秦 명장 白起장군의 서번트(servant)리더십
기자 : 관리자 날짜 : 2022-11-06 (일) 15:28




백기(白起, BC 331 추정~BC 257)는 중국 전 국시대 진(秦)나라의 장군으로 중국의 고전인 전 국책엔 이름이 공손기로 기록되어 있다. 전국시 대 최고의 명장으로 꼽히며, 초한쟁패기의 전설 적인 무장인 한신 등과 더불어 중국사를 대표하 는 장수이다. 그러나 동시에 수없이 많은 적과 포로를 죽여 학살자로 불리기도 한 인물이다. 전쟁터에서 연전연승 신화적인 존재였던 백기 는 훗날 진시황의 천하통일 기초를 쌓은 인물이 기도 하다. 진(秦)나라를 비롯해 초(楚), 연(燕), 제(齊), 한 (韓), 위(魏), 조(趙) 등 이른바 전국칠웅이 각축을 벌인 살벌한 전국시대를 끝낸 이는 秦(진) 始皇帝 (시황제)이다. 그가 왕위에 오른 지 25년 만인 기 원전 221년 역사적인 천하통일 대업을 이룬 데 에는 수많은 공신들이 있었다. 승상 이사(李斯)를 비롯해 장군 왕전, 몽염(蒙恬) 등 일당백의 용장 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진나라의 천하통일은 사실 예견된 일 이었다. 진나라는 기원전 306년에 왕위에 올라 기원전 251년까지 무려 55년간 재위한 진시황 의 증조부 소양왕 때 이미 천하통일의 기반을 구 축했다. 소양왕이 마련한 강력한 군대와 드넓은 영토, 비축된 군량 등은 고스란히 시황제에게 전달되 었다. 시황제는 이를 잘 운용해 천하통일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소양왕과 그의 야전사령관 백기 장군을 떼놓을 수 없다. 소양왕은 백기를 활용해 수많은 전투를 벌여 6개국의 국력을 소모시켰 고, 진나라의 위력을 떨쳤다. 백기는 왕전, 염파, 이목과 함께 전국시대 4대 명장으로 불리는 ‘전투의 화신’이었다. 그는 30 여 년간 73번의 전투에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 았다. 역사적 기록이 얼마나 정확한지 판단할 길이 없지만 어쨌든 기록상 종군한 30여 년 동안 대략 165만명을 죽인 것으로 추정된다. 좌서장으로 출발해 부승상, 승상인 대량조가 되었고 소양왕에게서 ‘무로써 세상을 편안케 한 다’는 의미로 ‘무안군’의 칭호를 받았다. 불패의 명장이었다는 뜻이다. 백기 장군 때문에 초나라는 수도를 옮겨야 했 고, 조나라는 군사력의 대부분을 잃었으며 한나 라, 위나라 등은 오래지 않아 무릎을 꿇었다. 용 병술과 전투 지휘 능력이 탁월해 백전백승의 무 적 장군이었던 그는 진나라 군사들에게는 승백기는 섬서성 미현 출신으로 소양왕을 약 30 년간 보필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는 당시 진나라의 왕이었던 소양왕 대신 권 력을 휘두르던 소양왕의 외숙부 위염의 천거로 장군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것 때문에 훗날 진나 라의 재상인 범수(范 =범저·范雎)가 그를 견제 했다고 한다. 범수는 위염과 그 일파를 쳐내며 재상의 자리에 올랐기 때문이다. 백기는 기원전 294년 좌서장에 임명되어 한나 라 산성을 공격하면서 역사에 등장했다. 이후 그 의 전공은 눈부셨다. 좌경으로 승진해 한나라, 위나라 연합군을 상대했다. 백기는 이궐(伊闕)에 서 두 나라의 군대를 맞아 대승을 거두어 무려 24만 명의 적군을 죽이고 적장 공손희(公孫喜)를 포로로 잡았으며 한나라의 성 5개를 함락했고 황하를 건너 한나라 중앙을 휩쓸었다. 이같은 공 로로 백기는 국위로 임명되었다. 이어 백기는 위나라를 공격해 총 60여 개의 크 고 작은 성을 점령해 위나라를 거의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그의 공격은 한나라, 위나라에 그치지 않았다. 당시 남쪽에 터를 잡은 강력한 세력인 초나라 역시 백기의 침입에 수도 영성( )이 함락되고 결국 천도(遷都)하게 되었다. 이 같은 활약으로 백기는 진나라 소양왕과 군사들에게는 영웅으로, 다른 6개국에는 공적 1호가 되었다. 이에 한나라, 위나라는 조나라를 끌어들여 연 합군을 결성했다. 오로지 진나라와 백기를 상대 하기 위한 연합이었다. 본래 한나라, 위나라, 조 나라는 ‘진(晉)나라’에서 분할된 국가로 서로 도 와주고 협력하는 관계였다. 이들이 다시 뭉친 것 이다. 하지만 결과는 백기의 대승이었다. 백기는 세 나라 연합군 13만 명을 죽였고 조나라 장군 가언과는 따로 일전을 해 조나라 군 2만 명의 목 을 베었다. 이 공으로 백기는 태위가 되었다. 백기는 곧바로 한나라 형성을 공격해 5개 성을 점령했고 한나라군 5만 명을 몰살시켰다. 백기 장군 인생 역정의 정점은 역사로 길이 남 은 ‘장평대전’이다. 기원전 260년, 진나라가 조 나라를 침략하면서 조군 40여만 명과 진군 수십 만 명이 전투를 벌이게 된다. 이 전쟁의 발단은 상당이라는 땅이었다. 상당 은 지금의 산서성 고평 서북쪽 일대로 황하 북쪽 지역으로 각 제후국과 연결되는 요충지였다. 그 런데 이 상당 땅 대부분을 전국칠웅 중에서도 가 장 약세인 한나라가 지배하고 있었다. 진나라는 상당 지역을 탐냈다. 이곳만 장악한다면 한나라, 위나라, 조나라, 초나라를 제압할 수 있는 유리 한 지정학적 위치를 점하기 때문. 진나라는 상당 을 계속 공격했다. 한나라는 진나라 군대를 막아 내기에 급급했다. 거의 진나라에게 항복하기 직 전이었다. 이때 상당 태수 풍정(馮亭)은 진나라보 다 친분이 있는 조나라에게 상당 땅을 주는 조건 으로 항복을 하겠다는 제안을 했다. 한나라는 물 론 강한 군대를 갖고 있는 조나라를 끌어들여 진 나라에게 맞선다는 노림수였다. 이에 조나라 왕 은 고심 끝에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사실 처음에는 백기가 아닌 왕흘( )이 대장 이 되어 20만 대군을 이끌고 조를 공략했다. 왕 흘도 진에서 손꼽히는 명장이었으나 조의 명장 염파(廉頗)의 지구전에 말려들어 불리한 상황이 었다. 왕흘은 3번의 전초전에서 승리하면서 좋아지만, 이는 진군(秦軍)을 장기전으로 끌어들이려 는 염파의 계책이었다. 진나라군이 아무리 조나라군을 도발해도, 조 나라 왕이 나가 싸우라고 재촉해도, 염파는 듣지 않고 버텼다. 그러자 진나라 재상 범수는 반간계(反間計)를 써 염파를 모함해 실각시키고 젊고 경솔한 조괄 (趙括)을 조나라 대장으로 세우게 만들었다. 마타 도어(matador, 흑색선전)를 퍼뜨리게 한 공작이 먹혀든 것이다. “염파 장군은 무능하거나 딴마음을 갖고 있어 서 저렇듯 시원하게 싸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진나라가 실제로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조나라 의 명장 조사(趙奢)의 아들인 조괄이다.” 그러는 한편으로 조나라 몰래 백기를 진나라 대장으로 임명한다. 내심 백기를 정적 취급했으 나, 범수로서는 대국적인 차원에서 필승 카드를 꺼낸 셈이다. 백기는 불리한 전황과 병력 열세에도 불구하 고 조나라군을 도발하여 진지에서 끌어내었고, 진나라군을 후퇴시켜 도망치는 것처럼 꾸며 조 나라군을 유인하는 한편 조나라군의 뒤쪽에 매 복시켰던 별동대로 조나라군을 진지로부터 갈라 놓아 대승을 거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병력을 대부분 유지 하고 있었던 조나라군은 그 자리에 요새를 만들 었는데, 백기는 이것도 포위하고 기병을 이용해 조군의 후방 보급도 끊어버린 채 말려죽이려고 했다. 결국 46일 동안 포위되어 식량이 떨어진 조군 40만은 굶주림을 견디지 못하고 나와서 싸우다 가 패해 항복했고, 조괄은 이 과정에서 전사하니 이것이 바로 ’장평대전‘이다. 장평대전에서 백기는 투항병을 먹여살릴 식량 문제가 발생하자 가장 나이가 어린 소년병 240 명을 제외한 적병 20만을 구덩이에 파묻는 등 이 전투에서 모두 40여 만명을 도륙했다. 이러한 대학살의 원인은 그 많은 포로를 진나 라로 데려가 수용할 여력이 없을 뿐 아니라, 그 렇다고 풀어주자니 다시 무기를 들고 진나라에 맞설 것이 뻔하므로 불가피했다는 주장도 있다. 또한 진나라의 군공수작제에 따르면, 죽인 적의 머리를 갖고 가야 신분 상승이 되는데, 잡은 포 로들을 풀어주는 순간 진나라 병사들이 반란을 일으킬까 염려해 전부 죽였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장평대전‘ 이후로 백기는 몰락하게 된다. 장평대전 직후 백기는 바로 조나라 수도인 한 단으로 쳐들어가 멸망시키자고 주장했지만, 승 상 범수는 정적인 백기가 공을 세움으로써 자신 보다 더 높은 자리에 오를 경우 정치적 보복을 염려했다. 결국 범수는 조나라의 세객인 소대의 설득에 넘어가 백기가 공을 쌓지 못하게 소양왕 을 설득해 몇 달 후에 한단을 공격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범수의 모함 이후 한단 공성전이 실패로 끝나고, 진왕은 다시 백기에게 지휘를 맡기려고 했으나 백 기는 계속 병을 핑계로 전쟁에 나가질 않았다. 이 와중에 백기는 “진나라가 내 말을 듣지 않 더니 지금 이렇게 되었구나!”라는 말을 했다. 이 말을 듣고 분노한 진왕은 그를 귀양보내고 자결을 명한다진나라 백성들에게는 전쟁영웅이라서 그런지 민중들이 그의 죽음을 동정하여 사당을 세우고 매년 제사를 지냈다. 진나라 백성들 입장에서는 그가 다른 나라 사 람들을 많이 죽이든 말든 알 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백기에게 당한 패전국 백성들에게는 철천지원수가 따로 없을 터이다. 역사는 백기의 장평대전 승리를 축하하면서도 그의 잔혹한 성품에 놀랐다. 40만 명을 생매장 했다는 기록에 중국 특유의 과장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1995년 5월, 산서성 지역에서 엄청난 유 골이 발견되면서 백기의 조나라 군 학살이 사실 임이 증명되었다. 지금도 상당 지역의 음식 중에 ‘츠바이치(吃白起)’라는 두부요리가 있다. 이 요 리의 뜻이 바로 ‘백기를 삶아 먹는다’는 것으로 당시 조나라와 상당 지역 백성들의 백기에 대한 뿌리 깊은 원한을 알 수 있다. 백기는 73번의 전투에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 았다. 그는 전쟁터에서 병사들과 같은 음식을 먹 고, 같은 잠자리에 들었다. 병사들은 백기의 이 런 솔선수범의 리더십을 따른 것이다. 하루는 다리에 종기가 나 잘 걷지 못하는 병사 를 본 백기가 직접 종기를 짜고 고름을 입으로 빨아냈다. 이 소식을 듣고 그 병사의 어머니가 울었다. 사람들이 까닭을 묻자 그녀는 이렇게 대 답했다. “십수 년 전 백기 장군이 전쟁에 나갔을 때도 지금처럼 애 아비의 종기를 짜주었습니다. 애 아비는 감격한 나머지 싸움터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선두에서 싸우다 전사했습니다. 이제 또 백기 장군이 제 아이의 종기를 짜주고 고름을 빨아내니 저는 아들도 아비처럼 전사하 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이란 구성 원에게 목표를 공유하고 구성원들의 성장을 도 모하면서 리더와 구성원의 신뢰를 형성시켜 궁 극적으로 조직성과를 달성하게 하는 리더십이 다. 서번트 리더십은 리더가 구성원을 섬기는 자 세로 그들의 성장 및 발전을 돕고 조직 목표 달 성에 구성원 스스로 기여하도록 만든다. 백기 장군은 일찍이 현대판 서번트 리더십을 실천한 선각자(先覺者)였던 셈이다. 이처럼 백기는 전쟁터에서는 완벽한 장군이었 다. 하지만 그는 정치적으로는 하수였다. 더구나 그의 라이벌인 재사 범수에 비하면 백기는 순진 할 정도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냈다. 공(功)이 많 으면 그만큼 다른 사람의 질투와 시기도 많아지 는 것이다. 백기는 전쟁터에서는 무적이었지만 노련한 재상 범수에게 당했다. 사마천은 ‘사기열전’에서 백기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백기는 천하 명장이었다. 적의 능력을 잘 파악해 이에 따라 전략을 세워 전쟁터에서 큰 공을 세웠다. 하지만 동료이자 경쟁자인 범 수와 사이가 멀어지면서 비참한 최후를 맞은 것 이다. 왕전과 더불어 전국시대 최고의 명장이었 지만 인품이나 처세에서 결점이 있었다. 자고로 한 자(尺·척)가 길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더 긴 것과 비교하면 짧고, 한 치(寸·촌)는 짧긴 하지 만 상대적으로 더 짧은 것만 비교하면 길다. 한 자가 상황에 따라 한 치만 못한 것처럼 사람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장점과 단점이 다 있는 것 이지만 사람은 넘치는 것이 모자라는 것보다 결 코 낫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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