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26일,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 원(NIRS, National Information Resources Service)에서 발생한 화재는 단순한 안전사고를 넘어 국가적 재난이었다. 무정전전원장치(UPS) 배터리 교체 작업 중 발생한 이 사고로 조달청의 ‘나라장터’로부터 행정안전부의 ‘정부24’까지 무 려 709개에 달하는 정부 업무 시스템이 멈춰 섰 다. 이는 국가의 중추 신경망이 얼마나 취약한 ‘단일지점(Single Point of Failure)’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강력한 경고등이었다. 적의 물리적 타격이 아니더라도 국가의 행정과 국민의 일상이 마비될 수 있다는 사실은, 국가안 보의 개념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러한 위협은 비단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 다. 2015년 우크라이나(Ukraine) 정전사태 는 사이버공격으로 국가전력망이 마비될 수 있음을 증명한 최초의 사례로 기록되었다. 

예측을 넘어서는 복합적 위협 시나리오

국가중요시설을 위협하는 요인은 군사적 위협 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2019년 예멘 반군의 드 론 공격으로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석유시설 두 곳이 파괴된 사건은, 저비용 비대칭 수단이 국가 기간산업에 얼마나 큰 피해를 줄 수 있는지 명확히 보여준다. 첨단 과학기술의 발전과 사회 의 복잡화는 위협의 양상을 복합적으로 다변화 시키고 있으며, 다음과 같은 복합적인 시나리오 에 대비해야 한다. 첫째,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는 ‘내부 관 리 부실과 외부 사이버 공격의 결합’이다. 내부 직원의 실수로 방화벽 보안 패치가 누락된 상황 (관리 부실)에서, 위협세력이 이 취약점을 통해 내부망에 침투하여 데이터센터의 냉각 시스템 제어권을 탈취한다(사이버 공격). 이후 냉각장치 를 원격으로 중단시켜 서버 전체를 과열로 파괴 하는 시나리오는 물리적 파괴와 사이버 공격이 결합된 형태다. 

둘째, 가장 위험한 시나리오는 ‘복합·동시 타 격(Complex & Synchronized Attack)’이다. 교체에 수개월이 걸리는 핵심 변압기를 적 특수부대가 드론(Drone)으로 정밀 타격하여 수도권 전 력망을 마비시키는 동시에, 서해안 주요 항만의 입출항 경로에 GPS 교란을 집중시켜 물류를 혼 란에 빠뜨린다. 같은 시각, 금융결제원을 대상 으로 한 디도스(DDoS, Distributed Denial of Service) 공격으로 은행 간 결제시스템을 마비 시키고, 주요 정수장에 대한 드론을 이용한 화 학물질 테러징후로 사회적 공포를 초래하는 최 악의 시나리오이다. 국가 시스템의 완전한 붕괴 (Systemic Collapse)를 목표로 하며, 민·관·군· 경·소방 어느 한 주체도 단독으로 대응할 수 없 는 총체적 위기상황을 초래시키는 것이다. 셋째, 새로운 위협 시나리오는 ‘공급망을 통한 잠입 공격(Supply Chain Attack)’이다. 국가 기 간 정보통신망에 설치되는 라우터나 스위치 장비 의 제조단계에서 악성코드가 담긴 칩이 몰래 삽 입한다. 평시에는 아무런 문제 없이 작동하다가, 공격자가 명령을 내리는 결정적인 순간에 네트워 크를 마비시키거나 주요 정보를 절취하는 백도어 (Backdoor)로 작동한다. 

이는 탐지가 거의 불가 능하며, 가장 신뢰해야 할 기반 시설이 순식간에 적으로 돌변하는 예측할 수 있는 시나리오이다. 넷째, 기타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는 내부자에 의한 고의적 파괴(Insider Sabotage) 이다. 불만 을 품은 내부 직원이나 포섭된 인력이 핵심 시스 템을 의도적으로 파괴하거나 정보를 유출하는 경 우이다. 또한, 자연재해 및 기후변화로 예측을 뛰 어넘는 집중호우, 지진, 태풍 등으로 인해 지하공 동구나 전력시설이 침수·파괴되는 경우이다. 

통합방위 차원의 정책·전략 제언

미래의 복합 위협은 다양한 변수와 예측과 공 시에 굴절로 인해 정해진 매뉴얼만으로 대응할 수 없다. 따라서 위에서 제시한 복합적인 시나리 오를 바탕으로 정례적인 작전환경평가를 통해 시나리오를 보완하고, 시나리오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모든 국가역량을 결집하는 통합 방위 차원의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첫째, 방호체계의 법적 기반을 격상하고 적용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 현재 국가중요시설 방호의 주요 근거는 국방 부 훈령인 「국가중요시설 방호지침」에 의존하고 있다. 이는 법률이 아닌 행정규칙으로서 강제성 이 약하고, 내용 또한 ‘적의 침투·파괴·사보타주’ 등 전통적 군사위협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 제는 훈령 수준을 넘어, 사이버 테러, 기술적 결 함, 자연재해, 내부자 위협 등 불특정 복합 위협 을 모두 포괄하는 법률을 제정하여, 민간 시설을 포함한 모든 방호 주체의 책임과 역할을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전통적 안보 위협뿐만 아니라 재 난, 인적 오류, 내부자 행위, 공급망 위협까지 포 괄하는 ‘올해저드(All-Hazard)’ 관점에서 국가 중요시설의 ‘복원력(Resilience)’을 확보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둘째, AI·양자 기술 등 첨단 과학기술을 방호 체계에 적극적으로 융합해야 한다.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 기반의 지능형 관제시스 템은 수천 개의 CCTV 영상 속에서 이상 행동(무 단침입, 배회 등)을 실시간으로 분석하여 경고하 고, 예측적 유지보수 기술은 설비의 고장 징후를 26 2025년 11월호 사전에 파악하여 NIRS 화재와 같은 사고를 예방 할 수 있다. 또한, 현실의 국 가중요시설을 가상공간에 그대로 복제한 ‘디지털 트 윈(Digital Twin)’을 구축하 여, 실제 시설운영에 지장 을 주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테러 및 재난 시나리오를 시뮬레이션하고 대응절차 를 숙달해야 한다. 미래의 보안통신에는 양자내성암 호(PQC, Post-Quantum Cryptography)를 전면 도 입하여 양자컴퓨터의 해킹 위협에 근본적으로 대 비해야 한다.

 셋째, 기존 ‘국가중요시설 방호위원회’를 활성 화하고 실질적인 컨트롤타워로 만들어야 한다. 통합방위법에 이미 국가중요시설 방호·지원 대 책을 심의하는 국무총리 소속 ‘국가중요시설 방 호위원회’가 규정되어 있다. 하지만 그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 국가중요시설 방 호위원회는 각 부처와 기관의 방호계획을 심의· 조정하는 것을 넘어, 불시에 국가중요시설의 방 호태세를 점검하는 ‘레드팀(Red Team)’을 직접 운영하여 실전적인 취약점을 찾아내고 개선을 명령하는 강력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넷째, 지자체장 중심의 실전적 통합방위훈련 을 정례화해야 한다. 통합방위법상 지역 통합방 위 의장은 지방자치단체의 장이다. 지자체장이 직접 책임지고 민간기업의 최고경영자(CEO)와 실무자까지 참여시켜, 관할구역 내 시설에 대한 복합 재난 시나리오 훈련을 강화해야 한다. 훈련은 단순히 초기 대응에 그치지 않고, 대규모 정 전 시 주민 행동요령 전파, 대체 에너지원 확보, 비상통신망 가동, 그리고 복구단계에서의 민· 관·군 협력 절차까지 포함하는 포괄적인 내용으 로 구성되어야 한다. 이번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는 우리에게 뼈 아픈 교훈을 남겼다. 국가안보는 더 이상 군인만 의 영역이 아니며, 우리의 일상을 지탱하는 국가 중요시설이 안보의 최전선임을 일깨워주었다. 경로의존의 법규와 관행에서 벗어나 복합적 위 협에 대응하는 법적 기반을 세우고, AI와 같은 첨단 과학기술로 무장하며, 지역사회가 함께 참 여하는 ‘살아있는 통합방위태세’를 구축해야 한 다. 견고하고 회복력 있는 국가중요시설은 단순 한 방호 자산을 넘어, 국가의 신뢰도를 높이고 투자를 유치하는 핵심적인 국가경쟁력이다. 이 제는 복합위협을 상정하고 대비하는 역량이야말 로 국가안보의 가장 중요한 척도임을 명심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