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균
한국방송작가협회 회원
현재 국군방송 라디오 작가



어린이들 세계에서는 또래보다 나이가 어리거나몸이 아픈 약자를 경기와 놀이에끼워주기 위한 ‘깍두기’라는 배려의문화가 있다. 이에 국방, 군사, 정치, 경제 등의 분야에서비전문가인 필자가 일종의 ‘깍두기’ 신분으로 다양한 이슈에대한 소견을 국민들의 눈높이에서 피력해 보려 한다

해마다 겨울만 되면 그때가 생각난다. 혹한기 훈련! 유난히 추위를 잘 타는 체질이라‘혹한기 훈련’이 다가올수록 한숨은 늘어갔다. 훈련 하루 전날에는 너무 심란해서 밤잠까지 설쳤다. 차라리 ‘유격 훈련’을 두 번 받는 게 낫겠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혹한기훈련’은 치가 떨렸다.

‘혹한기 훈련’은 ‘소한’과 ‘대한’이 있는 매년 1월에 진행되었다. 훈련이다 보니 휴식 시간에도 불을 피우지 않았다. 발가락은 꽁꽁얼어서 깨질 듯이 아리고, 코에서는 쉴 새 없이 맑은 콧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해는 또, 왜그렇게 빨리 지는지.. 밤이 되면 추위는 더 맹위를 떨쳤다. 추위가 뼛속까지 파고든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온몸은 부들부들 떨렸다.동상에 걸리지 않기 위해 틈틈이 PT체조 6번‘팔 벌려 뛰기’를 해도 그때뿐이었다. 추위는몸속의 세포까지 서서히 얼려버렸다.

실제 전투상황을 가정한 훈련 때는 단 5분도 취침 시간이 주어지지 않아서 뜬눈으로 밤을 홀딱 새었다. 잠깐이라도 추위를 피하기 위해 ‘60트럭’ 보조석에 앉아있을라치면 엔진이꺼진 상태라서 바깥보다 더 춥게 느껴졌다.

그때 겨울밤이 무척 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추위와 졸음에 대한 고통은 새벽 1시쯤 되면 절정에 달했다. 아직 날이 밝으려면한참 멀었고, 추위를 피할 곳은 없고, 잠이쏟아져서 온몸은 찌뿌듯하고.. 그렇게 몸이기진맥진하다보니 PT체조를 하며 꽁꽁 언몸을 녹일 의욕도 사라지고, 그래서 온몸이더 차갑게 식어가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그때 장작불을 쬐거나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욕탕 안에 앉아있는 상상은 측은함이들 정도로 간절했다.

훈련 일정 중 취침이 허용된 날에는 그나마 덜 고통스러웠다. 군용 텐트 안에서 부대원들은 체온을 높이기 위해 뜨거운 물을 가득 부은 수통을 수건으로 감싼 채 침낭 속에서 그것을 끌어안고 잤다. 그 순간, 잠시나마 침낭 속은 아랫목처럼 아늑하게 느껴졌다. 아침이 되면 수통마저 꽁꽁 얼어버리고,전투화도 발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얼어버리곤 했다.

길고 길었던 ‘혹한기 훈련’이 끝나는 날은‘정기 휴가’라도 가는 것처럼 설렜다. 부대로 복귀한다는 것이 신날 정도였다. 훈련을마무리하고, 개인 장비와 공용 장비를 모두정리해서 ‘60트럭’에 싣고 나면 ‘컵 라면’이배급됐다. ‘컵 라면’의 얼큰하고, 뜨거운 국물은 만물을 소생시키는 봄기운처럼 차갑게 얼어버린 몸의 모든 기관과 부위들을 서서히 해동시켜주었다.

부대로 복귀하는 ‘60트럭’ 안에서 부대원의몰골은 마치 노숙자들처럼 꾀죄죄했다. 하기야 ‘혹한기 훈련’ 기간 동안 양치질과 세수도찬 물로 했으니 샤워를 하거나 머리를 감는것은 감히 바랄 수도, 상상할 수도 없었다.

부대가 가까워지면 사단 헌병대 지프차가합류해서 선두에 섰다. 그리고 부대 정문에다다르면 군악대가 힘찬 군가를 연주하며격려를 해줬다. 군대에 왜 군가가 있고, 왜군가가 필요한지를 그때 절실히 깨달았다.군가 연주를 들으면서 온몸이 감전된 것처럼 미세한 떨림을 느낄 정도로 자부심이 생기고, 사기가 충전되었다.

며칠 만에 돌아온 것인데도 마치 몇 년 만에 돌아온 것처럼 부대는 정겹고, 아늑하게느껴졌다. 부대원들은 일사불란하게 모든물품과 장비를 정비한 후 부대 안에 있는 목욕탕으로 갔다. 그곳에서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욕탕 안에 앉아있을 때 가슴 벅찬행복을 느꼈다.

지구 온난화 때문인지 해마다 겨울이면‘이상 한파’로 전국에 강추위가 몰아친다.하지만 기온이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가도그 겨울에 ‘혹한기 훈련’이라는 예방주사를맞아서인지 그렇게 춥게 느껴지지 않는다.

겨울에 일상의 소소한 행복 중 하나는 사우나에 가는 것이다. 욕탕 안의 뜨거운 물이온몸을 감쌀 때, 그 겨울의 ‘혹한기 훈련’을떠올려보곤 한다. 그때 추위에 벌벌 떨면서그토록 간절히 그리워했던 곳에 앉아있다는 생각을 하면 아늑함과 행복함은 더 커진다. 그 겨울의 ‘혹한기 훈련’은 추위를 이겨내고, 일상의 소소한 것에서 감사와 행복을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예방주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