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옥
전 국방부차관
재향군인회 육군부회장

한반도 안보상황이 최근 요동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의 한국안보상황은 마치19세기 말 상황과 비슷하다고들 한다. 그 당시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들이 변했다. 한 가지 비슷한 것이 있다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나라의 주권과 영토를 독자적으로 지켜낼 힘을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 아닐까한다.

120년 전 한반도가 일본, 중국, 러시아의 힘의 각축장이 되었을 때, 청일전쟁(1894~1895)과 러일전쟁(1904~1905)에서중국과 러시아를 연이어 격파한 일본이 동북아시아의 강국으로 등장하여 1910년에는급기야 한반도의 조선왕조를 합병하여 30여 년의 가혹한 식민통치를 하게 됐던 것도,당시 무기력하고 허약하기만 했던 조선왕조말기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을 것이다.

한마디로, 평소 스스로 갖추고 있어야 할자위력을 갖추는 일에는 무관심한 채로 있다가, 위기가 닥쳤을 때에야 어느 外勢에 의존해야할 지를 놓고 우왕좌왕하며 政爭만일삼았던 조선말기의 민족적 비극이었다.한반도, 다시 열강의‘힘의 각축장’이 되어가고 있다.

한때 “병든 사자”로 비하됐던 중국이 지금은 도광양회(韜光養晦)의 단계를 지나 다시대국굴기(大國崛起)의 단계로 진입해 들어가는 형국이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2012년 2월 국가부주석 자격으로 워싱턴 방문 시‘신형대국관계’를 언급한 이래, 2013년 5월에는 국가주석으로서 美中 정상회담을 통해 오바마 대통령에게 ‘신형대국관계’에 관해 직접 설명함으로써 중국이 미국과 마주대하는 강대국이 되었음을 국제사회에 천명했다. 중국이 경제적으로는 물론 군사적으로도 그럴 수 있는 위치에 있음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신호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의 이 같은 부상으로 동북아는 다시중국, 일본, 러시아 등 강대국들의 힘의 각축장이 되어가고 있다. 중국과 일본의 갈등과 분쟁은 센카쿠(댜오유) 열도를 둘러싸고첨예화되어가고 있고, 동지나해, 남지나해에서 동아시아 여러 국가들과의 갈등관계도심화되고 있다. 중국의 공세적인 대외정책이 구사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핵/미사일이 동북아의 또 다른 불안요인이 되고 있어 한반도가 동북아 불안정의 중심이 되고 있다. 한반도 문제에 관한주변국들 간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될소지가 여전한 가운데, 미국의 전통적인 국제적인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되어가는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국은 물론이고 미국 또한 북핵문제를비롯한 한반도문제 해결에는 중국의 전향적인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북한도 체제 생존을 위해서는 중국의 도움이 불가결의 요소로 인식하고 있다.

이처럼 중국의 한반도의 장래에 대한 영향력은 한반도의 지정학적인 여건에서 뿐만 아니라 역내 한반도 주요 이해당사국 간의 이해관계 측면에서도 결코 간과할 수가 없다. 중국은 이런 상황을 최대한 이용하여 자국의 전략적 입지의 강화를 도모하고 있다. 이에 대응하여 일본 아베정권은 ‘적극적 평화주의’를 표방한 공세적 대외정책을 구사하면서 외교적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군사적 측면에서도 자위력을 강화하고 집단자위권 행사를 공식화하면서 군사대국화의 방향으로 질주하고 있다.

한편, 미국은 일본 아베정권의 공세적인대외정책을 적극 환영하는 입장을 취함으로써 중국의 對 美日 경계심을 한 층 고조시키고 있어, 동북아는 지금 중국과 일본 간에, 중국과 미국 간에 일종의 패권다툼을 야기하는 형국이 되어가고 있다. ‘강력한 러시아’를 지향하는 푸틴정권이 이런 현상을 보고만 있을 리가 없다.

동북아의 제반 현안문제들은 이처럼 역내주요 국가들 간의 ‘힘의 상호작용’ 관계에 따라 그 해결을 위한 대결, 타협 또는 협력의 정도가 드러나게 될 것이다. 힘이 없는 약자들의 문제는 힘을 가진 강자들 간의 타협의 대상이 될 수가 있다. 19세기 말 조선왕조의 운명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21세기는그때와는 다를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분단 70년 극복, 관건은 힘이다.

지난 8월 4일 북한군이 자행한 목함지뢰폭발사건이나 8월 20일 서부전선 대북확성기방송을 빌미로 자행한 연천지역 포격도발사건, 준전시상태 선포, 48시간 최후통첩 등북한의 일연의 대남공갈협박은 우리 정부와 군의 단호한 군사적 대응과 대통령의 강력한 응징의지 표명으로 일단 북한의 기가 꺾였던 것은 분명하다. 그들은 황급히 고위급남북회담을 제의했고, 8월 25일 6개항의 합의문이 발표됐다.

합의문 발표 후, 남북 양측은 각각 협상결과를 놓고 자신의 승리라는 자화자찬 분위기에젖어있다. 우리 측은 북한 측이 지뢰폭발사건에 유감 표명한 것은 자신의 소행임을 시인한것이며, 우리 측의 조건부 대북확성기 방송중단 합의는 북한도발의 재발방지조치가 될 수있음을 강조한다. 반면 북한 측은 지뢰폭발사건은 남측의 조작극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있고 재발방치조치에는 별 언급이 없다.

남북한은 자신의 승리 주장은 상대방의패배를 주장하는 말과 같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런 합의는 진실성 있게 실천될 수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지난 8.25 합의내용을 ‘윈윈’이었다고 말하기도 힘들 것 같다.

남북 간의 합의는 본질적으로 모순을 내포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남북 간에는 관계개선을 위한 당국자회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무엇을 위한 관계개선이가? 북핵제거, 긴장완화 및 평화통일기반구축, 자유민주주의적 한반도통일 등은 우리의 목표일것이다. 결코 북한이 용납할 수 없는 목표들이다. 북한 김정은 정권은 핵/경제 병진정책 지속, 한미동맹체제 제거, 전한반도의 주체사상화 등을 부단히 추구할 것이 분명하다. 우리 측이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목표다.

궁극적 목표가 서로 상반되는 관계개선이진정성 있게 실현된다는 것은 기대할 수가 없다. 남북한 간의 진실성 있는 대화와 관계개선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북한이 한국군의 독자적인 대북억제역량을 충분히 인식토록 해야 한다. 한미연합억제역량은 顯在的인 대북억제 면에서는 최상의 억제역량이다.한미동맹이 확고히 유지되는 한 별 문제가 없다. 그러나 북한은 주한미군이 없는 한국군만의 독자적인 대북억제역량을 주시할 것이다.

즉, 북한은 주한미군이 배제된 한국군만의 군사역량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을 수 있다.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 북미관계개선,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전환 등을 끈질기게 요구하는 이유가바로 이런 생각 때문이며, 한미동맹의 와해를 부단히 도모하는 이유다. 북한의 이런 생각이 변하지 않는 한, 남북한 간의 진정한 관계개선과 평화정착은 기대할 수 없다.

한국군이 주한미군 없이도 독자적으로 북한의 모든 대남도발을 억제하고 도발 시 강력히 응징할 군사역량을 보유하고 있다는사실을 북한군이 인식할 때에야, 진정한 남북관계개선에 대한 북한의 호응이 이루어질수가 있고, 또 평화통일 기반도 구축될 수가있을 것이다.통일준비, 내실을 기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론’은 우리 국민들 사이에 통일의 비전과 그 염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대통령이 직접 주관하는 대규모의 ‘통일준비위원회’가 대통령 직속기구로 설립됐고, 각 분야별로 통일을 촉진하고 통일에 대비하는 다각적인 연구들이진행되고 있다. 문제는 준비된 제반 통일준비 대책들을 실천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대내외적 여건이 조성될 수 있을 것인가이다.

대책은 우리정부가 얼마든진 자의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그러나 그 실천은 행위주체들 간의 힘의 상호작용 관계에 달려 있다. 우리정부가 자의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영역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며, 특히 힘의 상관관계에 좌우된다.

박근혜정부가 제창하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동북아 평화협력구상, 유라시아 이니셔시브 등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및 통일을위한 정책제안들도 주변국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력을 필요로 한다. 지역 내에서 한국의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역량이 주변국들에게 어떻게 비쳐지느냐가 우리정부의 정책제안들에 대한 주변국의 관심과 참여의 정도가 좌우될 수 있다. 특히 한국의 공고한 자주적 군사역량과 견고한 한미동맹이 주변국들의 이기주의적인 계산과 오판을 방지하기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할 것이다.

한국의 공고한 자주적 군사역량은 한미동맹을 더욱 견고히 하는 촉매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전시작전권문제도 어느 일방의 요구로 본의 아니게 전환되기도 하고 연기되기도 하는 껄끄러운 상황을 야기할 필요도 없을것이다. 서로 충분히 공감하는 시기와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다뤄질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의군사역량을 대폭 강화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THAAD)의 한반도 배치문제에 관해 중국정부가 우리 정부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하고있고, 우리 정부가 중국 눈치를 보며 미국과중국 사이에서 우물쭈물 하고 있다는 인상을주는 것도, 또 박근혜대통령이 9월 2일 중국을 방문하여 시진핑과 정상회담을 갖고 이어서 9월 3일 중국의 전승절 열병식 참관 문제를 놓고 우리 정부가 고심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도 마치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비유를 듣기에 결코 부족함이 없을 것 같다.자주적 외교로 국제관계를 이끌어갈 수 있는힘, 즉, 우리나라의 외교가 그에 걸맞는 군사력으로 뒷받침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결코 주변강국들과 1 대 1의 군사력을 갖자는 말이 아니다. 주변국들이 한국의 독자적인 군사역량을 간과할 수 없을 정도의 국방의지와 군사력, 현실적으로는 독자적인 대북억제역량을 확보하려는 확고한국방의지와 적정수준의 국방투자를 계속하자는 것이다. 국방투자를 현 수준에서 매년GDP 대비 0.1% 씩만 늘이면, 5년 후 우리의국방예산은 GDP 대비 3% 수주을 상회하게될 것이다. 주변국들은 한국의 이런 국방노력 추세를 계속 주시하게 될 것이며, 한국의통일 주도를 위한 정치적 의지와 군사역량을 평가하게 될 것이다.

관건은 대한민국의 힘이다. 그것은 군사적 역량이며 국가의지다. 동북아의 이스라엘로 비유될 수 있는 힘 있는 대한민국이 되어야 한다. 이는 주변국들의 눈치와 간섭을의식할 필요 없이 우리 스스로 조용히 갖추어가는 노력만을 필요로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