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소화제”
기자 : 관리자 날짜 : 2016-01-29 (금) 19:04


신영균
한국방송작가협회 회원
현재 국군방송 라디오 작가

어린이들 세계에서는 또래보다 나이가 어리거나
몸이 아픈 약자를 경기와 놀이에
끼워주기 위한 ‘깍두기’라는 배려의
문화가 있다. 이에 국방, 군사, 정치, 경제 등의 분야에서
비전문가인 필자가 일종의 ‘깍두기’ 신분으로 다양한 이슈에
대한 소견을 국민들의 눈높이에서 피력해 보려 한다.


능력이 없으면 그만큼 선택의 폭은 좁아진다. 능력뿐인가. 약자의 위치에 있어도 마찬가지다. 기껏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상대의 지시나 제안을‘따를 것인가, 말 것인가’ 정도 밖에 안 된다. 상대가 일방적이고, 불합리하고, 그야말로 말도 안되는 지시나 제안을 했는데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경우, 그 순간 삶은 서글퍼지고, 처량해진다.

그것이 용납되지 않아서 당장 막막해질 현실을 감수한 채 상대의 지시나 제안을 과감하게 거절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때는 2, 30대의 혈기왕성한 젊은 시절이었다. “일할 데가 여기밖에 없나”라는 생각으로 객기를 부릴 수 있었던것이었다.

방송 작가라는 직업은 프리랜서이기 때문에사회적 약자 계층에 속한다. 방송 제작사의 터무니없는 지시나 제안을 따라야 될 때도 있고, 심지어 수백, 수천만 원의 원고료를 못 받는 경우도 있다. 물론, 지상파나 종편 방송사에서 원고료를 못 받는 경우는 없다. 외주 제작사처럼 규모가 크지 않은 업체에서 그런 경우가 종종 생기는데, 미꾸라지 몇 마리가 개울물을 흐리듯이 몇몇 업체가 전체 외주 제작사의 이미지를 흐리는꼴이다.

원고료뿐만이 아니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담당 피디가 방송 작가를 해고할 수 있는 막강의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조차 전혀 알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해고의 명분이 야 얼마든지 만들기 나름이고, 동료 피디나 국장등은 방송 작가의 해명을 들어보려고 할 만큼 상황을 중요하고,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니까.. 역사가 승자의 입장에서 기록되는 것처럼 해고의 원인도 내부 직원의 입장에서 정리된다.

그런 약점을 교묘히 악용하는 사람이 있다. 그럼, 그의 막무가내 같은 지시나 제안을 받아들여야 되고, 가끔씩은 은밀한 요구도 들어줘야 된다.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싸우거나 떠나야된다. 싸울 경우에는 온갖 불이익을 감수해야 되고, 외롭게 투쟁해야 된다. 떠나게 되더라도 그의 술수와 과장된, 혹은 날조된 험담으로 안 좋은 이미지만 남기게 된다. 동료들이라고 할 수있는 다른 프로그램의 방송 작가들까지 강자의논리에 편승해서 차가운 시선을 보낼 때, 그럴때는 직업에 대한 회의감과 벼랑 끝에 홀로 선것 같은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그렇다고 일종의내부 고발을 할 수도 없다. 어차피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것을 알고, 내 편이 되어줄 사람이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이 바닥을 영원히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 이상 입을 꾹 담을 수밖에 없다.

지난해 ‘갑을 관계’로 사회가 시끄러웠다. 전화 상담원이나 백화점, 마트 직원들이 고객의 횡포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사실도 새삼다시 부각이 됐다. 그러나 방송 작가처럼 불특정의 고객이 아닌 단 한 명의 슈퍼 갑에게 정신적,육체적으로 매일, 매시간 집중적으로 혹사당할때, 그 스트레스는 전화 상담원의 고충 못지않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렇게 슈퍼 갑 행세를 하려는 내부 직원이 백 명 중에 네다섯 명 정도 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 통계는 철저히 주관적인 것이다.

어찌 방송 작가뿐이겠는가. 프리랜서가 아닌 정규직 직원이라도 비슷하거나 더 심한 경우를 경험할 수 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문득뜬금없이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그런 사람에게 증오심을 품어 봐야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더 많다는 것을.. 가장 큰 손실은 나의 건강과가정의 불화다. 누군가를 증오하고, 그 억울함과 분함을 되새기면 몸이 안 좋아지고, 괜한 일로 가족에게 화풀이를 하게 됐다. 그래서 차라리 잊어버리기로 했다. ‘뒤끝 작렬’이라고나 해야 될까. 그 정도로 상처가 깊었던 묵은 기억과 감정을 이제는 씻어 내리기로 했다. 음식을먹고 체했을 때 소화제가 꽉 막힌 속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것처럼 머릿속에 꽉 들어차서 머리를 지끈지끈 아프게 하는 기억을 소화시켜버리기로 했다. 그래야 트림이 시원하게 터져나오고, 꽉 막힌 가슴 속이든 머릿속이든 시원해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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