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남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전문연구위원

건국을 둘러싼 논란
건국기념일은 모든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기념일이다. 이 날을 기해 건국이념과 헌법정신을 되새기고 나라에 기여한 사람들을 추앙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에 건국기념일이 있는지 의문이다. 개천절이 있기는 하지만 상징적 의미만 있을 뿐, 이 날을 건국기념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원래 광복 3주년인 18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선포했지만, 광복절 기념보다는 정부수립 경축이 주된 목적이었다. 건국이란 선거를 통해 헌법을 제정할 제헌의원을 선출하고, 국회 구성을 통해 헌법을 제정하고, 그 헌법에 따라 대통령을 선출하고, 대통령이 정부를 수립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정부수립은 건국의 마지막 단계인 것이다. 따라서 정부수립은 좁은 의미로는 행정부 수립이지만 넓은 의미로는 건국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다. 정부수립의 경축은 곧 건국의 경축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8·15의 의미가 어느 새 건국기념일의 의미는 사라지고 일제의 압제에서 해방된 광복절로만 인식되고 있다. 매년 광복절 전후가 되면 일제의 만행을 기억하고 규탄하는 내용만 강조되고 있을 뿐, 건국의 의의는 조명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3.1절에서도 일본의 침략과 압제를 규탄하는 내용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대한민국의 건국은 잊혀진 것이 되고 말았다. 대한민국의 건국역사와 건국정신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또한 나라의 기본법인 헌법의 정신이나 기본이념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나라로서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같이 된 데에는 건국이 언제냐는 데 대한 근본적인 대립이 있기 때문이다. 역사학자를 위시하여 시민단체와 정치권까지 건국을 두고 논쟁을 벌이고 있으며, 그것이 정치논쟁, 이념논쟁으로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대한민국의 건국은 건국혁명이라 할 정도로 높이 평가되고 있는가 하면, 일부에서는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을 건국이라 주장하면서 1948년의 건국을 부정한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물론 헌법정신까지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임시정부의 수립을 건국이라고 하면, 1948년에 세워진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은 모호해지고, 북한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반국가단체라는 헌법적 결단도 희미해진다.

건국을 둘러싸고 심각한 갈등이 표출된 계기는 2008년 광복절이다. 당시 이명박 정부가 광복절 기념행사와 ‘건국 60주년’ 기념식을 겸하여 개최하자, 야당과 일부 시민단체는 이를 강력히 비판하면서 백범 김구의 묘소를 참배했다. 뒤이어 평화통일시민연대 등 56개 단체와 야3당 국회의원 74명이 건국 60주년 행사 직전에 정부가 추진 중인 「건국 60주년 기념사업」이 위헌(違憲)이라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들은 성명서를 통해 “1948년의 정부수립을 건국일로 지정한다면 우리 한민족의 역사는 단절되고 왜곡될 수밖에 없다. 반만년동안 이어져온 한민족의 역사가 순식간에 60년 신생국 역사로 움츠러들고, 1910년에서 1948년까지 38년에 걸친 민족역사가 단절되며, 이 시기에 전개된 항일독립운동도 통째로 부정되고,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존재도 유명무실해질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1948년에 건국되었다고 하는 것이 왜 과거의 역사를 부정하게 되는지 전혀 설득력이 없다.

1919년 건국설을 신봉하는 한 국사학자는 1948년에 건국되었다고 하는 것은 “1910년에서 1947년까지 한반도에 주인이 없었다는 것이고, 주인이 없는 영토에 대한민국을 건국하였다는 말과 같다”고 비판하면서, 1948년에는 단지 대한민국 정부 수립만이 있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일제 치하에서도 우리 민족은 한반도에 살고 있었고 중국에 임시정부가 있었으니까 국가가 있었다는 것이다. 국가와 민족을 혼동하고 있는 주장에 불과하다. 일제 치하에서도 민족은 존재했지만 우리의 민족국가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일본의 노예처럼 살았던 것이다.
최근 정부가 역사교과서를 국정으로 바꾸기로 하면서 또 다시 역사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 논쟁 대상 중의 하나가 바로 건국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건국이 당연히 1948년 8월 15일에 이루어진 것으로 알고 있지만, 1948년 건국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역사학계에서 다수를 차지할 만큼 현실은 만만치 않다.
1919년에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
1919년에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1948년의 제헌헙법과 1987년에 개정된 제6공화국 헌법의 전문(前文)을 근거로 들고 있다. 제헌헙법의 전문에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라고 되어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건국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맥상 삼일운동으로 건립한 것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이지 대한민국은 아니며, 따라서 그 독립정신을 계승하겠다고 한 것이고, 민주독립국가의 재건은 임시정부의 재건이 아니라 국가의 재건을 의미하는 것이다. 임시정부가 건국이었다면 국가를 재건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제6공화국 헌법의 전문에는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한 것을 근거로 역시 대한민국의 건국은 임시정부에서 이루어졌으며, 대한민국은 그 법통을 계승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1987년 말 헌법 개정 당시 정치적 대타협을 위해 여당은 야당의 주장을 대부분 수용했기 때문에 그 같은 표현이 채택된 것이다. 그러나 임시정부의 법통 계승이란 선언적 의미가 있을 뿐이지 실질적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국가는 네 가지 요소를 반드시 갖추어야 한다. 즉 ➀ 국가가 실질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영토, ➁ 국가의 법규와 정부의 명령에 실질적으로 복종하는 국민, ➂ 주권자인 국민에 의해 구성된 정부, ➃ 자주적으로 대내외 정책을 결정하고 수행할 수 있는 주권(主權) 등이다. 임시정부는 그 같은 4대 요건(영토, 국민, 정부, 주권)을 갖추지 못했다. 또한국제법적으로 보더라도 임시정부로서 갖추어야 할 법적 요건(국제법에 입각한 주권 주장, 망명정부 소재지 국가의 승인, 실질적인 국가행위) 어느 것도 갖추지 못했다. 당시 중화민국 정부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법적인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하고 정부 차원에서 정식으로 승인하지 않고 ‘사실상의 승인’(비공식 승인)에 그쳤던 것이다.
1919년 건국설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임시정부 수립일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3.1운동이 일어난 3월 1일, 임시정부 수립을 기념한 날짜인 4월 11일, 또는 임시정부 수립을 선포한 날짜인 4월 13일 등으로 갈라져 있다. 그리고 대한민국이 건국된 지 70년 가까이 되었지만 단 한 번도 임시정부 수립을 건국으로 기념하지 않았다.
임시정부 요인 누구도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만약 1919년에 건국이 되었다면, 당시의 정부를 임시정부라고 부르는 것은 모순이다. 당시의 정부를 임시정부라 부른 것은 임시정부 인사들 자신이었다. 임시정부 수립이 건국이 아니었다는 것은 임시정부가 1941년 11월에 선포한 「대한민국건국강령」에서 나타난다. 건국강령이란 앞으로 건국이 이루어질 때 해야 할 과업을 정리한 것임으로 이미 건국이 되어 있었다면 그러한 ‘건국강령’을 마련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건국강령 제3장 1항은 임시정부가 활동하던 시기는 복국기(復國期)에 불과하며, 건국기(建國期)는 “적의 통치기구를 국내에서 완전히 박멸하고 국가의 수도를 전정(奠定)하고 중앙정부 및 중앙의회의 정식발동으로 주권을 행사하며 선거와 입법과 임관과 군사와 외교와 경제 등에 관한 국가의 정령(政令)이 자유로이 행사되며 삼균제도의 강령 및 정책을 국내에 추행(推行)하기 시작하는 단계부터 시작된다”고 규정했다. 이처럼 임시정부는 일제를 몰아낸 뒤 건국하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했던 것이다.

당시 남한의 모든 국민은 임시정부를 국가로 보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임시정부 요인들도 자신들이 국가를 건립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임시정부 요인들은 귀국 후 임시정부 요인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과도정부를 구성하려 했으며, 그런 사실이 곧 그들이 중국에서 국가를 건국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그들이 국가를 건국했고 임시정부가 국가의 정부라면 그런 일을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임시정부는 3·1운동 정신을 바탕으로 독립운동을 조직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임시정부 형태를 갖추고 독립운동을 지휘했던 애국지사들의 단체였을 뿐이다. 임시정부의 독립투쟁 정신과 노력은 높이 평가되어야하지만 그것이건국이었다고 볼 수는 없다.

임시정부 수립이 건국이라고 주장하는 국사학자들의 공통점은 1948년에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는 남한만의 ‘단독선거(單選)’에 의한 ‘단독정부(單政)’로 ‘분단국가의 출범’으로 매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분단된 나라는 나라다운 나라가 못된다면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사실상 부정해왔던 것이다. 일부 급진주의자들은 대한민국을 ‘태어나서는 안 될 나라’라고 저주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고 하면서 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것인가?
정부 당국의 실책도 있었다.

더욱 한심한 것은 정부 당국조차도 1948년 건국을 부정한 사실이 있다는 것이다. 2013년 10월 교육부는 ‘고교 한국사 교과서 수정 보완사항’ 중 교학사 교과서의 ‘건국’이란 용어의 삭제를 지시하면서 1948년 8월 15일 건국설(建國說)은 헌법적 근거가 타당하지 않고, 1948년 당시에도 ‘건국’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없다고 했다.
교육부는 그 근거로서 국사편찬위원회 자문의견서를 인용하면서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을 부정하는 이유로 ➀ 1919년 임시정부 건국 기점(基点)설, ➁ 1897년 대한제국 건국 기점설, ➂ 기원전 2333년 단군왕검 건국 기점설 등을 제시했다.

무엇보다 먼저 교육부가 ‘1948년 건국설’이란 표현을 쓴 것은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는 설(說)이 있다는 주장을 편 것으로 참으로 경솔하기 짝이 없는 처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임시정부 수립이 건국이 될 수 없다는 점은 앞에서 설명했기 때문에 나머지 두 가지 주장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대한제국 건국 기점설을 제시한 근거는 대한제국이 대한민국 국호의 원천이며, 대한제국도 민국(民國)을 지향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대한제국은 조선왕조의 연장일 뿐이며,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헌법제정 당시 제헌국회는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대한제국이나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따온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고려공화국, 조선공화국, 한국 등 몇 가지 명칭을 두고 열띤 토론을 통해 결정한 것이다. 임시정부 내무장관 출신인 신익희조차 고려공화국에 찬성한 바 있다.
단군왕검 기점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우리나라는 일찍이 단군(檀君)에 의해 건국된, 유구한 역사를 가진 나라인데 1948년의 건국을 주장하는 것은 우리나라를 신생국으로 전락시키는 반민족적 반역사적 행태라고 비판한다. 그들은 민족과 국가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민족의 기원은 고조선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후의 우리민족의 역사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의 건국, 고려의 건국, 조선의 건국 등이 있었다. 어느 역사학자도 그것이 건국이 아니었다고 부정하지 않으면서 대한민국의 건국은 왜 부정하는가?

교육부가 건국과 같이 국가정체성과 관련된 중대한 문제를 해석함에 있어서 일방적 주장을 펴온 국사학자 중심으로 구성된 국사편찬위원회 자문위원들의 견해를 그대로 수용할 것이 아니라 법제처는 물론 헌법학계와 정치학계 등 각계 전문가들의 폭넓은 자문을 거쳐 결론을 내렸어야 마땅하다. 그러면서도 교육부는 일부 역사 교과서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립, 즉 북한의 건국이란 표현은 방치했다.

대한민국의 건국은 민주공화국의 건국
어떤 설명을 하더라도 임시정부 수립이 대한민국의 건국이라는 주장은 객관적으로 타당성이 없다. 그러한 상황에서 1948년의 건국마저 부정한다면 대한민국은 건국 자체가 불투명해지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건국은 임시정부 중심의 독립운동-광복-5·10총선거-국회구성-헌법제정-정부수립의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 것이다.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은 오랜 건국과정의 시작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1948년의 선거와 헌법제정과 정부수립이야 말로 참된 건국이었던 것이다.
대한민국의 건국이란 이 땅에 없던 나라를 처음 세웠다는 주장이 아니다. 헌법 제1조에 기록되어 있듯이 민주공화국이 처음으로 건국됐다는 것이다. 지난 70년 가까운 기간 중 대한민국이 온갖 난관을 극복하고 눈부신 발전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고 나라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민주공화국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1948년 건국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합의가 있어야만 대한민국의 건국정신과 헌법정신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고, 국가정체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사회통합을 이룩해야 하며, 그 바탕 위에서 대한민국이 계속 발전할 수 있고, 나아가 통일도 주도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