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남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전문연구위원

국가전략 측면에서 한국은 내우외환에 직면해 있다. 대내적으로 북한위협에 대한 인식과 이에 따른 대북정책은 물론 동맹국 미국과의 관계를 둘러싸고국론분열이 계속되고 있으며, 대외적으로 미국의 ‘아시아 회귀전략’, 중국의 공세적 대외정책, 일본 아베 행정부의 우경화노선, 북한의 핵무기 보유 등 매우 복잡하다.동아시아 정세 변화의 핵심에는 중국의 급부상이 있다.

중국은 자국의 핵심 이익을 수호하고 확대하기 위해 군사력 증강을 통해 공세적 대외정책을 추구하면서 일본,필리핀, 베트남 등과 갈등을 빚고 있다. 미국은 중국이 잠재적 경쟁국이 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아시아 회귀전략’을 채택했지만 국방비 부담을 고려하여 일본 등 아시아 동맹국들과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일본은 장기침체의 결과로 중국에 G2의 자리를 빼앗겼을 뿐 아니라 점증하는 중국의 위협에 위기의식을 느끼면서 군사력 증강과집단자위권 행사 등 우경화노선으로 치닫고 있다.

이 같은 정세변화에 대응하여 일본은 물론 동남아 국가들이 미국의 ‘아시아 회귀전략’에 편승하고 있지만 한국만은 미국과 협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중국과의 협력도확대하고 있다. 그러한 가운데 장차 중국이 세계 제1의경제대국이 될 것임으로 중국과의 관계를 더 중시해야 한다거나 미‧중 간균형외교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국제적 시각에서 보면, 한국은 미국과 중국 간의 쟁탈전의 대상이 되고 있는 형국이다. 미국은 한미동맹을 소중히 여기지만 중국은 그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약소국의 안보전략을 연구한 마이클 헨델(Michael Handel)은 “상대적인 약소국은 계속 긴장해야 한다. 상황판단의실수는 치명적 결과를 초래한다”는 경고한 바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중견국가로 성장했지만 아직도 국민적 공감대를바탕으로 한 국가전략이 불분명하다. 냉전시대의 한국의 국가전략은 한미동맹을 주축으로 한 반공안보전략이었고 그래서 한일관계도 비교적 원만했다. 냉전종식 후에도 한반도에는 냉전적 대치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한국은 새로운 국가전략을 마련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중국과의 경제협력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면서 한국의 전략방정식은 매우 복잡해졌다. 그러한 가운데 5년 단임 대통령들은 단기적 업적과 현안 대응에 치중한 나머지중장기 국가전략을 소홀히 했다.

2008년 5월 이명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 시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한미동맹은 냉전시대의 유물”이라는 지극히 비외교적인 발언을 했다. 또한 지난 5월 상하이에서 46개국 지도자들이 참석한 「아시아 상호협력 및 신뢰구축회의(CICA)」에서 중국은 “미국의 동맹 네트워크는 시대착오적이며역내 안보에 도움이 안 된다”면서 중국 중심의 안보질서에 한국의 참여를요구했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시진핑 중국 주석은 일본의 역사문제에 한·중이 공동 대응하자는 제의를 한 바 있다. 이러한 중국의 움직임들은 한·일갈등을 확대하여 한‧미‧일 삼각공조를 와해시키고 나아가 한미동맹을 무력화시키려는 저의가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미국 입장에서 보면, 한국전쟁과 그 후 60여 년간 한국을 위해 엄청난 인적, 물적 희생을 감내해온 매우 소중한 동맹국이다. 그러나 햇볕정책 이래한국에서 반미정서가 확산되고 “균형자 외교론”까지 나오면서 미국의 우려가 높아지기 시작했으며, 특히 최근 점증하는 한·일 갈등과 한·중 밀월관계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지난 해 12월 미국 조 바이든 부통령이 박근혜 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 “미국에 배팅하는 것이 최선의 배팅”이라고 말한것은 미국이 한국의 전략노선에 대한 의구심이 없지 않다는 것을 나타내고있는 것이다.

국가전략은 국민감정이 아니라 국가이익에 입각하여 냉철하게 마련되어야 한다. 한국의 국가이익은 일반적으로 국가의 생존(국가안보), 민주정치체제 보존, 경제적 번영, 통일 등으로 인식되고 있다. 또한 강대국 주변에위치한 나라에서는 국가자주성도 중요한 국가이익으로 간주되고 있다. 한국의 국가이익을 주요 관련국들과 관련하여 검토해보고자 한다<표 참조>.먼저 국가안보 차원에서 보면, 미국은 그 동안 한국안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고, 앞으로 상당기간 그러할 것이다. 한미동맹이 약화 또는 해체된다면 북한은 물론 모든 주변국들의 위협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일본은 미‧일동맹과 한·미·일 공조를 통해 한국안보에 긍정적 역할을 한다. 일본이 군사대국화와 집단자위권 발동 같은 우경화노선도 미‧일동맹 하에서는 한국에 군사적 위협이 될 가능성은 없다. 반면 중국의 경우 북한과의 관계가 사실상 동맹관계이기 때문에 한국안보에 부정적 요소가 적지 않다.

둘째 민주주의 보존 차원에서 보면, 이념적 동질성을 고려할 때 미국 및일본과의 관계는 긍정적이지만, 사회주의 체제인 중국과의 관계는 부정적인 면이 없지 않다. 셋째 경제적 차원에서 보면, 중국은 한국에 결정적으로중요하지만 미국과 일본도 세계 제1과 제3의 경제대국이고 또한 기술선진국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넷째 통일 차원에서 보면, 미국은 한국주도의 통일을 지지하며 또한 통일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며, 일본도 한국주도의 통일을반대할 이유가 없지만 통일한국이 일본에 경쟁대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 중국은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지지하고 있지만 한국주도 통일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마지막으로, 국가자주성 차원에서 보면, 비대칭 동맹이라는 점에서 미국이 부담되는 것은 사실이다. 중국은 중국 중심의 전통적 세계관으로 한국에 대한 종주국 인식이 잔존해 있고, 또한 중국시장에 대한 한국의 의존이 한국의 전략적 자주성을 침해할 우려가 없지않다.

종합적으로 미국은 한국의 국가이익에 긍정적 측면이 많은 반면, 중국은경제적 측면을 제외하고 부정적 면이 적지 않다. 미국은 한국안보에 필수적이지만, 중국은 경제적으로 한국에 결정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미·중양국에 균형외교를 펴야 한다는 견해는 없지 않지만 이것은 지나친 단순논리다. 경제협력이 아무리 중요하다하더라도 전략적 협력관계를 좌우할 수없는 것이며, 또한 경쟁적인 강대국 간의 균형외교란 구한말의 대외관계처럼 위험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국가안보가 경제적 이익보다 우선되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한미동맹은 한국 국가전략의 중심축으로 유지하면서 중국과의 우호협력관계도 계속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미동맹을 견고하게유지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핵심 동맹국인 일본과의 관계도 중요하다는 것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한국은 중국과 일본 간에 균형외교를 하면서 동북아협력을 주도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