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남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전문연구위원


농지개혁 없이 민주헌법은 무의미했다. 오랫동안 양반·지주들은 소작(小作)제도를통해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농민들을 지배해왔다. 1948년의 『조선경제연보』에 의하면, 인구의 71퍼센트를 차지한 농민 중 85%가소작농 내지 반소작농이었다. 농민들이 지주에 의해 사회경제적으로 예속되어 있는 한, 헌법에 규정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결코 뿌리내릴 수 없었다.

천 년 가까이 농민은 지주‧양반에 예속된 소작인이었다. 일본 식민당국도 지주를 통해 농민을 수탈했기 때문에 농민들의 삶이 더욱 비참해졌다. 토지임대료는 수확의 절반에 이르 렀고, 소작료는 쌀 생산지역인 전라도에서는80%에 육박했다. 농민들은 겨울을 나기 위해지주로부터 양식과 돈을 빌려서 연맹했지만 빚만 쌓여 더욱 가난해졌다. 뿐만 아니라 지주는 소작인들이 고분고분하지 않으면 경작권을 언제든지 철회할 수 있었기 때문에 농민은 지주에게 노예처럼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헌법에 규정된 평등권과 자유권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이처럼 자유가 없고 가난하고 무지한 농민들이 다수인 나라에서 민주발전과 경제발전이 불가능한 것이다.

해방 후 농민들의 불만이 폭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에 토지문제는 시급히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당시 농지개혁을 주도한 사람은 이승만 대통령이다. 그는 양녕대군 후손으로 왕족이지만 부패무능한 조선왕조와 양반세력을 신랄히 비판해왔다. 그것은 그가 1904년 한성감옥에서 쓴 『독립정신』에 잘 나타나있다. 그래서 그는 건국 이전부터 농지개혁이 최우선 과제라고 판단했다. 1948년 3월 20일친구이자 정치고문인 로버트 올리버 박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일단 정부를 수립하면 (그동안 우리를) 한국의 파시스트, 반동세력 혹
극우파라고 지탄하던 사람들은 우리가 이 나라를 얼마나 자유화하는가를 보고 놀랄 것입니다. 우리가 제일 먼저 처리할 과제는 농지개혁법입니다.”라고 했다

해방 직후 지주들은 민족반역자 또는 친일분자로 지탄받았고 이를 틈타 좌익세력은 지주의 토지를 빼앗아 농민에게 토지를 분배해야 한다고 선동하였다. 1946년 2월, 북한에서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설립하고 3월부터 지주들을 친일분자 또는 민족반역자로 몰아 토지를 몰수하여 농민에게 분배했다. 이에남로당은 『해방일보』 등을 통해 북한의 토지개혁을 선전하며 남한에서도 그 같이 개혁이 있어야 한다며 농민들을 선동했다. 이 시기인 1946년 대구에서 ‘10월사건’이 일어났으며, 불만에 찬 많은 농민들이 동조하면서 경남북을 포함한 4개도, 46개 군(郡)으로 확산되었다. 이사건이 주로 농촌지역에서 일어났기에 추수사건이라 하기도 했다.

따라서 남로당 당수 박헌영은 남한의 공산혁명이 가능할 것으로 확신했다. 1950년 3월김일성과 박헌영이 남침계획을 허가받기 위해 모스크바로 가서 스탈린을 만났을 때 박헌영은 “우리가 밀고 내려가면 남조선 곳곳에서 남로당원들에 의한 인민봉기가 일어나 미군이오기 전에 적화통일이 완료된다”고 큰 소리쳤다. 그러나 막상 북한이 남침했을 때 남로당이주동한 어떤 폭동도 일어나지 않았다. 6.25전쟁이 끝난 후 김일성은 박헌영을 비롯한 남로 당계를 숙청하면서 내걸었던 가장 큰 죄상의하나가 남로당의 폭동이 없었다는 것이다.

당시 정세로 볼 때, 한국은 중국과 베트남처럼 농촌을 근거지로 한 공산혁명 가능성이 높았다. 그럼에도 왜 중국과 베트남에서는 ‘농촌에서 도시를 포위하는 공산혁명’이 성공했지만 한국에서는 실패하게 되었는가? 그것은 무엇보다도 한국에서는 토지개혁에 성공했기 때문이며, 중국과 베트남에서는 토지계획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농촌으로 도시를 포위한 마오쩌둥전략

마르크스와 레닌의 공산혁명전략은 노동자를 중심으로 도시 폭동을 일으켜 권력을 장악한 후 농촌을 평정하는 방식을 추구했다. 왜냐하면, 도시에는 물질적 부와 인적 자원과 정예부대가 밀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공산당은 1930년대 초까지 리리싼(李立三) 중심의소련파가 주도권을 장악하고 소련의 지령에따라 도시지역의 노동자 총파업에 편승하여폭동을 일으켰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나 마오쩌둥이 이끄는 부대만이 국민당정부의 통제력이 미치지 않는 장시성의 정강산(井岡山) 지역으로 도피하여 추수폭동을 일으키는 방법으로 농민들을 선동하고 조직했다. 공산군은 장악한 지역 내 모든 지주와공공의 토지를 몰수하여 농민들에게 경작하도록 하는 이른바 ‘토지혁명’을 실시했다. 이로 인해 농민들은 공산세력을 적극 지지하게되었고, 이에 따라 공산세력은 여러 곳에 소비에트(해방구)를 설립하여 그들의 영역을 확대해나갔다. 공산군은 노동자와 농민의 군대라는 의미에서 공농홍군(工農紅軍)이라 했다.

마오는 대장정(大長征) 과정에서 인구의 90%인 농민이 공산혁명의 중심이 되어야 하며, 농촌 소비에트를 근거지로 도시를 포위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1935년 마오의 전략이 공산당의 공식 전략으로 채택되면서 그는 공산당 최고지도자가 되었다. 그 후 공산군은 계속해서 국민당군을 소비에트지역으로 깊숙이유인하여 게릴라전을 통해 국민당군을 격파했다.

국민당정부가 실시하려다 행정력 부족으로 실패했던 토지개혁을 마오가 실시함으로써 역사상 처음으로 자기 땅을 갖게 된 농민들이 공산당을 적극 지지하게 되어 공산화에 성공할수 있었던 것이다. 일부 역사가들은 만약 국민당정부가 토지개혁에 성공했다면 중국이 공산화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베트남의 공산화도 농촌으로 도시를 포위하는 전략으로 이루어졌다. 전통적으로 지주들이 대부분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고 프랑스식민지하에서 프랑스인들의 대규모 농장경영을 하면서 소작 농민이 전체 농민의 60%에 달했다. 높은 소작료, 높은 현물세금, 고리채 이자 등 과중한 부담으로 소작인들의 삶은 비참하기 짝이 없었으며, 공산세력은 이를 혁명의근거지로 만들었다. 프랑스 식민정부는 주요도시만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농촌과 밀림지역은 공산세력의 근거지가 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식민정부를 몰아낼 수 있었다. 1954년 남북 월남으로 분리된 후 월맹에서는공산주의식으로 토지를 몰수하여 농민들에게경작하도록 했던 것이다.

월남에서도 농민들은 지주로부터 착취당하여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토지개혁은 공산세력과의 대결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문제였다. 그러나 월남정부는 독재와 부패에 휩싸여 참담한 농촌의 실정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토지개혁이 실패했다. 소작제는 그대로 유지됐고, 지주는 높은 소작료를 징수하여 농민들의 원성이 대상이 되고 있었다. 베트콩 등 공산세력은 농민들의 불만을파고들어 토지를 무료로 나누어준다는 선전으로 농촌을 공산혁명의 근거지로 만들었다. 그결과 주요 도시와 간선도로를 제외한 농촌지역 대부분은 그들의 영향력 하에 들어갔으며,이를 근거지로 도시를 포위 공격하여 공산통일을 이룩했던 것이다.

중국의 혁명전략을 추종한 김일성집단과 남로당은 대한민국 건국 전후부터 농촌지역과산악지역에 지지세력을 구축하고 게릴라전을펴왔으며, 1968년에는 울진‧삼척지역에 침투하여 동부 산악지대에 근거지를 마련하려 했던 것이다.

농지개혁은 건국 이래 가장 중요한 개혁토지개혁을 통해 토지에 얽힌 전통질서를해체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많은 나라에서 토지개혁에 실패했다. 조선왕조에서도 역대 임금이 농지개혁을 여러 번 시도했지만 태조의 과전법(科田法) 이후 한 번도성사시키지 못했던 어려운 문제였다.이승만 대통령은 취임 직후 진보적인 조봉암과 강정택을 농림부 장·차관으로 기용하고국회에 첫 번째로 제출한 법안도 농지개혁법안이었을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평소 농지개혁을 역설해온 조봉암을 발탁한 이유에 대해이승만 대통령은 1948년 8월 4일자 올리버에게 보낸 편지에서 “농민을 장악하기 위해서”라고 했고, 또한 “공산혁명을 막기 위해서라도시급히 농지개혁을 해야 한다”(서울신문 1948년 2월 7일자)고 했다.

농지개혁을 반대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국회는 1949년 6월 농지개혁법을 통과시켰지만다수의 지주 출신 의원들로 인해 원안이 크게훼손되었기 때문에 정부는 곧개정안을 제출하여 1950년 3월 농지개혁안이 최종 확정되었다.
 
주요 내용은 ▶농지의 소유 상한선은 3정보 ▶초과농지는 유상매입‧유상불하 ▶지주에게 평년작의 150%를 지가증권으로 지급▶농민은 평년작의 30%씩 5년간 분할 상환등이었다.

이승만 정부가 농지개혁을 공포했을 때 지주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고 강력히 반발했다.어떤 지주는 “농지를 이승만에게 뺏겼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이용만 당했다”고 분노했고,많은 지주들은 정부에 진정서를 내겠다며 떼지어 상경하기도 했다.

이 법이 시행되기 시작한 것은 6.25전쟁 직전이었기 때문에 전쟁으로 제대로 시행되기어려웠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농지개혁법안이 국회에서 심의되기 시작한 1949년 초부터‘시행법률 부재 하의 행정조치’로 농지개혁준비를 하도록 독려했기 때문에 농지개혁법제정 후 농지개혁이 신속히 이루어질 수 있었다. 특히 1950년 3월에 농민들에게 ‘분배농지예정통지서’를 배포했으며, 이는 자기들이소작해오던 땅이 자기들의 땅이 된다는 증명서였기 때문에 농지개혁의 효과는 조기에 나타났다. 그 결과 6·25 이전에 분배 예정 토지의 60퍼센트가 분배되었고, 나머지는 1951년4월 농지개혁법 시행규정이 공포된 후 완료되었다. 그리하여 전체 농지 면적에서 자작(自作) 농지의 비율이 92.4퍼센트가 되어 해방 당시의 35퍼센트에 비해 획기적으로 높아졌다.

농지개혁은 한국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전통사회에서 토지는 단순히 경제적 수단만이 아니다. 양반이 지주였기 때문에 토지는 곧신분을 의미하고 또한 권력을 의미한다. 더구나 천 년 이상 계속되어온 토지제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킴으로써 한국사회에 혁명적 변화를 초래했다.

첫째,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양반과 평민과상놈, 지주와 소작인이라는 봉건적 신분질서가 무너지고 역사상 최초로 평등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토지 소유 한도를 3정보로 제한했기 때문에 지주제도는 원천적으로 사라졌고, 지주세력의 조직화된 이해관계가 소멸됐기 때문에 민주발전에 축복이 되었다.

지주들은 토지를 양도한 대가로 지가증권을 받았지만 곧 이어 터진 6·25전쟁으로 지가증권의 가치가 형편없이 추락했고, 피난과정에서 생계비 조달을 위해 헐값으로 팔아치웠기 때문에 지주계급은 완전히 몰락했으며, 이에 따라 지주세력이 지지기반이었던 민국당도1950년 5·30선거에서 참패했다.

지주로부터 해방된 농민들은 자기 땅을 가졌다는 자긍심에서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는등 높은 교육열로 1960년대 이후 고도성장의원동력이 되었으며, 일부 농민들은 토지를 팔고 도시로 나가 산업역군이 될 수 있었다.

둘째, 농민들은 자기 땅을 가지게 됨으로써땅을 무상 분배하겠다는 공산당의 선전에 휩쓸리지 않게 되었을 뿐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를 적극 지지하게 됨으로써 공산세력의 도전에 성공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으며, 특히 6·25전쟁 중 북한의 선전공세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켜낼 수 있었다. 만약 농지개혁이 실패했다면, 6·25전쟁 발발 후 남로당 주도하의 농민폭동 등으로 6·25전쟁 양상도 크게 달라져 중국, 베트남처럼 공산화되었을는지 모른다.

셋째, 농지개혁으로 봉건적 농업사회로부터산업사회로의 길을 열었다. 농민들이 자기 땅의 농작물을 알뜰히 가꿈으로써 농업생산성이높아진 것은 사실이나 대부분 영세농에 머물렀다. 전쟁 중 인플레이션으로 지가증권이 헐값으로 거래되었지만, 정부가 귀속재산 불하시 매입대금으로 지가증권의 액면 전부를 인정했기 때문에 지가증권을 수집하여 귀속재산을 불하받았던 신흥기업가들에게 소중한 산업자본이 됨으로써 경제발전의 기초가 마련되었던 것이다.

토지개혁에 성공한 나라는 번영, 실패한나라는 저성장과 혼란

일부에서는 한국의 농지개혁이 ‘유상(有償)몰수, 유상 분배’인 반면 북한의 농지개혁은‘무상(無償) 몰수, 무상 분배’였기 때문에 북한의 농지개혁이 더 성공적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그러나 헌법에 자본주의 원리를 채택하고 있어 사유재산을 몰수할 수 없는 것이며, 그래서 유상몰수, 유상분배는 당연한 것이다. 한편 북한의 토지개혁은 공산화 과정의 일환으로 지주, 기독교인, 부유한 사업가와 상인등을 친일분자, 민족반역자, 반혁명분자로 몰아 토지는 물론 사업체, 공장, 광산, 건물 등을빼앗았던 것이다. 그리고 농민에게 경작만 하게 했을 뿐 소유권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토지를 타인에게 팔수도 빌려 줄 수도 없었다. 다시 말하면, 토지 소유주가 지주로부터 공산당정부로 바뀌었을 뿐이다. 더구나 1950년대 후반에는 모든 토지가 집단농장으로 전환되면서농민은 농업노동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2차 대전 후 토지개혁에 성공한 나라는 한국, 일본, 타이완뿐이며, 세 나라는 모두 경제기적을 이룩했다. 장제스정부는 중국 본토에서 토지개혁에 실패하여 타이완으로 패퇴했기때문에 와신상담의 심정으로 철저한 토지개혁을 했고, 일본에서는 맥아더사령부 점령 하에서 이루어졌다.

이와 대조적으로 토지개혁에 실패한 나라들은 풍부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과도한빈부격차와 정치사회적 갈등으로 국가발전이지체되고 있다. 1950~60년대만 하더라도 필리핀은 아시아에서 가장 민주적이고 부유하며 교육수준이 높은 나라였지만, 뿌리 깊은 소작제 때문에 저성장과 불안이 계속되고 있다.

14% 정도의 중상류층이 전국토의 64%를 보유하고 있고, 특히 0.3%의 최상류층이 전국토의 24%를 소유하고 있는 반면, 86%에 이르는서민층의 3분의 2는 극빈한 소작농이다. 지난100여 년 간 10여 차례의 토지개혁법안이 추진되었지만 지주세력이 곧 권력층이었기 때문에 토지개혁은 번번이 무산됐다.

라틴아메리카의 만성적 경제침체, 정치사회적 혼란, 이로 인한 연이은 좌파정권의 집권은토지문제로 인한 극심한 빈부격차 때문이다.

예를 들면, 브라질에서는 1.6%의 대농장 소유주가 전체 농지의 53%를 차지하고 있다. 부와권력을 겸유한 대농장주들의 반대로 토지개혁은 계속 실패했고 토지 없는 농민들은 농장의임금노동자가 되거나 도시로 쏟아져 나와 거대한 도시 빈민층을 형성하여 불만세력이 되어 왔다.

2004년 8월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은 중앙일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며한국의 농지에 찬사를 보냈다. “한국은 과거50년대에 농지개혁을 했지만 브라질은 그렇지 못했고, 아직도 그것이 풀어야말 할 숙제입니다. 브라질 경제는 사회개혁 없어 심각한 불균형성장을 해왔던 것이 문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