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에서 촉발된 축구전쟁
장불가이온전(將不可以慍戰) ― 『손자(孫子) 화공 제12편』



노병천
(예)육군대령, 리더십박사
전 나사렛대학교 부총장
한국전략리더십연구원 원장

“축구하다가 전쟁까지 가다니?” 상식적으로는 있을 수 없다. 스포츠는 어디까지나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로 축구하다가 전쟁까지 간 사례가 있다. 바로 1969년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간에 벌어진 5일간의 전쟁이다. 100시간 만에 끝났다고 해서 ‘100시간 전쟁’이라고도 부른다. 살다보면 아주 작은 일로 인해서 큰 싸움으로 번질 때가 있다. 별 것 아닌 것이 나중에는 별 것으로 바뀌는 것이다. 욱하는 성질을 잘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

축구전쟁은 1969년의 1970년 월드컵 예선전에서 붙은 시비가 단초가 되었다. 그렇지만 진짜 이유는 두 나라 간에 정치적 갈등 때문이었고, 축구 시합은 뇌관을 터뜨리는 기폭제로 작용한 것이다.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는 130여 년 전부터 국경분쟁이 잦았다. 평균 수명이 겨우 27세에 불과한 엘살바도르와 문맹률이 60%가 넘는 온두라스는 태생적으로 서로를 반목하고 있었다. 땅이 넓은 온두라스에 지난 60년간 약 30만 명의 엘살바도르 사람들이 불법으로 월경해서 살고 있었다.
당시에 온두라스는 무려 130여 회의 혁명으로 인해서 사회적으로 매우 불안했고 빈곤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자연스럽게 엘살바도르 사람들은 온두라스의 경제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엘살바도르의 세력 확장에 위협을 느꼈던 온두라스 정부는 엘살바도르 정착민을 강제로 추방하기에 이르렀다. 그 빌미는 1969년부터 시작된 농지개혁이었는데 여기에 엘살바도르와 같은 월경자들을 제외시킨 것이다. 이렇게 두 나라간의 불화의 골을 깊어갔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았다. 1970년 월드컵 지역 예선전은 1968년 5월부터 시작되었다. 북중미 예선 14조 A지역은 중미 6개국이 각축을 벌인 끝에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가 온두라스의 수도 테구시갈파에서 최종전을 갖게 되었다. 1969년 6월7일 엘살바도르 선수단이 묵고 있는 호텔 밖에서는 밤새도록 온두라스 응원단이 소란을 피웠다. 자동차 경적을 빵빵 울리고 빈 깡통을 두드리며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대 엘살바도르 선수들은 밤새 잠을 잘 수 없었다. 그 탓이었는지 이튿날(6월 8일) 열린 1차전에서 엘살바도르가 전반전에 한골을 허용해서 1대0으로 지고 말았다.
그런데 엘살바도르에서 이 경기를 TV로 지켜보던 한 소녀가 비관해서 권총으로 자살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다. 그 소녀 장례식에는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의 모든 각료가 참석하고 대표선수단도 조의를 표했는데 이 장면이 TV로 전국에 중계되었다. 이로 인해 온두라스에 대한 적대심은 더욱 고조되었다.
6월14일 온두라스 팀이 2차전을 위해 엘살바도르의 수도 산살바도르에 왔다. 경기 전날 밤 온두라스 팀이 묵고 있는 호텔 밖은 소란스러웠다. 이번에는 엘살바도르 응원단이 호텔 창문을 깨고 죽은 쥐를 던지며 밤새 난동을 피운 것이다. 한숨도 자지 못한 온두라스 선수들은 전반전에 무려 3골을 허용해서 결국 3대0으로 지고 말았다.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마치 전쟁과 같은 경기를 하는 동안 관중석에서는 응원단끼리 격렬한 패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온두라스 응원단 차 150여 대가 불타고 응원단 2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많은 사람이 다쳤다.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 때 온두라스 전역에서는 엘살바도르 사람들에 대한 인간사냥이 벌어져 수십 명의 엘살바도르 사람들이 살해됐다. 약탈과 방화도 발생해서 재산 피해만해도 2000만 달러에 이르렀다.

여기에 더해서 온두라스 정부는 엘살바도르에서의 모든 수입을 금지시키는 조치를 했다. 이에 뿔이 난 엘살바도르는 세계인권위원회에 온두라스 만행을 제소했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되자 결국 6월23일에 두 나라는 국교를 끊었다. 국교를 끊은 지 4일이 지난 6월27일 중립지역인 멕시코시티에서 두 나라의 최종전이 열렸다. 이 날은 관중보다 오히려 경찰이 더 많았고 예상대로 경기는 난폭했다. 경기는 2대2 무승부가 되었고 연장전으로 이어졌다.
연장 전반 12분에 엘살바도르의 로드리게스가 결승골을 터뜨렸다. 그러나 바로 이 한골이 바로 전쟁의 기폭제가 되고 말았다. 격분한 온두라스 응원단이 엘살바도르 응원단에게 돌을 던져 축구장 안에서 난투극이 벌어졌다.

엘살바도르는 전쟁을 결심하고 7월14일 선전포고와 동시에 온두라스의 네 개 도시를 폭격했다. 탱크를 앞세운 보병부대는 온두라스 국경을 넘어 25마일이나 진격했다. 이때 규모는 1개 연대 약 3천명이었다. 이에 온두라스는 즉각 대응했다. 2개 여단 약 4천 명으로 맞섰다. 그리고 낙하산 부대를 엘살바도르 후방에 투입해 교란작전을 펼쳤다.
각 국은 서로가 승리했다고 보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전쟁의 분위기가 미온했다. 자원해서 군에 입대하는 젊은이들도 아주 적었다. 이 전쟁은 5일간 계속되다가 미주기구의 중재로 7월18일 정전에 들어갔다. 양국은 약 3천명이 죽었다. 이후 두 나라는 앙숙으로 지내다가 11년이 지난 1980년 페루의 리마에서 평화조약을 체결했다. 전쟁까지 벌이며 월드컵에 나간 엘살바도르 팀은 결국 유럽 강팀들에게 10-1대패를 당하며 3전 전패로 최하위로 탈락했다. 그리고 온두라스와의 무역이 막힘으로써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렸고 군부의 쿠데타에 이어 나라가 풍비박산 지경에 이르렀다.
온두라스도 경제가 악화되었고 패전 후에 나라 전체에 패배의식이 만연했다. 결국 양국 모두에게 명분도 실리도 승자도 없는 전쟁이 된 셈이다.
손자병법 화공(火攻) 제12편에 보면 의미 있는 얘기가 나온다. “군주는 분노로 인해 군사를 일으켜서는 안 되며, 장수는 성냄으로 싸움을 해서는 안 된다. 이익에 합치되면 움직이고, 이익에 합치되지 않으면 그친다.”(主不可以怒興師 將不可以慍戰 合於利而動 不合於利而止) 전쟁은 나라의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전쟁의 폐해는 그 어떤 것으로도 복구하기 어렵다. 그렇게 중요한 전쟁을 군주가 그저 화가 난다고 해서, 장수가 그저 열이 받친다고 해서 일으켜서는 안 되는 것이다. 순간적으로 폭발하는 감정 때문에 일을 저지르고 나면 남는 것은 후회뿐이다.
그래서 이어지는 어귀는 이렇다. “분노는 다시 즐거움이 될 수 있고, 성냄은 다시 기쁨이 될 수 있지만, 망한 나라는 다시 보존할 수 없고, 죽은 사람은 다시 살아날 수 없다.”(怒可復喜 慍可復悅 亡國不可以復存 死者不可以復生)
將不可以慍戰
장불가이온전
장수는 성냄으로 싸움을 해서는 안 된다.
복잡한 길을 가다가 지나가는 사람과 어깨를 “탁!”하고 부딪쳤다. 그런데 그냥 가고 있다.

“욱!”하고 성질이 올라오지 않은가? 운전하고 가는데 바로 앞에 가는 차의 운전석에서 손을 내밀고 담뱃불을 “툭툭!”터는 자를 본 적이 있는가?
“욱!”하고 성질이 올라오지 않은가?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옆 식탁에서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욱!”하고 성질이 올라오지 않은가? 전철 안에서 고래고래 고함치며 전화를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욱!”하고 성질이 올라오지 않은가? 나이 어린 녀석이 껌을 짝짝 씹으며 땅에 침을 뱉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욱!”하고 성질이 올라오지 않은가? 세상을 살다보면 “욱!”하고 성질이 올라오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교도소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을 보면 대체로 “욱!”하는 성질을 못 이겨 순간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경우가 많다. 심지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시해했던 김재규도 “욱!”하는 성질이 치밀어 순간적으로 총을 쐈다고 증언했다. 이렇게 욱하는 성질은 위험한 것이다.
옛말에 참을 인(忍)자가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그래서 분노에 관한 연구가 많아졌고, 화를 다스리는 법에 대한 논의도 많아졌다. 비벌리 엔젤은 분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어떤 사람은 분노를 지혜롭게 다루어 인생을 술술 풀어가고, 어떤 사람은 분노를 어리석게 다뤄 자신과 주변에 상처를 남기고 때론 화를 입는다. 분노는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를 모두 부른다.
분노의 주인에게는 행복과 성공을, 분노의 노예에게는 불행과 실패를 안긴다.” 성공적으로 삶을 살아가려면 욱하는 성질을 죽여야 한다. 왕도가 있는가? 아마도 없을 것 같다.
어떤 사람은 “3초 법칙”이 좋다고 한다. 욱하고 치밀어 오르면 속으로 “일초, 이초, 삼초”를 헤아리면 대부분 가라앉는다는 것이다. 어떤 연구결과에는 물을 많이 마시면 예민한 감정이 누그러진다고 한다. 그리고 물을 마시면서 죽기를 각오하고 참아보라는 것이다. 과연 당신의 욱하는 성질 죽이는 방법은?
성질내는 것도 습관이다.
將 不 可 以 慍 戰
장수 장 아닐 불 옳을 가 써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