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균
한국방송작가협회 회원

어린이들 세계에서는 또래보다 나이가 어리거나몸이 아픈 약자를 경기와 놀이에끼워주기 위한 ‘깍두기’라는 배려의문화가 있다. 이에 국방, 군사, 정치, 경제 등의 분야에서비전문가인 필자가 일종의 ‘깍두기’ 신분으로 다양한 이슈에대한 소견을 국민들의 눈높이에서 피력해 보려 한다.

올 추석 연휴가 10일이 된다는 말을 듣고 한숨이 나왔다. 부담을 넘어 압박감을 느낀다.

프리랜서라 한 가지 일만 하는 게 아니라, 몇가지 일을 하다 보니 평소에도 원고를 쓰는 게빡빡한 상황인데, 추석 연휴 10일 동안 방송될원고까지 추가로 써야 되니 부담이 클 수밖에없다. 그래서 예전에는 시간 있을 때 미리 시의성 없는 내용을 써두거나 자료를 찾아 정리해두고는 했지만, 올해는 다른 일까지 생겨서 손도 대지를 못했다. 어쩔 수 없다. 며칠 날밤을새서라도 쓰던가 해야지.

그렇게 강행군을 하다보면, 막상 추석 연휴에는 체력이 고갈되고, 정신이 피폐해져서 골골댈 수밖에 없다. 예전에는 ‘가족이 이해해주겠지’라는 생각으로 연휴 때 틈만 나면 잠을 잤는데, 이제는 나이가 들어 철이 들어서인지,아니면 남성 호르몬이 줄어 새가슴이 돼서인지 가족 눈치가 보여서 편히 낮잠도 못 잔다.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방송 작가들도 마찬가지다. 특히, 라디오 작가는 더 심하다. 그러다보니 차라리 휴일 없이 규칙적으로 반복되는생활을 바라는 작가들도 꽤 있다.

“밤잠 못자고 일했다”고 하면, 가족은 내가떼돈이나 버는 줄 안다. 그런 오해를 받을 때마다 씁쓸한 웃음이 나온다. 물론, 상위 10% 안에 드는 라디오 작가는 원고료를 적지 않게 받지만, 나야 ‘잘 나가는 작가’가 아니다보니 원고료가 적은 편이라서 한두 가지 일만 해서는생계가 어렵다. 프리랜서라는 특성상 ‘잘 나가는 작가’도 다른 방송사나 프로그램에서 원고 의뢰가 들어오기 때문에 한 가지 프로그램에만 ‘100% 올인’하기가 쉽지 않다.

공기업이든 일반 기업이든 직원 대부분은진급을 위해 업무에 ‘100% 올인’을 하겠지만,방송 작가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프리랜서라진급할 일도 없고, 글을 잘 쓴다고 방송사에서원고료를 올려주지도 않는다. 다른 프로그램을 더 맡아서 원고료가 늘어날 수 있는데, 그러다보면 결국 ‘100% 올인’은 희미해지고, 능력과 노력이 여러 프로그램으로 각각 분산되는 것이다. 물론, 드라마 작가는 예외다. TV 작가들도 프로그램이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방송돼서 ‘100% 올인’을 해야만 되는 구조다. 반면에 라디오 프로그램은 매일 2시간 정도가 생방송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작가들이 ‘100% 올인’을 하는 게 사실상 어렵다.

흥미로운 건 글이라는 게 미묘해 ‘100% 올인’을 해서 원고를 썼는데, 기대와 달리 정작방송은 만족도가 낮을 때가 있고, 시간에 쫓기거나 몸 상태가 안 좋아서 겨우 원고를 썼는데, 뜻밖에도 반응이 좋을 정도로 방송이 잘만들어질 때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경우는 어쩌다 한두 번이다. ‘땀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딱 맞을 정도로 방송 원고는 밤잠 제대로 못자고, 식은땀을 흘릴 정도로‘100% 올인’을 할 때 완성도가 높아진다.

날밤을 새가며 ‘100% 올인’을 해서 원고를쓰고, 방송까지 잘 만들어졌을 때, 그때는 산삼이 아니라, 불로초를 먹은 것처럼 온몸에 생기가 돌고, 행복감을 만끽하게 된다. 그 매력때문에 지금까지 방송 작가로 일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100% 올인’을 못한 채완성도가 떨어지는 원고를 썼을 때는 마음이무겁다. 심한 경우에는 ‘이제 그만 딴 일을 찾아봐야겠다.’는 자괴감까지 밀려온다. 그 우울한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 나름 신경을 쓰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그럴 때마다 생계 걱정 없이 단 한 가지 글에만‘100% 올인’을 하는 상위 10% 소설가와 드라마 작가가 부러워진다.

난 언제쯤 생계 걱정 없이 단 한 가지 글에만 ‘100% 올인’을 할 수 있을까. 과연 그런 날이 올까. 그러고 보니 그동안 일뿐만 아니라 가족에게도 그렇고, 하물며 취미 생활도 그렇고,그 무엇 하나에도 ‘100% 올인’을 제대로 못했다. 독립운동가나 6.25 참전용사처럼 나라에‘100% 올인’은 못하더라도 어영부영 살다가흔적도 없이 사라지지 않게 ‘열정의 피치’를올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