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복
15대 국회의원
한국일보 정치부차장
남북고위급회담 대표
신아세아연구소 수석연구위원(현

대한민국의 6월은 사연(事緣)이 많은 달이다. 대한민국의 6월은 우선 “보훈(報勳)·호국(護國)의 달”이다. 6월을 “보훈·호국의 달”로 기억하게 만든 최초의 역사적 사건은 1926년에 발생한 ‘6·10만세’ 사건이다.
1910년 이른바 ‘한일합방(韓日合邦)’으로 일제(日帝)에게 국권(國權)이 강탈된 우리나라에서는 그로부터 9년 후인 1919년에 일어나 ‘3·1 독립만세’ 운동이 일본 군경(軍警)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진압된 뒤에도 특히 청소년 학생들을 중심으로 ‘독립만세’ 운동이 잇달아 계속되었다.
‘3·1 독립만세’ 운동 7년 후인 1926년 6월 10일은 조선왕조 최후의 임금이었던 순종(純宗)의 국장(國葬) 날이었다.

이날 서울에서는 순종의 국장에 참가한 많은 군중이 운집한 것을 이용하여 연희전문과 중앙 및 중동중학교 학생들이 격문을 살포하면서 독립만세 운동을 벌였다.
3·1 운동 때와 마찬가지로 1926년의 ‘6·10 독립만세’ 운동도 일본 군경에 의하여 무자비하게 진압되었지만 청소년 학생 중심의 불요불굴(不撓不屈)의 독립정신은 모닥불처럼 살아남아서 그로부터 3년 뒤인 1929년 11월 3일에는 광주(光州)에서 일어난 ‘광주학생독립만세 운동’으로 그 바통이 이어졌다.
1948년 독립을 성취한 뒤 대한민국 정부는 1953년 11월 3일을 ‘학생의 날’로 지정하여 기념하기 시작했으나 그로부터 3년 뒤인 1956년에는 이날의 명칭을 ‘학생독립운동기념일’로 고쳐 불러서 기념하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우리나라의 6월은 무엇보다도 ‘6·25’의 달이다. 1948년 8월 15일 서울에서 유엔이 선포한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가 수립되어 대한민국이 독립을 이룩하자 평양에서는 소련의 지령에 따르는 공산주의자들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독자적 수립을 불법적으로 선포하여 한반도의 국가분단을 초래했었다.
일요일인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김일성(金日成)이 이끄는 북한은 소련과 중국이 제공한 압도적으로 우세한 군사력으로 38선 전역에 걸쳐서 전면 불법 기습 남침을 감행함으로써 ‘6·25전쟁’을 도발했다.

‘6·25전쟁’은 남쪽에서는 유엔안보이사회의 집단안전보장 조치 발동에 따라 미국을 비롯한 16개 유엔 회원국의 군대로 구성된 유엔군이 대한민국 국군 편에서 북한 침략군 격퇴에 나서고 북쪽에서는 마오쩌둥(毛澤東)의 중국공산군이 북한을 편들어 참전하는 국제전쟁으로 변질되었다.
‘6·25전쟁’은 3년간 지속되는 가운데 남북의 한반도 전역을 초초(焦土)로 만들고 수백만명의 인명피해와 실향민 및 이산가족을 만들어낸 끝에 1953년 ‘군사정전’이라는 이름으로 포화(砲火)를 멈춘 ‘비전비화(非戰非和)’의 어정쩡한 상태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26년의 ‘6.·10 독립만세’ 운동과 1950∼1953년의 ‘6·25전쟁’이라는 2개의 역사적 사건으로 인하여 6월은 우리나라의 ‘보훈·호국의 달’이 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56년 6월 6일을 ‘현충일(顯忠日)’이라는 이름의 법정 공휴일로 지정했다.
6월 6일이 ‘현충일’이 된 이유는 공교롭게 1956년 6월 6일이 음력 4월 28일로 24절기 가운데 “보리를 거두고 모내기를 시작하는 날”인 망종(芒種)이었기 때문이었다. 6월 6일이 ‘현충일’이 됨으로써 6월은 ‘보훈·호국의 달’로서 실체를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6월은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달이었다. 구절양장(九얼룩져 있다.
그 가운데 대표적 사건이 1987년의 ‘6월 항쟁(抗爭)’이었다. 이 때 한국의 정국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시해(弑害)에 이어 소위 ‘12·12사태’를 거쳐서 1980년의 ‘5·18민주화운동’를 통하여 탄생한 전두환(全斗煥) 정권으로 대표되는 권위주의 세력과 ‘민주화’를 구호로 이에 저항하는 재야 시민사회 사이의 갈등구조가 첨예해지고 있었다.
이 갈등구조는 권인숙 양에 대한 성고문 사건, 박종철 군의 고문치사 사건 등으로 비등점(沸騰點)을 향한 폭주(暴走)를 계속하는 가운데 1987년 6월 이한열 군의 최루탄 피격 사망 사건으로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았고 전두환 정권은 결국 ‘6·29선언’ 발표로 시민 항쟁세력에게 무릎을 꿇었다. 이로써 대한민국의 6월은 ‘민주화의 달’이 되었다.
6월은 분단 상태 하의 남북관계에서도 많은 사연을 남긴 달이 되었다.
1973년 6월 23일 박정희(朴正熙) 대통령(당시)은 ‘평화통일외교정책에 관한 특별선언’(약칭 ‘6·23선언’)을 발표했다.
사실상 남북한의 동시 유엔가입을 제안한 ‘6·23선언’은 그 전해인 1972년 남북한이 합의하여 발표한 ‘7·4남북공동성명’의 연장선상에서 대한민국의 통일안보 외교를 ‘탈냉전(脫冷戰)’ 시대로 진입시킨 신호탄이었다.
‘6·15선언’ 발표를 전환점으로 하여 대한민국에서는 6월의 의미에 큰 변화가 생기게 되었다. ‘보훈·호국의 달’이라는 6월의 색채가 크게 변질되고 퇴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6·15선언’ 발표 이후 북은 물론 남에서도 “6·15 이후의 남북관계”를 그 이전의 남북관계와 구별하려는 노력이 집요했다. “달라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달라졌느냐”는 의문에 대해서는 신통한 설명이 없다. 이에 관해서는 특히 북측의 주장이 적극적이었다.
북한의 주장은 “‘6·15 선언 이후 남조선에서는 반공보수(反共保守) 세력에 비해 ‘친공연북(親共聯北)’ 세력이 역량 상 우세를 차지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북측은 ‘6·15 선언’의 결과로 “남조선에서는 탄압 당하고 숨어살아야 했던 진보적 운동 세력이 주류로 등장하고 운동권 세력들이 권력이 칼자루를 쥐었으며 ‘386세대’가 ‘청와대’에 진출하기까지 했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었다.
행간(行間)에서 읽혀지는 함의(含意)에 의하면 북한이 여기서 거론하는 ‘진보적 운동 세력’・‘운동권 세력’・‘386 세대’란 바로 북한이 말하는 ‘친공연북 세력’을 지칭하는 것이라는 데 의문의 여지가 없다.
김정일의 북한은 “‘6·15선언’의 결과로 남한이 ‘친공연북 세력’, 즉 ‘좌익 종북 세력’의 천하가 되었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북측은 더 나아가 ‘6·15선언’의 기본정신이 “우리민족끼리”라는 ‘민족공조’ 정신이라고 적극적으로 주장하면서 이를 이유로 남측에 대해 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폐지, 북한에 대한 ‘주적(主敵)’ 호칭 사용 중지 및 탈북동포 단체들에 의한 ‘대북방송’ 및 ‘전단 살포’ 금지를 요구하는 것은 물론 북한의 핵문제에 대처하는 데도 “한미동맹의 틀 속에서 이루어지는 ‘외세 공조’를 그만 두고 ‘민족 공조’의 차원에서 북한의 편에 설 것”을 공공연하게 요구하는 것을 서슴치 않았다.
남쪽의 대한민국 국민들 가운데서도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가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위기에 처해 있다”는 걱정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2004년 9월 9일에는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주주(株主)를 자임(自任)하는 1,600여명의 각계 유지(有志)들이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시국선언문”을 통하여 “지금 이 나라에서는 ‘친북·좌경’ 세력이 날뛰고 있다”고 우려하면서 “심지어 남한 사회에서는 지금 대한민국이 아직 ‘공산화 통일’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대한민국 사회는 이미 ‘공산화’되었다는 설왕설래(說往說來)가 무성하다”고 절망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치유하는 어려운 일은 2013년에 출범한 박근혜(朴槿惠) 정부의 몫이 되었다.
박근혜 정부는 그 동안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이라는 족쇄(足鎖)에 묶인 국회가 횡보(橫步)를 계속하는 가운데서도 한국군의 전시 작전통제권 인수와 한미연합사령부 해체를 무기한 연기하고, 이석기 중심의 RO 사건에 대한 법원의 유죄 판결을 이끌어내고, ‘통진당(統進黨)’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해산 결정을 이끌어내는 등 성과를 이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