가 직접 지원군을 이끌고 콘스탄티노플로부터 아드리아노플로 이동해 왔다. 하지만 378년에 벌어진 전투에서 로마군은 로마제국 역사상 최악의 패배를 당했고,심지어는 발렌스 황제마저도 이 싸움에서 전사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이러한 일이 벌어졌을까?우선 당시 전투 상황을 살펴보자. 발렌스 황제가 6만 명의 대군을 이끌고 들이닥칠 상황이 벌어지자 당시 서고트족의 왕은 오늘날 불가리아에 해당하는 트라키아 지방을 로마로부터 양도받는 조건으로 강화를 요청했다. 하지만 발렌스황제는 이번에야 말로 일거에 야만족을 몰아낼수 있는 기회라 판단하고 이 제안을 거부했다.
멀리 아드리아 해가 관망되는 구릉지에서 전투태세에 돌입한 발렌스 황제는 아드리아노플의좁은 벌판에 고트족이 임시로 수레를 모아 구축한 진지의 전방에 로마군을 배치했다. 그는 전체 병력의 80퍼센트에 달하는 중무장 보병대를중앙에, 그리고 20퍼센트를 차지한 기병대를 양익에 배치하고 과감하게 선제공격을 개시했다.

먼저, 기병대를 고트족의 수레진지로 돌진시켰다. 하지만 문제가 이때부터 터지기 시작했다. 로마군의 기병대가 고트족의 수레진지에 거의 도달했을 때, 부근 숲속에서 갑자기 적의 기병대가 나타나 대응했기 때문이다. 결국 로마군기병대는 적의 수레진지를 돌파하지 못한 채 뒤로 후퇴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설상가상으로 멀리 나가있던 고트족 기병대의 주력이 접전 소식을 듣고 신속하게 복귀해 공격에 가담하면서 일순간 로마군 진영은 혼란에 빠지게 됐다. 협소한 공간에 많은 병력이 운집한 탓에 로마군 기병은 물론이고 무엇보다도 중무장 보병들조차거의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이러한 상태에서 전장의 고지대를 선점하고 있던 고트족 기병대가 사방에서 쇄도하고 고트족 보병역시 활을 쏘면서 돌진해 왔다. 이처럼 기동이거의 불가능한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로마군 보병대는 고트족의 포위망에 갇힌 채 살육당하고말았다. 한 낮 동안 벌어진 짧은 전투에서 로마군은 약 4만 명의 정예 병력을 상실하고 발렌스황제마저도 목숨을 잃는 참패를 당하고 말았다.

전쟁의 무기와 무기체계
어떻게 야만족이라고 무시당해 온 고트족이대승을 거둘 수 있었을까? 적군의 실태와 전장의 지형적 특징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고 공격을 감행한 발렌스 황제의 우둔함이 로마군의 패배를 자초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로마군의 작전 실패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무리가 있다. 고트족은 무기력한 로마군과는 달리 기병대의 신속한 기동력을 바탕으로 보병대를 적절히활용하면서 로마군을 포위 공격했던 것이다. 전투 승리의 일등 공신은 고트족 기병대였다. 당시 고트족은 중앙아시아의 스텝지역에 살던 유목민의 후예답게 전체 병력의 3분의 2가량이 기병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아드리아노플 전투 이후로 유럽의 전장에서 보병의 시대가 거하고 기병의 시대가 도래한 것으로 평가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도대체 기병은 언제부터 역사무대에 등장했을까? 말을 타고 그 기동력을 이용하여 싸우는병종인 기병이 처음 전장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기원전 1천년 경으로 추정되고 있다. 물론 초기에는 보병부대가 주축을 이뤘고, 기병은 극히작은 규모에 불과했다. 기병대가 한 국가의 전투력에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기 시작하는 것은 그리스 반도의 마케도니아로부터였다. 기원전 400년경에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는 기병대를 무장(武裝)의 경중(輕重)에 따라 분류하고 선택적으로 활용했다. 즉 중무장 기병대는적진을 돌파하는데, 경무장 기병대는 적의 측방을 공격하거나 추격하는데 동원했다. 기병대의주 무기는 창이었으나 허리에는 단검을 차고 쇠미늘로 제작한 가슴받이용 갑옷과 투구를 착용했다.

중무장 밀집보병 위주의 로마군에서 기병은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3세기 중반～5세기 중반 시기에 일어난 로마군의 조직및 교리상의 변화와 더불어 기병대가 군의 주축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보병 위주였던 로마군을 기병 중심으로 전환하게 만든 가장 결정적요인은 바로 앞에서 살펴본 아드리아노플 전투였다. 4-5만 명의 로마군 정예 병력이 괴멸당한이날 전투에서 로마군을 가장 크게 위협한 것은고트족의 기마 부대였기 때문이다. 이날의 참패이후 로마군단은 기마 궁수병과 기마 투창병을주축으로 하는 중무장 기병대 중심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기병대가 주력으로 대두하면서 무기체계상에 어떠한 변화가 일어났을까? 한마디로본질적인 변화는 없이 상황에 따른 변형만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원래 유럽세계에서 기병의주 무기는 창이었고, 보조무기로 칼이 사용됐다. 그러다가 로마 말기에 제국 주변의 이민족출신 기마 궁수병을 접하면서 활의 위력을 깨닫고 이를 기병 무기로 채택했다. 궁수병들은 접적 직전에 적을 향해 화살을 발사하여 적군의대형을 흩트려놓음으로써 아군 보병부대의 진격에 도움을 줬다. 기병이 주요 병종으로 대두함에 따라 방호력도 향상됐다. 초기에는 경무장이던 로마의 기병은 점차로 활의 관통력에 견딜수 있는 무거운 금속제 (미늘)갑옷을 착용하고활과 함께 창, 칼, 방패를 구비했다.

이처럼 로마군단 내에서 위상을 정립한 기병대는 로마 멸망(476년) 이후 크게 발전했다. 무엇보다도 6세기경에 현실화되는 마구용(馬具用) 제작기술의 발전이 기여했다. 기병에 필요한 장비들로는 안장, 편자, 고삐 등 다양했으나가장 핵심적 장비는 바로 ‘등자(鐙子, stirrup)’였다. 등자는 살상용 무기가 아니었다. 단지 말위에 탄 기사가 안정된 자세를 취할 수 있도록양 다리를 받쳐서 고정시켜주는 보조 장비였다.하지만 이를 사용한 덕분에 기병의 공격 능력은혁명적으로 향상됐다. 안장과 등자로 상체를 고정시킬 수 있게 된 기사는 빠른 속도로 달리면서도 몸의 균형을 유지한 채 두 손으로 적을 공격할 수 있었다. 이로써 기병대의 전투력은 크게 향상되어 보병부대 단독으로 이들의 공격을막아내기가 거의 불가능하게 됐다. 이제 말은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기마병과 결합하여전투의 승패마저 좌우할 수 있는 무기체계상 중요한 요소가 됐다.

전쟁의 의미와 교훈
지중해 세계를 호령한 로마는 3세기 말경부터 쇠퇴의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여기에 결정타를 날린 사건이 바로 아드리아노플 전투였다. 이 전투에서 상당수의 정예병을 상실한 로마군은 이후에도 본래의 전력을 회복하지 못했다. 또한 이 전투를 계기로 로마군 내에서 기병의 역할이 본격적으로 강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번 뚫린 로마의 국경은 이민족의 침입에 점차 속수무책이 됐고, 종국에는 게르만족에 의해 (서)로마제국이 멸망하는 지경에까지이르렀다.


아드리아노플 전투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교훈은 무엇일까? 우선, 리더의 중요성을 꼽을수 있다. 로마의 황제 발렌스는 전장의 상황과상대방 무기체계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은 채 중무장한 로마군단을 사지(死地)로 몰아넣었던 것이다. 자만심이 가져온 참담한 결과였다. 다음으로, 전장 환경에 알맞은 무기체계를 선구적으로 구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게 한다. 로마군은 그동안 눈부신 승리를 안겨준 보병 위주의 기존 무기체계에 집착한 나머지 기병대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가바로 고트족 기병에게 일격을 당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열린 자세와 사고로 현재의 무기체계를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지속적으로 강한 전투력을 유지할 수 있음을 로마군의 역사를 통해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