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병천
(예)육군대령, 리더십박사
전 나사렛대학교 부총장
한국전략리더십연구원 원장

이순신도 허리를 굽혔다
비이교지(卑而驕之) ― 『손자(孫子) 시계 제1편』

북한에서는 어떻게 절을 할까? 어른에게 하는 인사인 큰절은 곧바로 선 자세에서 허리를90도로, 또래나 동년배의 서로 어려운 사이에서 하는 평절은 서서 허리를 45도로 굽혀서 한다고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은 전통적인 절 방법이고 요즘은 약간 여유를 가져 큰절은 45도,평절은 15도로 간소하게 하는 것을 권한다고한다. 허리를 굽히는 행위는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표하는 것이다. 그리고 상대방을 존중하며 상대방 보다 아래에 있겠다는 의미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상대방에 대한 ‘굴복’이다.

그렇기 때문에 허리를 굽힌다는 것은 쉽지않다. 더구나 자존심이 강한 사람에게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허리를 굽혀야 할 때가있다. 허리를 굽힘으로써 보다 큰 것을 얻을 수있을 때는 굽혀야 한다. 정말 중요한 것을 얻기 위해서는 나머지 것들은 다 버릴 수 있어야한다. 누가 미켈란젤로의 멋진 조각 작품을 보고 감탄하면서 물었다. “보잘 것 없는 돌로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형상을 만들 수 있습니까?” 이에 미켈란젤로는 말했다. “그 형상은처음부터 그 돌 속에 있었죠. 다만, 마음으로구상하고, 필요한 부분만 살렸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정말 필요한 것만을 남기기 위해서 나머지 부분은 하나씩 쪼아 버린 것이다. 버려야가치 있는 모양이 나온다.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물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른다.”

전국 시대, 조나라 혜문왕 때 인상여(藺相如)라는 사람이 살았다. 그는 진(秦)나라 소양왕에게 빼앗길 뻔했던 천하 명옥(名玉)인 화씨지벽(和氏之璧)을 원상태로 가지고 돌아왔다. 티끌만한 험도 없는 훌륭한 옥이라는 뜻의 ‘완벽’(完璧)은 여기에서 유래되었다. 인상여는그 공로를 인정받아 일약 상대부라는 높은 벼슬에 임명됐다.

그리고 3년 후(기원전 280), 혜문왕을 욕보이 려는 소양왕을 가로막고 나서서 오히려 그에게 망신을 주었다. 인상여는 또다시 종일품의상경에 올랐다. 이렇게 지위가 높아지자 당시조나라의 명장으로 유명한 염파(廉頗)보다 더높아졌다. 염파는 뿔이 났다. 언젠가는 복수하겠다고 벼렸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인상여는 그를 피했다. 비겁하게 피해 다니는 그를 보고 부하들이 작별인사를 했다.

이때 그는 말했다. “자네는 염파 장군과 진나라 소양왕과 어느 쪽이 더 무섭다고 생각하는가?” “그야 물로 소양왕이지요.” “나는 그소양왕도 두려워하지 않고 많은 신하들 앞에서 혼내 준 사람이야. 그런 내가 어찌 염파장군을 두려워하겠는가? 생각해 보면 알겠지만 강국인 진나라가 쳐들어오지 않는 것은 염파장군과 내가 버티고 있기 때문일세.

이 두 호랑이가 싸우면 결국 모두 죽게 돼.
그래서 나라의 위기를 생각 하고 염파장군을피하는 거야.” 이 말을 전해들은 염파는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몰랐다. 그는 곧 윗통을 벗은다음 태형(笞刑)에 쓰이는 형장(荊杖)을 짊어지고 인상여를 찾아가 섬돌 아래 무릎을 꿇었다. “내가 미욱해서 대감의 높은 뜻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소. 어서 나에게 벌을 주시오.” 염파는 진심으로 사죄했다. 그날부터 두 사람은'문경지교(刎頸之交)'를 맺었다.

문경지교는 생사를 같이하여 목이 떨어져도후회하지 않을 만큼 친한 벗을 말한다. 이렇게인상여는 큰 것을 위해 작은 것을 버릴 줄 아는사람이었다. 이순신 장군에게도 이러한 일화를 찾을 수 있다.

다음은 유성룡의 징비록에 나오는 말이다. “임금께서 청파까지 나아가 진린을 전송했다.

나는 진린의 군사가 수령을 때리고 욕하기를함부로 하고 노끈으로 찰방 이상규의 목을 매어 끌어서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것을 보고 역관을 시켜 말렸으나 막무가내였다. 안타깝게도 이순신의 군사가 장차 패하겠구나..... 진린과 같이 중군에 있으면 견제를 당하고 의견이틀려서 반드시 장수의 권한을 빼앗고 군사들을 학대할 것이다.

이것을 제지하면 더욱 화를 낼 것이고 그대로 두면 끝이 없을 것이니 이순신의 군사가 어찌 싸움에서 지지 않겠는가.” 조선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파병된 명의 수군대장 진린을 보면서 유성룡이 크게 걱정하고 있는 대목이다.

유성룡뿐만 아니라 조정대신의 근심도 태산같았다. 진린의 비위를 거스른 조정 대신들이 온갖 수모를 당하고 심지어 곤장까지 맞았던 터였다. 서울에서 이렇게 한바탕 난리를 피운성질 고약한 진린은 이제 조선수군과 합류하기 위해 5천명의 군사를 이끌고 이순신의 수군본부가 있는 고금도로 향했다. 이때가 1598년 7월 16일이다.

그런데 이때 이순신은 어떻게 행동했을까?
유성룡이 걱정했던 대로 진린과 반목과 갈등을 일으켰을까? 이순신 장군은 완전히 예상을 깼다. 이순신은 즉각 휘하 장교들과 함께 수십리 길을 마중 나갔다. 그리고 진린에게 크게 허리 숙여 절을 했다. “대제독, 어서 오십시오.”

또한 그를 위해 소를 잡아 큰 잔치도 베풀었다.원칙주의자, 강직한 인물의 대명사인 이순신이 왜 이렇게 행동했을까? 이유는 단 한가지였다. 나라를 위해서다.

이순신은 보다 중요하고 큰 것을 위해 과감하게 작은 것을 버렸던 것이다. 진린을 내편으로 만들어야 전쟁에서 이길 수 있고, 나라를 살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얼굴이 얇아 체면을버리지 못하고 마음이 맑아 의중을 숨기지 못하는 자는 패배한 뒤에 이를 갊이 있으리라!”

중국인의 처세를 다룬 후흑학(厚黑學)(신동준저)에 보면 미국 대통령 오바마와 중국총리 원자바오가 만나는 장면을 다음과 같이 인상 깊게 묘사하고 있다.

오바마는 원자바오 총리와 악수할 때 고개를45도가량 숙였다. 반면 원자바오는 목을 꼿꼿이 세우고 그를 맞았다. 원자바오는 ‘제2의 주은래’라는 칭송을 들을 정도로 서민적이고 겸손한 사람이다. 그가 목을 세운 것은 중국인들의 자존심을 복돋워주기 위한 몸짓이었다. 그러나 그 역시 오바마의 속셈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당시 오바마는 자신의 몸을 한껏 낮춰 이같이 말했다. “미국 경제는 중국 덕분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유일무이한 슈퍼 파워 미국의 자존심은 찾을 길이 없다. 아무리 미국의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할지라도 과연 이렇게까지 스스로를 비하하는표현을 써가며 중국 수뇌부의 자부심을 부추길필요가 있었던 것일까? 아직도 미국을 유일무이한 슈퍼 파워로 여기고 있는 미국인의 자존심에 커다란 상처를 입힌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그의 이런 행보는 치밀한 계산 끝에나온 고단수의 술책이었다. 객관적으로 볼 때21세기에 들어와 미국이 계속 유일무이한 슈퍼 파워 역할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역할을분담할 그럴듯한 파트너가 필요한 것이다. 아무리 눈을 씻고 돌아봐도 중국밖에 없다. 중국사람들은 ‘면자(面子;체면)’를 좋아한다. 그렇다면 미국은 그들의 면자를 한껏 북돋워 실리를 챙길 필요가 있다.

손자병법 시계(始計) 제1편에 보면 “상대가낮추면 더욱 낮추어 교만을 부추긴다.”(卑而驕之)는 말이 있다. 일반적인 세상의 이치는겸손하면 흥하고 교만하면 망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상대방의 교만을 부추기려고 나는 더욱 낮은 자세로 나아가는 것이다.

상대가 낮추면 더욱 낮추어 교만을 부추긴다.

卑而驕之
비 이 교 지
상대가 낮추면 더욱 낮추어 교만을 부추
긴다.

문신 인상여와 무신 이순신 그리고 미국 대통령 오바마가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무엇일까? 자신을 낮춤으로써 보다 더 큰 것을 얻을수 있다는 것이다. 정말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을 위해서는 자신을 버리고 허리를 굽혀야 한다는 것이다.

‘난득호도’(難得糊塗)라는 말이 있다. 8세기 중국 청나라 때 유명한 서화가인 정판교라는 사람이 남긴 말이다. 이 말의 뜻은 “어리석기가 가장 어렵다.”는 의미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은 ‘흘휴시복’(吃虧是福)이다. “손해 보는것이 곧 복 받는 것이다.”는 뜻이다. 그런데 다시 이어지는 말을 보면 ‘어리석기’와 ‘손해 보는 것’은 단지 ‘복을 받는 것’이 목적이 아님을말해주고 있다. “총명하기 어렵고 어리석기도어렵지만 총명하다가 어리석기는 더욱 어렵다. 집착을 내려놓고 한 걸음 물러서면 즉시 마음이 편안하니 나중에 복을 받고자 하는 마음도 아니다.” 그렇다. 단지 복을 받기 위함이 아니고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세상을 살다보면 마음이 편한 것만큼 좋은 일은 없다.

그러나 조직을 이끄는 리더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내가 낮추고, 손해보고,뒤로 물러서는 목적을 단지 내 마음이 편안하기 위한 것에 멈춰서는 안 된다. 더 큰 가치를위해 그렇게 해야 된다는 것이다. 큰 것을 위해작은 것을 미련 없이 버리는 전략적 대범함이중요하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과연 나는 더큰 가치를 위해 무엇을 버릴 수 있는가? 내 허리는 굽혀지지 않고 언제나 빳빳한가? 굽혀야 할 때는 굽혀야 한다.

허리를 굽히는 것은 겸손이요
더 큰 것을 얻기 위함이다.
卑 而 驕 之
낮을 비 말이을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