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어이승자야(勝於易勝者也) ― 『손자(孫子) 군형 제4편



노병천
(예)육군대령, 리더십박사
전 나사렛대학교 부총장
한국전략리더십연구원 원장

고수와 하수의 차이가 있다. 하수는 움직일 때마다 흔적을 남기고, 고수는 움직여도 흔적이 없다. 하수는 아주 힘들게 싸우고 이기더라도 겨우 이긴다. 고수는 아주 쉽게 싸우고 이기더라도 쉽게 이긴다. 막 시집온 며느리가 처음으로 시어머니와 김장을 담그면 금방 표시가 난다. 온 몸에 고춧가루를 묻히고 땀을 뻘뻘 흘리며 힘겹게 김장을 완성한다. 그러나 노련한 시어머니는 우아한 한복을 입고도 전혀 더럽혀짐도 없고 아주 쉽게 김장을 버무린다. 그야말로 내공이 다르다. 이렇게 잘 싸우는 자는 아주 쉽게 이기는 자다.
영화 명량 덕분에 다행히도 우리 국민은 이순신을 주목하고 있다. 수많은 기업에서 앞 다투어 이순신의 리더십을 공부하고 있다. 국가안보측면에서 참으로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순신 장군은 23번에서 많게는 26번 전투를 했다. 그런데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전부 다 이긴 것도 값지지만 더 중요한 것은 단 한 척의 전선도 적에 의해 파손되지 않았다는 놀라운 사실이다. 이런 전적은 세계 그 어떤 전쟁에서도 볼 수 없는 기록이다.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
우리가 자칫 오해할 수 있는 것이 이순신 장군이 전쟁을 할 때, 매번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신기에 가까운 기가 막힌 전략을 짜서 적을 물리쳤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이순신 장군의 전략은 어느 하나 버릴 것이 없는 탁월한 전략이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간과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이순신 장군은 결코 열세의 전력으로 무리하게 전쟁을 이끌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해전을 살펴보면 강력한 집중전략을 통해 ‘이기기 쉬운’ 전쟁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순신장군의 집중전략이란 무엇일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전투를 하기 전에 미리 준비해야할 것인데. 수적인 면에서의 집중이다. 이순신 장군은 이를 위해 경상우수사 원균의 전선들과 전라우수사 이억기의 전선들을 이순신 함대에 끌어들여 연합함대를 편성했다. 이러한 전선의 집중 결과, 임진년 첫 출전인 옥포해전을 보면 조선전선 91척으로 일본전선 30척을 상대했다.
두 번째 출전인 사천해전에서도 26척으로 13척을 상대했다.
세 번째 출전인 한산해전에서는 56척으로 일본전선 73척을 상대했는데, 수적으로 조선이 열세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때 일본은 36척만이 대선이었다. 장림포 해전에서는 166척으로 6척을 상대했다. 이렇게 이순신 장군은 자기 부대의 힘이 부족할 때는 연합함대를 이루는 방법으로 항상 일본보다 수적으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부산포 해전이나 명량해전이나 노량해전의 경우는 예외였다. 이들 해전은 이순신 장군이 주도한 전쟁이 아니라 사실상 끌려들어간 전쟁이었기 때문에 연합함대를 구성하지 못했고 숫자적으로 열세였다. 그렇지만 탁월한 진두지휘 리더십을 발휘해서 승리로 이끌었다. 두 번째 방법은, 화력의 집중이다. 연합함대를 편성하여 수적인 우위를 선점한 뒤에, 이순신 장군은 판옥선에 장비된 막강한 총통을 한꺼번에 집중하여 공격하는 전략을 썼다.

한산대첩 당시에 이순신 장군의 전략으로 적을 유인하기 위해 견내량으로 진입해 들어간 5, 6척의 조선 판옥선은 무려 73척의 일본전선과 상대해서 30분이나 교전을 했는데도 단 한 척도 손상당하지 않는 놀라운 성과를 냈다. 이는 화력을 아끼지 않고 일시에 집중 포화한 결과였다. 그리하여 곧바로 이어진 한산 앞바다에서의 학익진은 화력의 집중이 얼마나 가공할 위력을 가질 수 있는가를 보여준 현장이 아닐 수 없다. 13척 대 133척의 해전이었던 명량대첩의 경우에도 비록 수적으로는 터무니없는 열세였지만, 그 대신 막강한 화력을 한꺼번에 집중 운용함으로써 결국에는 31척을 분멸시키며 기적의 승리를 달성할 수 있었다. 명량대첩을 기록한 난중일기에 보면 합력사살(合力射殺)이라는 말이 있다.
모든 전선이 힘을 합해서 한꺼번에 화력을 집중하여 적을 죽였다는 뜻이다. 명량대첩의 승리 요인을 한마디로 표현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이순신 장군은 수적인 집중을 통해서 혹은 화력의 집중을 통해서 항상 상대적인 우위를 선점했기 때문에 막상 전투에 들어갔을 때는 쉽게 적을 이길 수 있었다. 이는 전쟁의 원리(戰理)의 기본원칙인 우승열패(優勝劣敗), 즉 우세하면 이기고 열세하면 진다는 원칙에 충실한 것이다. 본질적으로 힘이 세야 이긴다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은 결코 승부에 요행을 바라지 않았다. 바로 이 점이 이순신 장군이 그의 모든 전쟁에서 완벽한 승리를 이룰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던 것이다. 잘 싸우는 자는 결코 열세의 전력으로 무리한 전쟁을 하지 않는다. 수적으로나 화력으로나 전체적으로 합산해서 볼 때 상대적 우위의 전력으로 전쟁을 한다.

손자병법 군형(軍形) 제4편에 보면 “잘 싸우는 자는 이기되 쉽게 이긴다.”(勝於易勝者也)는 말이 나온다. 쉬운 승리, 즉 ‘이승’(易勝)이 가장 바람직한 승리다. 힘들게 싸워 이기면 ‘난승’(難勝)이 된다. 비록 이길지라도 많은 피해가 따른다. 이것은 좋지 않다. 쉽게 승리를 하려면 사전에 이길 충분한 조치를 해야 한다. 그래서 이어지는 어귀는 이렇다. “그러므로 그 싸움에 이김이 어긋나지 않으니,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은 그 조치한 바가 반드시 이기는 데에 있어서 이미 패한 적과 싸워 이기는 것이다.”(其戰勝不忒 不忒者 其所措勝 勝已敗者也) 이길 수밖에 없는 태세를 만들어 놓고 싸우니까 반드시 이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은 수적 집중과 화력 집중을 통해 사전에 이길 수밖에 없는 태세를 갖추어놓았다.

학익진과 같은 화력 집중은 그 속에 ‘화력제곱법칙’(Square-law fire)이라는 과학적인 법칙이 숨어 있다. 이른바 란체스터 법칙이라고 하는 이 법칙은 집중을 하면 단순한 산술적인 효과가 아니라 제곱승의 효과로 증폭된다는 것이다.
손자병법 허실(虛實) 제6편에 보면 집중의 위력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병력을 집중하면 적은 병력을 분산하게 된다. 나는 병력을 집중하여 하나가 되고, 적은 분산하여 열로 나누어지니, 이것은 열배의 병력으로 하나를 공격하는 셈이 된다.”(我專而敵分 我專爲一 敵分爲十 是以十攻其一也) 이런 점에서 집중의 원리를 잘 알고 그 원리로 학익진을 구사했던 이순신 장군은 란체스터 법칙의 실질적인 선구자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이순신 장군은 결정적인 지점에 확실한 집중을 통해 싸웠기 때문에 그의 전쟁은 ‘쉬운’ 전쟁이 되었다. 성공한 기업가나 장수를 잘 보면 어느 곳에 집중할 것인가를 정확히 분별하고, 과감하게 집중을 했던 사람들이다. 때로는 도박에 가까운 집중을 했다. 집중과 관련해서 최대 금기 사항은 부차적인 방향의 손실을 우려해서 주공격 방향의 역량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기는 싸움만 했기 때문에 손자는 이기는 군대는 먼저 이겨놓고싸우고(勝兵先勝而後求戰), 패하는 군대는 덮어놓고 싸운 후에 승리를 구한다(敗兵先戰而後求勝)는 말을 하고 있다. 이겨놓고 싸운다고 하는 ‘선승이후구전’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보지 않았는가?

勝 於 易 勝 者 也
승 어 이 승 자 야
이기되 쉽게 이긴다.
가장 바람직한 승리는 그 승리 후에 박수가 없는 승리다. 떠들썩한 소문도 없고 그 용감함도 공적도 드러나지 않는 승리다.(無奇勝 無智名 無勇功) 손자가 말하기를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승리는 차원이 낮은 승리라고 했다.
왜냐하면 소문이 날 정도의 승리가 되면 아주 어렵게 싸운 승리이기 때문이다. 서로 엇비슷한 사람끼리 싸우면 아슬아슬해서 보는 사람들이 중간 중간에 박수를 많이 친다. 이런 승리는 이기더라도 쌍방에 피해가 많다. 이긴 측에서는 최소한 코피 정도는 터져있다. 그러나 격투기 선수와 초등학교 학생과 싸우게 되면 박수가 있을 수 없다. 너무 싱겁게 승부가 나기 때문이다. 격투기 선수가 너무 쉽게 이기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다. 가장 바람직한 승리는 이렇게 쉽게 이기는 승리다.
이길 수 있는 많은 준비와 역량을 갖추면 이렇게 쉽게 이길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승리에는 소문이나 박수가 없다. 사실상 소문이 나는 승리나 성공을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렇다. 라이벌이 생긴다. 그동안 적수로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이 요란하게 박수를 받으며 전면에 부상하니까 경쟁자로 인식한다. 경쟁사회에서 별로 좋지 않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다. “CEO의 얼굴이 경제잡지 표지에 나오는 순간 그 기업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승리나 성공은 ‘그냥’ 하면 되는 것이다. 소문이 필요치 않다. 확실하게 이길 충분한 역량을 갖추고 아주 쉽게 그리고 소문 없이 이기는 것이 좋다.

당장의 이익이나 당장의 명예를 초월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초월할 때 진정한 평안과 행복이 온다. 경쟁의 최고 경지는 경쟁심을 넘어설 때, 명예의 최고 경지는 명예심을 넘어설 때 오는 것이다. 이 기회에 ‘넘어섬’의 경지를 생각해보자.
박수 칠 때 떠나면 늦다.
박수치기 전에 떠나라.
勝 於 易 勝 者 也
이길 승 어조사 어 쉬울 이 이길 승 놈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