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귀근
연합뉴스 국방부 출입기자
threek@yna.co.kr


국가 안보에 한 축을 담당하고 있고 다른 나라에 한국산 무기의우수성을 알리는데 큰 기여를 하고 있는 우리나라 방위산업계가 질식사하기 일보 직전이라는 지적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통영함 ‘납품비리’로 촉발된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의 수사가 전방위로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방산업체와 군납업체가 구분없이 싹쓸이로 도마 위에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통칭 ‘방산비리’로뭉뚱그려 수사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방산분야에 전문지식이 없는 국민들의 눈에는 방산업체와 군납업체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은채 한통속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방산업체는 대규모 제조, 제작, 생산 시설 등을 갖추고 무기와 장비 등을 생산하는 제조업체를 말한다. 대기업 계열사에 속하거나규모가 큰 업체인 주요방산업체와 중견기업을 주축으로 하는 일반방산업체가 있다. 이들 업체에 근무하는 연구인력을 비롯한 임직원들의 규모도 상당하다.

이에 반해 군납업체는 소규모 제조업 또는 국외에서 생산된 무기를 군이 구매하도록 중개하는 업체로 생각하면 된다. 무역대리점이 중개업체이지만 요즘은 그런 성격의 업체들도 군납업체로 분류하는 경향이 있다.운동화나 팬티 등 물자를 생산해 수의계약또는 경쟁 입찰 방식 등으로 군에 물자를 파는 업체들도 군납업체로 분류할 수 있다.

통영함에 납품되어 문제가 된 음파탐지기등을 공급한 업체는 후자로 분류된다. 전투기에 들어가는 불량 부품을 납품한 업체 또한 군납업체로 분류된다. 이 때문에 ‘방산비리’가 아니라 ‘군납비리’라고 불러야 맞다는지적도 나오고 있다.

‘방산비리’인가‘군납비리’인가?

지난해 11월 21일 현판식을 치르고 공식활동에 들어간 정부합동수사단이 100여일간 수사한 유형을 보면 군함 건조, 전투기 정비, 물자 납품 등을 망라하고 있다. 그간 검찰의 수사에서 한번씩은 다뤄졌던 사업들이주로 걸려들었다.

통영함에 탑재할 장비의 시험평가서를 조작한 혐의, 해군사관학교 출신 대령이 로비스트로 등장하고 방위사업청 재직 당시 금품을 챙긴 영관급 출신 예비역 장교들이 잇따라 구속됐다.

감사원 감사가 시작되자 주범이 달아나일부 공범들만 처벌하는 데 그쳤던 전투기정비업체 블루니어 비리 사건도 합수단 출범 후 전모가 드러났다. 240억원대에 이르는 전투기 정비대금 사기행각을 도왔던 예비역 공군 중장과 대령 2명이 합수단의 추가수사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다.

정옥근 전 해군참모총장은 차기 호위함등 수주·납품 편의 제공 대가로 STX에 노골적으로 금품을 요구하고 아들 회사를 통해뇌물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구속기소됐다.

방상외피, 방탄복 등 군수 물자와 관련해서도 공문서를 변조한 육군 대령 등이 구속돼군수 물자 분야의 뿌리 깊은 부패가 아직도남아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합수단이 출범후 비리가 적발된 사업의규모는 총 1천 981억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규모가 큰 군함 사업을 추진했던 해군이 1천707억원으로 가장 많고 공군이 243억원이었다. 육군은 13억원, 방위사업청은 18억원이었다. 기소된 23명 중 군인은 예비역과 현역을 포함해 모두 15명이었다. 계급별로 장성급이 5명(모두 예비역), 영관급이 10명(현역 4명)이었다.

위기의 방산업계…

당기순이익 마이너스 한국방위산업진흥회에 따르면 방위사업법제35조(방산업체의 지정 등)에 의해 지정된 방산업체는 95개로 집계되고 있다. 주요방산업체는 60개, 일반방산업체는 35개이다. 2013년기준으로 매출은 10조 4천 650억원, 당기순이익은 마이너스 6천 37억원을 기록했다.

부채비율도 114%에 달했다. 같은해 제조업 평균 부채율은 92.9%로 나타났다. 방산부문의 수익성과 안정성은 제조업 평균을밑돌았으나 다행히 성장성은 12%로, 제조업 평균치를 크게 웃돌았다. 우리의 방산업계가 충분히 성장성을 가지고 있음을 말해주는 지표라 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군에서 소요하는 물량이 부족하거나 사업의 연속성이 부족한 것이 방산업계의 위기를 초래하는 주요 원인으로꼽고 있다. K-9 자주포의 경우 이를 개발한삼성테크원의 제작 라인이 모두 없어졌다고 한다. 이 때문에 개발한지 30여년이 지난K-9 자주포를 전체 개량하기가 어렵게 됐다. 사격통제장치에 들어가는 전자장비 정도만 국방과학연구소(ADD)에서 개량하고있다고 한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현재 대기업 계열 방산업체에서 개발한 핵심 육군 무기가 더는소요량이 없어 일부 업체는 방산사업을 접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삼성이 삼성테크윈을 한화에 넘긴 속사정을 되새겨봐야 한다”면서 “대기업이 계열 방산업체에서 손을 뗄 수도 있다는 신호로 보여진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일부 대기업에서는 방산부문을 접는 방안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는 소문도 파다하다.

‘창조국방’보다는 ‘창조방산’에 무게둬야지난 1월 국방부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한 ‘2015년 국방부 업무계획’의 핵심 키워드는 단연 ‘창조국방’이었다. 당시 국방부는국방비와 가용병력 자원이 제한되고 안보위협은 다변화되는 국방현실을 고려해 ICT와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기법 등 첨단과학기술을 국방업무에 융합하는 개념의 ‘창조국방’을 군의 미래를 여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제시했다.

국방부는 창조국방 구현을 위해 ▲군사력운용 혁신 ▲창조형 군사력 건설 ▲효과 지향적 국방경영 ▲창조국방 기반조성 등을 4대 중점분야로 선정해 추진할 것이라고 보고했다.

이 가운데 창조형 군사력 건설과 관련해서는 북한의 핵과 대량살상무기(WMD)를 무력화하기 위한 ‘역비대칭전력’으로 꼽히는 레이저빔과 고출력 마이크로웨이브(HPM)탄, 전자기파(EMP)탄 등 신무기를2020년대 초반까지 개발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국방은 돈을 쓰는 곳이지, 경제적 이익을 내는 곳이 아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전문가는 “차라리 ‘창조방산’으로 컨셉을 잡아서 미래 방산업 육성계획을 짜는 것이 올바른 순서”라고 말했다.

1세대 대기업 총수들이 물러나고 2, 3세들이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 성과도 불분명한 방산업에 애착을 두겠냐는 얘기도 나온다. 이런 현실을 고려하면 대기업의 방산업 철수라는 엑소더스가 현실화되는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가 더 늦기 전에 20~30년을내다보고 방산업 육성계획을 수립하고 방산기업에 대한 세제감면 등 인센티브를 적극부여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때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재 국방부가 수립하고 있는 창조국방구현을 위한 군사력은 상당부분 ADD 몫으로 보인다. 물론 사물 인터넷 기술을 국방에접목하는 계획도 있어 민간 기업의 참여도기대되고 있으나 실제 혜택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정부는 방산업체들과의 간담회나 공청회 등의 자리를 마련해방산업계의 현실을 올바로 진단하고 그 해법인 육성계획을 마련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