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남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전문연구위원

약 4년 전인 2012년 11월, 대통령선거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무렵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100년전쟁’이라는 동영상이 공개되어 단기간에 수백만의 조회를 기록했다. 친일·반민족세력과 반일·민족세력 간의 전쟁이 100년 간 계속되어 왔으며, 지금도 그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동영상에는 이승만과 박정희를 이완용과 한 그룹으로 묶어 친일·반민족세력의 대표적 인물로, 그리고 김구, 안중근, 윤봉길 등을 반일·민족세력의 대표적 인물로 대비시켰던 것이다.

진보세력이 주장하는 이승만·박정희 정부는 친일세력이 반공을 명분으로 민주화운동을 탄압하며 독재정치를 해왔다는 것이다. 반면 김일성정권은 친일반민족세력을 철저히 청산했기 때문에 민족정통성을 계승한, 정통성 있는 정부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지금 한일 간 국민감정이 최악의 수준에 있는데 우리 스스로 한국현대사가 친일세력이 주도해왔다고 주장하는 것은 일본인들 앞에 민족자존심을 짓밟는 것이나 다름없다.
남북한, 어느 쪽이 더 친일적이었는가?

과연 대한민국은 친일세력이 주도했고 북한은 친일세력이 철저히 청산된 것인가? 김일성이 항일투쟁의 영웅이었다는 것은 그를신격화하기 위해 과장된 것일 뿐이다. 그의 대표적인 항일투쟁은 1937년 6월 보천보전투로 알려져 있지만, 보천보는 산악지역의 작은 마을로 일본경찰 5명이 주둔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승리란 보잘 것 없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는 1941년 일본군에 쫓겨 소련으로 넘어가 소련군 88정찰여단에 대위 계급을 부여받고 있었으며, 해방당시까지 아무런 항일투쟁이 없었다.
당시 소련이 일본에 대해 중립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의 소련군정이 32세의 젊은 나이이고 소련군 대위에 불과했던 김일성을 북한의 지도자로 내세우기 위해 그의 항일투쟁을 과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김일성은 북한정권의 지도자로서 약점이 많았기 때문에 이를 만회하기 위해 이승만 정부를 친일파 정부로 낙인을 찍어 정통성을 부정하고자 했던 것이다. 건국 대통령 이승만은 상해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이었고, 수십 년 간 일관되게 항일 독립운동에 앞장서왔으며, 정부 수립 후에도 평화선 선포 등으로 강력한 반일정책을 펴왔다.

그렇다면 해방 이후 남북한에서 친일파 청산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살펴보자. 대한민국 건국을 위한 5.10선거를 위한 선거법은 친일 인사들의 피선거권은 물론 투표권까지도 박탈하는 등 제도적으로 친일인사들의 참여를 차단했기 때문에 초대 내각이나 제헌의회에는 친일파 인사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이승만 정부의 초대 내각은 항일민족내각이라 할 수 있지만, 김일성 정권에는 상당수의 친일인사가 포함되어 있었다(표 1). 북한이 친일파를 철저히 청산했다고 하지만, 북한에서 진행된 친일청산은 체계적인 법령은 물론, 청산에 관한 어떠한 기록도 존재하지 않고 있다. 1946년 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발표한 ‘20개조 정강’에는 친일잔재의 철저한 숙청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우익 민족세력과 지주‧상공인·기독교인·지식인 등 공산정권 수립에 반대하거나 장애가 되는 사람들은 숙청하는 가운데 친일인사들도 포함됐던 것이다.

그러나 친일파라 하더라도 공산혁명 노선에 적극 동조하던 자들은 등용했다. 북한의 대표적 역사서 『조선전사 현대편(23편)』 「민주건설사1」에 따르면, “김일성 동지께서는 지난날 공부나 좀 하고 일제기관에 복무하였다고 하여 오랜 인텔리들을 의심하거나 멀리하는 그릇된 경향을 비판 폭로하시면서 … 그들을 새 조국 건설의 보람찬 길에 세워주시었다”고 기록돼 있다.

더욱이 김일성은 북한지역에서 일했던 일본인 공장 관리자와 기술자들을 억류하여 활용했다. 그들에게 어떤 상황 하에서도 생명과 재산을 보장하겠다는 신분증을 발급해주고 파격적인 고액의 봉급과 생필품 및 주택까지도 제공하는 등 특별대우를 했다. 간부급 기술자의 월급이 4,500~5,000원 정도였는데, 그것은 김일성의 월급 4,000원보다 더 많았다. 1946년 11월 북한에 억류되어 일하고 있던 일본인 기술자는 868명이었고 그들의 가족까지 합치면 2,095명이나 되었다.

북한에서 친일파를 청산하고 항일 민족세력이 건국을 주도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남한을 공격하기 위한 선동이자 명백한 허위다. 따라서 친일파 청산에 있어 북한을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그리고 한국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북한정권은 이렇다 할 경력이나 업적도 없었던 32세의 젊은 김일성을 위대한 인물로 부각시키기 위해 항일투쟁과 친일파 청산을 과장했던 반면 대한민국은 친일파가 주도한 정권이라고 낙인찍는 선전에 불과했던 것이다.

친일파 청산을 둘러싼 논란
한국현대사에서 반민특위의 친일파 청산이 미완성으로 끝났다는 것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그 활동이 시기적으로 적절치 못했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한 달 만인 1948년 9월 22일, 국회는 반민족행위자처벌법을 제정하고 일제하에서 반민족 행위를 한 자들을 체포, 조사, 재판할 수 있는 권한을 국회에 부여했다. 이 법에 따라 국회 내에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설치되었고 예하에 특별경찰대, 특별검찰부, 특별재판부 등을 두었다. 국회가 사법권까지 가지게 되어 3권분립 원칙에 저촉되었고, 이 법의 시행과정에서 사회정치적 혼란이 우려되었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국회에서 압도적 다수로 통과된 법이기 때문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반민특위는 1949년 1월부터 활동을 시작하여 화신백화점 사장 박흥식, 대한일보 사장 이종형, 3.1독립선언 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인 최린, 친일 변호사 이승우, 친일 경찰 노덕술, 소설가 이광수, 역사학자 최남선 등이 체포됐다. 반민특위가 다수의 경찰간부들을 체포하여 재판에 회부하자 경찰이 강력히 반발했다. 경찰은 해방 이래 3년 간 최악의 여건에서 치안을 유지하고 공산세력을 소탕한 공로가 있었음에도 친일파로 몰려 처벌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경찰은 국회프락치사건을 통해 반격했다. 1949년 4월 경찰은 남로당의 사주를 받아 국회에서 외국군 철퇴요청안과 남북평화통일안을 통과시킨 혐의로 국회부의장 김약수(金若水)를 포함한 13명의 국회의원을 체포했다. 그 중 3명은 반민특위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던 소장파 의원이었다. 이 사건은 당시에는 증거가 불확실하여 논란이 많았으나, 결국 공산세력의 공작임이 밝혀졌다. 1997년 5월, 북한 노동신문은 성시백이 1948년 가을부터 국회를 대상으로 공작을 벌려 국회부의장과 십여 명의 국회의원을 포섭하는 데 성공한 바 있다고 보도했던 것이다.

국회프락치사건으로 논란이 분분한 가운데 반민특위 소속 특별검찰은 1949년 6월 4일 세 사람의 경찰 간부를 반민족행위자로 체포하였다. 이에 대한 반격으로 경찰은 6월 6일 서울 중부경찰서장 지휘 하에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하여, 반민특위의 특별경찰대를 무장 해제시키고 서류도 탈취하였다. 경찰의 반민특위공격은 지방에서도 이루어졌다. 같은 날 서울경찰청은 반민특위의 불법적 간섭으로 임무수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서울지역 경찰관 9,000명 모두가 사임하겠다는 청원서를 이승만 대통령에게 제출했다. 당시 공산빨치산과 사회소요에 대응함에 있어서 경찰이 핵심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부는 심각한 정치적 위기에 직면했고, 그래서 이 대통령은 6월 8일 반민특위 소속 특별경찰대를 해산하라는 대통령 긴급명령을 발동했으며, 이로 인해 이승만 대통령은 친일파를 옹호했다는 비난을 받게 되었다. 결국 반민특위는 1949년 8월까지 잔여 업무를 처리하고 해산했다.

반민특위는 8개월간에 걸쳐 688명의 반민족행위자를 수사하고 559명을 특별검찰부에 송치하였으며, 특별검찰부는 그 중 293명을 특별재판부에 기소했으며, 특별재판부는 사형 1명, 무기징역 1명, 유기징역이나 집행유예 판결을 내린 것이 10명이었고, 그 외 공민권 정지 18명, 무죄 또는 형 면제가 8명이었다.

반민족행위자들을 단죄해야 한다는 도덕적 당위에서 보면, 반민특위 활동이 기대 이하의 성과를 거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주장에 자주 동원되는 것이 프랑스의 나치협력자 청산이다. 그러나 프랑스와 한국은 두 가지 점에서 결정적으로 다르다. 첫째, 프랑스가 나치에 의해 점령된 기간은 2차 대전 중 4년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에 응징 대상자는 소수에 불과했지만 한국은 사실상 40년 일본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쓸 만한 인재는 대부분 친일인사로 낙인찍힐 가능성이 있었다. 해방 당시 남한에는 전문학교 이상의 교육을 받은 사람이 2만 5,000명 정도에 불과했다. 그들을 제외하고는 나라를 운영할 인재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둘째, 프랑스는 분단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국가안보에 대한 우려 없이 나치협력자를 응징할 수 있었지만 우리는 공산세력과 생사를 걸고 싸우고 있었다는 것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정부 수립 당시부터 공산세력의 공세로 대한민국은 생존까지 위협받는 위기에 처해 있었다. 제주 4.3사건 이래 무정부 상태가 계속되고 있었고, 여수·순천 사건 등 계속된 군대의 동요, 지리산 일대의 공산빨치산 출몰 등으로 내전을 방불케 하는 시기였다. 더구나 미군은 1949년 6월 말까지 완전 철수를 목표로 군대를 철수시키고 있었다. 당시 정부는 국가보안법을 제정하여 군대 등 각계각층에 침투해 있던 공산분자들을 색출하는 반공투쟁에 몰두하고 있었다.

더구나 김일성은 1949년 신년사를 통해 적화통일을 의미하는 국토완정(國土完整)을 13번이나 강조하는 등 1949년을 적화통일의 결정적 시기로 판단하고 총공세를 벌이고 있었다. 그래서 당시의 최우선 과제는 남로당과 북쪽에서 침투한 공산빨치산들의 전복(顚覆) 활동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들과 싸우고 있는 일제 출신 경찰과 군대의 간부진을 대대적으로 제거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국회가 최악의 안보위기를 도외시하고 반민족행위자에 대한 성급한 숙청에 나섰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들을 제거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뽑아 훈련시킬 만한 재정적 여유도 없었다. 정부는 군대와 경찰을 무장시키고 훈련시키기 위해 화폐를 발행하려 했지만, 미국 원조 당국의 인플레 억제 방침으로 인해 그러한 계획이 좌절되었던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군대와 경찰에서 일제 경력자를 모두 제거했더라면 군대와 경찰이 무력화되고 반공태세가 와해되어 대한민국의 생존 자체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친일파 청산이 중요한 문제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보다 시급했던 것은 공산세력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일이었으며, 친일파 청산은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할 수 있는 문제였다. 불행이도 곧이어 6·25전쟁이 일어났기 때문에 친일파를 청산할 여건이 못 되었고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