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통일전선전술 연구 (5)
기자 : 관리자 날짜 : 2022-11-06 (일) 15:12
이 연재물은 지난 2022년 2월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북한의 통일전선전술 연구’ 제하(題下)로 북 한학박사 학위를 받은 우리 연구원 김준섭 본부장의 논문을 요약·정리한 것입니다. 1948년 9월 정권 창립 이래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북한 통일전선전술(The United Front Tactics)을 체계적으로 분석·평 가하고 있는 본 연재물이 북한정권의 속성(屬性)을 적확(的確)하게 이해할 수 있는 유용한 자료로 원용 되기를 바랍니다.(편집자 주)




Ⅳ. 김일성시대의 통일전선전술 1. ‘민주기지노선’과 ‘민족통일’ 통일전선전술 (1945∼1960) 1) 대남혁명전략 통일전선전술 기조 소련 공산당의 스탈린은 북한의 조선노동당 지도자였던 김일성의 대남혁명 통일전선전술에 핵심적인 영향을 주었다. 김일성은 1945년 10 월 13일 각 도당 책임일꾼들에게 행한 연설에 서 “새 조선 건설과 민족통일전선에 대하여”에서 “광범위한 대중을 쟁취하고 적의 세력을 약화 시 키려면 공산당 대열을 강화하고 ‘민족통일전선’ 을 결성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후 김일성 은 남조선혁명에서 통일전선전술의 중요성을 강 조하면서 체계화시켰다. 김일성시대에 전개해 온 공산주의 전통방식 의 통일전선전술은 ‘반미구국통일전선’, ‘조국 통일민주주의전선’ 등의 외곽정당 단체들을 앞 세운 남북 간의 ‘협상대화전술’, 남한 내 전위 조직을 구축하여 연신하는 ‘비합법적 통일전선 전술’, ‘대남공작원 남파침투’와 ‘무력도발’, 대 남방송 및 체제 선전물 살포와 시각 매체를 이 용한 ‘선동’ 등의 배합형 공산주의 전통방식으 로 구성되었다. 김일성의 대남인식으로 남한은 미국이 세계 제패를 위한 병참기지로 활용하기 위해 강제로 점령한 식민지라는 관점에서 출 발하고 있었다. 김일성은 해방 이후 지속적으 로 “남조선은 미제의 완전한 식민지이며, 침략 적 군사기지이고, 남조선을 정치, 경제, 군사적 으로 완전히 예속시켰다.”라고 선동했다. 또한, 남한이 “미제에 의해 일부 재편성된 남조선의 사회경제는 지난 일제식민지통치 시기와 어떠한 본질적 변화도 없이 여전히 반봉건적 식민 지의 성격을 띠고 있다”라고 주장하면서 사회 계층 간의 관계도 적대적 대립과 갈등의 구조 로 규정하였다. 김일성은 일본 식민지 해방 이후 전 조선의 적 화통일 달성을 위해서는 무력이 가장 확실하고 빠른 방법이라고 인식하고 ‘민주기지론’에 입각 한 무력 통일을 추구하였다. 이는 국제적 냉전의 진행으로 1945년 3월부터 진행된 미소공동위원 회가 5월에 결렬되자 미소 교섭에 의한 통일 정 부수립이 가능하지 않다는 인식에서 북한 지역 에 민주주의 근거지 건설, 즉 단독정부 수립과 남한의 민주화 및 혁명을 목적으로 ‘민주기지론’ 노선을 내세웠다. 김일성은 이 같은 주장을 통해서 ‘통일전선’ 전략에 대한 기조와 목표를 대외에 강조하였는 데 이때 보조적으로 당을 강화하고 노동자, 농 민을 혁명의 주력군으로 하며, 이에 기초하여 각 계층의 애국적 인민들을 널리 망라하는 ‘민 주주의민족통일전선’을 형성할 것을 남조선혁 명운동에서의 혁명역량 편성의 기본 방향으로 내세웠는데 김일성의 대남 통일전선 전략 기조와 목표가 투영되어 있었다. 그리고 1949년 6 월 70여 개의 남과 북의 정당, 사회단체가 망라 되었다는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약칭 조국전 선)을 결성하고 미군 철수와 유엔 한국위원단의 철퇴, 남북협상을 통한 통일을 6.25 남침 개시 1주일 이전까지도 주장하였으며, 1950년 6월 7 일에는 ‘조국전선’의 명의로 ‘평화통일 호소문’ 을 발표하여 남북한을 통합한 최고 입법기관의 구성을 위한 총선거를 전국적으로 실시할 것을 주장하였다. 2) 민족통일전선 확대 공산주의 전통방식의 ‘통일전선전술’은 북한 의 공산정권 수립과정에서부터 적용되었다. 김 일성은 1945년 12월 22일 민주청년 단체가 주 최한 정치강좌 ‘민족통일전선문제에 대하여’에 서 8.15 해방 이후 조선의 적화통일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일본제국주의를 반대하는 ‘민족통일전 선’을 결성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회의에서 조선은 오랫동안 일본제국주의 지배를 받아 자 본주의의 발전은 억압 통제당했고, 봉건적 잔재 가 그대로 남아있는 사회이므로 조선 사람들은 ‘반제반봉건인민민주주의혁명’과 ‘민주주의인민 공화국’을 창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북한 에서 김일성은 ‘민족통일전선론’을 계속하여 강 조하였다. 1945년 12월 17일 ‘모스크바 3상 회 의’ 결의로 5년 동안 미국, 영국, 중국, 소련 4개 국에 의한 신탁통치가 결정되자 남한은 전격 반 대하였지만, 북한은 이미 소련 군정의 지시를 통 해 지지하며 찬성하였다. 여기에 북한의 지령을 받은 조선공산당 서울시위원회에서도 찬성에 동 조하였다. 통일전선에서 공산당이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 는 공산당조직이 강화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하 여 1945년 12월 18일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제3차 확대 집행위원회에서 김일성은 “당의 공 고화를 위하여”라는 보고를 통해 당 조직을 강화 하고 ‘당의 사상 의지를 강화’하며, ‘당규율을 강 화’하고, ‘당 간부 양성사업’을 통해 훈련 양성하 며, 제때에 대책을 강구하여 정책을 세울 수 있 도록 ‘보고제도를 강화’하고, 공산당 청년을 민 족통일청년으로 개편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렇 게 당 조직을 강화한 북한 혁명세력들의 통일전 선은 신탁통치 논쟁을 계기로 각 정당 및 사회단 체들의 통합된 의견일치를 만들어 내는데 성공 할 만큼 구체화 되었다. 그러나 이와는 대조적으로 남한 측에서는 신 탁통치안에 대해 이승만, 김구 등의 임시정부 측 과 한민당 측의 반탁운동과 좌익의 찬탁으로 정 국이 혼란에 빠지고 좌익과 우익 간의 협조는 기 대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러한 남한의 상 황은 북한이 독자적인 ‘통일전선조직’을 만들고 이를 통해 ‘통일전선전술’을 이미 상당히 진전시 킨 북한의 좌익이 구심점을 확보할 수 있는 상 황을 만들어 주었다. 김일성은 1946년 7월 22 일 북조선민주주의 정당·사회단체 대표회의에 서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위원회를 결성할데 대 하여”라는 보고를 통해 여러 민주정당과 사회단 체의 공동노력에 의하여 북조선에는 앞으로 통 군사저널 45 일적 민주조선을 건설할 수 있는 튼튼한 토대가 닦아졌다며 여기에는 ‘직업동맹’, ‘농민동맹’, ‘민 주청년동맹’, ‘여성동맹’, ‘예술연맹’의 376만 명 이 참가하여 광범한 통일전선에 기초하여 참다 운 인민의 정권인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세 웠다고 보고하였다. 김일성은 이 자리의 보고에서 ‘민주주의민족 통일전선’의 구축을 주장하였는데 결국 ‘민족통 일전선’은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의 모습으로 출현 되었다. 이러한 김일성의 ‘민주주의민족통 일전선’은 남한정치에 개입할 구실을 만드는 것 으로 남한의 ‘조선공산당’ 역시 유사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민족통일전선’의 주 목적은 공산 주의자들이 모든 정치단체와 사회단체를 통제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어 공산주의자들의 잠재력 을 최대한 동원하려는 것이었다. 북한의 ‘민족통일전선’은 공산주의 정권수립 초기부터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과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건설하기 위해 합작 가능한 계급 과 당파, 단체와 개인을 연합하여 광범한 군중을 쟁취하여 공산당 주위에 집결시키려는 것이었 다. 이것은 ‘민족통일전선’ 조직을 통해서 개인 과 단체 등 광범한 군중을 쟁취하는 아래로부터 의 ‘하층 통일전선’과 조만식의 ‘조선민주당’과 김일성의 ‘공산당’ 간의 협조를 강화하여 우익세 력들과 여러단체들이 통일전선에 참가하는 위로 부터의 ‘상층 통일전선’ 전개를 통한 통일전선체 결성에 성공하였다. 3) 조국통일 민주주의전선(조국전선) 조직운용 1949년 6월에 ‘북조선공산당’의 김일성과 ‘‘남 조선공산당’의 박헌영은 남조선을 적화통일하기 위한 ‘통일전선전략’을 모색하였다. 이 전략은 혁명의 전초기지인 북조선지역의 역량을 강화하 면서 남로당이 전면에서 남한 내에 각종 투쟁을 확대하여 당시 남조선괴뢰정부의 능력을 약화 시키면서 남한의 적화통일 혁명의 시기를 포착 하겠다는 전략이었다. 이 전략을 수행하는 방법으로 남북한에 조직 이 되어있는 ‘통일전선체’와 노동당을 하나로 규 합하여 통일된 조직체로 만들어 모든 혁명세력 역량을 통일시킬 필요성을 인식하였다. 이러한 전략적 판단에 따라 1949년 6월 30일부터 7월 1일까지 남북조선로동당중앙위원회 연합전원회 의를 통해 ‘남조선민주주의민족전선’과 ‘북조선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을 통합해 ‘조국통일민주 주의전선’(약칭 조국전선)을 결성하고, 남북조선 로동당도 합당하여 ‘조선로동당’으로 새롭게 출 범하였다. 결과적으로 남로당의 정치세력은 김일성의 북 로당에 흡수되면서 김일성의 권력 확립체계가 갖추어졌다. 이후 남한에서 전개되는 게릴라전 을 포함한 모든 혁명투쟁은 오직 김일성의 북로 당 주도의 ‘대남혁명전략’에 종속되는 수단으로 전락하였다. 이러한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은 남과 북의 ‘민주주주의전선’이 통합된 공산주의 의 전형적인 위로부터의 ‘상층 통일전선’ 전술이 성공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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