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용원
조선일보 논설위원
군사전문기자

지난해는 우리 군의 입장에선 정말 빨리 잊혀지고 싶은 한 해였을 것이다. 28사단 윤일병 폭행사망 사건 등 군기강과 관련된 사건·사건에서 방위사업 비리 등 각종 비리에이르기까지 온갖 종류의 좋지 않은 일들이계속 벌어졌기 때문이다. 1993년 이래 국방부를 출입한 필자가 보기에 지난해는 군이1993년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은 해다. 지금까지 군이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1993년 일것이다.

하나회 등 군내 사조직 숙정, 해공군 인사비리, 율곡비리 수사 등 대대적인 군 사정,연천 예비군훈련 포탄 폭발사건 등 각종 사건 사고 등이 1년 내내 끊이지 않았다. 한때성역이었던 군이 무너지면서 군에 대한 매도 분위기가 형성됐고, 육해공 사관학교 인기도 크게 떨어졌다. 군이 1993년의 수렁에서 벗어나는 데는 4~5년 이상의 긴 시간이필요했다. 1993년보다는 덜하다고 보지만지난해 군이 입은 상처와 신뢰 추락을 치유하기 위해선 비장한 각오와 특단의 대책들이 필요하다고 본다. 질병에 대한 올바른 처방은 제대로 된 진단을 전제로 한다. 우선 병영문화와 관련된 사건들이 잇따라 생긴 원인부터 진단해 보자.

필자가 만난 많은 현역 및 예비역 군 관계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얘기하는 것이 초급간부 문제였다. 28사단 윤일병 사건에선 병사들을 관리, 감독해야할 간부인 유모 하사가윤일병 폭행에 가담하고 심지어 주범인 이모 병장을 “형”이라고 부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6월 발생한 22사단 임모 병장의총기 난사 사건 때 소초장 강모 중위는 현장을 무단으로 이탈했다가 특수 군무이탈 혐의로 구속됐다

국방부 분석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유죄 판결이나 중징계 등으로 현역복무 부적합 판정을 받고 전역한 초급간부는 육·해·공군 모두 합쳐 770명에 달했다. 현역복무 부적합 판정자에는 지휘통솔 능력이 부족하거나 불성실 근무자 등도 포함돼 있다. 지난 2010년 130명, 2011년 152명, 2012년 152명, 2013년 187명이었지만 지난해의 경우 6월까지만 해도 149명에 달해 크게 늘어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군 당국도 이 문제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육군 고위 관계자는 지난해 8월 민관군 병영혁신위원회에서 브리핑을 통해 “육군에선 지난해 부사관의 경우3,105명이 징계를 받고 130명이 현역복무부적합 처리돼 전역했으며, 중·소대장의 경우 215명이 징계를 받고 49명이 보직해임됐다”고 밝혔다.

지휘관 경험이 있으신 분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것이 초급간부야말로 각종 사고 예방의 출발점이자 종착역이라는 점이다. 초급간부들이 중요한 것은 이들이 최일선에서 24시간 병사들과 직접 접하면서 애로사항을 듣고 구타, 가혹행위나 자살 등을예방해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특히,부사관은 군의 ‘척추’와 같은 존재다. 2012년 기준으로 11만 5,000명이며 전체 병력의18.1%에 달한다. 저출산 등으로 병력은 감축되더라도 부사관 비중은 2025년까지 30%수준으로 높아질 예정이어서 더욱 중요해질수밖에 없다.

군 관계자들은 부사관들이 임관시 평균연령이 21세로 일반 병사와 거의 차이가 없는데다 최종 학력도 병사에 비해 낮은 경우가많아 부대 내 통솔 및 군기강 확립에 어려움을 종종 겪는다고 말한다. 육군이 지난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병사들은 대학 재학 이상이 51%, 전문대 재학 이상이 28%인 반면,부사관들은 대학 재학 이상이 4%, 전문대재학 이상이 24%인 것으로 나타났다. 군 소식통은 “부사관과 병사 간에 최종 학력에 따른 갈등소지가 없지 않다”고 말했다.

소대장과 중대장 등 초급장교의 경우도자질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한민구 국방장관은 지난해 국방부 기자단과 간담회에서“과거 1950년~1970년대만 해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현실 탓에 군대가 사회적 신분 상승에 사다리라는 인식이 있어 양질의 자원들이 장교로 많이 오곤했으나 최근 들어 군대에 대한 선호도가 많이 떨어져 특히 장교들의 수준이 저하되고 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4만 6,000여명의 육군장교 중 매년7,021명이 임관을 하는데 이중 5,000여명이 ROTC(학군사관후보생)로 70%를 차지한다. 육군 관계자는 “매년 장교의 15%, 부사관의11%로 새로 임관하는데 너무 순환율이 높아 이를 낮출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두 번째는 병역자원 부족으로 사건·사고를 일으킬 수 있는 자원들이 다수 현역으로 입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신체검사를 받은 병역자원 중 90% 가까운 인원이 현역으로 입대하다보니 정신병력 등으로 종전에는
면제 판정을 받았던 사람들이 실탄이 장전된 소총을 들고 경계 근무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처음으로 공개된 육군의 관심병사는 총 8만 811명 (23.1%)에 달한다. A급이 8,634명(2.5%), B급이 1만 9,530명(5.6%), C급이 5만 2,647명(15%)에 이른다고 한다.

실제로 지난 몇 년간 총기사건을 일으키거나 자살을 한 병사들 중 상당수는 이른바관심병사로 분류된 사람들이었다. 관심병사들이 많다보니 지휘관들이 이들에게 신경 쓰느라 군 전투역량 강화라는 본연의 임무를 소홀히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군의 한 관계자는 “A급 관심병사가 화장실에 간 뒤 20분이 넘도록 복귀하지 않으면 혹시나 해 화장실에 달려가는 경우도 있다”고말했다. 일부 부대에선 A급 관심병사를 계속 지켜보고 돌봐주는 ‘마크맨 병사’를 두고있다고 하는데 그만큼 전투력 손실이 초래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밖에도 여러 요인들이 있겠지만 지면사정상 이 정도만 언급하고 처방전을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군의 토대인 우수한 초급간부 확보를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초급장교 중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ROTC 복무기간 단축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현재 ROTC의 복무기간은 28개월로 현역 병사보다 7개월이나 길기 때문에우수 자원들이 ROTC 지원을 기피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방부 인사복지실장과 병무청장을 역임한 김일생 전 병무청장은 지난2월 한 세미나에서 “ROTC의 복무기간을 24개월로 단축하고 소대장, 부소대장을 장교로 보직하는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김 전 청장은 복무기간 조정시 야전 전후 임자간의 근무공백 문제에 대해선 소대장을중위로 보직하고 부소대장을 임관한 첫해의소위로 보직할 경우 그해 2월에 소대장(중위)이 전역하면 전해에 임관한 중위진급자부소대장이 이 자리를 승계하고 부소대장은당해 임관한 소위를 3월에 선보직 후 4개월간 OBC 교육 파견을 하고 전시에는 즉시 원복하면 된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군의 척추인 부사관에 대해서도 처우개선은 물론 자긍심을 심어줄 수 있는 조치도 취해야 할 것이다.

병역자원 부족에 따른 이른바 관심병사들의 입대 문제는 단기 처방과 중장기 처방을함께 추진해야 한다. 단기 처방으로는 정신병력자 등 사고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을 조기에 적발해 입대를 차단할 필요가 있다. 국방부에서도 지난해 말 병영문화혁신위의 건의에 따라 이 같은 방안을 추진 중이다. 중장기 근본 대책은 복무기간을 24개월 정도로늘려 현역 복무가 적절치 않은 사람들이 군에 입대하는 경우를 예방하는 것이다. 군 복무기간 환원은 국민정서 때문에 야당은 물론 여당도 정치적인 부담감을 갖고 말도 못꺼내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병역자원은줄어들지만 북한 급변사태 등에 대비해 일정 수준의 병력을 유지해야 할 필요성은 커져 군 복무기간 연장이나 여성 군입대 등 특단의 대책 말고는 대책이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런 제도적인 개선책을 넘어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군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일이라고 본다. 신뢰는 잃기는 쉽지만 회복하긴 어렵다. 최근 군이 신뢰를 잃은 것은 각종 사건사고에 대해 일단 숨기고 보려는 경우가 있었고 국방부 공보 책임자 등이 계속말을 바꿔 점점 믿기 어렵게 된 영향이 크다.

자신에게 좋지 않은 일이나 치부는 숨기고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숨기거나 거짓말을 할 경우 정직하게 얘기했을 때에 비해 몇 배 큰 비판이나 비난을 받을 수 있다는것을 유념해야 한다. 군 수뇌부터 말단 장병에 이르기까지 ‘정직이 최고의 무기다’라는인식을 가져야 한다. 이는 하루아침에 이뤄지기 힘든 것이므로 끊임없이 교육을 실시해 간부들의 인식을 바꿔야 할 것이다. 우리군이 올해를 ‘신뢰회복 원년’으로 삼고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