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한근
육군 소령
육군 교육사령부

우리는 역사에서 수많은 외침을 받았고, 일제의 식민통치와 6·25전쟁 등 엄청난 시련을 이겨내고 오늘날 세계 속의 한국으로 당당히 살아가고 있다. 나는 우리 선조들이 겪은 쓰라린 아픔과 분단의 비극을 떠올릴 때마다 오욕(汚辱)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주어진 삶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묻는 노산 이은상 선생의 시(詩) ‘그대 왜 거기가 섰나’가 생각난다.
그대 왜 거기가 섰나
국토의 허리를
가로 끊은 155마일
‘여기는 군사분계선입니다’
굵은 글자로 아로새긴 푯말
천이백아흔 두 개가
꽂혀 있는 휴전선!
(중략)
다시 한 번 물어본다.
그대 왜 거기가 섰나
그대 대답하게
큰 목소리로 대답해 보게

‘내 생명 조국과 같이 하려고 나 여기와 섰노라’고1)

이은상 선생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조국(祖國)이 처한 현실을 직시하고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불태우며, “오직 조국을 위해서 기꺼이 한 목숨 바치겠노라!”라고 대답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우리가 누리는 오늘의 영광과 안락함은 국가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임진왜란 시에 이순신과 거북선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한글이 계속해서 쓰일 수 있었을까?’ ‘또 일제 식민 통치하에서 해방을 맞이하지 못했다면 대한민국이 건국될 수있었을까?’, ‘6·25전쟁에서 북한이 적화통일을 이루었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할수 있었을까?’ 상상만 해도 끔직하다. 다시금 조국에 대해 감사하며 나라를 지킨선열들의 영령에 가슴 깊이 감사드린다.

조국, 명예, 의무, 충성. 이러한 의미와 가치가 우리가 오늘날 존재할 수 있는 것을가능하게 한 것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가 국가를 위해 어떠한 인생의 준거(準據)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420여년 전 오로지 나라를지키는 일념(一念)으로 살다간 이순신은말해주고 있다. 그의 내면에 체화되어행동철학과 삶의 지표가 되었던 충효사상은 지금도 우리에게 큰 깨달음을 주고있다.

충무공 이순신 정신의 연원 중에 으뜸으로 꼽히는 것은 충효정신이다. 국가에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인간의 기본도리이다. 충무공의 가계를 보면 5대조인 변(邊)은 영중추부사와 홍문관 대제학을 지냈고, 증조부 거(琚)는 홍문관·사간원·사헌부 등 언관직을 거치면서 엄격한 탄핵과 간쟁을서슴지 않아 ‘호랑이 장령’으로 이름이 높았으며, 조부 백록(百祿)은 당시 대표적인사림세력이었던 조광조 등과 활발히 교류하였다. 이러한 집안 분위기는 충무공의 성격 형성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순신 선대의 어른들이추구한 충효정신은 부모에 의해 이순신에게 전수됨으로써 자연스럽게 체득되었다. 또 이순신을 포함하여 형제들의 이름을 희·요·순·우(羲·堯·舜·禹) 등으로 지어고대 중국의 성군을 모범했던 것으로도당시의 가정 교육적 환경이 어떠했는가를 짐작케 한다.2)

그럼, 먼저 이순신이 임진왜란 기에 연전연승(連戰連勝) 할 수 있었던 정신적 근간이 되었던 ‘충’에 대해서 살펴보자.
이순신이 관직에 첫발을 디뎠을 때 그가 표출한 한마디 말을 통해 그의 국가관을 알 수 있다. “대장부가 세상에 나서 나라에 쓰일진대 죽을힘을 다하여 충성할 것이요, 쓰이지 못하면 농사짓고 살면 또한 족한 것이니, 권세 있는 자에게 아첨하여 뜬 영화를 탐내는 것 같은 것은 내가 제일 부끄러워하는 바다.3)”라고 하였다. 이순신은 멸사봉공의 충사상을 이렇듯 함축적으로 잘 표현하였으며, 그의 관료생활 전 과정을 통해 이를 적극 실천하였다.4)
이순신은 임진왜란을 당하여 부하들에게 출전에 대해 의견을 물은 다음 최종결정을 하며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린다. “적의 기세가 마구 뻗쳐서 국가가 위급하게 된 이때 어찌 다른 도의 장수라고 핑계하고서 물러나 제 경계만 지키고 있을 것이냐! 내가 시험 삼아 물어본 것은 우선 여러 장수들의 의견을 들어 보자는 것이었다. 오늘 우리가 할 일은 다만 나가서 싸우다가 죽는 것 밖에 없다. 감히 반대하는 자가 있다면 목을 베리라.”5) 이순신은 국가가 위급한 때에 장수로서 나가 싸워 죽음으로 보답하는 것이 마땅하다며 결전의 의지를 다졌다.
난중일기를 보면 이순신은 전투 중이 아니면 매월 삭망(朔望)6)에 망궐례(望闕禮)7)를 행한 후 공무를 시작함으로써 임금에 대한 그의 존경을 표했다. 또 정유재란 시에 이순신은 역적으로 몰리어 죽을 위기에 처해진 뒤에 다시 풀려났으나, 자신을 죽이려고 한 임금 선조를 원망하지 않았고 주군(主君)에 대한 충성심을 끝까지 버리지 않았다.
두 번째, 이순신 정신의 또 하나의 연원이 된 ‘효’에 대해서 알아보자.
이순신은 위대한 명장(名將)이기 이전에 어머니를 사무치게 그리워하고 효성이 지극한 아들이었다. 생과 사를 넘나드는 전쟁터에서 항상 어머니를 생각하고 잘 모시지 못함을 안타까워했다. 난중일기를 보면 “어머니의 소식을 들었는데 평안하시다니 정말로 다행이다.”라는 구절이 82회가 기록되어 있다.8) 이를 통해 이순신이 얼마나 어머니를 극진하게 생각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1593년 5월 4일. 이날은 어머님의 생신일이건만, 적을 토멸하는 일 때문에 가서 헌수(獻壽)의 술잔을 드리지 못하게 되니 평생의 한이 된다.
1593년 6월 12일. 아침에 흰 머리카락 여남은 올을 뽑았다. 그런데 흰 머리카락이 난 것을 어찌 꺼리랴만 다만 위로 늙으신 어머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1594년 1월 1일.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한 살을 더하게 되니, 난리 중에도 다행한 일이다.
1594년 1월 12일. 어머니께 하직을 고하니, “잘 가거라. 부디 나라의 치욕을 크게 씻어야 한다.”고 가르치시며 두세 번 타이르시고 조금도 헤어지는 심정으로 탄식하지 않으셨다.9)
전쟁으로 인해 어머니의 생신상을 차려드리지 못한 것이 한이 되는 아들, 자식의 흰 머리를 통해 늙은 모습을 보이면 어머니가 걱정하실까봐 흰 머리를 뽑는 아들, 전쟁중이나마 어머니와 함께 지낼 수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하는 아들. 일기는 어머니에 대한 한없는 사랑과 걱정과 눈물과 회한(悔恨)을 잘 보여주고 있다. 1594년에 어머니를 찾아뵙고 하직인사를 할 때 어머니는 조금도 슬퍼하지 않고 오히려 전장으로 돌아가는 아들에게 ‘장수로서 본연의 임무를 다하라!’고 당부한다. 전장(戰場)으로 돌아가는 아들의 안위를 걱정하기보다 ‘나라의 치욕을 갚으라!’는 어머니의 가르침. 어렸을 때부터 ‘개인보다는 국사(國事)가 우선’이라는 어머니의 가르침이 그를 불패(不敗)의 명장으로 거듭나게 했을 것이다.
1597년 4월 13일. 종 순화가 배에서 와서 어머님의 부고를 전했다. 달려 나가 가슴을 치고 뛰며 슬퍼하니 하늘의 해조차 캄캄해 보였다. 길에서 바라보며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을 이루 다 적을 수가 없다. 후에 대강 적었다.
1597년 4월 19일. 일찍 나와서 길을 떠나며 어머님 영전에 하직을 고하고 울며 부르짖었다. 어찌하랴. 어찌하랴. 하늘 아래 어찌 나 같은 사정이 있겠는가. 어서 죽는 것만 같지 못하구나.10)
이순신이 정유재란 시기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힌 뒤 풀려나 백의종군 길에 오른 뒤, 자신의 몸을 가누기 힘든 노령의 어머니는 아들을 보기 위해 배를 타고 상경하다가 돌아가셨다. 이순신은 부고 소식을 듣고 ‘하늘의 해조차 캄캄해 보인다.’며 슬픔을 토로했다. 어머니의 영전에 절을 할 때는 상심이 커 ‘어서 죽는 것이 낫다.’고 애달픈 마음을 표현했다. 그러나 이순신은 국가가 부여한 사명인 침략한 일본으로부터 나라를 구하기 위한 충성의 의무를 다하고 어머니가 당부한 나라의 치욕을 되갚기 위해 주저앉지 않았고 다시 일어섰다.

이와 같이 이순신의 삶을 면면히 들여다보면 그가 이룬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실로 기적과 같은 전승무패의 신화는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충효의식’의 발로(發露)라는 생각이 든다. 오로지 ‘나라가 있기에 내가 있을 수 있다.’는 숭고한 조국애와 자신을 낳아준 부모에 대한 지극한 효성과 임금에 대한 충성을 다해야 했던 것이 이순신이 왜적과 싸워 반드시 이겨야만 했던 근본적인 이유였던 것이다.
오늘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군에게 부여된 사명은 외부의 군사적 위협과 침략으로부터 국가를 보위하고 미래지향적인 국방태세를 갖추어 평화적 통일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군은 그 어느 때보다도 고도의 군사기술과 무기체계 발전, 정보기술의 혁신을 통해 국방구조 전반에 걸쳐 개혁이 필요한 시기이다. 그러나 이런 하드웨어적인 개혁보다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은 이러한 때일수록 우리는 국가존립과 사회윤리의 근간이 되는 ‘충과 효’의 가치를 더욱 확고하게 정립해야 하며, 이를 통해 국가가 더욱 안정되고 번영을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버이날, 어린이날, 스승의 날 등 다양한 기념일이 있다. 5월에 ‘충과 효’에 대한 목표를 한가지씩이라도 세워 실천함으로써 이순신이 그랬던 것처럼 부모에게 지극히 효도하고 ‘국가를 향한 위국헌신’의 마음을 다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