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수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사단법인 대한사랑 이사장


몇 년 전 중국에 남은 우리나라 독립운동 사적지를 들러 보았다. 혼자 간 것이 아니라 젊은 대학생들을 인솔하고 갔다. 그러니 다른 때보다도 보람이 있었다. 물론 학생들에게 내 마음이 그대로 전달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여러 차례 가 본 곳이지만 답사할 때마다 느낌이 다른 법이다. 특히 안중근 의사가 일제침략의 원흉 이등박문(伊藤博文)를 총살한 하얼빈 역두를 둘러볼 때는 갈 때마다 감회가 매우 달랐다. 내가 안 의사를 처음 연구한 것은 1960년대의 일이니 50년 전의 일, 필자가 30대 청년 때였다.
여순 감옥에서 왜인 재판장의 질문이 시작되면 안 의사의 답변이 길었다. 특히 안 의사가 이등박문이 명치천황을 협박하여 아버지를 죽인 일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놀란 나머지 즉각 재판을 중단하였다. 명치천황이 아버지를 죽인 사건은 일본 역사의 극비사항이어서 이 사실을 아는 일본인은 많지 않다.
그리고 안 의사가 역설한 동양 삼국 평화사상이 무엇을 말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아는 일본인이 없다. 안 의사의 동양 삼국 평화론은 즉시 일제의 동양침략을 중단하라는 것이었다. 만일 그때 일제가 안 의사의 말씀을 잘 듣고 침략을 단념하고 한·중·일 세 나라의 평화적 공존을 꾀하였더라면 이웃나라는 물론 세계로부터 멸시받지 않는 나라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일제는 안 의사의 말씀을 듣지 않았음은 물론이요, 이를 악용하여 대동아 전쟁을 일으켜 스스로 묘혈을 팠다. 그뿐 아니라 일제는 바로 하얼빈에 731부대를 주둔시켜 산 사람을 잡아다가 생체실험을 하였다. 그런데도 얼마 전 아베 일본수상이 마루타 부대를 연상케 하는 731호 훈련기를 타고 손을 흔들어 보였으니 온 세상에 일제의 야만행위를 자랑한 셈이다.
안중근 의사는 여순 재판정에서“나는 대한제국의 의병 중장이다”고 하시면서“국제공법에 따라 나를 군인으로 재판하고 총살하라” 고 항변했다. 안 의사는 너무나 당당한 대한국인이요, 대한제국의 중장이었다.
안 의사의 이 발언을 오늘의 대한민국 정부가 아직도 모른 체하고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대한민국은 대한제국을 계승한 나라이기 때문에 안 의사에게 군번 1번을 바치고 우리 국군장병에게 안중근의 대한정신을 본받게 해야 마땅할 것이다.
인생의 목숨은 초로와 같고 / 고구려 역사 7백년 빛났도다.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산다면 / 아아! 내 목숨 이슬 같이 바치겠노라.
위의 노래는 우리 대한민국 국군 창설 당시에 불렀던 씩씩한 행진 군가다. 오늘의 국군장병은 이 노래를 불러야 한다. 이 군가는 대한제국 당시의 애국자 화서 이항로(李恒老) 선생의 상소문“고구려가 30만의 국군으로 중국의 수나라와 당나라 침략군 300만을 무찔렀다”는 구절을 따서 지은 군가였다. 왜“고구려 역사 7백년 빛났도다.”라고 했는가. 고구려에는 한민족 고유의 낭가 정신을 이어 받은 을지문덕 장군이 있었기에 10배가 넘는 적군을 무찔렀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중국의 역사 왜곡과 일제의 식민사관으로 인해 우리의 뿌리 역사를 잃어버렸고, 한민족의 역사 속에 살아 숨쉬고 있는 숭고한 낭가의 정신을 알지 못하고 있다. 환국을 이어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인 배달국을 열었던 제세핵랑을 비롯하여 고조선의 국자랑, 북부여의 천왕랑, 고구려의 조의선인, 신라의 화랑, 고려의 재가화상, 조선의 선비 정신과 구한말 동학, 일제 항일 독립투쟁으로 이어져 내려온 우리 민족의 낭가정신은 국가가 누란의 위기에 처할 때마다 구국의 선봉에 서서 국가와 민족을 지켜낸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안중근 의사는 차디 찬 여순 옥중에서『안응칠 역사』를 집필하였다. 이 글을 읽을 때마다 우리는 눈물을 흘린다.
여러분! 여러분! 깊이 생각들 하십시오, 여러분은 조국을 잊었습니까. 만일 잊지 않았다면 이같이 생사가 달린 때를 당하여 분발하고 크게 깨달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안중근 의사의 말씀은 계속된다. 국권을 잃은 것을 통탄하면서 온 국민이 의병이 되어 우리 힘으로 국권을 회복하자고 호소하였던 것이다.
지금 조국에서는 13도 강산에 의병이 일어났으나 만일 의병이 지는 날이면 나라가 망하는 것입니다. 그런 즉 오늘, 국내외를 막론하고 대한국인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총을 메고 칼을 차고 일제히 의병을 일으켜 승패를 불문하고 통쾌한 싸움 한 바탕으로 천하 후세의 부끄러운 웃음거리가 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임진왜란과 일제 침략, 외세의 침탈을 표현할 때 우리 조상들은 이 나라의 앞문과 뒷문을 노려보는 호랑이와 이리 떼라 하였다. 그리고 북한의 대남공작과 중국의 동북공정, 일본의 독도침탈 등을 앞으로 어떻게 막아낼 수 있을까.
우리 국군 용사는 어느 나라 국군보다 더욱 강한 정신력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나라를 혼란시키는 내부의 적들은 물론 사방에 둘러싸인 외적을 물리칠 수 있다.
우리 역사 속에 면면히 흐르는 낭가의 상무정신을 이어 받아 안중근 의사의 대한정신이 나왔고, 그 정신으로 항일 독립군이 청산리 대첩을 승리로 이끌어 냈으며, 불과 10만 명의 우리 국군이 북한의 6·25 남침 군을 막아낼 수 있었다. 아무리 최신 무기와 핵무기가 있다 해도 우리에게 대한의 낭가 정신이 없었다면 적의 침략을 막아 낼 수 없었던 것이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도 대한민국의 남북통일을 위한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고 동시에 위협이 상존하고 있다. 이러한 때 통일을 향해 힘을 모아야 하지 않는가. 우리 국군장병 모두의 가슴 속에 을지문덕, 그리고 안중근 의사의 대한의 혼, 대한의 정신을 모신다면 동서독이 부럽지 않은 나라, 세계 속의 통일 대한민국으로 우뚝 서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