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
신동아 편집위원
milhoon@hanmail.net

국정원 직원 댓글 사건에 이어 국군사이버사령부 직원들의 정치 댓글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댓글이 뭐 길래? 정치가 뭐 길래?

19세기가 열리기 전까지 인류는 땅과 바다만을 무대로 살아왔다. 땅은 그야말로 터전이니 그 위에 집을 짓고 그 위에서 경작을 하고 그 위에 모여 놀고 싸움을 했다. 그렇게 땅이 중요했으니 땅따먹기를 위한 전쟁을 했다.

바다는 먹을거리의 보고와 통로 구실을 했다. 물짐승은 육지짐승보다훨씬 수월하게 잡힌다. 허리 깊이의 바다와 강에만 들어가도 조개와 게를 잡아먹을 수 있었다. 더 깊은 바다와 강도 통나무만 있으면 들어갈수 있으니 배고프면 인류는 물가로 가야 했다.

인류는 강과 바다를 통해 물류를 했다. 땅은 울퉁불퉁한 데다 숲이 있고 고개가 있어 바퀴를 단 수레가 있어도 많은 물량을 운반할 수 없었다. 그러나 부력을 가진 물은 달랐다. 물은 많은 사람과 짐을 배에 실어운반할 수 있게 해줬다.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은 바다를 활용했다. 지금은 EEZ로 상징되는 바다 분할 경쟁을 하고 있다. 그래서 영어권에서 육군과 해군은, army와 navy라는 고유명사를 갖게 되었다.

하늘은 달랐다. 인류는 탄생 이래 새와 곤충을 보면서 날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 살아야 했다. 이 꿈은 1903년 미국의 라이트 형제가 날틀을만들어 비행함으로써 실현되었다. 그후 100여년 사이 인류는 하늘을 통한 오가기를 하며 문명을 엄청나게 폭증시켰다. 이젠 우주도 인간의 영역으로 만들고 있다. 공군은 늦게 생긴 군대이기에 하늘을 뜻하는 보통명사 air에 군을 뜻하는 보통명사 f orce를 더한 air force란 명칭으로 영어권에서는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사이버(cyber)라는 무대가 등장했다. 사이버는 생각을 하고 감정을 처리하는 머릿속, 마음속과 비슷한 공간이다. 그러나 꿈은 아니다. 사이버에서 이뤄지는 것은 감출 수 있는 마음이나 생각과 달리 현실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사이버 거래는 현실의 거래가되고, 사이버에서 오간 정보는 그대로 현실의 편지가 된다.

컴퓨터를 토대로 생겨난 사이버는 급작스럽게나타났기에 우리는 우리 말도 만들지 못하고 같이
사이버라는 영어를 그대로 쓰게 되었다.

1인 1컴퓨터 시대가 된 지금 우리는 사이버 세계를 방황하고 있다. 그곳에 친구를 만나고 적과 조
우한다. 정보도 얻고 돈벌이도 한다. 육지도 아닌,바다도 아닌, 하늘도 아닌 우리말도 만들지 못한
제4의 공간에서 우리는 일희일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지만, 현실과 똑같
은 사이버는 우주처럼 인류가 새로 직면한 영토이다. 사이버에서 지면 눈에 보이는 세계에서도 패
배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 사이버가 대한민국에서는 정쟁의 무대가 돼버렸다. 물론 주인공은 정치인들이다. 그들은 사이버에서 그들끼리의 공방만 하고 있지 않다. 사이버 세계의 적과도 싸우는 게 아니다. 그들은 사이버 영토를 지켜야 하는 부대와 기관을 놓고 맹공을 퍼붓고 있다. 사이버라고 하는 새로운 영토를 지키기 위해 만든 군대를 마구 때리고 있는 것이다.

정치가 아무리 중요해도 안보에 앞설 수 있는가.정치인들은 그들의 고통을 회피하려고 엉뚱한 싸
움을 벌이는 게 아닐까. 정치인들은 꽃삽으로 할수 있는 일에 포크레인을 동원하고 있는 것은 아
닐까. 사이버 영토가 무너지든 말든 그들끼리의정쟁에서 이기기 위해 우리의 사이버군대를 마구
패버리면 어쩌자는 말인가.

사이버 군대를 우습게 봐서는 안 된다. 사이버 군대는 갑작스럽게 등장했지만 등장하는 첫날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사이버 안보는 세계의 어떠한 안보보다도 중요한 것이 되었다. 사이버부대가 등장한 역사부터 살펴보자.

안보 분야에 관해서는 그래도 미국이 선두이다. 사이버부대 역시 미국이 제일 먼저 만들었다.
2009년 미국이 전략사령부(STRATCOM) 안에 사이버사령부(CYBERCOM)를 만들 때까지 세계는사이버가 육·해·공에 이는 또 하나의 싸움터, 전장(戰場)이라는 것을 제대로 인정하지도 못했다.전략사는 본래 핵전쟁에 대비하는 곳이다. 중동이나 한반도 같은 지역전쟁이 아니라 범지구적인전쟁에 대비하는 사령부인데 그곳에 사이버사를만들었다는 것은 사이버전은 특정 지역이 아닌 전세계 차원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준다. 국경도없고 전구도 없는 상황에서 사이버전은 벌어진다.

사이버는 땅도 바다도 하늘도 아닌 제4의 공간이니 자기 무대가 있는 육·해·공·해병대 같은 단일군으로는 대응할 수가 없다.
전쟁은 육·해·공·해병대를 모아야 치를 수있다. 각군을 모아 싸우는 것을‘합동’이라고 한다. 미국은 각군을 모아 싸우기 위해 9개의 합동군사령부(정확한 명칭은‘합동전투사령부’)를 운용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전략사령부이다. 통상적인 경우라면 미국은 육·해·공·해병대가먼저 사이버사령부를 만들어 운영하다 이들을 묶어 합동군사령부로 사이버사령부를 만들어야 한. 다른 합동군사령부는 대개 그런 식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사이버사령부는 달랐다. 2009년 먼저전군 차원에서 합동군사령부로 사이버사령부를만들고, 이듬해인 2010년부터 육군과 해군 해병대에 사이버사령부를 만들었다. 공군만이 예외였다.
미 공군은 가장 먼저 사이버전의 중요성을 깨달아2009년 우주사령부 산하 24공군을 사이버사령부
로 지정했다. 미국은 공군이 취한 이 조치의 중요성을 인정해 그해 합동군사령부로 사이버사를 만
들었다.
미 공군의 우주사령부는 ICBM(대륙간 탄도미사일)을 관리하는 14공군과 미국이 띄운 숱한 위성을 관리하고 가상적국이 띄운 위성을 추적하는24공군으로 구성돼 있었다. 우주라고 하는 머나먼공간을 관리하다 보니 24공군은 사이버세계를 상대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사이버전의 주역이 되었고 사이버전의 비중이 급격히 높아졌기에 미 공군은 24공군에게 사이버 방위를 맡긴 것이다.

그리고 사이버 관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전파해전군 차원에서 합동군 사령부로 사이버사령부를
만들게 했다. 타군은 이를 받아들여 그 이듬해 자군의 사이버사령부를 만들었다. 지금 우리나라에
는 7공군이 있고, 일본에는 5공군이 있다. 이렇게번호를 붙이고 있는 공군부대를 번호공군이라고
하는데 번호공군의 사령관은 대개 중장이 맡는다.

타군은 공군을 모방했다.
미군은 전쟁에 따라 부대를 창설했다가 해체-
재창설하는 것을 반복한다. 제1차 세계대전 때인1918년 미국 육군은 2군을 만들었는데 곧 전쟁이
끝나자 이듬해 이 부대를 해체했다(미국 육군의 2군은 우리 육군의 1군, 3군과 같은 급이다. 미국
육군은 중장을 군사령관에 보임하나 우리는 대장을 임명하고 있다. 한국에 있는 미국 육군 부대인
8군의 사령관도 중장이다).

그리고 2차 대전 전인 1933년 재창설해 1966년까지 운용하다 해체했다. 2010년 미국 육군은 이러
한 2군을 재창설해 사이버전 전담부대로 만들었다.미 육군의 사이버사령관도 중장이 맡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 해군은 독일 해군이 펼친 잠수함전 때문에 많은 고통을 받았다. 때문에
대잠전을 전문으로 하는 수상함 세력으로 10함대로 창설했다. 이러한 10함대는 2차대전이 끝나면
서 바로 해체되었다.


10함대처럼 번호로 시작하는 함대를 번호함대라고 한다. 이러한 번호함대 가운데 우리에게 익숙한 것이 바로 일본 요코스카를 모항으로 한 7함대이다. 번호함대 사령관도 중장이 맡는다. 2010년 미 해군은 10함대를 재창설해 사이버전을 전담하도록 했다. 규모가 작은 미 해병대도 사이버사령부를 만들어, 미국의 모든 군은 사이버사령부를갖게 되었다.

전쟁에는 일반전쟁이 있고 비일반전쟁이 있다.
일반전쟁은 정전이나 종전에 의해 멈출 수 있지만비일반전쟁은 끝이 없다. 대표적인 비일반전쟁이
매일같이 싸워야 하는 심리전과 선전전 등이다.사이버전도 그렇다. 사이버전은 속성상 종전과 정전이 있을 수 없다.

과거에서는 전선이 있는 곳에서 심리전과 선전전이 벌어졌다. 사이버 세계가 열리자 이 구도가
붕괴됐다. 사이버 세계에서는 전선이 없으니 모든곳에서 심리전, 선전전을 할 수 있었다. 비(非)일반
전쟁이면서 전선이 아닌 곳에서 벌어지는 것이 사이버전이다. 사이버 세계에는 온갖 정보가 오가고
있으니 이를 빼내는 해킹전도 펼칠 수 있다.

정보화시대의 도래에 따라 나와 적의 시스템은모두 사이버로 구축됐으니 사이버전 능력이 뛰어나면 적의 중추시스템으로 뛰어 들어갈 수도 있다. 적의 사이버망에 침투해 모든 정보를 빼내고유사시 적의 신경망을 마비시키거나 오작동하게만들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사이버는 외교와공작처럼 전쟁을 하지 않는 시기에도 해야 하는영원한 싸움터가 된 것이다.

미국이 이러한 것을 보고 사이버전에 방점을 찍자 많은 나라들이 그 뒤를 따랐다. 북한도 그러했다. 북한은 2003년 전선의 스피커를 이용한 심리전 방송과 그것보다는 멀리 송출되는 라디오를 이용한 심리전 방송(구국의 소리)을 중단했다. 그리고 IT강국 한국이 구축해놓은 사이버 세계를 무혈점령하려는 노력을 했다. 우리민족끼리 등 갖가지사이트를 만들어 그들을 선전하고 그들의 사상을전파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 했다. 그리하여 국내 친북단체가 인터넷을 통해 북한과 접속하는 일까지 일어났다(왕재산 사건 등).

북한은 더 나아갔다. IT강국 한국이 모든 정보를사이버 세계에 담아 놓고 있는 것을 보고 해킹를
시도했다. 북한은 대한민국의 국가 기관과 언론사의 전산망을 다운시키는 DDOS 공격을 퍼부었다.
그리고 농협 전산망을 뚫고 들어가 해킹을 하는 대성공을 거뒀다. 농협이 뚫리자 한국인들은‘내 돈
을 잃지 않을까’불안해했다. 때문에 한국은 보다안전한 금융망을 깔게 되었다. 다른 분야에서도 사
이버 보안을 강화하게 되었다.

사이버 세계로 들어온 북한은 전형적인 편승공작을 했다. 즉, 한국에서 벌어진 사건을 확대해 한
국의 내부 모순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한국인들과 똑같이 한국의 모순을 질타하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이것이‘공명’을 일으켰다.

이것이 북한 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 강한 성과를 거뒀다.
한국에는 양심적인 사람이 매우 많다. 이들은 한국이 범한 잘못을 지적하는데 북한은 그러한 지적
을 확대하는 편승공작을 펼친 것이다. 때로는 비양심세력이 지적한 비판도 확대시키려 했다. 이러한 노력도 성공을 거뒀는데, 대표적인 예가 광우병 촛불시위였다. 그때 북한이 운영한 사이트들은촛불시위를 선동하기 위해 혈안이 됐었다.

사이버 세계는 북한이 말하는 해방공간이 돼 가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대응은 너무 늦었다. 우
리는 미국의 선택을 보면서 2010년 비로소 국군사이버사령부를 만들었다. 농협이 해킹을 당한 그
다음 해였다. 국군사이버사는 국직부대이니 합동군사령부이다. 그러나 우리의 국군사이버사와 미
국의 사이버사 사이에는 너무 큰 격차가 났다.

미국의 각종 사이버사령부에서는 진짜 사이버전전문가들이 지휘관을 맡았다. 그러나 우리 국군사
이버사에서는 사이버를 아는 지휘관이 적어 통신이나 전산 병과 출신이 부대를 이끌게 되었다. 이들은 심리전이나 선전전에 능통하지 못하다는 한계가 있다. 국군사이버사는 필요한 인원도 다 채우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국감에서 모 야당 의원은 이 사령부가 운영하는 ○○○단의 규모와 조직을 밝혀 버렸
다. 그렇게 한 이유는 국군사이버사 요원들이 정치적인 내용이 담긴 댓글을 달았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야당은 정부 여당을 한 방 먹이게 되었고,북한은 알고 싶던 정보를 너무 쉽게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국정원 심리전단 요원들에 이어 국군사이버사 요원들도 정치적인 댓글을 달았다고 하니 이
를 비판하는 시위가 일어나게 되었다.

많은 것이 엉켜버린 이 사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댓글 사건을 이유로 국군사이버사를 해체하
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선택이 된다. 차제에 분명히 할 것은 국정원 심리전단 요원과 국군사이버사
요원들이 정치댓글은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다. 두 기관 요원의 정치적 행위를 모두
금지한다면 이들은 선거도 하지 말아야 한다.

두 기관 요원들도 자기 선택에 따라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고 비판할 자유는 있다. 대한민국 헌법은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으니 상부 지시에의해 조직적으로 댓글을 달지 않았다면 이들도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은 인정받아야 한다.

따라서이번 사태를 계기로 두 기관 요원들이 할 수 있는정치행위를 분명히 규정해야 한다. 이는 법제화를통해 실현된다. 즉,‘국가사이버법’을 만들어 국군사이버사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을
명확히 구분지어 주어야 한다.
그리고 국군사이버사가 제대로 활동할 수 있도록 활동 공간을 열어주는 법이 있어야 한다. 그 법이 바로 북한인권법이다. 국군사이버사는 북한 주민을 우리 편으로 만드는 노력을 해야 하니 북한인권법을 근거로 작전해야 한다. 이 분야에서도한국은 한참 뒤쳐져 있다. 미국은 2005년, 일본과EU는 2006년 북한인권법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2005년부터 계속 북한인권법을 올렸건만 여야 싸움으로 국회 통과가 이뤄지지않고 있다.

대한민국은, 우리를 지켜주는 파수꾼을 질타하다가 우리의 안보를 허물어뜨리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고, 그 파수꾼이 최선을 다해서 해야 하는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정리해 주는 노력부터해야 한다. 그것이 교각살우(矯角殺牛) 하는 어리석음을 피하면서 대한민국 안보를 바로 세우는 길이다. 그 시작이 국가사이버법과 북한인권법을 제정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