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남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전문연구위원

소련이 핵무기와 공산이념으로 서방을 위협했지만 소련을 이어받은 러시아는 에너지를 무기로 하여 유럽에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최근 유가 폭락으로 인한 러시아의 위기는 셰일혁명에 의한 획기적 에너지 증산 등 미국의 대응전략의 결과인 것이다. 미국이1980년대 후반의 경험을 통해 에너지 의존적인 러시아의 취약성을노렸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셰일혁명으로 미국이 [그림 1]과 같이 세계 최대 산유국이 되어, 세계 에너지질서는 물론 글로벌 전략판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유가 폭락이 소련 붕괴를 초래

1980년대 말 소련의 붕괴는 미국과의 군비경쟁 때문이 아니라 미국의 ‘강한 달러’와 에너지 공급 확대 정책으로 유가를 폭락시켰기때문이라는 주장이 등장하고 있다. 1974년 1차 석유파동으로 유가는 배럴 당 3달러에서12달러로 급등했고, 1979년의 2차 석유파동으로 유가는 배럴 당 40달러 가까이 치솟으면서 소련의 국력이 급성장했다. 더구나 당시 소련의 KGB는 유가를 높이기 위해 아랍의 테러집단으로 하여금 중동 정세에 불안정을 조성하도록 조정했다. 나아가 소련은 중동 석유자원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목적으로1979년 아프간을 침공했다. 이 같은 위기에직면하여 미국은 물론 사우디도 강력한 대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레이건이 집권했던 1980년대 초의 국제

유가는 86달러나 되었으며, 이 같은 고유가에 힘입어 소련은 공세적인 안보전략을 폈다. 미국은 소련의 전략을 억제하는데 가장효과적인 방법은 유가 하락이라고 판단했다. 레이건은 취임 즉시 석유가격에 대한 규제를 풀어 공급을 늘렸을 뿐 아니라 ‘달러 강세’ 정책을 폄으로써 레이건 퇴임 직전의 국제 유가는 28달러 이하로 추락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과 사우디는 유가 추락을 위해 긴밀한 전략적 협력에 나섰으며, 영국도 북해유전 개발로 에너지 공급을 확대했다.

이에 따라 사우디는 획기적인 석유 증산에 나섰다. 1986년 당시 사우디의 1일 원유 생산량은 200만 배럴에 불과했지만 그해 9월부터 약 6개월 동안 1일 생산량을1,000만 배럴로 급증시켰으며, 이로 인해국제유가는 32달러에서 10달러 수준으로추락했다. 그 결과 소련은 매년 200억 달러규모의 재정적자에 직면했으며, 외환부족으로 식량조차 수입할 수 없어 국민 불만이최고조에 달했다. 초강대국으로 알려졌던 소련은 불과 3~4년 만에 파산 상태에 처하게 되었다.

1989년 당시 소련을 지탱하기 위해는 당장 1,000억 달러가 필요했지만 통일과정에있었던 서독을 제외하고 소련에 차관을 제공할 나라가 없었다. 1990년 5월 고르바초프는 서독의 콜 총리에게 120억 달러 차관을 간청했지만 콜은 30억 달러만 제공했고,그 해 8월 소련이 또 다시 서독에 차관을 요청했을 정도로 절박했다. 그 해 6월 고르바초프가 노태우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던것도 시급한 소련의 차관 획득에 목적이 있었다. 결국 소련은 다음 해 말 붕괴하고 말았고, 소련의 지원에 의존해왔던 동유럽 공산국들도 뒤따라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에너지 안보를 중시해온 미국

냉전 이후 러시아가 주요 산유국이 되어에너지 수출국이 되면서 에너지 안보는 중요한 지정학적 문제로 등장했다. 미국은 세계 최대 에너지 수입국일 뿐 아니라 EU, 한국, 일본 등 주요 동맹국들도 주요 에너지 수입국이기 때문에 국제 에너지 시장의 안정을 전략적 과제로 인식하고 에너지전략을펴왔으며, 특히 세계의 주된 에너지 생산지역인 중동지역에 대한 안보전략을 중시해왔다. 또한 미국은 러시아 에너지에 대한 EU의 과도한 의존을 NATO의 심각한 취약요인으로 인식해왔다.

미국은 1999년 「실크로드전략법(the SilkRoad Strategy Act)」의 제정을 통해 세계 에너지 매장량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코카사스와 중앙아시아에 대한 정치적 경제적 지원을 확대했다. 이를 통해 미국은 중동지역은 물론 카스피해 지역, 중앙아시아, 발칸반도, 우크라이나 등의 에너지 자원, 에너지 파이프라인, 그리고 에너지 공급 회랑 등을 보호하는 외교정책을 펴왔다.

특히, 2001년 출범한 부시 행정부는 높은에너지 수입 의존도는 국가안보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 된다고 판단하고 에너지 안보를 국가전략의 핵심 과제로 삼았다. 체니 부통령 주도 하에 작성된 「국가 에너지정책보고서」는 “향후 20년 간 미국은 에너지 수요의 3분의 2를 수입에 의존해야 하며, 이로 인해 미국의 국가이익이 에너지 수출국들에 의해 훼손될 우려가 크다”고 지적하고 에너지 안보를 대외정책의 우선순위로삼을 것을 부시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이에따라 미국은 유라시아의 지정학적 중심축(geopolitical pivot)인 중동과 중앙아시아의에너지 벨트의 안보를 중시하는 정책을 중시했다.

이슬람 테러집단에 의한 9.11테러 이후 중동지역을 중심으로 한 미국의 에너지 안보에대한 경각심이 높아졌으며, 따라서 아프간전쟁과 이라크전쟁도 미국의 에너지 안보와 분리하기 어렵다. 미국은 세계 2위의 석유 매장량을 가진 이라크가 후세인 정권 하에서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생산하지 못했던 것이 국제 에너지시장의 불안정 요인의 하나로 인식해왔던 것이다. 이 두 전쟁을 계기로 미국은중앙아시아 국가들과 정치적 군사적 협력을확대하고 우즈베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의 공군기지를 임차했다. 그리하여 과거 소련의영향권 하에 있었던 이라크와 아프간을 미국의 영향권에 속하게 함으로써 국제 에너지시장의 불안요인을 크게 감소시켰다.

나아가 미국이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관계를 개선하면서 미국의 석유 메이저들은 카자흐스탄과 아제르바이잔의 에너지 개발과파이프라인 건설을 위해 50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하는 등 이 지역의 에너지 개발에 적극 참여했다. 그 결과로 서방 기업들은 카자흐스탄과 아제르바이잔의 주요 유전의 다수 지분을 보유하게 되었다. 또한 미국, 영국 등 서방의 석유 메이저들은 아제르바이잔의 산유도시 바쿠(Baku), 그루지야의 수도 트빌리시(Tbilis), 터키의 항구도시 세이한(Ceyhan)을 연결하는 총연장 1,776km 의 BTC 송유관을 완공하여 2006년부터 매일 100만 배럴의 아제르바이잔 원유를 러시아를 우회하여 유럽에 공급하게 되었고, 또한 바쿠-티빌리시-에르주룸(Erzurum, 터키)을 연결하는 BTE 가스관도 2007년에 완공하여 유럽에 가스도 공급함으로써 유럽의에너지 안보에 기여했다.

2000년대 들어 러시아가 에너지 무기화로유럽의 에너지 안보가 위협받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은 이에 적극 대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오바마 행정부는 에너지 자립을중요한 국정과제로 설정하고 멕시코만의 석유생산 확장과 대서양 연안의 시추를 허용했을 뿐 아니라 특히 셰일 에너지의 개발을적극 장려했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합병한 이래 오바마 행정부는 전략비축유(SPR)를 대량 방출하고 천연가스와초경질유(콘덴세이트)의 수출도 허용했다.가스 공급을 무기로 유럽을 위협해온 푸틴의 야망을 분쇄할 도구로 미국이 에너지를택한 것이다.

미국 셰일혁명의 위력

셰일혁명은 미국을 단기간에 세계의 에너지 슈퍼파워로 만들었다. 2007~2012년 기간중 미국의 가스 생산에서 셰일가스의 비중이 5%에서 40%로 급증했고 셰일오일 생산도 18배나 증가하여 미국의 원유 수입 의존도는 2005년의 60%에서 2013년 39%로 크게 낮아졌다. 그 결과 미국은 2014년에 세계주요 원유 생산국인 러시아를 제쳤으며,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이미 사우디를 제치고세계 제1의 에너지 생산국이 된 것으로 보고있다. 이처럼 불과 몇 년 사이에 미국은 에너지 슈퍼파워로 동장했다.

2014년 미국의 1일 에너지 수입량은 2006년에 비해 870만 배럴 줄어들었으며, 그것은 사우디와 나이지리아의 수출량을 합친 것과 같은 규모이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매일5백만 배럴의 석유류를 수출하면서 수출 품목 중 석유류가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셰일혁명은 미국의 에너지 산업의 붐은 물론 경제전반에 활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2008년의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미국경제는 2010년 이래 2% 이상의 건실한 성장세를 유지해왔으며, 2014년 2분기는 4.6%, 3분기는 5% 성장으로 년간 3% 정도의 성장을 달성했고,2015년에도 3.2% 성장할 것으로 세계은행이예상했다. 이는 선진국으로서는 예외적으로높은 성장이며, 에너지 수출이 본격화 될 경우 0.7%의 추가 성장이 예상되고 있다.

또한 유럽과 일본에 비해 절반 이하의 저렴한 에너지 비용으로 인해 미국산업의 경쟁력이 크게 높아지면서 해외로 나갔던 100여개의 미국 대기업들이 복귀하고 있고, 다른 다국적 기업들도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하면서 미국경제가 활력을 되찾고 있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은 2018년에는 미국이 중국 제치고 세계 제1위의 제조업 국가가 될것으로 예측했다.

그리고 셰일혁명으로 미국이 최대 에너지생산국이 되면서 세계 에너지질서(energyorder)는 물론 글로벌 전략판도에도 중대한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즉 중동 산유국들과 러시아의 영향력이 크게 위축되고 있는 한편, 미국의 영향력이 크게 강화되고 있다. 미국이 쇠퇴하고 있다는 주장이 대두되어 왔지만 셰일혁명으로 21세기의 지정학적 승자로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톰 도닐런(Tom Donilon)전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미국의 새로운 에너지 입지는 미국의 국제적 영향력을 크게강화시키고 있다. 미국의 에너지 대량 생산은 국제 에너지 시장의 공급 불안정과 가격폭등의 위험성을 크게 낮추고 있을 뿐 아니라 미국이 대외정책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고 조지프 나이도 셰일혁명이 미국의 “유럽, 러시아, 중동, 베네수엘라 등에 대한 외교전략, 테러리즘 대처 등대외전략 전반에 걸쳐 지정학적 전환을 이룩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로버트 매닝은 셰일혁명이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의 회복”에 기여하고 있다고 했다. 왜냐 하면, 러시아 등 반미국가들의 영향력이 축소된 반면, 미국은 전략적 자율성이 증대되었기 때문이다. 1976년 당시 미국이 OPEC 회원국으로부터 원유 수입 비중이무려 88%에 달했지만 셰일혁명으로 중동의전략적 중요성이 크게 줄어들면서 미국은아시아 중시전략을 채택할 수 있게 되었다.

미국과의 에너지 협력으로 한미동맹을 강화할 수 있는 기회

그동안 미국은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FTA를 체결하지 않은 나라에 가스 수출을 규제해왔다. 그러나 오바미 미국 대통령은 미국과 EU 간 FTA 협상이 타결되면 유럽이 미국가스를 쉽게 수입할 수 있을 것이며, 그리하여 유럽은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도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이미EU와 터키에 셰일 가스를 수출함으로써 유럽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며, 궁극적으로 세계 가스시장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축소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향후 미국은 에너지를 대외정책의 수단으로 적극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에서는 동맹국들을 대상으로 에너지를 수출해야한다는 주장이 비등하고 있어 머지않아 미국은 우방에 대한 에너지 수출에 나설 것이며, 아시아 우방인 한국, 일본, 필리핀 등도우선적인 수출 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오바마 행정부가 아시아중시정책을 펴고 있는 것도 중동에 대한 전략적 중요성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가능한 거시며, 아시아 중시정책을 뒷받침하고자 할 것이기 때문이다.

러시아와의 에너지 협력에 대해서는 긍정적 견해가 지배적이지만, 에너지를 대외정책의 주요 수단으로 삼고 있는 미국과 러시아 간의 대립이라는 전략적 측면에 유의할필요가 있고, 또한 한국이 북한을 통과하는가스관을 통해 러시아의 가스를 공급받을경우 우크라이나에서 나타난 문제가 발생할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가스를 빼내 사용하고 그 값을 지불하지 않거나 가스 통과료 인상을 요구하며가스통과를 거부할 경우 러시아는 가스 공급을 차단할 가능성이 있고, 북한 또한 가스관을 대남 압박용으로 사용할 우려가 있기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은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셰일에너지 생산국들과 에너지 협력을 강화할필요가 있으며, 특히 대미외교에 있어 에너지 협력을 주요 의제로 삼을 필요가 있다. 에너지는 군사무기 이상의 전략적 의미를 갖기 때문에 가장 확실한 동맹은 에너지를 매개로 한 동맹이기 때문이다.