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균
한국방송작가협회 회원
현재 국군방송 라디오 작가

어린이들 세계에서는 또래보다 나이가 어리거나몸이 아픈 약자를 경기와 놀이에끼워주기 위한 ‘깍두기’라는 배려의문화가 있다. 이에 국방, 군사, 정치, 경제 등의 분야에서비전문가인 필자가 일종의 ‘깍두기’ 신분으로 다양한 이슈에대한 소견을 국민들의 눈높이에서 피력해 보려 한다.

요즘 ‘먹는 방송’이 대세다. ‘남 먹는 것 쳐다보는 게 제일 궁상맞고, 추접스럽다’는 말도 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열 살 때쯤으로 기억한다. 그때는 지금처럼 고기를 아무 때나 먹을 수 없었다. 우리 가족도 ‘양념돼지고기’만 가끔 먹었다. 말이 ‘양념 돼지고기’지, 지금처럼 양념이 된 돼지고기를 불판에 구워서 먹는 게 아니라, 냄비에 돼지고기와 김치, 그리고 고추장을 듬뿍 넣고 달달 볶은 ‘두루치기’였다.

아버지가 유난히 고기를 좋아하셔서 어머니는 가끔 천엽으로 국을 끓이셨다. 일종의 ‘지리’처럼 국물이 맑았는데, 어린 나이의 우리 남매는 비위가 상해서 국물도 떠먹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국에 후추를 휙휙 뿌리시고, 수세미처럼 생긴 그것을 맛있게 드셨다. “먹어봐. 맛있어” 아버지가 숟가락으로 천엽 건더기를 떠서 입 앞에 들이밀곤 하셨지만 우리 남매는 매번 고개를 가로저었다.

먹는 것은 싫었지만 아버지가 ‘천엽 국’을드시는 걸 옆에서 지켜보는 것은 무척 재미있었다. 기름기가 자르르 돌면서 어렴풋이소고기 냄새도 나는 국물을 아버지가 후루룩, 후루룩 떠드시고, 천엽을 질겅질겅 씹으실 때, 그 소리를 더 생생하게 들으려고, 내입안에 밥과 반찬도 채우지 않았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유난히 음식을먹는 ‘소리’에 민감하다. 실제로 ‘먹는 방송’
을 보면서 고기가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익어갈 때나 출연자들이 칼국수와 자장면 같은면을 후루룩 소리를 내며 입속으로 빨아들일때, 그때는 군침이 꼴깍 넘어가면서 강렬한식욕을 느낀다. 출연자들이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으며 쩝쩝 소리를 낼 때도 천박해 보이기는커녕 오히려 정겨움마저 든다.

‘먹는 방송’을 보면서 ‘맛있는 음식이 무척많다’는 것을 새삼 깨닫다가 문득 신병교육대 시절이 떠올랐다. 입대 후, 보충대에서 2박 3일 동안 머무를 때는 군대 음식이 입에안 맞아서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러다가 신병교육대로 가서 매일 혹독한 훈련을 받다보니 ‘밥 맛’이 그야말로 ‘꿀 맛’이 되었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두부를 넣고끓인 된장국이 나온 날, 나는 모래성을 쌓듯식판에 밥을 한가득 쌓아 담았다. 그리고 게눈 감추듯 반 정도를 먹고 나서 남은 밥 위에두부만 골라 얹었다. 고추장을 넣어 비벼먹고싶었지만 아쉽게도 식탁 위에는 된장밖에 없었다. 할 수 없이 숟가락으로 된장을 푹푹 뜬다음 밥, 두부와 함께 골고루 섞어서 비볐다.

만약, 지금 그렇게 비빈 밥을 먹으라고 하면 한 숟가락도 먹지 않겠지만, 그때는 밥이쑥쑥 넘어갈 정도로 맛이 기막혔다. 흔히 ‘간장 게장’이 ‘밥도둑’이라고 하지만 그때 나에게는 ‘된장’과 ‘두부’조차도 ‘밥도둑’이었다.얼마나 쩝쩝대며 게걸스럽게 먹었던지 주위에 앉은 동기들이 눈치까지 주었다. 어쩌다 가끔씩 여러 나물에 청국장 국물을넣고, 밥을 비벼 먹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신병교육대에서 먹었던 ‘된장두부 비빔밥’이 생각나곤 한다. 그 흔한 무채나 열무김치도 넣지 않고, 고추장도 없어서달랑 두부에 된장을 넣어서 비벼 먹었지만,그때 그 밥은 ‘맛 집’으로 소문난 ‘청국장 집’에서 ‘산채’를 듬뿍 넣고 비벼 먹는 밥보다 훨씬 더 맛있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이 있다. 그때 신병교육대에서 그토록 ‘밥 맛’이 좋았던 것은 체력의 한계를 느낄 정도로 모진 훈련을 받고,그만큼 소화도 빨리 되었기 때문이리라.

이제 식판을 보면서 군침을 흘리는 일은없다.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할 경우도 거의없다보니 식판마저 자주 못 본다. 하지만 군용 식판에 대한 기억은 남다르다.

‘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 있는데, 우리는 식탐이 앞서서 비우기도 전에 이것저것 막 채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고 보면 ‘대한민국 국군’이 되기 위해 뛰고 또 뛰면서 몸속을 비우고, 허기가 생기면 기력이 날만큼만 다시 몸속을 채운 그때가 음식을 제대로 먹었던 날들이었다. 그때처럼 제대로 채우고, 제대로 비우는 날이또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