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 안보기술개발단장/김용환
(경영과학박사, 예·육군 준장)

Ⅰ. 전력지원체계가 군을 평가하는 잣대다
Ⅱ. 전력지원체계는 주인이 따로 없다
Ⅲ. 전력지원체계도 발전시킬 때가 되었다

Ⅰ. 전력지원체계가 군을 평가하는 잣대다
요즘은 전력지원체계의 수난시대이다. 그동안 비무기체계라는 용어를 사용해 오다가 전쟁을 대비하는 군대의 물자나 장비에 대해 비무기체계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나라가 없다는 지적이 많아지자 2012년 1월부터 전력지원체계로 명칭만 변경하였다. 2010년에는 신형 전투화가 물이 새서 전국이 시끄러웠는데 새로 보완된 후에도 또 문제가 있다고 언론에서 지적을 당했다. 얼마 전에는 베레모가 보풀이 일어나는 문제로 비난을 받더니 병사들의 활동화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해 지급하지 못한다고 또 혼났다. 이 모두가 전력지원체계이고 작년에 우수한 전투복을 개발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가 무더위에 찜통 군복으로 비난받았던 신형 전투복도 전력지원체계이다.

우리 군이 사용하는 장비와 물자는 총 30,000여 품목이다. 그 중 전투기나 전차, 미사일 등 무기체계는 약 2,300여 품목이며, 전투복, 군화, 텐트, 방탄헬멧, 전지, 발전기 등 전력지원체계는 27,000여 품목이나 된다. 무기체계에 비해 10배가 넘는 품목수이다. 우리나라는 무기체계가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2006년에 국방부 외청인 방위사업청을 신설하여 예산 편성과 사업집행을 별도로 수행하고 있으나, 전력지원체계는 국방부 군수관리관실에서 담당하고 있다.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무기체계도 중요하지만 전력지원체계도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나라는 무기체계와 전력지원체계를 구분하지 않고 국방부에서 통합하여 관리하고 있으며, 프랑스처럼 사업집행기관인 병기본부를 따로 운영하는 나라라 하더라도 무기체계와 전력지원체계를 별도로 분리하여 관리하지는 않는다.

지난 6·25 전쟁 이후 미군의 무기와 물자를 지원 받아 싸운 월남전을 끝으로 우리 군은 남파된 공비의 토벌작전 외에는 60여년 동안 육상에서 전투다운 전투를 해볼 기회가 거의 없었다. 서해 해전과 같이 북한 해군의 열세한 무기체계를 확인해볼 기회가 적어서 그동안 우리는 북한군의 전투력을 실상 이상으로 과대평가한 면이 있었고, 숫적으로 우세했던 북한군을 따라잡기 위해 전투기, 전차, 구축함 등 주요 무기체계 확보에 국가적인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병사들의 군화나 전투복은 크기만 맞고 수량만 제대로 지급하면 문제가 안 되는 품목이었다. 우리 군이 무기체계 확보에 관심을 집중하는 동안 민간 경제는 선진국 수준으로 발전하였으며 국민들의 의식주 생활은 군의 전력지원체계 수준을 훨씬 앞서게 되었다.

전력지원체계는 대부분 병사들의 의식주 생활과 평시 훈련에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매년 20여만 명의 젊은이가 전역한 후 사회생활을 하면서 우리 군을 평가하는 대상이 전투기나 구축함 숫자가 아니라 자기가 사용하고 생활했던 전력지원체계이다.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전방 산꼭대기에서 근무하다 발에 동상이 들었던 병사에게는 보온 군화가 절실했을 것이고, 눈보라가 치던 밤에 밤새 보초를 섰던 병사들은 집에서 입었던 가볍고 따뜻한 고어텍스 산악용 점퍼가 그리웠을 것이다. 휴가 온 자식을 보면서 자기가 낸 세금으로 구매한 아들의 군용 내의나 양말이 자기가 입고 있는 내의나 양말 수준에 한참 못 미치는 현실을 보면 부모들은 군에 대해 실망하게 된다. 전력지원체계는 국민이 군을 평가하는 기준이다. 군에 보낸 자식들에 대한 군 간부들의 관심수준을 평가하는 잣대이기도 하다.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우리 군은 전력지원체계 개선에 적극 나서야 한다.



Ⅱ. 전력지원체계는 주인이 따로 없다
앞에서 언급한 병사들의 활동화 사건도 알고 보면 육군만의 책임이 아니다. 활동화는 일반 상용품으로서 조달청 입찰 품목이다. 육군은 조달청에서 낙찰된 업체로부터 구매해야 하는데 계속 유찰되다보니 구매할 수가 없었다. 조달청도 할 말이 있을 것이다. 조달청은 군에서 편성해준 예산 범위 내에서 싸게 구매하려고 입찰을 계속했지만 업체들은 단가가 낮아 응찰을 기피하다보니 낙찰이 안 되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예산을 더 확보해 단가를 올려서 조치한 육군만 사전 준비가 미흡했던 것으로 비치지만, 그동안 제한된 군 재원의 어려움 속에서 예산 증액을 위해 사전에 준비하고 노력했던 얘기를 듣고 보면 육군만의 책임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전력지원체계는 주로 상용품을 구매하므로 가격 등락에 따라 수량이 변경되어 계획된 수량을 확실하게 확보하기도 힘들고, 품목수도 너무 많아 모든 품목에 관심을 갖기도 어렵다. 또한 담당자들의 보직기간이 1~2년에 불과해 지속적으로 책임지고 관리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또한 경쟁 입찰을 통하므로 저가 품목이 납품되기 마련이며 품질 보장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이 많아 장기적인 사후관리 서비스도 받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처럼 전력지원체계는 구조적으로 매우 어려운 여건에서 운용되고 있다.

수리부속도 전력지원체계로 분류되어 있다. 해외에서 도입하는 무기의 경우는 장기간 운용하면 부품이 단종되어 부르는 게 값인 경우도 허다하다. 무기를 도입할 때는 도태시키는 시기까지의 총수명주기 동안 소요될 운영유지 예산까지 무기체계 획득부서에서 통합하여 판단해야 나중에 수리부속 예산이 부족하여 장비를 세워두는 사태를 막을 수 있다. 그러나 무기체계 획득 부서에서는 운용유지에 필요한 수리부속 예산을 무기체계 획득 예산에 통합하는 걸 극구 반대한다. 우선적으로 예산을 투입하는 무기체계 획득은 획득부서의 권리라고 주장하면서 예산 배정에서 우선순위가 낮은 수리부속 예산은 군수분야 담당자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애만 낳아 놓고 돈도 제대로 주지 않으면서 가르치고 키우는 건 유모 몫이라고 한다면 누가 부모 자격이 있다고 할 것인가?
무기체계는 주인이 있다. 관심 갖는 부서와 책임지고 추진하는 담당자가 많다는 뜻이다. 전투기나 전차, 구축함처럼 중요한 무기체계는 5~10년 전부터 계획을 수립하여 청와대까지 보고하여 추진한다. 수많은 검토와 회의를 거쳐 의사 결정을 한다. 예산 조정부서에서 예산을 좀 줄이려고 하면 수많은 반대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전투기나 전차, 구축함의 정비에 필요한 수리부속은 주인이 없다. 수리부속은 전력지원체계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필자가 국방부 전력계획과장과 투자예산과장을 할 때 재원 부족으로 인해 요청한 예산을 감액 조정하라고 각 군 본부에 지침을 내리면 삭감 예산안에는 예외 없이 수리부속 예산이 포함되어 있었다. 언젠가 동해안 공군부대에서 비상시 전투기가 발진하지 못한 사건이 났을 때, 감사를 해본 결과 수리부속 예산을 전용하여 홍수 복구비로 썼기 때문이라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이러한 사건의 원인도 따지고 보면 수리부속 등 전력지원체계는 끝까지 책임지고 관리하는 주인이 없기 때문이다.

Ⅲ. 전력지원체계도 발전시킬 때가 되었다
우리는 전쟁을 경험한 지 오래된 나라이다. 많은 국민들은 북한과 평화 공존이 가능하다고 여기고 있고, 그러한 분위기에서 성장한 대부분의 젊은 장교들은 언제 일어날지도 모르는 전투 현장에서 병사들이 어떤 장애에 봉착할 것인가에 대해 큰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세계 어디에선가 매일 전투를 치르고 있는 미국과 같은 나라는 병사들이 전투 현장에서 겪는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찾아 개선하면서 세계 최강의 군대를 유지하고 있다. 각개 병사들의 전투력 발휘가 극대화 될 때 최강의 군대가 된다는 사실을 수많은 전투를 통해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우리 군이 경험한 6·25 전쟁이나 월남전, 공비 토벌 전투에서 개인 병사들은 전지가 필요 없는 무기들을 사용했었다. 부대별로 지급된 무전기 외에는 전지가 필요하지 않았지만 최근 아덴만 작전에서나 이라크 전투에서는 개인별 무전기나 야시 장비들이 활용되고 있는데 모두 전지가 없으면 작동되지 않는 장비들이다. 이라크 전투에서 미군들이 작전 출동을 하게 되면 병사들은 비상식량 보다 비상전지를 먼저 챙긴다고 한다. 식사는 하루 굶을 수 있지만 전지는 하루만 없으면 야간 사격도 못하고 작전 지휘도 안 되며 화력 지원 요청도 못하고 전투 후 복귀하는 헬기 위치도 알 수 없어 고립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군은 무전기를 비롯한 많은 전자 장비에 사용하던 일회용 전지의 소모량을 줄이기 위해 충전용 전지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평시에는 내무반에서 충전할 수 있고 훈련 시에는 발전기를 사용하여 충전할 수 있는데 전시에 단전이 되거나 북한지역으로 진출했을 때는 발전기를 사용하는 방법 외에는 충전할 대안이 없다. 그러나 전시에는 발전기 소음으로 인해 지휘소가 노출되어 적 침투조의 공격 대상이 되기 쉽다.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한 KIST에서는 작년부터 소금물을 이용하여 충전이 필요 없는 군용전지를 자체적으로 개발하고 있으며 부대 지휘소용 무소음 발전기를 개발하기 위해 국방부와 협의하고 있다. 최근에 전방 2개 사단과 특수전부대를 다녀본 결과 훈련 시나 전시에 충전용 전지의 야전 충전이 어려운건 미군과 마찬가지고, 발전기 소음으로 인해 지휘소가 노출되는 문제점에 대해 지휘관들도 고민하고 있었다.

미군들은 우리 보다 한 발 앞서 병사들을 위한 다양한 연구를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2012년 7월에는 미국 국방관련 연구소들을 방문하여 병사들을 위한 미군들의 노력을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육군 통신전자연구소를 방문했을 때, 전시실 벽에 붙은 포스터에 무거운 배낭을 짊어진 병사가 웅크린 채 “나를 좀 가볍게 해줘(Meke me lighter)"라고 호소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거기에서는 무전기 전지의 무게를 가볍게 만들면서도 수명은 우리 전지의 5배 수준인 72시간까지 사용할 수 있는 전지를 개발하여 사용하고 있었다.

이제부터라도 우리 군도 병사들을 위해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무기체계만 연구개발하고 전력지원체계는 주로 상용품을 구매하여 왔던 관행에서 벗어나 병사들의 전투력과 사기에 직결되는 품목들은 연구개발하는 체제로 적극 전환하자. 무기체계만 연구개발하기에도 역부족인 국방과학연구소나 기술력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에 의존할 생각에서 벗어나 전력지원체계 연구 개발업무에 과학기술계의 정부 출연 연구소들을 활용해 보자. 한국의 과학기술 인프라 수준은 세계 5위로 구 교과부 통제를 받았던 선진국 수준의 기초원천기술연구소가 13개나 있고 구 지경부 통제를 받았던 응용기술연구소가 14개나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민군 기술 협력은 미미한 실정이다. 이런 배경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우리 모두의 관심 부족이다. 군은 과학기술계를 잘 모르고 있고, 과학기술계는 군에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알고 싶지도 않는 분야이다. 서로 자주 방문하여 서로 지원할 수 있는 게 무엇이고 서로 필요로 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보는 노력부터 해야 한다. 이러한 협력을 보다 더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군과 과학기술계를 모두 다 잘 알고 양쪽에서 신뢰하는 중매쟁이 같은 조직을 연구 현장에 만들어 두 분야를 연계시키는 기능을 수행하게 한다면 더욱 효과적인 협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연구개발과 관련된 법률상의 문제도 있다. 민·군겸용기술사업촉진법이 제정된 지 14년이 되었지만 효과가 미흡하다고 평가되어 다시 이름을 바꿔 민·군기술협력촉진법이 제정되고 있지만 현장 문제점 분석이 미흡한 상태에서 고위 간담회만 열거나 법만 바꾼다고 민·군기술협력이 활성화되기는 어렵다고 본다. 가장 큰 문제점의 하나는 법규상 오류이다. 정부출연연구소가 정부부처를 지원하기 위해 제안한 연구개발과제는 연구소가 협약을 통해 바로 수행할 수 있어야 시간도 단축되고 연구개발도 활성화될 수 있다. 그러나 법조항에는 1개 연구소만 언급하고 나머지 연구소는 누락되는 바람에 26개 연구소는 지금까지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었다. 따라서 과제를 제안해 보아야 아이디어만 빼앗기고 나중에 공개 경쟁입찰을 해야 하므로 아무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상황이 지속되어 왔다. 14년이 지난 최근에야 법률 문안 수정을 건의 중이지만 지금까지도 이런 문제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민·군기술협력 담당기관의 책임이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무기체계는 사업 담당 부서도 있고 사업관리 카드도 있어 모든 의사결정이 기록되고 철저히 관리된다. 무기체계는 전담기구인 방위사업청을 비롯하여 합참과 각군 본부의 관련 부서를 다 포함하면 수천 명이 담당하고 있고, 단계별 책임도 명확히 구분되어 있어 시행착오가 거의 없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 또한 연구개발을 전담하는 국방과학연구소가 있어 많은 지원과 자문을 담당하고 있다. 전력지원체계는 품목이 10배 이상 되지만 중요도가 낮다고 평가되다 보니 담당 인력은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국방부 군수관리관실이 유일한 담당 부서이고, 각 군 군수참모부의 일부 인력이 담당하고 있을 뿐이다.

그간 국방 지휘부에 건의하여 군 역사상 최초로 전력지원체계 발전계획도 수립하였고, 전력지원체계 연구개발예산도 작년에 처음으로 50억원을 확보하였다. 무기체계 연구개발비의 0.25% 수준이다. 처음 시도하므로 연구개발 예산도 적지만 이러한 업무를 끌고 갈 컨트롤 타워 기능은 걸음마 수준이다. 미국 등 선진국은 이러한 연구개발 기획 및 통제업무를 수백 명이 분야별로 담당하고 있다. 우리의 전력지원체계 연구개발 업무를 담당하는 인력은 국방부 담당 과장 아래에 실무자 한두 사람만 보직되어 있다. 이래가지고는 실무자가 아무리 노력해도 우수한 전력지원체계를 개발하여 확보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국방부 컨트롤 타워 기능을 대폭 강화해주는 게 바람직하다.

어려움은 또 있다. 국방부의 컨트롤 타워 기능을 연구 현장에서 손잡고 일해 줄 중매쟁이 기능이 거의 없다. 이러한 기능을 수행하는 데는 현역 시절 군수 분야에서 활동한 예비역 전문 인력이 적격이다. 그러나 예비역 전문가라고 하더라도 과학기술계를 잘 알지 못한다. 과학기술연구소 내에 예비역 전문가와 연구 인력이 함께 일하는 조직을 만든다면 군과 과학기술계를 잘 연계시킬 수 있을 것이다. KIST는 예비역 전문가와 연구소 인력으로 소규모 관리조직인 안보기술개발단을 만든 후 연구소 내의 해당 분야 전문 연구원들을 네트워크로 묶어 2년간 운영해 보니 매우 효율적인 방안임을 확인하였다. 작년에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하여 확대 전파하는 것을 검토하였던 방식이다.

과학기술계는 지난 40여년간 국가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하여 왔다. 그동안 선진국 수준으로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기업들의 연구개발 능력도 향상되어 정부 출연 연구소들의 도움이 거의 필요 없는 수준으로 발전하였다. 세계적 수준의 과학기술계 정부 출연 연구소들은 요즘 국가 발전에 새롭게 기여할 수 있는 분야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과학기술계 입장에서는 무기체계와 달리 비밀 문제가 없는 군의 전력지원체계 연구개발분야가 블루 오션으로 인식되고 있다. 새 정부 출범과 더불어 과학기술 전문 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도 신설되었다. 과학기술계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면 우리 군의 전력지원체계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호기가 될 것이다. 우리 군 지휘부를 포함하여 범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관심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한국적인 전력지원체계 발전을 위해서 우리 모두 전력 지원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