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의 초기 역사서들 <2>”

저번 달에는 동서양의 대표적인 사서로서 사마천의 『사기』와 헤로도토스의 『히스토리아』 그리고 고려시대에 편찬된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이번 달의 대담은 『삼국사기』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대사서인 『삼국유사』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하였다.




왕의 명으로 김부식 등 관료들에 의해 편찬된 『삼국사기』에 비해 『삼국유사』는 일연 스님이 지은 사찬 사서입니다. 이 『삼국유사』의 특징은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요?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에 비해 한 세기 반 정도 늦은 고려 충렬왕 때 씌어졌습니다. 대략 1281년(충렬왕 7년)으로 보고 있습니다. 정사正史하고는 좀 거리가 있는 야사의 성격이 짙다고나 할까요, 구성도 아주 독특합니다. 다른 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자유로운 형식으로 되어 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전설이나 설화 등도 과감하게 기록하였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고기』나 그와 비슷한 부류의 역사책들에 있는 기록들이 그대로 전재되고 있는 곳이 적지 않습니다. 『삼국유사』 앞부분에 실린 고조선기가 그런 예가 될 것입니다. 일연 스님은 첫편인 「기이편紀異篇」 서문에서 제왕의 탄생과 흥기가 신이한 이야기들로 되어 있는 것이 당연한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삼국사기』에는 찾아보기 힘든 많은 전설들과 설화들이 우리에게 전해져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어찌 보면 『삼국유사』는 합리주의에 치우친 『삼국사기』를 보완하는 적절한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겠죠.

『삼국유사』의 또 다른 특징은 무엇인가요?
『삼국유사』는 모두 9편으로 되어 있는데 앞 절반은 「기이편」으로 일반 역사기록을 담고 있으며 3편부터 9편까지는 주로 불교사에 관한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특히 「흥법편」은 우리나라 불교의 초기 역사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삼국유사』는 일반사 뿐 아니라 불교사를 연구하는데도 아주 중요한 책이기도 하군요.
삼국시대의 유명한 고승들 이야기도 많고 유명한 사찰 이야기도 많습니다. 화랑들의 스승이기도 하였던 원광법사, 신라의 최고위 승려(당시에는 ‘대국통’이라 불렀습니다)로서 많은 사찰을 지은 자장법사, 신라의 대사상가였던 원효대사, 신라 화엄종을 연 의상대사, 금산사를 중창하고 미륵신앙을 진흥하였던 진표 스님 등의 기록이 모두 『삼국유사』에 실려 있습니다. 국사 교과서에 나오는 이 스님들 외에도 많은 스님들의 기록이 실려 있습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삼국유사』 「탑상塔像편」은 탑·불상·사원건축 등 불교의 유물·유적에 관한 중요한 자료를 싣고 있어서, 불교미술을 연구하는데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문헌으로 꼽힙니다.

당시의 스님들은 불교만이 아니라 다른 분야에도 능한 학자들인 경우가 많았다고 들었는데요.
그렇습니다. 원광법사만 하더라도 유학은 말할 것도 없고 노장사상에도 능하였으며 제자백가와 역사에도 깊은 지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온 나라가 스승으로 떠받들었다고 하죠. 왕들도 정치하는 법을 물을 정도였으니 원광법사는 대사상가였던 겁니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대문장가라서 외교문서도 많이 작성하였다고 합니다.
『환단고기』 「삼성기」 상의 저자가 신라시대의 고승 안함로였다고 들었는데요.
예, 그렇습니다. 안함로는 안함 화상 혹은 안홍법사라고도 불렸어요. 『삼국유사』에는 안홍법사가 『동도성립기東都成立記』라는 책을 썼다는 기록이 있는데 동도는 신라의 수도인 경주를 말합니다. 신라의 역사를 쓴 것이죠.

『삼국유사』에 실린 또 다른 중요한 기록들로는 어떤 것이 있나요?
「기이편」 앞 부분에 나오는 고조선과 북부여에 대한 기록은 지난 달에도 소개한 『고기』라는 책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마한, 변한, 진한 등 삼한에 관해서는 중국의 사서 기록을 주로 인용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삼국사기』 외에도 고려 때의 『사략』, 고주몽의 사적을 적은 『동명기東明記』, 백제의 사서인 『백제고기』와 신라사 기록인 『신라고전』, 온조 왕의 백제 건국기록이 있는 『고전기古典記』 같은 사서들이 인용되어 있습니다. 이런 사서들은 지금은 전해지지 않습니다.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를 편찬하기 위해 얼마나 않은 사서들을 섭렵했는지를 알려주고 있을 따름이죠. 그런데 다른 사서에는 없는 『삼국유사』에 실려 있는 매우 중요한 기록이 또 하나 있습니다.

그게 무슨 기록인가요?
「기이편」에 실린 「가락국기」라는 것입니다. 김수로 왕의 금관가야 즉 가락국의 유래와 수로왕의 왕비인 허왕후에 대한 기록으로서 다른 사서에서는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그 의미는 매우 크다 할 수 있습니다.

수로왕에 대해서는 알에서 나왔다는 전설이 전해지는데 「가락국기」는 어떤 사서에서 인용한 것인가요?
1070년경 금관 즉 김해 지역의 지방 수령인 지주사知州使가 쓴 기록을 일연 스님이 그 개요를 간추려 실은 것입니다. 김수로 왕과 함께 다른 가야국들의 왕들도 모두 함께 금란에서 나왔다고 하니 6가야국들은 그 기원이 동일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난생설화는 북방민족의 설화라고 들었는데 가야도 북방의 이주민들이 세운 나라로 볼 수 있을까요?
『삼국유사』 「가락국기」의 기록에 의하면 수로왕이 서력 42년에 즉위하였고 또 금관가야가 532년, 대가야가 562년에 각각 신라에 의해 멸망하였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가야사는 근 5백년에 걸친 역사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가야사에 관한 기록 특히 그 기원에 관한 기록은 「가락국기」를 제외하면 전무합니다. 그래서 가야의 기원은 미스터리인 것이죠. 단지 여러 추측들이 나오고 있는데 그 가운데 유력한 가설 중의 하나가 흉노에 의한 건국설입니다. 북방의 기마유목민인 흉노족이 한반도 남쪽으로 이동하여 가야를 건국하였다는 것이죠. 가야유물들 가운데 동복이라는 것이 있는데 청동솥을 말합니다. 흉노족의 지표 유물들 가운데 하나인데 가야 지역에서 그것이 발견된 것은 북방 유목민 집단이 가야를 건국한 세력이었음을 강력히 시사해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 기마민족은 또 일본으로도 건너갔는데 일본의 유명한 에가미 나미오 교수도 일본의 기원이 이러한 북방 기마유목민족에 있다고 봐요.
제가 어디선가 듣기로는 신라 김씨 왕가가 흉노의 후예라고 하던데요. 맞습니까?
신라 30대 문무왕릉비에 문무왕의 15대조가 성한왕星漢王이고 성한왕의 7대조가 ‘투후텏侯’라는 기록이 보입니다. 그런데 투후는 한나라 무제가 포로로 잡혀 왔던 흉노족 왕자 김일제에게 내린 칭호였습니다. 그러므로 문무왕이 김일제의 후손이 된다는 말인데 놀라운 기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일부 강단사학자들은 이를 신라 왕가의 허풍 정도로 치부하고 있는데 문무왕 비문의 기록을 자신들의 상식과 어긋난다고 그렇게 간단히 처리해 버리는 태도는 받아들이기 힘든 태도라 하겠습니다. 신라 김씨 왕가가 자신들의 선조에 대해 엉터리 주장을 늘어놓았다는 확실한 증거가 나오기 전에는 일단 그 기록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설명해보려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 온당할 것입니다.
신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가 금궤짝에서 나왔다는 설화가 있는 것으로 보아서 신라 자체 내에서 나온 사람이 아니라 외부에서 이주한 사람으로 보아야 합니다. 나는 한나라의 김일제 후손들이 그 인척이었던 왕망 정권의 멸망과 더불어 한반도로 이주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신라 유물들 중에는 북방유목민 계통의 유물들이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동복과 황검보검 같은 유물은 북방유목민의 유물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 신라 왕들의 대표적인 묘제인 목곽적석총은 단적으로 말해서 흉노식 무덤입니다. 신라 김씨 초기 왕들의 칭호가 마립간이라는 것도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는 북방 유목민이 그 왕을 칸 혹은 간이라 한 것과 같은 겁니다. 그러므로 신라 왕가가 흉노의 후예일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보입니다.

매우 재미난 이야기군요. 그런데 흉노족 하면 고대 중국의 대표적인 오랑캐족의 하나가 아닌가요?
물론 중국인들은 흉노를 오랑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들 주변의 모든 이민족들을 모두 야만적인 족속으로 폄하한 중국인들의 편견에 찬 시각일 따름입니다. 흉노는 결코 그렇게 무지막지한 야만족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정연한 통치체계를 갖춘 국가, 그것도 내몽골, 만주에서 중앙아시아 일대에 걸친 거대한 제국을 건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2천 백 여년 전 한무제는 근 50년간 흉노를 멸망시키기 위해 한나라의 모든 역량을 투입하여 전쟁을 하였던 사람인데 포로로 잡혀온 흉노족의 왕자 김일제의 반듯한 인격에 반해서 자신의 최측근 신하로 삼았던 것입니다. 그로부터 400년 뒤의 5호16국 시대를 연 흉노의 왕자 유연劉淵도 사서에 많이 나오는 인물입니다. 할머니가 한족이라서 한족의 피가 섞여 있었던 유연은 흉노족이었지만 중국의 학문에도 정통한 인물로 중국 사가들에 의해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 인물입니다. 요컨대 흉노가 무지막지한 야만족이라는 관념은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먼 것이라 하겠습니다.

흉노는 서양 로마 제국을 침공하였던 훈족과 같은 족속인가요?
학자들의 견해는 찬반으로 나뉘어져 있는 형편입니다. 훈족을 흉노와 같은 몽골족이 아닌 투르크 계통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투르크족도 원래는 내몽골과 알타이 일대에 살던 사람들입니다. 수 세기에 걸쳐 중앙아시아로, 그리고 오늘날의 터키가 있는 소아시아로 이동하였던 것이죠. 흉노 역시 1세기 중반부터 백여년 동안 세 차례에 걸쳐 중앙아시아 쪽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중국 사서에서는 흉노의 제3차 서천西遷으로 이들이 오늘날의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지역까지 이동하였던 것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그 이후로는 흉노에 대한 기록이 더 이상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370년 경 로마 제국의 국경 지역인 다뉴브 강 일대에 훈족이라는 로마인들에게 생소한 유목민이 갑자기 출현한 겁니다. 우크라이나를 거쳐 다뉴브 강 일대에 나타난 이 훈족이 흉노의 후예들로 추정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증거들이 있지만 다만 확실한 기록이 없을 뿐입니다.

흉노에 대해서는 중국의 사서들에 제법 상세한 기록이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훈족에 대한 기록으로는 어떤 기록들이 있나요?
여기서 자세하게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동서 로마의 여러 역사가들이 쓴 사서들에 나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6세기에 고트족 역사가 요르다네스가 자신들의 선조인 고트족의 역사를 기록한 『게티카』라는 책입니다. 당시 고트족은 한동안 훈족의 지배를 받았는데 그래서 그 책에는 훈족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나옵니다. 4세기의 역사가 암미아누스 마르켈리누스Ammianus Marcellinus는 군인출신으로서 로마 제국의 역사를 쓴 사람인데 그의 책에도 훈족에 대한 묘사가 나옵니다. 또 하나 중요한 기록은 5세기의 프리스쿠스Priscus라는 사람이 쓴 『비잔틴사』로서 지금은 그 일부만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프리스쿠스는 동로마 황제의 사절단의 일원으로 아틸라 왕을 직접 알현한 적이 있는 사람입니다. 역사가로서 상당한 명성을 떨쳤던 프리스쿠스의 기록을 통해 우리는 아틸라의 면모와 훈족의 통치와 로마 제국과의 관계를 제법 상세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렇군요. 그러면 중국과 우리나라 사서를 살펴보았으니 일본으로 넘어가 볼까요. 일본은 우리와는 달리 옛 사서들이 많이 남아 있다면서요?
그렇습니다. 8세기 초에 43대 겐메이元明 천황의 명으로 편찬된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는 일본의 뿌리역사를 담고 있는 사서인데 온존하고 있습니다. 현존하는 우리나라의 최고最古 사서로 꼽히는 『삼국사기』보다 400년 이상 오래된 사서들입니다.

일본 최고의 사서로 꼽히는 『고사기』는 어떻게 나온 책인가요?
『고사기』가 나오게 된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본사를 좀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고대 일본에서 천황의 권력이 강화되고 일반 민중들을 천황중심의 국가가 직접 지배하는 율령체제가 확립된 것이 7세기 중엽입니다. 그 때부터 천황제 국가의 역사적, 사상적 기초를 놓기 위한 시도가 이루어졌는데 그 결과로 나온 것이 712년의 『고사기』와 720년의 『일본서기』입니다. 천황의 명에 의해 편찬된 역사서로 일본 천황가의 기원을 신성한 것으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였습니다. 구체적으로 『고사기』는 672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아 중국식 율령국가 체제를 확립하였던 40대 텐무天武 천황의 명에 의해 작업이 시작되어 겐메이元明 천황 때인 712년 백제의 왕족 출신 오노야스마로太安萬侶가 완성한 것입니다.

『고사기』와 『일본서기』가 갖고 있는 사서로서의 특징은 그 외에 어떤 것이 있습니까?
『일본서기』는 『고사기』 편찬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책입니다. 두 책은 체제상 큰 차이는 없습니다. 단지 『고사기』는 33대 스이코推古 천황(재위 592-628)까지 기록한 데 비해 『일본서기』는 41대 지토持統 천황(재위 686-702) 대까지 몇 대 더 기록하였습니다. 지토 천황은 텐무 천황의 부인으로 남편과 자식의 사후 천황이 되었던 여인인데 남편의 정책을 충실히 따라 율령국가 완성에 힘을 기울였습니다. 책의 편찬 경위 등이 적힌 서문이 붙어 있는 『고사기』와는 달리 『일본서기』에는 그러한 서문이 없다는 점도 눈에 띱니다. 『일본서기』는 텐무 천황의 아들 토네리舍人 친왕이 편찬하였습니다. 두 사서 모두 신화와 역사를 구분하지 않고 신대사神代史를 앞부분에 넣었다는 큰 특징이 있습니다. 그 때문에 황당한 이야기들이 사실과 많이 뒤섞여 있어 합리적인 설명으로 일관한 사마천의 『사기』, 헤로도토스의 『히스토리아』, 김부식의 『삼국사기』 등에 비해서는 기록의 신빙성이 많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 『고사기』와 『일본서기』 모두 천황들의 연대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인물들의 전기인 열전이나 제도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잡지雜志’ 부분이 없습니다. 여기서도 두 사서가 철저히 천황 중심의 역사서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일본서기』에는 한반도 관계 기록들이 많이 보인다면서요? 그렇습니까?
예. 특히 백제관계 기록이 많이 보입니다. 『백제기』, 『백제신찬』, 『백제본기』라는 백제의 역사를 기록한 책들이 그대로 인용되는 부분 여러 곳이 됩니다. 물론 이 책들은 지금은 현존하지 않고 또 『고사기』를 비롯한 다른 사서에서는 전혀 나오지 않는 책들입니다. 660년 백제가 망한 후 백제유민들에 의해 편찬된 책들로 추정됩니다. 『일본서기』에 나오는 한반도 관련 기사들 가운데에서 상당 부분은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기록들로서 역사가들의 관심을 끕니다. 이런 면에서 『일본서기』는 많은 역사왜곡을 자행하고 있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사료가 되는 것입니다.

『일본서기』에 실린 대표적인 한국사 왜곡은 어떤 것이 있나요?
신공황후 이야기가 그 전형입니다. 그것은 금은으로 가득 차 있는 나라인 신라를 신공황후가 신의 명령으로 손쉽게 정벌하여 일본의 조공국으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전투 한번 없이 신라를 정벌하였다는 기록은 『삼국사기』나 중국 사서에서는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학자들은 신공황후가 중국 사서 『삼국지』에 나오는 3세기 왜국의 여왕 히미코卑최呼를 모델로 해서 만들어진 가공의 인물로 봅니다. 이처럼 『일본서기』에는 신화적인 요소로 윤색된 가공의 이야기들이 버젓이 사실들의 서술과 뒤섞여 있어 주의 깊게 읽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는 『고사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사서 모두 일본의 최초 사서라는 점에서 큰 가치를 갖지만 사마천의 『사기』나 김부식의 『삼국사기』 등에 비해 황당한 사실 왜곡이 적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비판적인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두 사서에 실린 기록들은 다른 기록과의 비교검토 없이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는 것이죠.

신공황후의 신라정벌 기록에서 볼 수 있듯이 『일본서기』는 일본 국수주의자들에게는 좋은 재료였겠어요.
물론입니다. 8~12세기 헤이안平安 시대에는 천황 앞에서 『일본서기』의 강독이 공식적인 행사로 이루어질 정도로 『일본서기』는 중요한 책이었습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의 국수주의 관료들은 천황제 국가를 정당화하기 위해 『일본서기』를 국민교육에 이용했습니다. 일본은 지금의 125대 아키히토明仁 천황까지 만세일계萬世一系의 신성한 천황이 다스리는 신성한 나라임을 부각시키기 위해 그 책을 이용하였습니다. 근대의 정한론자들도 임나일본부설을 이용하였던 것은 말할 것도 없고요.

『일본서기』에서 나타나는 일본이라는 국호는 언제부터 쓰인 건가요? 제가 알기로는 그 전에는 ‘왜倭’라는 명칭이 쓰인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렇습니다. 일본이라는 명칭은 앞에서 말한 40대 텐무 천황 때부터 처음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텐무 천황은 천황 중심의 중앙집권국가 체제를 수립하고 있었는데 야마토大和를 ‘일본’이라는 한자로 표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일본이라는 말은 태양신 아마테라스가 보호하는 곳이라는 의미를 띠고 있습니다.
일본의 초기 역사는 한반도와 떼어서는 생각하기 힘든 것으로 아는데 시간이 허락하면 일본사의 기원에 대해 대담을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일 말씀이 있으면 해주세요.
요즘 인문학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사회전반에 널리 확산되고 있는데 인문학의 근저에는 인간들의 과거행적인 역사가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역사를 모르면 인간을 이해한다고 말하기 어렵죠. 앞에서 말씀드린 대표적인 사서들은 한계도 있지만 나름대로의 큰 가치를 갖고 있는 책들입니다. 인류의 중요한 문화유산인 것이죠. 이런 면에서는 『환단고기』 역시 뒤지지 않습니다. 『환단고기』에는 한국의 시원역사 뿐 아니라 인류의 창세 역사와 원형문화에 대한 기록이 있기 때문입니다. 『군사저널』 독자들도 이러한 다양한 역사서들을 통해 지구 문명사의 동서 역사와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도모해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충분한 시간이 허락되지 않아 동서양의 주요한 사서에 대한 깊은 대담이 이 정도에서 그쳐야 한다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최근 인문학에 대한 강조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인문학의 근간은 과거 인간의 활동과 생각을 기록한 역사가 아닐까 싶다. 이번 대담이 『군사저널』 독자들로 하여금 역사에 대한 관심 더 나아가 동서양의 대표적인 사서들에 대해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